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올해로 만 50살. 난 하루도 운동을 게을리한 적 없다. 물론, 건강과 체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남들 앞에서 젊게 보이고 싶다거나 신체의 노화에 맞서겠다는 만용을 부릴 나이는 이미 지났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아이들과 함께 생활해야 할 교사라서다.

초임 시절 스스로 약속한 게 둘 있다. 아내와 결혼하며 거듭 약속했고, 이젠 학년 초 학급 담임으로 아이들 앞에서 대놓고 다짐하곤 한다. 하나는 퇴임할 때까지 평교사로 교단에 서겠다는 것과, 다른 하나는 아이들과 운동장에서 함께 뛸 체력이 안 되면 곧장 그만두겠다는 것.

아이들이 좀 봐준다는 느낌이 아예 없진 않지만, 아직은 함께 공을 찰 만하다. 100m 달리기 시합을 하면, 학급에서 중간 이내는 든다. 생애주기에서 체력이 가장 왕성하다는 고등학생들과 어깨를 견준다는 게 내심 뿌듯하다. 그들의 부모보다 나이가 더 많은 터라 그렇다.

경험상 아이들과 '라포'(상호 이해와 공감을 통해 형성되는 신뢰 관계와 유대감)를 형성하는 데 있어 함께 땀 흘려 운동하는 것만큼 효과적인 방법은 없다. 운동 후 벌거벗은 몸으로 같이 샤워라도 할라치면 가족보다 더 가까운 관계가 된다. 함께 밥을 먹어야 신뢰가 쌓인다고 하지만, 운동장에서 함께 땀 흘리는 것에 비할 바는 아니다.

동료 교사 중에는 인터넷 게임을 함께하면서 아이들과 말문을 트는가 하면, 하교 이후 개별적으로 저녁 시간을 함께 보내며 새 학년을 시작하는 경우도 있다. 담임교사에겐 학년 초 첫 만남 이후 한두 주가 '골든 타임'이다. 머뭇대다 그때를 허송하면 1년 농사를 망치게 된다.

아이들과의 신뢰는 세대 차이를 극복하려는 노력에서 시작된다. 아무리 교육자와 피교육자의 관계라 해도, 교사가 아이들에게 다가서야지 그들더러 교사에게 맞추라고 할 순 없다. 교육의 내용이든 형식이든 상명하복에 길든 이들을 아이들은 가차 없이 '꼰대'라 비아냥거린다.

'꼰대'라고 불리는 순간, 그것으로 신뢰 형성은커녕 교육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보는 앞에서야 바라는 대로 행동하겠지만, 어디까지나 시늉이고 가식일 뿐이다. 아이들이 마음에도 없는 행동을 하고 있다면, 그것은 교육이 아니라 훈육이며 교화가 아니라 강압이 행해졌다는 증거다.

무릇 교사라면 아이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무진 애를 써야 한다. 수업 시간 열정을 쏟는 건 기본이고, 그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도록 '가욋일'도 기쁘게 받아들여야 한다. 어울려 공을 차고, 인터넷 게임에 대해 공부하며, 어색한 '급식체'까지 써가며 그들과 소통하는 이유다.

어느새 사전도 자취를 감춰 
 
 사전들
 지금 꽂혀있는 사전들은 죄다 6~7년 전쯤 학교 폐지함에서 주워온 것이다.
ⓒ 서부원

관련사진보기

 
"와! 아직도 사전을 찾아보는 사람이 있다니 놀랍네요."

한 아이가 내 교무실 책상에 놓여 있는 사전을 보더니, 신기하다는 듯 감탄사를 내뱉었다. 다가와 대뜸 만져봐도 되는지 물었다. 옛날에 사전을 한 장 한 장 찢어 삼켜가며 단어를 암기했다는 '전설'을 듣긴 했어도, 사전에 밑줄 쳐가며 공부하는 사람은 처음 본다고 했다.

공부법에도 '레트로 열풍'이 분 것이라며 짐짓 비웃기도 했다. 멀쩡한 스마트폰을 두고 사전을 뒤적여가며 공부를 한다는 건, 비효율의 극치이며 바보 같은 짓이라고 조롱했다. 평소 선생님답지 않다는 이야기까지 들었다. 그 또래들에게 사전은 무척 낯선 물건인 모양이다.

하긴 지금 꽂혀 있는 사전들은 죄다 6~7년 전쯤 학교 폐지함에서 주워온 것이다. 수능이 끝나면, 손때 묻은 교과서와 노트, 참고서, 문제집 등이 쓰레기 마냥 버려진다. 그때 가죽 커버의 양장본 사전까지 같이 버려지곤 하는데, 개중엔 새것과 다름없는 것도 적지 않았다.

