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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함께 용감해지는 중이다

며칠 전 공원에서 숨바꼭질 하던 아이가 넘어져 팔꿈치를 다쳤다. 별거 아닐 거라 생각했는데 큰 병원에 가서 확인하니 성장판 골절이 우려되는 상황이라 급하게 수술까지 했다. 그런 와중에 병원을 옮겨야 하는 우여곡절이 있었고 입원을 위해 코로나19 검사까지 했다. 예상치 못했던 일이라 더 어수선하고 경황이 없었다.

어린 아이가 혼자 수술실로 들어갈 수 있을지, 수술은 잘 될지, 내내 가슴을 졸였다. 수술이 끝나도 회복까지 긴 시간이 필요하고, 제대로 잘 자라는지 지켜봐야 하는 일이 남아 있다. 걱정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었고 그렇다고 쉽게 마음을 놓아버릴 수도 없었다. 하지만 갑갑한 병원에서 씩씩하게 잘 지내는 아이 덕분에 마음에 드리운 짙은 응달이 옅어 져 갔다.

아이가 운 건 딱 세 번이다. 입원을 위해 채혈할 때, 정맥에 수액 선을 꽂을 때, 그리고 수술 끝나고 회복할 때다. 아이의 울음만큼 엄마의 가슴을 미어지게 하는 소리가 있을까. 그 순간마다 아이와 내가 얼마나 깊고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는지 실감했다. 기꺼이 대신 아프고 싶다는 생각 끝에서 이 사랑이 얼마나 큰지 발견했다. 행여 나의 불안이 아이에게 옮겨 갈까 더 씩씩한 척, 더 용감한 척하는 사이 진짜 용감해진 것도 같다. 하지만 가장 대범하고 멋진 사람은 아이였다. 

수술이 끝나고 마취에서 깨어 목이 아프다며 아이는 많이 울었다. 그러고도 병동으로 올라와서는 금세 기분을 회복해 '바다탐험대 옥토넛'(어린이애니메이션)부터 찾았다. 금식으로 목이 마르고 얼떨떨한 상태일 텐데도 '옥토넛'을 보던 아이가 해맑게 웃음을 토했다. "흐흐흐흐흐, 히히히히히" 고요한 병실에 난데없이 흩어지는 웃음소리에 화들짝 놀랐지만 내심 반가웠다. 막 수술을 마친 팔엔 깁스를 하고 다른 쪽엔 수액선을 달고 침대 한 칸에 붙박이처럼 누워 있는 상황에서도 저토록 신나게 웃을 수 있다니.

무겁게 내려앉던 걱정이 웃음 소리 따라 폴폴 날아가버렸다. 나도 따라 웃다 알았다. 걱정하면 뭘 하나. 어차피 겪어야 하는 일이라면, 너처럼 즐겁고 신나게 헤쳐 가야지. 우리는 함께 용감해지는 중이었다.

조금만 더 환자를 배려해주었으면

수술은 잘 되었다고 했다. 다음날 퇴원할 줄 알았는데 하루 더 병원에 있었다. 가능한 안정을 취하는 게 회복에 좋을 것 같다는 말을 전해 들었기 때문이다. 아이는 하루 종일 '옥토넛'을 보느라 지루할 새가 없었다. 하지만 내가 힘들어졌다. 사소한 무심함에 마음의 생채기가 늘어갔다.

대학병원은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게 하나도 없는 것 같다. 의료진은 바쁘고 정신없어 대체로 사무적이다. 담당 교수 얼굴 보는 일은 하늘의 별따기나 마찬가지고 간호사들도 필요한 처치만 하고 사라졌다. 시설에 대한 안내도 충분하지 않고 절차에 대한 설명도 단편적이다. 수술한 날 금식이 풀리면 병원에서 죽이 나올 줄 알고 따로 음식을 준비하지 않았다. 그런데 뒤늦게 저녁 식사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어린 아이는 한시도 엄마와 떨어져 있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막 수술을 마친 아이를 데리고 죽을 사러 나갈 형편도 아니었다. 금식이 풀린 게 오후 2시 반이었는데 저녁 6시까지 쫄쫄 굶게 생겼다. 하는 수 없이 전날 사둔 귤과 빵을 먹였다. 수술하느라 고생한 아이에게 내어 줄 수 있는게 그것 밖에 없다니. 식사를 준비해두면 좋다고 한 마디만 해주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사소한 무심함이 원망스러웠다.

