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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환경 소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유통업체들이 잇달아 '무라벨 생수'를 선보이고 있다. 생수 용기를 분리수거할 때 라벨을 제거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덜어주는 한편 폐기물 발생량 자체도 줄이는 효과가 기대된다. 사진은 지난 1월 26일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 진열된 무라벨 생수.
 친환경 소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유통업체들이 잇달아 "무라벨 생수"를 선보이고 있다. 생수 용기를 분리수거할 때 라벨을 제거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덜어주는 한편 폐기물 발생량 자체도 줄이는 효과가 기대된다. 사진은 지난 1월 26일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 진열된 무라벨 생수.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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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다툼의 발단은 생수였다. 이태 전 낡은 정수기를 치운 뒤 지금껏 인터넷에서 생수를 배달시켜 마시고 있다. 지방정부에서는 수돗물을 식수로 사용해도 된다고 홍보하지만, 이웃 중에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끓여서 식힌 다음 냉장고에 넣어두고 마시면 된다지만, 해본 사람은 안다. 이게 얼마나 번거로운 일인지를. 커피나 차를 마실 게 아니라면, 맹물을 받아 끓이는 일은 거의 없다. 유난히 물을 많이 마시는 우리 가족은 생수가 대표적인 인터넷 쇼핑 품목이다. 

문제는 엄청난 양의 플라스틱 물병이 버려진다는 점이다. 구겨 넣어도 베란다 분리수거함은 며칠 만에 가득 찬다. 언뜻 물을 많이 마시는 습관 탓인가 싶어 미안해지기까지 한다. 나름 분리수거를 철저히 한다는 것으로 자위하지만, 게으름에 대한 변명일 뿐이다.

어떻게든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고, 이왕이면 친환경 제품을 산다. 버려진 용기가 재활용이 가능하도록 습관처럼 씻고, 떼고, 자른다. 조금 번거롭긴 해도, 이 정도는 기꺼이 감수할 수 있다. 그런데도 웬만해선 줄어들지 않는 애물단지가 바로 생수병이다.

얼마 전부터 병에 라벨을 붙이지 않는 생수를 애용한다. 작년 한 대기업이 선도적으로 출시했는데, 처음 뉴스를 접하고 얼마나 반갑던지 나도 모르게 무릎을 쳤다. 생수의 품질이 나아진 게 아니라 그저 비닐 라벨을 뗀 것일 뿐인데도 신선한 충격이었다.

문제는 라벨이 붙은 기존의 제품보다 더 비쌌다는 점이다. 병에 담긴 양도 같고, 라벨을 제작하고 붙이는 공임도 빠졌을 텐데 더 비싸다는 게 언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단지 '신상'이라는 이유로 눙칠 수 있나. 제품 가격을 은근슬쩍 인상하려는 기업의 꼼수라며 혼잣말을 했다.

"제작 공정의 변화를 생산비에 반영하는 건, 이윤 추구를 목표로 한 기업으로서 당연한 결정 아닐까요? 또, 소비자가 환경 보호의 필요성에 공감했다면, 그만큼의 비용을 지불하는 것은 그 다짐에 대한 의사 표시라고 생각해요. 비싸다고 여긴다면 안 사면 그뿐, 애꿎은 생수 가격에 몽니 부릴 일은 아니라고 봐요."

내 혼잣말을 들은 걸까. 귀 밝은 아이는 수요와 공급에 따른 적정 가격의 결정 과정을 일일이 설명하며 기업의 입장을 두둔했다. 생산비가 오르고 소비자의 수요가 늘었으니 가격이 오르는 건 당연한 귀결이라는 거다. 나아가 기업이 환경 보호 단체가 아니잖느냐고 되물었다.

이윤을 추구하는 것만큼이나 환경을 보호하는 데 동참하는 것이 미래 세대를 위한 기업의 의무라는 내 주장을, 그는 이상주의일 뿐이라며 폄하했다. 그런 기업은 지금껏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기업은 소비자의 취향과 선택에 따라 움직일 뿐이라고 교과서를 읽듯 말했다.

