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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당서울대병원 39 감염관리병동 간호사들이 환자들의 검체를 확인 하고 있다.
 분당서울대병원 39 감염관리병동 간호사들이 환자들의 검체를 확인 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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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행동하는 간호사회 황은영이라고 합니다. 아직도 이런 글로 고 박선욱 간호사의 이름을 부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저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지난 한 해 우리 사회의 영웅들은 일그러져 있었다.'

저는 간호사들을 이렇게 표현하고 싶습니다. 넘쳐나는 기사들 속 간호사들은 영웅이라 추앙받았습니다. 전쟁에 최전방에서 살신성인의 자세로 감염의 위험도 무릅쓰고 최선을 다한 그들. 그런데 정작 간호사들은 여전히 소모품처럼, 여기저기 쓸모에 따라 필요할 땐 쓰이고 버려짐을 반복하고 있는 현실에 처해 있습니다. 왜 3년 전 고 박선욱 간호사가 하늘에 별이 되던 그때와 꼭 같은 건지 저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선욱씨, 당신의 죽음은 헛되지 않았어요"

지난 2018년 2월 15일 오전, 선욱씨는 서울 송파구의 한 아파트에서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서울아산병원 신규간호사로 6개월간 일하는 동안 그는 높은 노동강도와 태움 문화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그 고인의 억울한 죽음을 국가는 산재 인정과 민사 승소라는 이름으로 인정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왜 정작 고인을 망자의 길로 들어서게 한 구조적 문제의 주체인 서울아산병원은 사과는커녕 대화의 시도조차 무시하며, 그 어떠한 대응도 하지 않습니까? 사람이라면 분명히 잘못임을 모르지 않을 텐데 말이지요.

산재의 인정뿐 아니라 민사에서도 법원은 "망인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과중한 업무를 부여하고 그 업무 부담을 개선하기 위한 관리·감독을 하지 않아 망인이 극심한 업무상 스트레스에서 비롯된 우울증세로 인하여 정상적인 인식능력이나 행위 선택능력 또는 정신적 억제력이 현저히 저하된 상태에서 자살에 이르렀고"라고 명시했습니다.

간호사가 환자를 간호할 때 대충이란 것이 없듯, 병원도 분명 간호사에 대한 보호 의무를 다해야 하는 것은 상식이 아니었던가요?

제가 나고 자란 대한민국은, 아니 세상은 그것을 상식이라고 가르치는데, 어른이 되고 간호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살다 보니 그것은 상식이 아니었던가 하는 의심이 들게 만드는 일투성이였습니다. 법원에서 선고한 판결문 속 내용 같은 일들은 넘쳐났고, 결국 저 역시 선욱씨처럼 '나를 죽여서 환자를 살려야 하는구나' 했었습니다.

3년째 말하고 있지만, 이건 대한민국 모든 간호사가 겪는 일입니다. 도대체 대한민국에서 제일 큰 병원은 간호사 하나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고 무슨 일을 하는 걸까요? 나이를 한해 한해 들어갈수록 저는 의문이 듭니다.

다시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는 명절, 설입니다. 설 연휴가 끝난 2월 15일은 고 박선욱 간호사의 3주기이기도 하죠. 2021년에는 "선욱씨, 이제 그런 일들이 없어졌어요. 당신의 죽음은 헛되지 않았어요"라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이렇게 허망하게 망자로 가는 이들이 없도록 많은 이들이 함께 변화를 촉구하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합니다.

일그러졌지만, 영웅도 아니지만, 간호사들의 부탁입니다.

태그:#행동하는간호사회, #박선욱간호사, #간호사, #아산병원, #산업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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