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건설이 갈 길 바쁜 기업은행을 꺾고 탈꼴찌에 성공했다.

이도희 감독이 이끄는 현대건설 힐스테이트는 20일 수원체육관에서 열린 도드람 2020-2021 V리그 여자부 6라운드 IBK기업은행 알토스와의 홈경기에서 세트스코어 3-2(23-25,25-21,23-25,25-20,16-14)로 승리했다. 3위 싸움을 하고 있는 기업은행을 상대로 승점 2점을 추가한 현대건설은 전날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에게 세트스코어 1-3으로 패한 KGC인삼공사를 제치고 5위로 뛰어 올랐다(승점28점).

현대건설은 주포 헬렌 루소가 서브득점 3개와 블로킹 1개를 포함해 25득점을 기록했고 각각 44.83%와 48.72%의 리시브 효율을 기록한 황민경과 고예림도 나란히 12득점으로 뒤를 이었다. 하지만 현대건설이 승리하는 경기에는 역시 이 선수의 활약이 빠질 리가 없다. 블로킹 8개를 포함해 46.51%의 공격 성공률로 외국인 선수보다 많은 28득점을 폭발한 현대건설의 기둥 양효진이 그 주인공이다.

11시즌 연속 개인 타이틀의 주인공
 
 양효진은 지난 2019년 황민경에게 주장 자리를 물려 줬지만 여전히 현대건설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고 있다.

양효진은 지난 2019년 황민경에게 주장 자리를 물려 줬지만 여전히 현대건설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고 있다. ⓒ 한국배구연맹

 
'농구황제'로 불리는 미프로농구 NBA의 마이클 조던은 현역시절 7시즌 연속 득점왕을 차지했고 '패스마스터' 존 스탁턴은 무려 9시즌 연속 어시스트왕에 올랐다. 국내 야구에서는 '국보급 투수'로 불리던 선동열이 루키 시즌이었던 1985년부터 1991년까지 7년 연속 평균자책점 1위를 기록했다. 80년대부터 90년대 초·중반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기록으로 현재의 상식으로는 쉽게 이해하기 힘든 비현실적인 기록들이다.

하지만 V리그에서는 이 대단한 기록들을 능가하는 위업을 달성한 선수가 있다. 프로 3년 차였던 2009-2010시즌부터 황연주에 이어 팀 내에서 두 번째로 고참 선수가 된 2019-2020 시즌까지 무려 11시즌 동안 단 한 번도 블로킹 타이틀을 빼앗긴 적이 없는 양효진이다. 2007년 전체 4순위로 현대건설에 지명을 받을 때만 해도 단지 키만 큰 선수였던 양효진이 V리그 역사상 최고의 센터로 십년 넘게 군림하고 있는 것이다.

양효진이 더욱 대단한 부분은 큰 신장을 이용해 그저 블로킹에서만 강점을 보이는 선수가 아니라는 점이다. 양효진은 넓은 시야와 전후위를 가리지 않고 상대 코트의 빈 곳을 찌를 수 있는 탁월한 기술로 매 시즌 현대건설의 공격을 이끌고 있다. 양효진 입단 후 현대건설의 세터가 염혜선(인삼공사),이다영(흥국생명),김다인으로 바뀌고 있고 대표팀에서도 많은 세터들과 호흡을 맞췄지만 양효진은 언제나 한결 같은 기량을 유지하고 있다.

양효진의 가치는 국제대회에서도 빛나고 있다. 2009년 그랜드 챔피언스컵과 2010년 AVC컵에서 블로킹상을 수상하며 일찌감치 그 실력을 인정 받은 양효진은 런던 올림픽 세계 예선전과 리우 올림픽 세계 예선전에서 모두 베스트 미들블로커에 선정된 바 있다. 대표팀 막내뻘이었던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부터 고참급 선수가 된 작년 도쿄올림픽 최종예선까지 양효진은 한결같이 대표팀의 중앙을 지키고 있다.

2010-2011시즌과 2015-2016 시즌 챔피언 결정전 우승을 경험하고 2016년에는 챔프전 MVP에 선정된 양효진은 코로나19로 조기종료된 2019-2020 시즌에도 현대건설을 정규리그 1위로 이끌었다. 그리고 지난 시즌 득점 6위(429점), 공격성공률(43.70%)과 블로킹(세트당 0.85개), 속공(52.53%) 부문에서 나란히 1위를 차지한 양효진은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정규리그 MVP의 영예를 누렸다.

기업은행전 8블로킹 기록하며 꼴찌탈출 견인
 
 양효진은 시즌을 거듭할수록 김다인 세터와도 좋은 호흡을 보여주고 있다.

양효진은 시즌을 거듭할수록 김다인 세터와도 좋은 호흡을 보여주고 있다. ⓒ 한국배구연맹

 
현대건설을 정규리그 1위로 이끌며 생애 첫 MVP에 선정된 양효진은 시즌이 끝난 후 현대건설과 총액 7억 원(옵션 포함)에 연봉계약을 체결하면서 여자부에서 8년 연속 '연봉퀸'에 올랐다. 여자부의 각 구단별 연봉상한선(샐러리캡)이 23억 원으로 오르면서 각 팀 핵심 선수들의 연봉이 대폭 인상됐지만 지난 시즌 MVP를 수상했던 리그 최고의 센터 양효진의 위치는 굳건했다.

하지만 양효진은 현대건설의 통산 3번째 챔프전 우승을 목표로 맞은 이번 시즌 뜻밖의 부진에 빠졌다. 주전세터가 김다인으로 바뀌면서 공격에서 호흡을 맞추는 시간이 필요했던 건 어쩔 수 없다지만 경쟁상대조차 찾기 어려웠던 블로킹에서의 고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실제로 양효진은 1라운드 블로킹 13위, 2라운드 10위,3,4라운드 7위에 머물며 블로킹에서 거짓말 같은 부진에 빠졌다.

결국 양효진은 오랜 기간 자신이 호령하고 있던 블로킹 부문을 정대영(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한송이(인삼공사) 같은 언니들에게 내주고 말았다. 그렇게 부진을 면치 못하던 양효진은 5라운드부터 빠르게 감을 찾으며 순위를 끌어 올리기 시작했다. 5라운드 5경기에서 22번의 세트 동안 16개의 블로킹을 성공시킨 양효진은 세트당 0.73개의 블로킹을 기록하며 한창 좋았을 때의 블로킹 감각을 되찾고 있다.

그리고 양효진은 20일 기업은행과의 6라운드 첫 경기에서 '블로킹퀸'의 위용을 마음껏 발휘했다. 양효진은 이날 5세트 15-14에서 경기를 끝내는 마지막 블로킹을 포함해 무려 8개의 블로킹을 기록하며 기업은행의 공격을 완벽히 차단했다. 양효진은 공격에서도 46.51%의 높은 성공률을 기록하며 28득점으로 루소를 능가하는 팀 내 최다득점을 기록했다. 이제 한 경기를 치렀을 뿐이지만 양효진의 6라운드 세트당 블로킹은 1.60개에 달한다.

이날 블로킹 1개에 그친 김수지를 제치고 블로킹 부문 5위로 뛰어오른 양효진이 12시즌 연속 블로킹 1위에 오르기 위해서는 남은 4경기에서 최대한 많은 블로킹을 잡아내고 상위권 선수들이 주춤하길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양효진은 12시즌 연속 블로킹 1위 여부와 상관없이 유일하게 50%가 넘는 속공성공률(52.94%)을 기록하며 중앙공격수 중 가장 많은 득점(371점)을 올리고 있는 여자배구 최고의 센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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