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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미 대선에서 역사상 최초의 '여성, 비백인' 부통령이 탄생했다. 자메이카계 아버지와 인도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카멀라 해리스가 그 주인공이었다. 당시 그의 당선 승리 연설문이 큰 화제가 되었다. 해리스는 자신의 어머니와 함께 흑인, 아시아계, 백인, 라틴계, 북미 원주민 등 "수세대에 걸쳐 싸우고 희생해온 여성들"을 일일이 호명하며, 이들 덕분에 자신의 당선이 가능했다고 말했다.

그는 "100년 전에는 수정 헌법 19조(성별에 따른 투표권 차별 금지)를, 55년 전엔 투표권(여성 차별 불법화한 민권법)을 위해 싸웠던 여성들이 있었다면 2020년에는 목소리를 낼 권리를 지키기 위해 투표한 새로운 세대의 여성들이 있다"고 덧붙이면서 자신의 성취가 개인적· 일회적인 것이 아니라 여성정치의 역사적 성취라는 토대 위에 있음을 강조했다. 그녀의 발언은 여성의 사회적 성취를 '여성주의'라는 정치 사회, 역사 문화적 연결 고리 속에서 고려해야 함을 깨닫게 했다.

문학사에서 여성의 성취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20세기 미국 문학에 한해 훑어볼 수 있는 책이 등장했다. 저널리스트이자 비평가인 미셸 딘이 쓴 <날카롭게 살겠다, 내 글이 곧 내 이름이 될 때까지>(김승욱 옮김, 출판사 마티)이다.
 
 책 '날카롭게 살겠다, 내 글이 곧 내 이름이 될 때까지'
 책 "날카롭게 살겠다, 내 글이 곧 내 이름이 될 때까지"
ⓒ 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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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미국 사회로 한정되어 있지만 여성의 투표권이 인정되지 않았던 시기 언론에 글을 발표했던 여성(도러시 파커)이 존재했으며 페미니즘의 물결과 함께 자신의 의견을 드러냈던 여성 작가들이 등장했음을 확인하는 것은 의미 있다. 당시 활약했던 남성 작가들은 널리 알려져 있는 반면 여성 작가들의 활동은 가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지적인 역사' 또한 남성에 의해 지배되었다는 인상을 풍긴다. 하지만 당대를 규정할 만큼 영향력을 발휘했던 작품을 내놓은 여성 작가들이 상당수 있었고, 이들은 때로 남성을 능가하며 지성 사회를 이끌었다. 미셸 딘의 문제 의식은 이들이 충분히 알려지지 않았다는 데서 비롯되었다. 그리고 시대적 상황 속에서 그들의 활동과 작품을 살펴보는 프로파일링 작업을 통해 문학사에서 '여성주의'라는 흐름의 의의를 확인하고자 했다.  

이 여성 작가들은 왜 지워졌나

이 책에는 도러시 파커, 리베카 웨스트, 한나 아렌트, 메리 매카시, 수전 손택, 존 디디언, 노라 에프런, 재닛 맬컴 등 열 명이 넘는 작가가 등장한다. 한나 아렌트나 수전 손택을 제외하면 한국 대중에게는 낯선 이름이 대부분이다. 국내에서는 작가 개개인의 번역본을 만나기조차 어려운 실정이다. "그들은 뉴욕의 일부 고립된 집단 내에서만 유명하다"(p.11)는 미셸 딘의 설명을 읽고 나면 무지를 탓하기보단 그들이 알려지지 못했던 상황을 안타까워 해야할 것 같다.

개별 작가에 대한 배경 지식이 부족하기에 책으로 들어가는 관문이 높게 느껴지기는 하다. 분량의 한계로 인해 개별 작가에 대한 정보가 충분하지 않다는 인상이 들 수도 있다. 한 작가의 삶 전반을 훑으며 많은 저작을 다루다보니 시기별, 저서별 평이 오가며 혼란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저자는 사회 문화적 흐름을 바탕으로 저널리즘과 페미니즘, 연극과 영화, 픽션과 논픽션을 훑으며 개별 작가를 비평하고 작가들 간의 연결점까지 찾아낸다. 웬만한 내공으로는 엄두도 낼 수 없는 작업이다.

한나 아렌트나 수전 손택 등 지명도 있는 작가들에 대해 비평의 날을 세우는 일 또한 만만치 않을 게 분명하다. 하지만 미셸 딘은 그들이 지닌 명성과 권위에 치우치지 않고 여러 작품과 글을 통해 개개인의 면면을 균형있게 들여다본다.

저자는 아렌트에 대해 <전체주의의 기원>에서는 '전체주의'가 인류 역사에 기능하는 문제에 있어 당대 주류 지식인인 남성의 의견을 넘어서는 통찰력 있는 분석을 내놓았다고 평한다. 하지만 미국의 흑인 차별 문제와 관련한 <리틀록에 대한 단상>에서는 '차별도 반드시 필요한 사회적 권리'라는 편협한 시선에 머무르는 우를 범했음을 지적한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 출판되었을 당시 아이히만과 유대인 위원회에 대한 아렌트의 애매한 태도는 사람들에게 엄청난 비난을 샀다. 저자는 그 상황에 대해서도 찬반의 입장을 거론하며 서술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불편한 주제를 과감히 다루는 것을 두려워하는 법이 없"(p.140)었고 추상적 논리보다 개인적 관찰을 기반으로 인간의 어두운 본성에 대해 철저히 분석해 내었다는 아렌트의 업적을 놓치지 않는다.

