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2.17 10:31최종 업데이트 21.02.17 10:31
  • 본문듣기
 

모리 요시로 전 도쿄올림픽·패럴림픽 조직위원회 회장. ⓒ 연합뉴스=교도통신

 
5개월 앞으로 다가온 도쿄올림픽에 암운이 드리우고 있다.

먼저 2014년 도쿄올림픽 패럴림픽 조직위원회가 발족한 이래 7년간 위원장 직을 수행하고 있던 모리 요시로 전 총리의 사임이다.


그는 2003년 총리직 사임 후 자신이 추천한 고이즈미 준이치로가 총리직에 앉으면서 막후 실력자로 활동하다가 2009년 민주당 집권과 더불어 현실정치에서 사실상 은퇴했다. 하지만 여전히 일본 스포츠계의 보스로 군림해 왔다. 2005년부터 2015년까지 11년간 일본럭비협회의 회장직을 맡았고, 2014년 도쿄 올림픽 개최가 결정되자마자 만장일치로 조직위원장으로 추대됐다. 물론 일정 및 건강상 문제 등으로 두 가지 직책을 동시에 수행하기 힘들다는 이유로 럭비협회 회장직은 사임했지만, 여전히 럭비협회의 실질적인 권력자로 활동해 왔다.

이렇듯 스스로 은퇴를 선언하지 않은 한, 죽을 때까지 일본 아마추어 스포츠계의 보스로 군림할 것 같았던 그가 지난 2월 3일 일본 올림픽 임시 평의원회의에서 무심코 내던진 "여성이 많이 들어가 있는 이사회는 시간이 걸린다"라는 발언이 사회각계각층에 파문을 불러 일으켰다.

올림픽 실무를 관장하는 도쿄의 고이케 유리코 도지사는 즉시 유감이라는 뜻을 나타냈고, 도쿄도청에는 모리 위원장의 사과와 사임을 요구하는 전화, 그리고 자원봉사를 그만 두겠다는 탈퇴신청이 잇따랐다. 2월 9일 기준으로 자원봉사자 사퇴는 500여 명에 달하며, 성화 봉송 릴레이 주자 두 명도 사퇴할 뜻을 나타냈다.

당시의 급박했던 상황에 대해 도쿄도의 한 공무원은 기자의 전화취재에 "저는 도시계획과 소속인데 우리 쪽으로도 전화가 엄청나게 걸려왔다"면서 "실무를 담당하는 스포츠분과 쪽은 며칠 동안 하루 종일 클레임 전화가 걸려와 아주 혼쭐이 났다고 들었다"라고 밝혔다.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자 모리 전 총리는 사임할 뜻을 내비쳤고, <아사히신문>이 13, 14일 양일간 실시한 긴급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2%가 '모리의 사임에 찬성한다'고 밝혔다. 그만 둘 이유가 없다는 의견은 21%에 불과했다.

중요한 점은 그의 문제 발언이 어제오늘 갑자기 일어난 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총리 재직 시절부터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망언제조기'로 유명했다.

유명했던 망언

그가 남긴 대표적 설화 스캔들을 꼽자면 "일본은 덴노(천황)를 중심으로 한 신의 나라"가 빠질 수 없다. 총리대신 직을 수행하고 있던 2000년 5월 신도정치연맹 국회의원 간담회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는 도중 갑자기 이 발언을 해 일부 참석자들조차 깜짝 놀란 해프닝으로 유명하다. 왜냐하면 일본헌법에 정교분리 원칙과 덴노의 현실정치 불개입이 명시돼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현직 총리가 깨버린 셈이니 엄청난 스캔들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는 당시의 비판 여론을 비웃기라도 하듯 바로 다음 달 "(선거에서 누굴 찍을지 아직 고민 중인 사람들은) 관심 없다 치고 투표 당일 집에서 잠자면, 뭐 그것도 괜찮지"라는 선거무관심을 재촉하는 발언을 해 파문을 불러 일으켰다.