싸니까 쉽게 사고 쉽게 버린다

그의 말마따나, 기업은 소비자 하기 나름일까. 맞다. 소비자가 외면하는 기업은 순식간에 도태된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그렇다면 기업은 당면한 사회 문제의 모든 책임에서 자유롭게 된다. 소비자가 원하는 대로 했을 뿐이라는 답 하나면 족하기 때문이다.

환경 보호에 무책임한 기업과 환경 보호에 무관심한 소비자. 둘 중 누구의 잘못이 더 크냐를 두고 끝까지 평행선을 달렸다. 이윤이 줄더라도 친환경 제품에 가격을 낮춰 더 많은 소비자가 선택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과 비싸도 기꺼이 친환경 제품을 찾는 소비자가 많아져야 한다는 주장은 접점을 찾기 힘들었다.

그의 주장은 일목요연한 논리에다 계량화된 지표가 뒷받침되어 설득력이 있다. 누군가 이 말다툼을 관전했다면, 십중팔구 그의 손을 들어주었을 게 틀림없다. 그런데도 안타깝고 서운하다. 쥐가 고양이 생각해주는 격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어쩌다 이팔청춘인 그는 기업의 편이 됐을까.

데면데면한 채 아이와의 말다툼은 멈췄지만, 플라스틱 제품 가격에 대한 느닷없는 호기심이 일었다. 집안을 언뜻 둘러봐도 가재도구의 대부분이 플라스틱이었다. 인류가 사용한 도구로 시대를 구분할 때, 교과서에서는 지금을 여전히 철기 시대에 포함시키지만, 실상 '플라스틱 시대'로 불러야 마땅할 듯싶다.

주위에 이토록 플라스틱으로 만든 물건이 많아진 이유가 뭘까. 이는 우문이다. 다른 소재에 견줘 값이 싸기 때문이다. 곧, 이 질문은 이렇게 바꿔 물어야 한다. 왜 플라스틱 제품은 턱없이 쌀까. 이마저도 우문으로 여긴다면, 이는 지금 우리의 삶이 온갖 플라스틱에 지배당하고 있다는 뜻이다.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로 치면, 플라스틱을 대체할 수 있는 물건은 없다. 주방을 휭 둘러봤다. 유리 컵과 플라스틱 컵, 스테인리스 젓가락과 플라스틱 젓가락, 세라믹 그릇과 플라스틱 그릇, 하다못해 둘 다 일회용처럼 사용하는 종이백과 비닐봉지. 구입한 가격이 적게는 세 배에서 많게는 열 배도 넘게 차이가 난다.

싸니까 쉽게 사고, 싸니까 쉽게 버린다. 쓰고 버리는 데 별 거리낌도 없고, 익숙해지다 보니 아무런 죄의식도 없다. 유리도, 스테인리스도, 종이도 모두 재활용이 가능하지만, 플라스틱만큼 수명이 짧지 않다. 플라스틱보다 값이 비싸다는 것 말고는 다른 이유를 찾기 힘들다.

요즘 들어 플라스틱 사용에 대한 경각심이 확산되고는 있다. 이태 전 코에 플라스틱 빨대가 꽂힌 바다거북의 사진이 우리에게 큰 충격을 던져주었다. 그런가 하면, 지금 태평양에 한반도 7배 면적의 플라스틱 섬이 떠다닌다거나, 코로나 이후 전국적으로 '쓰레기 산'이 쌓이고 있다는 뉴스가 전파를 타기도 했다.

하지만, 경각심만으로 '가성비'의 유혹을 이겨내기란 쉽지 않다. 마음 한구석이 찜찜하고 불편하지만 그래도 선뜻 포기하긴 힘들다. 마치 몸을 해치는 줄 알면서도 끊지 못하는 마약에 비유한다면 너무 나간 걸까. 지구를 망가뜨리고 종국에는 자신을 해치는 '값싼 마약', 그것이 플라스틱이다.

