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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사람들은 벌레를 '벌거지'나 '벌기'라고 한다. 개똥벌레가 태백산맥을 넘어 동해 바닷가 마을에 오면 개똥벌기나 개똥벌거지가 된다. 쇠똥벌레도 쇠똥벌거지가 되고 무당벌레도 무당벌거지가 된다. 밥벌레, 일벌레, 책벌레도 죄다 밥벌거지, 일버거지, 책벌거지가 되고 만다.

초등학교 과학 시간에 곤충의 한해살이를 배울 때 장구벌레가 나온다. 장구벌레는 물에 사는 모기 애벌레를 달리 이르는 말이다. 요 녀석도 태백산맥을 넘어 바닷가로 오면 '곤두벌거지'라는 이름을 얻었다. <우리말샘>에서 '곤두벌거지'를 찾으면 '장구벌레'의 강원도말이라고 한다. 지역에 따라 곤두벌레, 곤두벌기라는 말도 쓴다. 곤두벌레는 충청도 말이라고 했다.  

곤두벌거지의 말밑
 
곤두벌거지(장구벌레)가 물낯에 숨관을 내놓고 숨 쉬는 모양
 곤두벌거지(장구벌레)가 물낯에 숨관을 내놓고 숨 쉬는 모양
ⓒ 이무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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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두벌거지는 누가 봐도 '곤두+벌거지' 꼴이다. '곤두'는 일상으로 쓰는 말에 '곤두선다'는 말에서 그 뜻을 살펴볼 수 있다. 거꾸로 꼿꼿이 선다는 뜻과 마음을 조이고 정신을 바짝 차린다는 뜻이 함께 들었다. '곤두질'은 뛰거나 넘거나 거꾸로 서는 따위 땅재주를 말한다. '곤두박질'이 있는데, 몸을 거꾸로 내리 박는 몸짓이나 모양새를 일컫는다. 오늘날 '곤두서다, 곧두세우다' 따위 말은 한자어말 '근두질'(跟阧질)에서 왔다.

<박통사언해>(1677)에 보면, "한번 跟阧질 하여"라는 대목이 나온다. 이때 '근두질'(跟阧질)은 몸을 획 뒤집어 거꾸로 내리 박히는 몸짓을 말한다. '근'(跟)은 '발꿈치 근'이고, '두'(阧)는 '가파를 두'인데 발뒤꿈치를 들어 앞으로 가파르게 몸을 내던지는 몸짓을 말한다. 19세기에 이르러 뒷가지 '-질'이 떨어진 꼴인 '근두치다'나 '곤두 치다'뿐만 아니라 어찌씨로도 나타난다.

<홍루몽>에서는 "한 번 근두치게 하고",  <옥루몽>에서는 "몸을 곤두쳐 번신코자 하거늘", <따라지>(1937)에서는 "이걸 보면 고대 먹었던 밥풀이 고만 곤두 스고 만다"는 대목이 나온다. '근두질'에서 '근두치다, 곤두치다'를 거쳐 오늘날 '곤두서다, 곤두세우다'가 되었다. 

벌거지는 벌레를 달리 일컫는 말이다. 벌레의 말밑은 '벌에'다.(<월인천강지곡>) '에'는 '등에', '누에'할 때 '에'다. 버러지는 '벌(에)+아지(어지)'가 아닐까 짐작해본다. '벌어지> 버러지/벌거지'로 생각해볼 수 있겠다. 물론 '버러지'도 벌레와 마찬가지로 어엿한 표준어다.

길게 말했지만 곤두벌거지는 머리를 거꾸로 내리 박는 모양을 한 벌거지라고 하겠다. 곤두벌거지는 꼬리 끝에 있는 호흡관을 물 밖으로 내밀고 숨을 쉬는데, 이것이야말로 곤두선 모습이 아닌가. 물에 사는 모기 애벌레 모습이나 특징을 매우 잘 붙든 말이다.  

곤두벌거지가 더 생생한 말, 복수표준어로 인정하라!

그런데 이쯤에서 장구벌레는 왜 장구벌레인지 궁금하지 않나. '장구'라는 앞말은 어떤 까닭으로 붙였는가. 까닭없이 붙여진 이름은 없다. 가령, 장구머리(사전 올림말로는 '짱구'다)는 이마나 뒤통수가 유달리 크게 튀어나온 머리통이나 그런 사람을 가리키는데, 머리통이 장구통과 닮았다고 해서 생겨난 말이다.

장구매듭, 장구머리초, 장구배, 장구배미 따위 말도 장구와 닮은 구석이 있어서 붙은 이름이다. 자연스런 귀결로 애초 장구벌레라고 이름을 붙였을 때는 나름 까닭이 있었을 것이다. 국악기 장구하고 닮은 구석이 있다고 붙인 이름으로 보인다. 장구벌레 배 부분을 가리고 머리와 가슴 부위만 보면 장구를 닮은 듯도 하다.

그렇다 해도 머릿속에 그려지는 벌레 모습이나 특성으로 보면 장구벌레보다는 곤두벌거지나 곤두벌레가 훨씬 생생하고 또렷하다. 나 같은 어리보기도 곤두벌거지라는 이름과 함께 곤두벌거지가 대롱 같은 숨관을 물 밖으로 내밀고 곤두선 모습을 본다면 평생 잊혀지지 않는 이름이 될 것이다.

더욱이 <표준국어대사전>을 보면 "길궐, 연현, 적충, 정도충, 혈궐" 같은 한자말은 알뜰히 찾아 적어주면서 "곤두벌거지, 곤두벌레, 곤두벌기, 꼰두벌레, 꽁두벌레, 곤두락지, 꽁닥벌거지, 수채벌기, 장굴레비" 같은 지역말은 몰라라 한다. 한자말을 찾는 정성이라면 생생한 지역말을 싣지 않을 까닭이 없다. 더구나 우리 말 사전이다. 우리 말 사전은 누구의 말을 모아 실어야 하는가. 말의 주인이 구구인가. 백성이다. 길궐, 연현, 적충 같은 말을 백성이 쓰는가. 평생을 두고 한번도 쓰지 않을 말이다.
 
한자말을 알뜰히 찾아 적어주면서 지역말을 내버린 <표준국어대사전>
 한자말을 알뜰히 찾아 적어주면서 지역말을 내버린 <표준국어대사전>
ⓒ 국립국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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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말과 글쓰기 교육, 어린이문학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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