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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7시 40분경입니다
▲ 군산 선양동 해돋이 공원에서 본 일출,  아침 7시 40분경입니다
ⓒ 박향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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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명절연휴가 시작됐다. 30여분 근처의 시댁 시동생은 조카에게 감기기운이 있다고 알렸다. 그렇지 않아도 시댁에 가지 못할 것 같다고 알렸었는데, 오히려 잘된 건가 싶었다. 단지, 형제들과 나눌 음식을 마련했는데 나누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시부모님이 안 계셔도 7형제나 모이다보니 준비하는 음식도 제법 많았다. 일년에 두 번 명절에 이 음식을 나누는 것이 큰 재미였는데, 특히 설날, 형제들 조카들과 세배인사 주고받는 즐거움이 어디 작은 것이던가. 보통 아쉽고 서운한 게 아니다.

새벽에 눈이 떠서 책을 보고 있는데, 남편이 묻었다.

"우리 신정 때도 일출을 못봤는데, 오늘 해뜨는 거나 보러 갈까? 일출 보면 올해 당신 글쓰는데 복이 넘실넘실 올 것이네."

갑자기 귀가 쫑긋했다. 당연히 가야지. 군산의 설날 해돋이를 내가 제일 먼저 사진으로 남겨서 지인들에게 설날 복 받으라고 전해줘야지.

해돋이 공원으로 향하다 

군산에서 해마다 1월 첫날이 되면 해돋이 행사를 하는 곳이 있다. 바로 선양동(先陽洞) 해돋이공원이다. 매년 1월 1일, 새 희망을 기원해는 해맞이 행사를 연다. 작년에도 코로나가 오기 직전이어서 해돋이 행사가 있었다. 한겨울 새벽 6시경부터 시작되는 시민단체가 준비하는 문화제가 열린다. 풍물패 행사, 시낭송, 민요, 일출축가, 난타퍼포먼스 행사 등 다양한 볼거리가 있다. 또한 주관단체에서는 떡국과 어묵국등을 마련해서 해돋이를 찾는 시민들에게 따뜻함과 함께 인복을 나눈다. 당연히 올해는 이 행사가 취소되었다.
 
명절아침 해돋이를 구경하러 나온 사람은 나와 남편 뿐
▲ 선양동 해돋이공원 명절아침 해돋이를 구경하러 나온 사람은 나와 남편 뿐
ⓒ 박향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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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양동은 동네이름에서 해를 연상할 수 있다. '먼저 해를 맞는 동네'라는 뜻으로 군산의 역사와 문화 이야기가 가득하다. 근대소설작가 채만식 소설 탁류의 주인공 초봉이가 살던 곳이기도 하고, 조정래의 소설 <아리랑>의 배경이 된 곳으로 일제시대 조선인의 삶과 항일투쟁을 되새길 수 있는 문화콘텐츠가 풍부한 곳이다.

사람들이 얼마나 올까 하며 해돋이 공원으로 갔다. 집에서 차로 5분거리에 있는 공원에 가니, 날은 밝았지만 구름에 가려 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아서 오히려 다행이었다. 선양동네는 동서남북 사방이 열려져 있는 곳이어서 군산을 전망하기에 좋은 곳이다. 예전에 왜 이곳을 선양동이라고 이름 지었는지 가늠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층짜리 정자의 조망대 위에 올라가보면 예전 같은 너른 동네의 형상이 아니다. 곳곳에 들어선 고층 아파트로 시야를 막은 지 오래되었다. 이곳에서 전통시장인 구시장의 돌산이 보이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지금은 30층 짜리 고층아파트가 들어서서 하늘을 막았다. 개인적으로 군산시정의 도시설계작품에서 가장 최악의 아파트 허가라고 생각한다. 물론 어린시절, 그곳의 추억이 유별난 나에게만 느끼는 감정인지도 모르겠다.