그의 설화 스캔들은 총리직 퇴임 후에도 멈추지 않았다. 2003년 6월 가고시마 현 가고시마 시에서 열린 한 공개토론회 자리에서 "아이를 낳지 않는 여성에게 세금을 쓴다는 건 이상하다"라는 여성멸시 발언을 했고, 도쿄올림픽 조직위원장 취임 후인 2014년 2월 소치 동계올림픽 당시 피겨스케이트 시합에 출전한 아사다 마오 선수가 경연 도중 넘어지자 "저 애는 항상 중요할 때 넘어진단 말야"라고 말했다. 2016년 리우 올림픽 때에도 "기미가요를 소리 내어 부르지 않는 선수는 일본대표로서 자격이 없다"라는 지론을 펴기도 했다.

워낙 설화문제가 많다 보니 "이번 여성차별 발언으로 (모리가) 사임할 필요는 없다"는 의견을 낸 사람들 중에는 "모리 전 총리의 그런 발언 한두 번 들어보나? 원래 그런 사람인데 뭘 새삼스럽게"라는 역설적인 이유를 드는 이도 꽤 많았다.

모리 대신 극우인사?

문제는 모리 전 총리의 사임이 결정된 이후이다. 불명예 퇴진을 하는 모리가 후임자를 추천한 것도 이상했지만, 추천자가 하필이면 극우주의자 가와부치 사부로 전 일본축구협회 회장이었던 것이다. 가와부치는 고령의 나이(만 84세)에도 소셜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데 그가 이전에 트위터에 올린 극우 발언들이 재조명을 받고 있다.
 

모리 요시로 도쿄올림픽·패럴림픽 조직위원회 회장이 직접 후임으로 지명했다가 논란이 된 가와부치 사부로 전 일본축구협회 회장. ⓒ NHK

 
그는 2019년 아이치 트리엔날레에 전시된 '평화의 소녀상'에 대해 당시 "일본인의 마음을 짓밟는다"며 철거를 명령한 가와무라 나고야 시장에 대해 "시장! 너무 잘했다!"며 응원 트윗을 쓰는가 하면, "체벌이 뭐가 나쁘냐, 체벌에는 인간 사이의 혼과 혼이 서로 부딪히는 울림이 있다"라며 체벌을 옹호해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또한 일본에서도 베스트셀러가 된 <반일종족주의>를 읽었다면서 다음과 같은 트윗을 올리기도 했다.

"일한 위기의 근원 반일종족주의를 읽어보면 정말 한국의 학자가 그것도 이승만학당의 교장이 이 책을 출판한 것에 감명을 받게 된다. 일본인이 같은 내용을 책을 펴낸다면 신빙성을 의심받게 되겠지만 한국의 박사들이 혼을 담아 조사실증을 한 후에 썼기 때문에 반론하기 어려울 것이다. 일본에 있어 이 정도로 고마운 역사서는 없다."(2019년 12월 6일)

"반일종족주의의 발간에 자극을 받았다. 한국의 양심이 이제서야 움직인다. 징용공 두 분의 증언은 반론이 불가능하다. 우리 딸과 결혼하지 않겠느냐는 일본인의 발언은 한국인에 대한 차별이 있었다는 것을 전면적으로 부정한다."(2019년 12월 17일)


또한 그는 대표적 극우잡지 <윌(WILL)>과 <하나다(HANADA)>의 정기구독자이면서 애독자라며 심심찮게 잡지에 실린 내용들을 소개하며 한국 차별과 혐오를 당연시 해왔던 전력이 있다. 그야말로 뼛속까지 극우차별주의자인 그를 평화의 제전이어야 할 올림픽 조직위원장에 앉힌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거센 반발이 일어났고, 가와부치는 고령이라는 이유로 스스로 발을 뺐다.

이렇게 위원회를 이끌어가야 할 조직위원장 자리가 근 열흘 동안 공석이 되어버리자 도쿄올림픽 개최가 가능하냐는 실질적인 의문이 본격적으로 제기됐다.

사실 그간 일본 언론 및 정치권은 최근 두어 달간 코로나 사태에 집중하느라 도쿄올림픽에 대해선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었다. 하지만 모리의 발언 및 사임, 그리고 후임자로 지목된 가와부치의 자격 논란이 거세지자 비로소 올림픽이라는 잊어버리고 있던 안건이 재등장한 모양새다.

