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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이 글은 시민단체 장애여성공감 전 대표이자 정의당의 현 부대표인 배복주의 진솔한 고백으로부터 시작될 예정이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에 인터뷰이로 출연한 그는 일반적인 이성애 연애 관계에서 남성이 가진 자원은 '사회적 능력과 재원', 여성의 자원은 '몸'이라고 통찰한다. 

그리고 자신의 경우에는 '몸'에 장애가 있는 여성으로서 남성과 연애하기 위해 '다른 전략을 가져야 했다'며, '가부장제 사회에서 소위 착한 여자나 순종적인 여자로서 여성성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노력'하지 않을 수 없었던 일방적이고 폭력적이었던 연애의 기억을 풀어놓는다.
 
 책 '말하는 몸'
 책 "말하는 몸"
ⓒ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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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역시 자원으로서 기능하는 '정상적인 몸'을 갖지 못했기에, 배복주의 경험에 크게 공감했다. 나는 장애인은 아니지만, 고도비만 여성이며 여성성이 부재하다 여겨지는 외모를 갖고 있다. 

그리하여 계획대로라면 이 글은 불평등한 연애 관계에 대한 개인적인 스케치를 거쳐, 남성의 몸보다 훨씬 심하게 자원화되어 시시각각 계량되고, 측정되며, 평가받는 객체로서 존재하는 여성의 몸과 그 몸에 대해 이야기하는 두 권의 책 <말하는 몸>을 소개하는 방향으로 가지를 뻗어가야 했다.

그 와중에, 배복주의 이름이 세간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정의당 대표직에 있던 김종철이 같은 당 국회의원 장혜영을 성추행한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피해자로서 스스로 피해 사실 공개를 결정한 장혜영에 이어, 정의당 젠더인권본부장이자 부대표로서 당내 성폭력 사건의 수습을 맡은 배복주에게도 세간의 이목이 쏠렸다. 

입당 전 오랫동안 성폭력 피해자를 돕는 활동을 해 왔던 그는 일주일간 비밀리에 진상 조사를 진행하고, 피해자를 지원하였으며, 사건 발표 후 지도부를 대표하여 대국민 사과를 했다. 정의당은 가해자 김종철의 대표직을 박탈하고 당에서 제명하였으나 피해자 장혜영은 여전히 무분별한 2차 가해에 노출된 상황이다. 

사건 이후 많은 여성이 성평등을 말하는 진보정당에서, 그것도 권력자로 여겨지는 국회의원조차 '여성'이라는 이유로 성폭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는 사실로부터 좌절감과 무력감을 호소했다. 또한 넘실거리는 2차 가해의 물결은 그 자체만으로도 폭력적인 공해였다. 

이 때문에 나도 한동안 글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러나 용기 있게 고발의 언어를 말한 장혜영과 그리고 조직의 뼈아픈 자성과 피해자 회복의 언어를 말하는 배복주를 지켜보며 점차 다른 생각이 들었다. 조용히 넘어갈 수도 있었던 문제였다.

그러나 은폐하는 편리한 침묵보다는 진실을 밝히는 불편한 말이 절실한 순간이 지금이었다. 두 사람은 말하는 여성, 나아가 '말하는 몸'이었다. 

여성의 몸이라는 '전장' 
 
 책 '말하는 몸'
 책 "말하는 몸"
ⓒ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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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책 <말하는 몸>을 떠올렸다. <말하는 몸>은 미국의 페미니스트 록산 게이가 자신의 몸에 대해 쓴 에세이 <헝거>를 낭독하고, 각자의 몸에 관한 사유를 나누는 형식이었던 팟캐스트를 두 권 분량으로 묶은 책이다. 각 권에는 '몸의 기억과 마주하는 여성들' '몸의 가능성을 확장하는 여성들'이라는 부제가 붙었다. 

<헝거>의 챕터 개수와 동일한 숫자인 88명의 여성이 이 기획에 참여했다. 장혜영 역시 이 책의 인터뷰이로 참여하여 발달장애인 동생을 둔 언니로서 살아가는 자신의 몸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말하는 몸>에 등장하는 여성들이 말하는 '몸'이란, 그 자체로 일종의 '전장'이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증언한 인권운동가 이용수와 한국군의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을 연구하는 구수정의 말을 끌어오지 않더라도, 거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인터뷰이가 털어놓은 크고 작은 성폭력 피해 경험을 나열하지 않더라도, 여성의 몸은 여성혐오와 그 저항이 치열하게 각축하는 수라장과 같다. 

몸에 털이 많아서, 운동을 좋아해서, 키가 커서, 키가 작아서, 말라서, 살이 쪄서, 많이 먹어서, 고기를 먹지 않아서, 임신을 해서, 생리를 해서, 우울증을 앓아서… 온갖 중대하거나 사소한 이유들로 인해 여성들은 자신의 몸과 불화하도록 자라난다. 

노동자로서의 여성도 마찬가지다. 잠을 자지 못하고 미싱을 돌리는 미싱사도, 수십 킬로그램에 달하는 환자들을 번쩍번쩍 들어야 하는 간호사도, 공장 내의 유일한 여성 용접공도, 화장실조차 제대로 가지 못하는 콜센터 노동자도, 날씬한 몸을 유지하기 위해 식욕을 참는 트레이너와 요가 강사도, 잠이 부족한 방송작가도,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받는 변호사도. 사회는 그들의 '여성의 몸'을 제약으로 규정한다. 

'여성의 몸'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 자원화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우리 사회 감정노동의 최전선에 있는 아이돌이나, 성매매 종사자들이 그러하다. 때로는 '여성'이라는 범주 자체가 당사자에게 폭력이 되기도 한다. 남성이기도, 여성이기도 거부하는 논바이너리나, 여성이라는 범주를 교란한다고 배척받곤 하는 트랜스젠더의 경우다.

여성의 몸이 전장이라면 생존은 투쟁이다. 그렇다면 끈질기게 살아남은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수집하는 인터뷰어들은 일종의 '종군 기자'로 봐야 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팟캐스트 <말하는 몸>의 기획자이자 책 <말하는 몸>의 엮은이인 CBS 박선영 PD와 오마이뉴스 유지영 기자는 매우 성실한 종군 기자였다. 이들은 88개에 달하는 인터뷰의 서두에 밀도 있는 에세이를 덧붙여 인터뷰이들이 각자의 몸으로 구성한 세계를 지면으로 끌어 올리기에 앞서 마중물을 부어 준다. 

<말하는 몸>은 '몸의 기억과 마주해 온' 투쟁의 기록일 뿐 아니라, 행동하고 사유하는 주체로서 '몸의 가능성을 확장하는' 여성들의 당당한 선언이기도 하다. 이는 계집 녀(女)를 쓰는 여성, 그리고 남을 여(餘)를 쓰는 주류 아닌 여성까지 모두 포괄하는 품 넓은 개념이다. 

우리가 몸이라는 존재론적 한계이자 가능성을 보유하고 있는 한 이 책의 힘은 오래 지속될 것 같다. 내가 내 몸과 불화하는 순간이 올 때 백과사전처럼 들춰 보며 관계 회복의 실마리를 찾게 해줄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책이기 때문이다. 

[세트] 말하는 몸 1~2 - 전2권

박선영, 유지영 (지은이), 문학동네(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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