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계단 끝 첫 집' 옥상 계단 앞에서 찍은 어릴 적 사진.
▲ 기념사진 "계단 끝 첫 집" 옥상 계단 앞에서 찍은 어릴 적 사진.
ⓒ 김예린

관련사진보기

 
"이번 정류장은 남부민동 경로당입니다."

버스에서 내려 다섯 걸음만 발을 떼면 아득할 정도로 높은 계단이 푸른 하늘에 닿는다. 회색빛 시멘트로 크기도 높이도 제각각인 계단은 어릴 적 보았던 모습 그대로다.

매번 첫 계단을 오르기 전 하늘에 닿은 계단 끝을 본다. 머릿속에는 항상 '언제 다 오르지'라는 생각뿐이다. 계단을 오르며 계단 수를 세어보다, 80개가 넘기 시작하면 세었던 숫자가 헷갈려 포기했었다. 그래도 어릴 적 이 계단은 동생과 가위바위보 하기 딱 좋은 곳이었다. 가위바위보 해 이긴 사람이 후다닥 계단 두 칸을 뛰었다. 그렇게 30분을 놀며 올라야 계단 끝을 밟을 수 있었다.

1950년대 한국전쟁. 총과 포탄을 피해 살기 위해 부산을 찾은 피난민은 살기 위해 산 위에 집을 켜켜이 지었다. 함안서 온 피난민 할머니, 할아버지도 산 위에 집을 짓고 평생을 살았다. 

마지막 계단을 다 올라도 하늘에 손이 닿진 않았다. 계단 끝에 이어진 골목을 따라 두 번째 계단길을 올랐다. 두 번째 계단길 끝에 '계단 끝 첫 집'이 있었다.

'계단 끝 첫 집.' 할머니는 이따금 짜장면 배달을 시킬 때 음식점에 그렇게 말했다. 미로처럼 굽어진 골목길에서 '몇 번지'보다 '계단 끝 첫 집'이라는 단어가 배달원에게 더 익숙했다. 에메랄드색으로 곱게 페인트칠 돼 있는 계단 끝 첫 집에 도착하면, '할매 내 왔다'며 쩌렁쩌렁 외쳤다. 집에 짐을 풀자마자 나는 할머니 집 옥상으로 향하는 세 번째 계단에 올랐다. 

그곳에서 가만히 바라봤다. 파란 물감을 풀어놓은 듯 새파란 바다 위로 햇볕이 내리쬈다. 부서지는 빛에 눈이 부셔 얼굴이 찡그려졌다. '부산항'이라 부르는 항만은 하얀 배들이 항구에 묶여 넘실대는 파도를 따라 함께 춤췄다. 배 한 척이 회색빛 연기를 내뿜으며 물살을 갈랐다. 부산대교 위는 끊임없이 차들이 오갔다. 시선을 아래로 옮기면 무채색 가옥이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듯 마주 보고 있었다.

옥상 위에는 파란 물탱크, 녹슬어버린 운동기구, 스티로폼에 흙을 쌓아 키운 채소들이 소박한 일상의 풍경을 만들었다. 이곳에서 사람 사는 냄새를 눈으로 맡았다.

계단 끝 첫 집은 골목을 오가며 이웃 할머니가 수시로 문을 두드렸다.

"형님, 있는가? 미역국 많이 끓여서 좀 들고 와봤소."

"아이고 그냥 와도 되는데, 잘 묵을게."

"무릎은 좀 어떤고? 물리치료는 받았는가."


대문이 열린 계단 끝 첫 집에는 자식을 떠나보내고 홀로 남은 이들이 정감 어린 말로 서로를 안았다.
 
옥상에 오르면 탁 트인 부산항 전경과 마주할 수 있었다.
▲ "계단 끝 첫 집" 옥상서 바라본 부산항의 풍경. 옥상에 오르면 탁 트인 부산항 전경과 마주할 수 있었다.
ⓒ 김예린

관련사진보기

 
하늘이 감색 빛으로 바뀌며 가로등에 주황 불빛이 하나둘 켜졌다. 어릴 적 할머니 집에 놀러 온 손녀는 가로등 아래 동그랗게 빚어진 빛에 의지해 옆집 언니와 고무줄 뛰기를 했었다. 골목에서는 압력밥솥 추가 돌아가는 소리, 된장찌개 냄새 등 저녁냄새가 집집마다 흘러나왔다. 좁은 골목길은 두 사람이 한 번에 지나가려면 어깨가 부딪히지 않도록 비스듬히 몸을 비켜 지나갔다. 

이제 골목에는 가로등 불빛 아래 뛰놀던 아이도 서로를 배려하며 비켜 갈 사람도 없다. 차갑게 부는 바람에 마른 낙엽 잎만 '휙' 하고 잿빛 골목 위를 나뒹굴었다. 빈집이 늘어난 골목에서 밤이 되면 웅얼거리며 골목을 오가던 사람들의 검은 그림자에 나는 흠칫 놀랐다. 그럴 때면 할머니 집 대문 잠금장치를 한 번 더 꾹 눌렀다. 

할머니는 밤이 되면 형광등 대신 티브이에 나오는 빛에 의지했다. 형광등이 꺼진 방 안에는 티브이 속에는 드라마 배우들이 열연 중이었다. 굽은 등의 할머니는 드라마에 눈을 떼지 않았다. 할머니의 재미를 뺏을 수 없어 드라마가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물었다.

"할머니, 혼자 여기 있으면 무섭고 심심하지 않아?"

"티브이가 내 친구 아이가. 할머니가 경로당 회장 아니가. 총무도 같이 하고 있어서 머리가 좀 아프긴 한데, 동네 할머니들이랑 오리도 먹으러 가고 놀러도 댕긴다."

"그래도 여기는 계단도 많아서 집까지 오르기도 힘들잖아."

"자식들이 다 이사 오라고 해도 나는 여가 제일 편타. 인자 드라마 또 한다. 쉿!"


형광등이 꺼진 깜깜한 방 안은 오직 드라마 속 주인공의 목소리만 웅얼거렸다. 

덧붙이는 글 | 브런치에 게재됩니다.


태그:#공감에세이, #할머니, #추억, #기억, #역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전직 시골기자이자 두 아이 엄마. 막연히 글 쓰는 일을 하고 싶었다.시간이 쌓여 글짓는 사람이 됐다. '엄마'가 아닌 '김예린' 이름 석자로 숨쉬기 위해, 아이들이 잠들 때 짬짬이 글을 짓고, 쌓아 올린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