어떻게든 올림픽은 치르려 하겠지만

현재 올림픽 개최 여부에 관해선 어떤 형태를 띠든 개최될 것이라고 보는 의견이 우세하다.

첫 번째 이유는 막대한 경제적 손실 때문이다. 2020년 3월 SMBC닛코증권 연구소는 도쿄올림픽이 전면 중지될 경우 경제적 손실액은 7조 8천억 엔(한화 80조 원)에 달하며 국내총생산(GDP)이 1.4% 감소될 것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한 바 있다.

간사이 대학의 미야모토 가쓰히로 명예교수도 "올림픽이 중지될 경우 4조 5천억 엔의 직접적 경제손실은 불가피하다"면서 "반면 간소화시켜 개최할 경우에는 1조 4천억 엔의 손실에 그친다"라고 발표한 바 있다. 아예 중지할 경우와 아닌 경우, 즉 중지한 경우와 무관중 경기를 펼칠 때의 경제적 손실 차이가 몇 조 엔에 이르기 때문에 이것 때문에라도 중지하진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다.

두 번째로 코로나19 대책으로서의 백신 접종과 계절적 요인이다. 일본은 전례 없는 발 빠른 행정조처를 통해 2월 17일부터 의료종사자를 시작으로 화이자 백신 접종을 실시한다. 1월초만 하더라도 일본의사회 및 전문가회의 등은 일본 국내에서 백신의 임상실험을 한 후 접종해야 한다는 견해를 폈지만 2월 들어 바로 접종으로 의견을 바꾸었고 일본정부도 이들의 자문을 받아들였다.

표면적 이유는 코로나 확진자 증가로 의료시스템이 마비되는 데서 오는 긴급대책이었지만, 도쿄올림픽도 일정정도 영향을 미쳤다고 전해진다. 도쿄올림픽 예비일정을 보면 당장 3월 25일부터 성화 봉송이 시작된다. 3월 10일부터 12일까지 열리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도쿄올림픽의 개최 여부가 결정된다. 총회 개최 전에 일본의 코로나 상황에 문제가 없다는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발 빠른 백신접종도 이러한 일환에서 진행되는 셈이다.
 

스가 일본 총리 ⓒ 연합뉴스

 
마지막으로는 하락일로를 거듭하고 있는 스가 총리 및 자민당 지지율을 반전시키기 위해서다. 지난 화에서도 밝혔지만 2월 들어 자민당 의원들의 긴자 고급 클럽 방문, 니카이 간사장의 설화 사건에 이어 위성통신 관련회사를 운영하는 스가 총리 장남의 총무성 고위관료 접대 스캔들까지 터져나와 현재 자민당 및 스가 총리의 지지율은 급속도로 빠지고 있다.

올해 9월엔 중의원 해산을 하지 않더라도 총선거를 치러야 한다. 이대로 가다간 입헌민주당 등 야당에게 정권을 빼앗기진 않겠지만 매우 힘든 선거가 될 것이다. 무엇보다 스가 총리의 재선은 끝났다고 봐야 한다.

그렇기에 반전의 카드로써 도쿄올림픽은 매우 매력적이다. 어떤 형태로든 도쿄올림픽을 치러내고, 또 올림픽을 '코로나 역경을 이겨낸 도쿄올림픽'으로 이미지메이킹 한다면, 지금보단 훨씬 선거에서 유리하다.

위 세 가지 점을 감안한다면 도쿄올림픽은 어떻게든 개최될 것 같다. 다만, 과연 도쿄올림픽을 주관하는 조직위원회가 제대로 기능할 수 있을까 걱정하는 목소리도 끊이지 않는다.

참고로 모리 퇴임, 가와부치 내정 사퇴에 이어 현재 도쿄올림픽 조직위원장 물망에 오르고 있는 하시모토 세이코 올림픽담당상은 2014년 피겨스케이트연맹 회장직을 수행하던 중 남성 피겨스케이터 다카하시 다이스케에게 키스를 요구하면서 그의 몸을 만지는 등 성추행 전력이 있는 인물이다.
 

하시모토 세이코 올림픽 담당상 ⓒ 연합뉴스/EPA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


다시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