오전 7시 30분이 지나갈 쯤, 서서히 회색빛 구름의 양 볼에 붉은 기운이 달아오르는 듯했다. 다행스럽게도 한 사람도 오지 않아서 오로지 나만의 일출을 만끽할 수 있게 되었다. 사진의 초점 속에 엷은 주홍빛 해를 맞추고 여러 번 이리저리 찰깍 단추를 눌렀다. 지평선도 없고 수평선도 아닌 일출일지라도 오늘 맞는 일출의 의미를 부여하며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예전 돌산 위로 떠오르던 그 해는 아닐지라도, 장마당 새벽을 여는 상인들의 눈길을 다 맞추진 못할지라도, 매일 떠오르는 저 해는 분명 이렇게 말할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오늘도 나는 세상 모든 생물들의 어머니이다. 나의 품안에서 다시 태어나거라."

한줄기 햇살은 얼마만큼의 광자(光子)가 모여져야 만들어질까. 한줄기 햇살은 얼마만큼의 사람들을 추운 겨울날 웃게 만들까. 돌아오는 길에 일부러 역전 급식소와 구시장을 거쳐서 돌아왔다. 그렇게 부산했던 거리가 한산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이틀 전 설날을 앞두고 봉사활동처인 '군산역전무료급식소'에서 준비했던 300여명분의 다양한 먹거리가 아직도 눈에 선했다. 센터에서 준비했던 설 차례상에 올해의 안녕을 소원하며 인사를 드리던 사람들도 생각났다.

오병이어의 기적처럼 봉사자들과 기부자들의 작은 활동들은 태산보다 더 큰 정성으로 빛이 났었다. 봉사단체의 회원들은 지난 토요일부터 연일, 오늘의 먹거리들을 마련했다. 특히 명태전, 버섯전, 고기전 등 5가지 모듬전을 준비하느라 고생한 어르신들의 수고는 말도 다 할 수 없었다. 하얀 가래떡, 떡국용 떡, 구이용찹쌀떡, 군산의 명물 단팥빵 그리고 주식 도시락이 준비됐었다. 주고받는 이들 모두가 서로 복 많이 받으라고 전하기에 바빴다.

이번 명절을 앞두고 시민들은 또 한번의 재난지원금이 전 국민에게 주어지길 희망했다. 경기도를 포함해서 10여개의 지방자치단체가 시군민에게 재난지원금을 주었는데, 내가 사는 군산은 포함되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상인들은 이번 설 경기가 지난 추석 때보다 못하다고 입을 모았다. 더욱이 코로나 비상사태로 설 명절에 '5인이상 집합금지'로 인해 고향으로의 발걸음에 제동이 걸리니 더욱더 지역경제가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지역의 지인들은 걱정어린 말 속에 늘 희망이 있다.

"다 잘 될거여. 백신도 온다하고, 아무래도 작년보다는 한결 나아지겠지. 우리들도 마음의 준비가 더 단단해졌고. 피 흘리는 전쟁도 아닌데 이걸 못 이기겄어?" 라고 위로한다.

집으로 돌아와서 바로 지인들과 학부모님들에게 설날 아침 인사로 일출을 선물했다. '슬기로운 집콕설날' 이라는 문구도 함께 보내드렸다. 고층아파트의 첨탑에 내리쬐는 햇살보다 땅으로 내려올수록 햇살은 부채꼴처럼 퍼지며 넓어진다. 그러니 낮은 자세로 살아가는 지혜가 더욱 필요할 때이고, 나누는 삶의 행동이 더욱더 요구되는 때이다. 그래야 함께 살아갈 수 있고 같이 잘 살아가는 것만이 우리 인류의 번영을 약속받을 수 있다고 메시지를 띄웠다. 내가 하는 말이 아니고 설날 아침 밝고 포근하게 떠오른 '아침 해'의 말씀이라고 전해주었다.
 

태그:#군산선양동, #설날일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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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과 희망은 어디에서 올까요. 무지개 너머에서 올까요. 오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임을 알아요. 그것도 바로 내 안에. 내 몸과 오감이 부딪히는 곳곳에 있어요. 비록 여리더라도 한줄기 햇빛이 있는 곳. 작지만 정의의 씨앗이 움트기 하는 곳. 언제라도 부당함을 소리칠 수 있는 곳. 그곳에서 일상이 주는 행복과 희망 얘기를 공유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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