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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장찌개 매일 먹어도 물리지 않는 된장찌개는 가장 만만한 찬거리이다.
▲ 된장찌개 매일 먹어도 물리지 않는 된장찌개는 가장 만만한 찬거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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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 후 부랴부랴 귀가하면 옷도 못 갈아입고 냉장고 문을 연다. 오늘 저녁으로 무슨 반찬을 할까 고민을 안 할 수 없다.

멸치와 다시마로 우린 국물에 총각김치와 두부를 두껍게 썰어 넣은 된장찌개. 시댁 동네 어르신들이 둘러앉아 담가 포기마다 속이 제각각인 배추김치. 가스 불에 살짝 구워 간장 찍어먹는 서천 김. 시댁 화단에 묻은 항아리에서 꺼내온 국물 시원한 동치미. 짭조름한 것이 곰삭은 깻잎. 냉장고 속 몇 가지 젓갈들이 순서를 바꿔 올라온다.

여기에 간간이 고등어나 조기, 삼치, 갈치구이가 올라오고, 때론 새우젓으로 간을 한 계란찜이 올라온다. 고기 요리의 일미는 돼지 등뼈나 목살 위에 묵은 김장배추를 썰지 않고 덮어 끓인 김치찌개다. 우리 식구들은 무엇을 내놓아도 불만 없이 잘 먹어주니, 요리법 개발이 달리 필요 없다.

뭘 해야 하나 고민이 시작되면 순간의 판단으로 순식간에 무엇인가를 만들어내게 되는 주부. 똑같이 직업 전선을 뛰어도 가사 일의 주 역할자라는 관행 그리고 이를 당연하다고 여기는 믿음에 토를 달지 않았다.
 
김장김치 겨우내 뿐 아니라 1년의 식탁을 책임지는 김장김치는 찌개, 부침, 찜, 볶음, 만두소 등 필요하지 않은 데가 없다
▲ 김장김치 겨우내 뿐 아니라 1년의 식탁을 책임지는 김장김치는 찌개, 부침, 찜, 볶음, 만두소 등 필요하지 않은 데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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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의 전유물이던 가사 일에서 다소 해방되긴 했지만, 코로나19로 식구들이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전업주부인 동생은 밥순이가 되었다고 말한다. 아침 먹고 치우면 점심하고, 점심 먹고 치우면 간식 주고 다시 저녁 준비하고 먹고 치우면 하루가 다 간다.

성장기 아이들은 먹어치우는 양도 많아서 이를 준비해야 하는 주부는 손에 물 마를 일이 없다. 코로나19로 전 국민이 집에서 여러 끼 식사를 하고 있으니, 여성만큼 바쁜 것이 냉장고다. 이 냉장고 안을 채우는 것이 주부라면, 여성이 기후변화의 판세를 바꿀 기회이자 주체인 이유가 있다.

잘 먹었다는 것은?
 
음식도 자꾸 하면 는다고, 우리 집의 경우 코로나19 이후 주부의 음식 솜씨가 나아지니 식구들이 더 잘 먹고 있다. 잘 먹는다 하면 좋은 것을 먹는다, 귀한 것을 먹는다, 어머니의 손맛을 느낀다, 배부르게 먹었다, 공짜로 먹었다, 끼니때 제대로 챙겨 먹었다 등 의미하는 바가 다양하다. 우리 식구들이 잘 먹는다는 뜻은 반찬 투정을 안 하니, 음식 하는 사람이 편하다는 뜻이다.
 
우리집표 계란말이 도시락 반찬으로도 제일이요, 식탁에서도 환영받는 계란말이 반찬
▲ 우리집표 계란말이 도시락 반찬으로도 제일이요, 식탁에서도 환영받는 계란말이 반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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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을 한다'와 '요리를 한다'는 다르다. '음식을 한다'는 사람이 먹기 위해 재료를 손질하여 먹을 수 있도록 장만하는 행위지만, '요리를 한다'는 여러 조리 과정을 거쳐 음식을 만드는 행위다. 지금이야 남녀 누구나 주방 일을 하지만, 통상 음식 하는 사람은 어머니 혹은 주부였다. 반면 요리하는 사람은 주방장, 셰프, 요리사와 같은 칭호를 사용해 능숙하게 음식을 하는 사람을 말한다.