수전 손택에 대한 글도 그렇다. <캠프에 대한 단상>으로 일약 '대중문화의 예언자' 지위에 오른 손택은 특유의 스타일과 문체로 더 높이 평가받기도 했다. 하지만 개인의 취향을 좋고 나쁜 것으로 분류하는 제약에서 해방시키는 글을 통해 대중 문화의 편을 들어주는 셈이 되었고 이는 고급 예술에 냉담해지던 당시 분위기를 가속시켰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었다고 지적한다.

<해석에 반대한다>에 대해서도 당시 지식인 사회에서 찬반의 입장이 존재했다는 것을 거론하고 손택 스스로 페미니스트임을 주장했지만 여성 집단을 공격하는 뉘앙스의 글로 인해 시인 에이드리언 리치의 비난을 사기도 했다고 전한다.

이렇듯, 미셸 딘의 펜은 호평과 악평을 오가며 객관적인 입장을 팽팽하게 유지한다. 개인적인 호감을 일체 배제하고 균형 있는 글을 쓰기 위해 미셸 딘이 사용한 무기야말로 'Sharp(책의 원제:날카로움)'가 아니었을까.
 
그들 각자가 지닌 재능은 서로 달랐으나, 잊을 수 없는 글을 쓰는 재주를 지녔다는 점은 그들 모두의 공통점이었다. 도러시 파커가 자신의 삶에서 느낀 부조리함을 신랄하게 돌아본 글을 쓰지 않았다면, 세상은 지금과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다. 단 한 번의 여행을 다룬 1인칭 글 속에 세상의 역사 절반을 쓸어담을 수 있었던 리베카 웨스트의 능력도 마찬가지다. 전체주의에 대한 한나 아렌트의 생각, 트롤 무리 속에 떨어진 공주의 기묘한 의식을 주제로 삼은 메리 매카시의 소설, 해석에 대한 수전 손택의 생각, 영화 제작자들에 대한 폴린 케일의 정력적인 비평, 페미니즘 운동에 대한 노라 에프런의 회의적 시각, 권력을 쥔 사람들의 결점을 나열한 레나타 애들러의 글, 정신분석학과 저널리즘의 위험과 보람을 돌아본 재닛 맬컴의 글 또한 그렇다.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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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작가에게 붙었던 부당한 꼬리표들  

저자 미셸 딘은 후기에서 여성주의에 '양면적인 반응'을 보이며 때로 적대적이기도 했던 이들 작가들을 통해 '여성주의 메시지'를 찾아내고자 한다. 이들이 활동하던 시대에도 사람들은 "'친절하지' 않은 여성, 무릎을 구부리지 않는 여성, 때로 대중 앞에서 실수를 저지를 용기가 있는 여성을 흔쾌히 받아들이지 못"(p.481)했다. 그런 상황에서 예리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주장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여성 작가들에게는 "예리하다거나 못됐다거나 다크 레이디"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고 "이 환상은 이런 여성들이 파괴적이고 위험하고 변덕스럽다고 주장"(p.481)하기까지 했다고 지적한다. 책에 등장한 여성 작가들은 개인적 성향에서부터 사회적 배경과 계급, 인종에 있어 저마다의 차이가 있었지만 그들 목소리의 높이와 음조를 결정하는 데에 '여성으로 살면서 겪은 일'이 배제될 수는 없었다.

여러 작가의 삶을 추적하며 미셸 딘이 발견한 교훈은 "우리는 자신에게 부여된 목소리로만 말할 수 있다"(p.484)는 것이다. 하지만 개인의 목소리란, 결코 홀로 동떨어져서 만들어지고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앞서 살아간 사람들의 역사를 통해 축적된 경험의 영향 아래 형성될 수 밖에 없다.

그렇기에 책에서 거론된 작가들이 '여성주의'에 있어 다른 태도와 시각을 지니고 있었더라도 역사와 사회 속에서 '여성'이기에 겪어야 하는 경험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데 연결점이 있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다양한 목소리의 필요성을 끌어낸 것이 미셸 딘의 성취가 아닐까. 그녀는 여성 작가들이 반드시 같은 목소리를 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우리를 규정하는 것은 서로의 공통점만이 아니"(p.484)기 때문이다.

이 책의 진가는 책에 등장하는 여러 작가의 주요 저서까지 찾아 읽어야 제대로 길어 올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남성으로 대표되던 20세기 미국 문학사에 출중한 여성 작가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렸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의 공은 크다.

그러한 작가들의 존재를 토대로 지금, 그리고 미래 여성 작가들이 자신의 활동 무대를 넓혀 나갈 것이다. 여성으로서 마주할 수밖에 없었던 사회적 차별과 경제적 장벽을 뚫고 '예리하게' 자신의 글을 펼쳐냈던 그들의 삶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귀감이 된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여성으로 사회적 차별에 맞서 당당하게 목소리를 내며 살겠다는 열망이 샘솟을 것이다. 남성 독자들에게는 이 책을 추천한 신형철 평론가의 말처럼 "'안다고 할 수 없음'과 '몰라도 되지 않음'"이라는 위치를 돌아보게 해줄 것이다. 많은 여성들이 책의 제목을 가슴에 품었으면 싶다. '날카롭게 살겠다', 내 삶이 곧 내 이름이 될 때까지.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기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됩니다.


날카롭게 살겠다, 내 글이 곧 내 이름이 될 때까지

미셸 딘 (지은이), 김승욱 (옮긴이), 마티(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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