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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녀석들은 죽어서도 골칫덩이였다."

소설 <니클의 소년들>은 이렇게 시작한다. 니클 아카데미라는 소년 감화원(보호 처분을 받은 청소년을 수용하여 생각과 감정을 좋은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기관)의 부지에서 발견된 사람의 뼛조각.

세월이 흐른 뒤 그 땅을 개발하려던 사람들은 우연히 뼛조각을 발견하게 되고, 발굴 수색 결과 그 곳은 60년 전, 사람의 시신이 아무렇게나 버려진 공동묘지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시신은 니클 아카데미에 다닌 흑인 소년들이다. <니클의 소년들>은 이렇듯 잔혹 미스터리와 같은 서사로 시작한다.

평범한 인생을 송두리째 빼앗긴 평범한 소년들

<니클의 소년들>은 니클 아카데미라는 소년 감화원에서 일어난 차별, 폭력, 학대 등 비인간적인 사건과 참상을 다룬 픽션이다. 주인공 '엘우드'는 똑똑하고 지혜로운 흑인 소년이다. 그는 대학시험을 보러 가던 중, 억울하게 차량 도난 누명을 쓰게 되고, 강제로 니클 아카데미에 끌려간다. 엘우드가 니클 아카데미에 가고 난 후의 이야기가 소설의 주를 이룬다.
 
<니클의 소년들> 표지. 강렬한 표지만큼이나 강렬한 감동을 남긴 작품이다.
 <니클의 소년들> 표지. 강렬한 표지만큼이나 강렬한 감동을 남긴 작품이다.
ⓒ 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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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클 아카데미에는 흑인소년과 백인소년들이 있다. 하지만 기숙사나 학교, 식당 등 모든 공간이 흑인과 백인으로 분리되어 있는 인종 차별이 극심하게 이뤄지는 폭력의 공간이다. 엘우드는 니클 아카데미의 폭력과 부당함에 맞서지만, 돌아오는 건 폭력과 구타다.

어려서부터 '자신의 영혼을 믿고 자부심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마틴 루터 킹 목사의 가르침을 듣고 자라온 엘우드는 인간의 존엄을 지키려 노력하지만, 어느 순간 '니클 아카데미'에 서서히 적응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엘우드 자신이 옳다고 믿었던 신념을 저버리는 일이었다.
 
"그(엘우드)는 병동에서 닷새를 더 보낸 뒤 다른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수업과 노동을 하는 나날이었다. 이제는 그도 여러 면에서 여기 니클의 아이들과 같았다. 침묵의 미덕을 받아들였다는 점도 포함해서." - 109p
 
엘우드는 니클 아카데미에서 만난 터너라는 친구와 학교 내에서 특별한 자원봉사를 하게 되는데, 이 자원봉사라는 게 수상하다. 한 번씩 차를 타고 니클 아카데미를 나가, 차에 싣고 온 각종 식료품, 생필품을 가게에 되파는 것이다. 엘우드는 학교에서 몰래 내다 파는 식료품과 생필품이 원래는 니클 아카데미 소년들에게 주어진 것이라는 걸 알았다. 엘우드는 남몰래 그 목록들을 꼼꼼히 기록해둔다.

용의주도하게 니클 아카데미의 부정을 기록한 엘우드는 그 사실을 폭로하기로 결심한다. 어느 날 학교에 감사를 나온 사람과 기자들에게 그 기록을 전달하지만, 무시 당하고 도리어 그 사실이 학교에 알려진다. 다들 한통속이었던 것이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학교에 남아 죽을 만큼 구타를 당하느니 차라리 목숨을 건 탈주를 하겠다고 결심한 엘우드는 터너와 함께 니클 아카데미를 탈출한다.

'니클 아카데미'는 정말 사라진 걸까

그리고 시간은 흘러 현재로 돌아온다. 독자들은 무척이나 궁금할 것이다. 그들의 탈주는 성공했을까? 현재 시점에서 이야기를 끌어가는 화자는 흑인이다. 이삿짐센터를 운영하는 중년의 남성. 그는 니클 아카데미를 기억하고 있다. 기억하고 싶지 않지만 기억할 수밖에 없는 과거. 엘우드는 살았을까? 여기에 생각하지 못한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소설 속 주인공은 엘우드이지만 또한 수많은 흑인 소년들이기도 하다. 이 소년들은 문제를 일으키고 니클 아카데미에 들어오지만, 그들의 죄목이란 대부분 어이없는 누명에 가까운 것들이었다. 니클 아카데미에 들어온 순간, 그들은 인간성을 잃어버리고 삶의 소중한 것을 송두리째 빼앗긴 채 살게 된다. 니클 아카데미에 들어온 순간, 끝내 그 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이다.
 
"그곳에서 그렇게 망가지지 않았다면 그 아이들이 모두 다른 인생을 살 수도 있었을 것이다. 병을 치료하거나 뇌수술을 하는 의사가 됐을 수도 있고, 사람들의 목숨을 구하는 물건을 발명하거나 대통령에 출마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천재였을지도 모르는 그들의 재능. 물론 그들 모두가 천재는 아니었다. 예를 들어 치키 피트가 특수 상대성 이론 문제를 풀지는 않을 테니까. 하지만 그들은 평범한 삶이라는 소박한 즐거움조차 누릴 기회가 없었다. 경주가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불구가 되어 절룩거리며 정상이 되는 방법을 끝내 알아내지 못했다." - 209p
 
마틴 루터 킹의 연설문은 이 소설 속에서 여러번 등장한다. 엘우드는 부당하고 폭력적인 현실 앞에서 스스로 무너지지 않으려 애쓰며 마틴 루터 킹의 목소리를 되새긴다. 자신의 존엄을 지키는 것만이 끝내 승리하는 것이라 믿은 것이다. 어쩌면 그게 가장 어려운 일 아니었을까. 현실에 순응하며 무너지는 것을 백인들은 바랐을테니.
 마틴 루터 킹의 연설문은 이 소설 속에서 여러번 등장한다. 엘우드는 부당하고 폭력적인 현실 앞에서 스스로 무너지지 않으려 애쓰며 마틴 루터 킹의 목소리를 되새긴다. 자신의 존엄을 지키는 것만이 끝내 승리하는 것이라 믿은 것이다. 어쩌면 그게 가장 어려운 일 아니었을까. 현실에 순응하며 무너지는 것을 백인들은 바랐을테니.
ⓒ 안소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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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작년 미국에서 발생한 조지 플로이드 사건이 떠올랐다. 흑인 폭력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건이었다. 21세기, 백두대낮 대로에서 일어난 일이라고는 차마 믿기지 않는 사건이다.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은 니클 아카데미가 60년 전의 케케묵은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에도 진행 중임을 잘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2020년 퓰리처상을 비롯해 여러 문학상을 받은 <니클의 소년들>은 출간되기 전부터 화제작이었다. 저자 콜슨 화이트헤드는 이 작품으로 퓰리처상을 두 번째로 받았다. 그는 소설 속 엘우드처럼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연설을 들으며 늘 긍지와 자부심을 잃지 않으려 애쓰며 살았던 걸까.

화면 대부분을 차지하는 빨간 직사각형과 오른쪽 하단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며 있는 작은 두 명의 흑인 소년. 표지부터 강렬한 <니클의 소년들>은 우리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니클 아카데미는 정말 사라진 거냐고.

니클의 소년들

콜슨 화이트헤드 (지은이), 김승욱 (옮긴이), 은행나무(2020)


태그:#니클의 소년들, #퓰리처상 , #인종 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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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픈 것은 삶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도스또엡스키(1821-1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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