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 제로> 영화 포스터

▲ <스트레스 제로> 영화 포스터 ⓒ 이대희애니메이션스튜디오,302플래닛


어느 날, 스트레스를 없애주는 음료 '스트레스 킬러'에 중독된 사람들이 어디론가 하나둘 사라진다. 동시에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불괴물'이 곳곳에 나타나 도심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린다.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짱돌(임채헌 목소리)은 불괴물의 습격을 받아 회사가 없어지며 졸지에 백수 신세가 된다. 

짱돌은 직장을 다시 구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번번이 불괴물의 횡포로 실패하자 친구 타조(김승태 목소리)를 따라 배달일에 나선다. 그들은 우연한 기회에 친구 고박사(유동균 목소리)가 만든 음료 '스트레스 제로'가 불괴물을 없앨 수 있는 열쇠임을 알아챈다. 짱돌, 타조, 고박사는 가족과 세상을 구하기 위해 비밀 히어로가 되기로 마음먹는다.

애니메이션 영화 <스트레스 제로>는 현대인의 가장 큰 적인 '스트레스', 스트레스를 낳은 '불괴물', 신비한 음료 '스트레스 킬러'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다. 연출은 <파닥파닥>(2012)으로 전주국제영화제 무비꼴라쥬상과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은 이대희 감독이 맡았다. 이대희 감독의 전작 <파닥파닥>을 기억하는 분이라면 <스트레스 제로>가 의아할지 모르겠다. 영화의 색깔이 확연히 달라졌기 때문이다.

<파닥파닥>은 횟집 수족관에 갇힌 고등어가 살기 위해 발버둥을 치는 모습과 바다로 돌아가는 탈출을 담았다. 우리네 삶을 무서우리만치 현실적으로 풍자하는 바람에 <니모를 찾아서>(2003) 같은 귀여운 물고기를 기대하고 갔던 어린이들을 깜짝 놀라고 말았다. 어둡고 무거운 내용으로 '동심 파괴'란 평가까지 받았던 이대희 감독은 다음 영화는 가족들이 같이 볼 수 있는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스트레스 제로> 영화의 한 장면

▲ <스트레스 제로> 영화의 한 장면 ⓒ 이대희애니메이션스튜디오,302플래닛


'평범한 아빠가 스트레스 불괴물을 잡는 히어로가 된다'는 콘셉트에서 출발한 <스트레스 제로>는 밝고 가벼운 히어로물을 표방한다. 스트레스가 괴물을 만들고, 괴물을 <고스트버스터즈>(1984)를 연상케 하는 영웅들이 물리친다는 서사 구조는 아이들이 느낄 재미에 중점을 두었다. 

단연 눈길을 끄는 건 스트레스로 인해 '불괴물'로 변해버린다는 설정이다. 이대희 감독은 장난감을 뺏겨 마구 소리치며 우는 막내딸의 모습에서 최초의 '불괴물'의 모습을 떠올렸다고 설명한다.

"모든 감정을 솔직하게 내보이는 딸의 모습이 마치 불타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고 이렇게 감정을 쏟아내면 스트레스가 쌓일 일도 없을 텐데 생각했다. 처음엔 '불괴물'이 도시를 부수는 장면을 떠올렸고 거기서 딸의 크레파스로 그려낸 첫 번째 '불괴물'이 탄생했다."
 
<스트레스 제로> 영화의 한 장면

▲ <스트레스 제로> 영화의 한 장면 ⓒ 이대희애니메이션스튜디오,302플래닛

 
<스트레스 제로>엔 다양한 스트레스가 녹아있다. 영화의 도입부엔 출근길 만원 지하철에서 서로 밀고 밀리는 직장인들을 보여주는 광고가 나온다. 회사로 출근한 직장인은 회사 상사에게 무참히 깨진다. 새롭게 일자리를 구하러 간 면접장엔 경쟁을 노골적으로 조장하는 문구 '뼈를 깎는 각오로 매출 성장을'이 붙어있다. 이렇듯 영화 속 직장인들의 스트레스를 받는 고단한 삶은 현실과 판박이다.

아이들도 스트레스에서 자유롭지 않다. '스트레스 킬러'를 만든 한준수(유동균 목소리)는 어린 시절에 끊임없이 경쟁을 부추기며 공부를 강요하는 엄마의 등쌀에 시달렸다. 학업 스트레스를 받은 한준수의 기억은 지금 현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엄마 역시 가계를 운영하고 아이를 키우며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스트레스로 태어난 불괴물과 맞서는 히어로의 대결은 외국까지 보편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설정이다. 반면에 영화 속 풍경은 한국적인 면이 묻어난다. 이대희 감독은 "어릴 때 외국 애니메이션을 보고 자랐다. 애니메이션 세계를 동경하면서도 가끔 이질감을 느끼고는 했다. 그래서 감독이 되고 난 후에는 한국의 풍경을 애니메이션 속에 담고 싶다는 욕망을 가지게 됐다"며 우리 주변의 풍경을 배경으로 담은 이유를 밝힌다.

영화 속 액션 장면은 한강 공원과 상암 하늘공원을 비롯한 잠실, 용산 등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그 속에서 워터건, 호버보드, 바이크, 푸드트럭, 원터건 대포 등을 활용하여 싸우는 모습은 마치 <괴물>(2006)을 보았을 때 느낀 현실감이 느껴진다. 짱돌, 타조 고박사를 도와주는 홍진이(김사라 목소리)의 카센터는 일산 근교를 모티브로 하고 있어 도시와 다른 한적한 느낌을 전한다.
 
<스트레스 제로> 영화의 한 장면

▲ <스트레스 제로> 영화의 한 장면 ⓒ 이대희애니메이션스튜디오,302플래닛


<스트레스 제로>는 현대인의 스트레스를 가족 애니메이션으로 풀어간 발상이 돋보인다. 정의, 우정, 가족애를 히어로 장르 안에 적절히 녹여낸 점도 좋다. 불괴물이 도시를 공격하는 장면의 기술적 표현도 상당하다.

단점도 뚜렷하다.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미국의 애니메이션 <소울>(2020)이나 일본의 애니메이션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2020) 등과 비교하여 스토리텔링이나 기술적 완성도에서 현격한 차이를 보여주는 것도 사실이다.

애니메이션에서 세계의 벽은 여전히 높고 한국 애니메이션의 갈 길은 여전히 멀었다. 그러나 한 걸음 한 걸음 전진하고 노력하는 한국 애니메이션과 애니메이터들을 보며 희망을 품게 한다. 이대희 감독은 앞으로도 애니메이션을 만들 것임을 강조한다.

"저는 그냥 한 길이에요. 계속 장편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싶어요. 다음 작품 라인업도 계속 있어요. 이번에 <스트레스 제로>를 만들면서 노하우가 많이 늘었어요. 다음 작품도 기대해주세요."(<노컷뉴스>와 인터뷰 중에서)
스트레스 제로 이대희 임채헌 유동균 김승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