퇴원할 때까지 골절의 심각도나 성장판 골절 정도, 수술에 대한 세세한 설명도 듣지 못했다. 수술 후 다녀간 교수는 "잘 되었습니다"라고 한마디 남기고 황급히 가버렸다. 다행이다 싶었지만 그 말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얼마나 부러진 건지, 예후는 어떤지 궁금했지만 물어볼 데가 없었다. 2주 뒤 외래 진료가 있으니 그때 알게 되겠지, 별 문제가 없으니 말이 없겠지. 그렇게 생각해보지만 영 개운치 않았다. 병원에서는 아픈 사람이 말그대로 약자가 된다.

아픈 몸에는 외로움이 파고들고

코로나19로 병동에 상주하는 보호자는 1명으로 제한되었고 면회도 금지였다. 병실에서 생활하는 동안에도 마스크를 끼고 있어야 하고 침대 사이는 밤이고 낮이고 커튼으로 가려 서로를 분리시켰다. 보호자들끼리 걱정스런 마음을 나누거나 지루한 시간을 달래며 담소를 주고받는 것도 불가능했다. 좁은 침대에 아이와 둘이 누우면 우리 위로 한 평 반 정도의 공간만 보였다. 딱 그만큼의 고립감이 마음에 둥지를 틀었다.

한 번은 답답해서 아이와 병동 복도를 걸었다. 앞에 보이는 휴게실에 한 엄마가 우는 아이를 안고 앉아 있었다. 그런데 아이를 달래기는 커녕 우두커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이의 울음 소리는 점점 더 커져갔다. 지난 밤에도 아이를 안고 병동 복도를 서성거리는 걸 보았다.

아이는 두 돌이 채 안 된 것 같았는데 입술 전체가 부르터서 딱지가 앉아 있었다. 어디가 아픈지 모르겠지만 입술 상태만으로도 얼마나 아프고 불편할까 짐작되었다. 말 못하는 아이가 울고 보챌 게 뻔했다. 질끈 묶어 올린 머리에 추리닝 차림의 아이 엄마는 그때도 몹시 피곤해 보였다. 병원엔 며칠이나 있었던 걸까. 

병원에서는 씻고 먹고 입고 자는 모든 게 불편했다. 하루 이틀은 견딜 만 해도 사흘이 지나자 답답하고 진이 빠졌다. 편하게 다리 한 번 뻗고 누울 수가 없고, 계속 엄마를 불러 대는 아이 때문에 어디 숨 쉴 구석을 찾아 나설 수도 없었다. 같은 병실에 있는 사람들과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모르는 척 서로 멀찍이 떨어져 조심했다. 아이와는 어느때보다 밀착되어 있었지만 아픈 아이에 대한 무거운 걱정을 짊어지고 엄마들은 혼자 버티고 있었다. 누적된 피로에 고립감과 외로움은 쉽게 파고들었다.

아이가 우는데도 넋을 놓고 앉아 있는 엄마가 전혀 이상할 게 없었다. 나라도 저랬겠다 싶은 마음에 가까이 가지 않고 모르는 척 다른 방향으로 길을 틀었다. 되돌아 왔을 때는 아이 아빠가 달려 들어와 우는 아이를 안아 올리는게 보였다. 혼자서는 도저히 안되는 일이 있다.

아프도록 혼자는 아니었으면

퇴원하고 이틀 후 시어머니가 유부 초밥과 밑반찬을 해서 집으로 오셨다. 면회를 할 수 없어 아이의 상태가 궁금하셨을 거다. 전화로도 고생이 많다고 말씀하셨지만 두 손 가득 들고 오신 음식에서 그 말의 온도를 느낄 수 있었다. 말로는 다 할 수 없는 위로를 행동이 한다. 만날 때에야 비로소 느낄 수 있는 마음의 온도가 있다. 엄마의 자리에서 혼자 앓느라 얼어 있던 가슴이 어머니의 유부 초밥을 먹는 사이 조금씩 녹아 내렸다.

무심함은 때로는 배려가 되지만 때로는 눈물이 된다. 우리 사이에는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지만 지나친 거리는 고립이 된다. 아픈 아이가 엄마만 곁에 있으면 다 괜찮았던 것처럼, 아이의 웃는 얼굴만으로 더 이상 바랄 게 없었던 마음처럼, 우리에겐 서로의 존재가 귀하고 소중하다.

함께 일 때 우리는 산을 넘고 차가운 얼음을 녹이지만 혼자서는 용기도 온기도 만들기 어렵다. 누구도 아프도록 혼자는 아니었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기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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