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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전주시 국민연금공단 전경.
 전북 전주시 국민연금공단 전경.
ⓒ 김길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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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시중 은행과 증권사들은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5조원이 넘는 피해를 남긴 파생결합펀드(DLF), 라임·옵티머스펀드 등을 판매해 큰 물의를 일으켰다. 하지만 이들의 모회사 KB·신한·하나·우리금융그룹의 최고경영진 대부분은 최근 연임에 성공하며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다. 어떻게 이들은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키고도 자리를 지킬 수 있었을까. 

최근 노동·시민사회단체들이 주목하고 있는 곳은 국민연금공단이다. 국민연금은 이 회사들의 최대주주 혹은 2대 주주로, 문제를 일으킨 최고경영진의 해임을 건의하거나 연임에 반대하는 등 막강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국민연금공단은 국민들이 소득활동을 하면서 낸 보험료를 굴려 노후자금으로 되돌려주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보건복지부(아래 복지부) 산하 준공공기관이다. 지난해 11월 기준 기금조성액은 807조원에 이른다. 

이 기금액은 주식, 채권 등의 형태로 다양한 곳에 투자돼 있다. 2018년말 기준 국민연금에서 주식 의결권을 보유한 국내 상장회사는 모두 716곳으로, 이 가운데 266개사(37.2%)의 경우 국민연금이 5대 주주 안에 드는 대주주다. 사실상 국내 주요 대기업들의 경영 판단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셈이다. 

2018년, '투자기업 경영 감시' 선언했지만... 

국민연금은 지난 2018년 7월 '국민연금기금 수탁자 책임에 관한 원칙(스튜어드십 코드) 도입방안'을 심의·의결하고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했다. 

스튜어드십 코드(stewardship code)는 주인의 자산을 관리하는 집사처럼, 큰 금액의 자산을 맡아 운용하는 기관투자자들이 투자기업의 의사결정에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말한다.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은 국민 보험료를 기반으로 조성된 기금액을 투자한 회사의 가치를 높일 수 있도록, 해당 회사를 적극적으로 감시·견제하겠다는 선언이었다. 

하지만 이런 선언이 무색하게 국민연금은 스튜어드십 코드에 따른 권한 행사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경제개혁연구소에서 발간한 '2020년 정기주총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와 개선과제'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국민연금이 투자기업 주주총회에 참여해 직접 반대 의결권을 행사한 비율은 12.4%에 불과했다. 2020년부터 국민연금은 위탁운용사에 의결권 행사를 일부 위임했는데, 위임의 경우 반대 비율은 10.2%로 더 낮았다.  

안건별로 살펴보면, 지난해 국민연금은 투자기업의 정관 변경 안건의 경우 13.1%, 사내이사 선임 안건 중에서는 7.9%에 반대하는 데 그쳤다. 사외이사 선임과 감사위원 선임 안건에는 각각 14%, 11.2%에만 반대 의결권을 행사했다. 

의결권을 위탁운용사에 위임한 경우엔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 세부기준을 준수하지 않는 사례도 다수 발견됐다. 세부기준에 따르면 직전 임기동안 이사회 참석률이 75% 미만이거나, 사외이사·감사의 재직연수가 10년을 넘으면 선임에 반대해야 하는데 이를 따르지 않은 것이다. 

예를 들어 로체시스템즈의 곽아무개 감사는 지난 2003년 최초 선임돼 17년째 감사로 재직 중이지만, 국민연금 위탁운용사는 재임에 반대하지 않았다. 파크시스템스 김아무개 사외이사도 출석률 미달로 선임에 반대해야 하는 경우였지만 위탁운용사는 반대표를 던지지 않았다.
 