레시피 정보와 경험이 더해지면, 음식 하는 것과 요리하는 것에서 큰 차이가 없다. 우리가 상기하는 어머니 손맛은 단순히 음식 하는 사람에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가장 좋은 반찬은 배고픔이라고, 언제 내놓느냐에 따라 성찬이 되고 졸찬이 된다. 또 누구와 먹느냐에 따라 요리도 그림의 떡이 될 수도 있다. 어떤 그릇에 담아 언제 내고 어떻게 배치하느냐에 따라 시각적인 맛이 '잘 먹었다'를 결정한다.
  
찬의 가짓수에  따라 이름이 다른 첩반상 먹는 음식이 지구온난화의 원인이라고 한다면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조리법과 조리기구, 시간과 안전을 고민해 봐야 한다.
▲ 찬의 가짓수에 따라 이름이 다른 첩반상 먹는 음식이 지구온난화의 원인이라고 한다면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조리법과 조리기구, 시간과 안전을 고민해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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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아찌 등 밑반찬류 냉장고에서 해를 묵기도 하는 밑반찬류는 주부에게 구원투수다.
▲ 장아찌 등 밑반찬류 냉장고에서 해를 묵기도 하는 밑반찬류는 주부에게 구원투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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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코로나 이후 "잘 먹었다"를 말하는 덕목이 추가되었다. 밭이나 목장, 공장에서부터 출발한 식품이 유통되어 우리 집 냉장고까지 오고, 가공 조리되어 식탁에 오르기까지 우리가 먹는 음식이야말로 지구온난화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이다.

가정에 도착한 식품의 경우, 적정한 조리기구, 조리법, 조리하는데 들이는 시간과 쉽고 안전하게 요리하는 것, 비용과 성 역할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잘 먹었다'를 설명하는 요소가 되어야 한다. 전통 음식 가운데, 오랫동안 장작을 태워 며칠을 고아 만든 슬로푸드 곰국은 건강에 좋긴 하지만, 초기 조리과정만 놓고 보면 이산화탄소 배출과 온실가스 감축에 역행하는 조리법인 셈이다.
 
오랫동안 화목을 지펴 국물을 우려내는 전통음식 슬로우푸드인 곰국은 건강에 좋지만, 초기 조리과정만 놓고 보면 이산화탄소 배출과 온실가스 감축에 역행하는 조리법인 셈이다.
▲ 오랫동안 화목을 지펴 국물을 우려내는 전통음식 슬로우푸드인 곰국은 건강에 좋지만, 초기 조리과정만 놓고 보면 이산화탄소 배출과 온실가스 감축에 역행하는 조리법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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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의 현실
 
냉장고가 커지다 보니 깊은 곳에 무엇이 들었는지 잘 모른다. 냉장고가 커서 많이 넣을 수 있다는 것은 역으로 많이 버려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생활의 편리를 추구한 냉장고가 도리어 주방의 효율성을 잃어버리게 한 기술이 되어 버렸다.

서늘한 곳을 찾기 어려운 아파트 주거 조건 때문에, 광에 보관하던 감자·쌀·마늘·양파 등도 냉장고에 보관한다. 김치통은 대형화되어 작은 통에 소분하려 꺼내다가 허리 삐끗하기 일쑤다. 냉장고 양쪽 문 안 선반은 슈퍼마켓의 진열대와 흡사하다. 식품의 유통기한은 단지 가장 좋은 맛을 내는 시한일 뿐이다. 먹었을 때 인체에 유해하지 않는데도, 최종 소비 날짜로 오인해 버린다. 안전에 초점을 맞춘 기한 표시가 아닌데도 냉장고를 너무 과신하지 말라고까지 하니, 주부는 눈물을 머금고 쓰레기통에 넣을 수밖에 없다.
 
식품의 유효기간 소스 등의 유통기한은 단지 가장 좋은 맛을 내는 시한일 뿐인데도, 더 먹어도 인체에 유해하지 않는데도 최종 소비날짜로 오인해 폐기한다.
▲ 식품의 유효기간 소스 등의 유통기한은 단지 가장 좋은 맛을 내는 시한일 뿐인데도, 더 먹어도 인체에 유해하지 않는데도 최종 소비날짜로 오인해 폐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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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동실 상황은 더 심각하다. 영하에서는 안전하다는 믿음까지 더해 , 통풍이 잘 되지 않는 아파트 베란다 특성상 습기에 약한 건재료는 냉동고에 보관한다. 빵과 떡은 뜨거울 때 냉동실에 넣었다 해동하면 햇밥과 같이 편리하게 먹을 수 있다. 냉장고는 곧 쌀통이자, 냉동실은 전기밥솥까지 겸한 셈이다. 먹기 좋게 소분한 곰국은 문 열다 떨어져 맞으면 발톱이 빠질 지경이고, 식품이 검정 비닐봉지에 넣어져 냉동실에 들어가는 순간 식품 미아가 되어 속으로 밀려들어간다.
 