플라스틱 판매할 때 폐기 비용도 부담하도록 해야

원인이 하나라면, 해법도 하나다. 플라스틱 소비를 줄이려면 가격을 올리면 된다. 그것이 '가성비'의 유혹을 떨쳐낼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이다. 따지고 보면, 플라스틱이 싼 건, 여느 제품의 경우처럼 제작 비용만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판매할 때 애초 폐기 비용을 함께 부담하도록 해야 한다.

폐기 비용을 일일이 따져볼 필요는 없다. 다른 소재의 동일 제품과 가격을 비슷하게 책정하면 된다. 적어도 합리적인 소비자는 같은 값이면 친환경 제품을 선택할 것이다. 수요와 공급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는 시장의 원리에 위배된다고 욕할 건 없다. 플라스틱의 폐해야말로 '시장 실패'를 능가하는 재앙이다.

코로나로 인해 도리어 '플라스틱 전성시대'가 도래했다. 스티로폼과 비닐봉지, 비닐 테이프로 휘감긴 종이 상자, 종이컵, 일회용 플라스틱 용기까지 아파트에도 하루가 멀다고 '쓰레기 산'이 생긴다. 1년 전만 해도 비닐봉지에 가격을 매겨 장바구니를 챙겨오도록 강제했는데 어느새 옛일이 돼 버렸다.

중국 음식의 경우,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먹고 난 뒤 문 앞에 빈 그릇을 두면 다시 수거해가곤 했는데, 이 또한 추억이 됐다. 지금은 무조건 일회용 플라스틱 용기에 담아 배달한다. 음식보다 포장재의 양과 가짓수가 더 많은 것 같다. 그런데도 별도의 배달 비용을 제외하면 음식 가격이 훨씬 싸다. 

샴푸와 세제 등의 리필제품도 황당하긴 마찬가지다. 리필해서 쓴다고 하면, 으레 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노력인 줄로 안다. 그런데, 이는 기업의 상술이며,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돈 몇 푼 아끼자는 거다. 고작 비닐에 담긴 것을 플라스틱에 담아 쓴다는 것일 뿐이다. 더욱이 비닐 제품은 안을 헹궈 버리기도 얄궂다.

요컨대, 정부는 플라스틱 제품에 세금을 매겨 소비를 줄이고, 기업은 친환경 제품 생산 공정을 획기적으로 늘려야 한다. 플라스틱을 대체할 수 있는 친환경 소재를 개발하고 상용화하는 노력은 게을리한 채 언제까지 모든 소비자가 환경 보호 운동가가 되기를 기다리고만 있을 텐가.

아이는 환경 보호를 실천하려는 소비자가 기꺼이 비용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지만, 아무리 따져 봐도 그건 억지다. 생활 속에서 환경 보호를 자연스럽게 실천할 수 있도록 정부와 기업이 환경을 조성해 '착한' 소비를 유도하는 것이 먼저다. 환경 보호에 대한 감수성이 풍부한 게 죄는 아니잖나.

작년 초부터 지금껏 종이컵을 일절 사용하지 않고 있다. 알다시피, 종이컵은 안쪽에 비닐 코팅이 되어 있어 재활용이 안 되는 폐기물이다. 환경 보호를 위해 함께 노력하자고 1년 내내 떠들고 있지만, 여전히 내가 일하는 교무실에선 종이컵 사용이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다. 종이컵이 주는 편리함은 상상 이상이다.

그러나 꼭 편리함 때문만은 아니다. 마구 쓰고 버려도 될 만큼 값이 싸기 때문이다. 만약 비싸다면 누구든 꺼내 쓰면서 여기저기 눈치를 보게 될 것이다. 혹시 종이컵 한 개에 시중 가격이 얼마인지 아는가. 창고형 매장에서 사면 더 쌀 테지만, 집 앞 조그만 마트에서 사도 믿기 힘들 만큼 싸다.

50개들이 20개 묶음이 9800원. 그러니까 1000개에 채 만 원도 안 된다는 거다. 종이컵 한 개에 9.8원. 길에 10원짜리 동전이 떨어져 있다 해도 애써 줍는 사람은 없다. 100원 미만은 세금을 납부할 때도 절사할 만큼 더 이상 돈의 가치가 없다. 10원도 안 되는 종이컵. 마구 쓰고 버려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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