지난 9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국민연금공단 충정로사옥 앞에서 민주노총, 참여연대 등이 연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2021년 정기주주총회에서 국민연금의 적극적 주주권 행사'를 촉구하고 있다.
 지난 9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국민연금공단 충정로사옥 앞에서 민주노총, 참여연대 등이 연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2021년 정기주주총회에서 국민연금의 적극적 주주권 행사"를 촉구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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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문에 국민연금이 주주권 행사를 등한시하면서, 국민들의 건강과 안전을 위협하는 등 사회적인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투자기업들이 방치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김남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부회장은 "해외 연기금의 경우 지배구조 개선이 필요한 회사들의 리스트를 상시적으로 공개하는데, 이것만으로도 투자기업들에게 충분히 긴장감을 줄 수 있기 때문"이라며 "반면 국민연금은 이러한 리스트를 꾸렸는지조차 공개하지 않고 있어 이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국민연금은 2018년 스튜어드십코드 도입에 이어 2019년 수탁자 책임 활동에 관한 지침도 마련했지만 올해에도 이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며 "복지부 등 행정부의 감시가 절실한 상황"이라고 부연했다. 

실제 해외 연기금의 경우 투자한 기업의 가치 제고를 위해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에 나서고 있다. 

대표적으로 미국 캘퍼스(CalPERS : California Public Employees' Retirement System)는 2018년 이사회 구성의 다양성을 요구한 504개사 중 39%(198개)의 이사회 다양성이 개선됐고, 개선되지 않은 145개 기업의 468개 이사 선임 안건에 반대 의결권을 행사했다. 

네덜란드 연기금 APG(ALL Pension Group)도 주주총회에서 문제 안건이나 이사 선임에 대해 적극적인 반대에 나섰다. APG가 스튜어드코스십 코드를 발표한 2018년 의결권 행사 반대 비율은 18%였다. 임원 선임과 관련한 반대 비율은 19%였다.  

연이은 산재와 노동자 과로사 이어지는데

현재 시민사회에서 문제기업으로 지목하고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를 촉구하고 있는 기업은 삼성물산, 포스코, CJ대한통운, 4대 금융그룹 등이다. 지난해 9월 기준 국민연금은 삼성물산의 7.59%의 지분을 가진 3대 주주이고, 포스코의 경우 11.43%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또 CJ대한통운의 9.19%의 지분을 보유한 2대 주주이기도 하다. 이와 함께 국민연금은 KB·신한·하나금융그룹의 최대주주로, 우리금융그룹에는 2대 주주로 등재돼 있다. 

삼성물산의 경우 2015년 제일모직과의 불법 합병 당시 이사였던 이들이 현재에도 여전히 재직 중이라는 점에서 국민연금이 이사 해임 건의 등 주주권 행사를 포기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합병 당시 삼성이 고의로 삼성물산의 가치를 제일모직의 3분의 1 수준으로 평가하면서 국민연금에 약 6000억원의 손실을 입혔음에도 공단이 이를 묵인하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이와 관련해 2016년과 2019년 국민연금공단이 삼성물산에 손해배상을 청구하도록 하는 청원서를 복지부에 제출했지만, 현재까지 아무런 움직임도 없다는 것이 노동·시민단체 쪽 설명이다. 

이와 관련해 참여연대 등 노동·시민단체는 올해 3월 임기가 만료되는 최치훈 삼성물산 사장 등의 연임에 국민연금이 반대 의결권을 행사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밖에도 국민연금은 심각한 대기오염과 암 등 직업병, 산업재해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포스코에 대해서도 별다른 조처를 취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코로나19로 인한 살인적인 노동강도로 택배노동자들이 과로사하는 문제를 방치하고 있는 CJ대한통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이지우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참여연대 간사는 "올해에는 국민연금이 삼성물산, 포스코, CJ대한통운 등에 공익이사 선임을 요구하는 주주제안에 나설 것을 촉구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며 "하지만 공익이사 후보군마저 정해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최치훈 삼성물산 사장과 더불어 최정우 포스코 회장, CJ대한통운의 권도엽 사외이사 등도 오는 3월 임기가 만료된다"며 "연임에 대한 반대 의결권 행사는 주주제안과 상관 없이 주총 당일 가능하므로 날짜가 정해지면 이에 대해 적극적으로 촉구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태그:#국민연금, #스튜어드십코드, #사모펀드, #택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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