물에 불려 삶아 조리하는 건식재료 통풍이 용이한 곳에 건재료를 보관해야 하나 아파트에서는 쉽지않아 대부분 김치냉장고나 냉동실로 향한다.
▲ 물에 불려 삶아 조리하는 건식재료 통풍이 용이한 곳에 건재료를 보관해야 하나 아파트에서는 쉽지않아 대부분 김치냉장고나 냉동실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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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는 열을 흡수하고 방출하는 화학 냉매가 포함되어 있어 음식을 차갑게 한다. 남극의 오존층에 구멍이 났다는 것을 알게 된 후, 염화불화탄소와 수소염화불화탄소와 같은 냉매 사용이 금해졌다. 그러나 이를 대체하는 화학물질은 오존층에 영향을 주진 않지만 화학 성분비에 따라 이산화탄소보다 만 배 넘게 지구온난화를 일으킨다. 냉장고에 의존하는 삶에 매우 비싼 기후 가격표가 붙어 있는 셈이다.
 
냉장고에 보관되는 채소들 냉장고에 의존하는 삶에는 매우 비싼 기후 가격표가 붙어있다.
▲ 냉장고에 보관되는 채소들 냉장고에 의존하는 삶에는 매우 비싼 기후 가격표가 붙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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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 파먹기 돌입
 
먹이사슬에서 낭비되는 지점을 해결하는 방법 중 하나로 나는 냉장고 파먹기에 돌입했다. 인간이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도록 먹을거리를 보관해주는 수단인 냉장고가 인간의 삶을 지속 불가능하게 하는 온난화를 부추기고 있다. 당장 한 주 장보기를 멈추고, 냉장고에 있는 식품을 음식물 쓰레기로 전락할 운명에서 구해내는 일에 착수했다.
 
육수는 멸치와 다시마, 버섯 등으로 국물을 냈는데, 냉장고 야채 칸의 시든 야채들을 넣고 삶으니 더 단맛이 났다. 냉동실의 명절 부침은 팬에 붙이지 않고 찜기에 쪘다. 전 옆에 송편·계란·감자·고기 등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음식들을 넣고 이것들을 소금이나 만든 소스에 찍어먹으니, 한 끼 든든한 일품요리가 되었다.

냉동실에 고춧가루·볶음참깨·들깨가루가 소분되지 않은 채 숨어 있었다. 참깨를 가루 내어 참깨소스를 만드니 시판 소스 못지않았다. 여름에 먹을 양으로 어느 해 가을부터 언 채로 있었는지 모를 냉동 홍시는 봄동 무칠 때 넣었더니 매실과는 다른 단맛이 났다. 명란젓은 뭇국 끓일 때 터뜨려서 넣었더니 특별한 맛이 났다.
   
냉동실에서 잠자는 명절 음식 뜨거울 때 맛있는 전류를 기름에 부치지 않고 찜으로 맛을 깨웠다.
▲ 냉동실에서 잠자는 명절 음식 뜨거울 때 맛있는 전류를 기름에 부치지 않고 찜으로 맛을 깨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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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 속 모든 야채와 고기의 샤브찜 10분만 가열하는 찜 요리는 영양소 파괴도 줄이고 열 에너지를 덜 사용하는 조리법이다.
▲ 냉장고 속 모든 야채와 고기의 샤브찜 10분만 가열하는 찜 요리는 영양소 파괴도 줄이고 열 에너지를 덜 사용하는 조리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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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냉장고 속 재료로 이런저런 시도를 하는 동안, 요리방법과 맛에서 미세한 변화가 일었다. 요리 실력이 한 단계 높아진 만큼, 식구들은 참 잘 먹었다고 한다. 냉장고 파먹기는 비용 절감을 넘어 기후위기를 타개하자는 실천적 선언을 함의한다.

코로나19 이전과 이후의 '잘 먹었다'는 완전 다른 개념이다. 

덧붙이는 글 | 필자 최수경은 자연해설로 시작해 환경운동을 거쳐 환경교육가가 되었다. 사대강사업이 계기가 되어 금강에 빠져, 금강트레킹, 여울트레킹이라는 영역을 개척했다. 현재 금강생태문화연구소 숨결에서 환경교육, 생태관광, 금강물환경과 관련한 일을 한다. 글을 쓸 때, 자연의 메시지가 실린 미세한 떨림을 감지해 쓰고자 하며, 저서로 <금강길 이야기길>, <더 자연스러운 자연해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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