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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고유한 시선 아이는 지천에 깔린 모래밭에서도 자기만의 보물을 알아본다.
▲ 각자의 고유한 시선 아이는 지천에 깔린 모래밭에서도 자기만의 보물을 알아본다.
ⓒ 김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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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위가 물러가고 봄볕이 당도했다. 공기는 말랑말랑한 기운을 품고 넘실거렸다. 봄기운이 모두의 마음을 들썩거리게 했나 보다. 모처럼 외식을 하러 시내로 나갔더니 길에는 차들이 가득했고, 거리에는 가벼운 옷차림을 한 사람들이 눈에 띄게 늘어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경복궁으로 향했다. 경회루에 다다라 벤치에 앉아 쉬었다. 연못 위로 흐르는 물살은 바람에 따라 시시각각 모양을 바꾸었다. 넓어졌다 좁아졌다, 둥글었다 뾰족해졌다 하면서 반복적인 그림을 그려 내었다. 주변에는 버드나무의 잎사귀를 떨군 긴 가지가 운치 있게 늘어져 있었다. 연못 가운데 있는 작은 섬에는 청둥오리들이 소나무 둥치에 모여 앉아 한가로이 낮잠을 즐겼다. 온화한 햇살이 등 뒤를 따끈하게 덥혔고 눈 앞으로 펼쳐진 확 트인 공간은 마음마저 청량하게 해주었다.

모래 바닥에서 좀 굵은 돌맹이를 골라 연못으로 던져보던 아이가 이내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돌맹이를 고르기 시작했다. 무얼 하나 보니 무수한 모래알 속에서 더 하얗고 반짝이는 알갱이를 찾고 있었다. 누구도 눈여겨 보지 않는 모래밭에서 자기만의 특별한 돌맹이를 골라내는 아이. 웅크리고 앉은 뒷모습이 사랑스러웠다.

그 마음과 시선을 살아가는 내내 품고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남들이 알아봐 주는 무언가를 갖기 위한 노력보다 어디서든 자기만의 보물을 찾아낼 줄 아는 안목이야말로 풍요로운 삶을 만드는 자산이 되지 않을까.

어느새 작은 손바닥이 자잘한 돌맹이로 가득 찼다. 오묘하게 희고 연한 살구빛을 띠는 조각들이 빛을 받아 희미하게 반짝였다. 내려놓고 가자 해도 절대 안된다며 아이는 그걸 보석처럼 움켜쥐고 걸어갔다.

아무것도 아닌 것 속에서 나를 사로잡는 무언가를 발견할 줄 아는 것은 삶을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재능일 수 있다. 오랜 시간 남들이 좋다고 하는 것, 사람들이 갖고  싶어 하는 무언가를 쫓으며 살았다. 그 시간은 무언가를 축적해주기보다는 내 안에 있는 고유함을 사그라들게 했다. 나만의 방식과 가치를 받아들이고 긍정하기까지 꽤 긴 시간이 걸렸다. 몸이 자라서 어른이 된다고 자아의 성장이 완성되는 건 아니다. 지금도 여전히 '나'라는 자아를 단단하게 다져가는 과정 속에 있으니 말이다.

학교를 졸업하고 갓 사회에 나왔을 때, 한껏 자랐다고 생각했던 자아는 다시 쪼그라들었다. 사회와 집단이 요구하는 가치에 맞춰야 했고, 다른 사람들의 기준과 시선으로 자신을 평가해야 했다. 타인이 인정해주는 방식에 나를 길들였던 것 같다. 회사라는 조직이 원하는 능력을 키우는 대신 고유한 성격은 무뎌지게 했다.

부족했던 (일에 있어) 냉철함이나 (관계 있어) 사교성은 강조해야 했지만 타고난 자유로움과 풍부한 감성은 억눌러야 했다. 타인이 우선시하는 가치로 바라보면 '나'라는 사람은 현실 감각이 떨어졌고 자기 주장을 펼치지 못하는 우유부단하고 부족한 존재였다. 그러니 남들이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방식에 맞추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써야 했다.

이제야 조금 편안하게 자신의 가치를 인정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영역을 넘나드는 자유로움, 삶과 예술에 대한 호기심, 감성적인 시선과 몽상가적 기질이야말로 내 삶의 자산이라는 걸. 아마 지난 이십여 년 동안 부딪히고 깨지고 좌절하면서, 성취와 실패를 반복한 덕에 알게 된 작은 지혜일 것이다. 그런 시간이 있었기에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편안함 속에서 즐거움을 추구할 수 있는 요소와 삶을 가꾸는 나만의 방식도 알게 되었을 테니까.

그중에는 사회화의 긴 시간 속에서 배우고 터득한 지혜도 있지만 본래 내 안에 있던 기질이나 성품을 고스란히 펼쳐내도 된다는 '자기 수용'에서 비롯된 것이 많다. 흠이라고 여겼던 어떤 기질은 잘 가꾸고 보살피면 독특함이라는 장치가 되기도 한다. 그렇게 살려낸 각자의 고유함이 적재적소에서 발휘될 때 세상은 더 다채롭고 풍성해질 것이다.

모래 알갱이 속에서도 색다른 돌멩이를 찾아내는 아이의 시선과 손길이 소중한 이유다. 자기만의 고유함은 사소한 행동 속에 깃든다. 모두가 하찮고 보잘것없다고 여기는 속에서도 자신이 아름답다고 여기는 것을 실행하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나에게는 부족했다. 그 용기가 조금 더 있었다면 삶의 비밀을 발견하는 데 걸린 시간을 앞당길 수 있지 않았을까.

아이는 남들이 좋다고 해서 좋은 게 아니라 내가 즐겁고 기뻐서 좋은 것을 쫓으며 살았으면 한다. 그 마음을 소중히 여기고, 마음이 내는 소리를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마음의 빛과 소리는 내 안이라는 가장 가까운 곳에 존재하지만 세상 그 무엇보다 잃어버리기 쉽다. 그렇기에 작은 돌맹이를 움켜쥔 아이의 손을 억지로 펼치게 할 세상에서 그걸 꼭 쥔 채 가도 된다고 말해주는 엄마이고 싶다.

근처 카페에 들러 아이가 좋아하는 마카롱과 밤케이크를 먹고 따뜻한 커피를 마셨다. 기울어진 해가 눈부시게 빛을 뿌리는 창가 자리였다. 아이의 입술 위로 반원을 그리며 남은 물자국이 햇살에 반짝거렸다. 미세한 보석을 뿌려 그린 무지개처럼. 무지개 밑에는 보물이 숨어 있다던가.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기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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