교과서나 참고서와는 달리, 사전이 버려진 건 수능이 끝나서라기보다 스마트폰 때문이다. 스마트폰을 켜면 전 세계 모든 언어를 쉽게 검색할 수 있는데, 왜 사서 고생을 하느냐는 거다. 굳이 번거롭게 그 두꺼운 사전을 꺼내 찾아보는지를 당최 모르겠다고 했다.

그 이후로 사전은 폐지함에서조차 가뭇없이 사라졌다. 서점에 가도 대개 먼지 수북이 쌓인 채 외진 구석에 꽂혀 있다. 찾는 이가 거의 없어 아예 매대를 치워버린 곳이 태반이고, 출판된 지 10년도 더 지난 사전이 신상품인 양 버젓이 진열된 서점도 있다.

아무리 시대가 변한다 해도 종이책이 사라지진 않을 거라고 장담하지만, 사전만은 예외일 듯싶다. 한때 집집마다 거실 책장에 한 질쯤 꽂혀 있던 백과사전이 시나브로 사라지더니, 어느새 사전도 자취를 감추고 있다. 다들 학습은커녕 장식품으로도 효용을 잃었다고 말한다.

아직도 난 수업 준비를 할 때 교과서 속 용어의 개념을 확실히 정리하기 위해 수시로 국어사전과 옥편을 들춰본다. 신문이나 잡지를 읽다가 낯선 외래어가 나오면, 거의 반사적으로 영어사전에 손이 간다. 최근 중국어 공부를 시작해 책꽂이에 두꺼운 사전이 한 권 더 늘었다.

요즘 아이들에겐 '빅뱅'조차 오래전 가수

효율로 치면 스마트폰의 도움을 받는 게 훨씬 빠르고 편리하지만, 화면을 보면 눈으로만 읽힐 뿐 머리에선 튕겨 나가는 느낌이 든다. 더욱이 검색한 뒤에도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며 해찰하기 일쑤다. 그런 점을 고려하면, 적어도 난 사전을 이용하는 게 시간이 더 절약된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도리어 스마트폰을 '스마트'하게 사용할 줄 모른다며 나무란다. 연관 검색어를 클릭하는 건, 쓸데없는 시간 낭비가 아니라 지식의 범위와 양을 늘리는 효과적인 공부법이라고 두둔한다. 이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취향의 문제라 토론의 영역이 아니다.

애꿎은 사전 하나가 아이들과 세대 차이를 극복하려는 노력에 느닷없는 '장애물'이 됐다. 지금껏 '붉은 노을'이라는 곡을 누가 불렀냐고 물으면 당연하다는 듯 '빅뱅'이라고 답했지만, 이마저 흘러간 옛노래다. 요즘 아이들에겐 '빅뱅'조차 이문세 못지않은 오래전 가수로 여긴다.

그런 말장난으로 극복될 수 있는 거라면 세대 차이도 아니다. 사전에 밑줄 그어가며 공부하는 모습을 아이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아이들은 드론 택시의 상용화를 앞둔 시대에 말 타고 다니는 꼴이라며 키득거렸다. 자칫 이를 '꼰대' 세대의 공통된 공부법으로 여길까 두렵다.

가만히 보면, 아이들 눈에 '꼰대스러운' 건 비단 사전뿐만은 아니었다. 교무실 책상 위엔 세대 차이를 실감하게 만드는 물건이 숱하다. 신문과 잡지, 탁상용 달력과 포스트잇, 연필과 지우개, 분필, 그리고 지도와 지구본까지, 아이들에겐 하나같이 '불필요한' 물건들이다.

이태 전 신문의 날 즈음 종이 신문과 잡지 등의 미래를 주제로 계기 수업을 진행한 적이 있다. 찬반 토론으로 엮어볼 요량이었는데, 팀이 양분되질 않아 적잖이 애를 먹었다. 종이 신문과 잡지는, 시간문제일 뿐, 머지않아 사라진다는 것에 반대하는 아이가 단 한 명도 없었다.

사전을 보고 놀란 아이는 탁상용 달력도 문제 삼았다. 그의 집엔 달력은커녕 그 흔한 벽시계 하나 없다고 했다. 늘 손에 쥐고 다니는 스마트폰이 다 알려주는데, 거추장스러운 잡동사니일 뿐이라는 거다. 요즘 시대에 달력과 시계는 불필요한 자원 낭비라고 명토 박았다.

세대 차이를 느낀다고 했지만
 
 책상 위
 아이들과 친해지려고 무던히 애를 썼는데, 책상 위 손때 묻은 물건들이 방해가 될 줄은 미처 몰랐다.
ⓒ 서부원

관련사진보기

 
한때 최고의 발명품이라는 찬사를 받은 포스트잇조차 아이들에겐 퇴물이 됐다. 다른 사람에게 메모를 건네려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있고, 스스로 잊지 않으려면 스마트폰의 메모장과 알람 기능이 있다고 말한다. 그들은 더 이상 펜을 손에 쥐고 종이 위에 글씨를 쓰지 않아도 되는 세대다.

그들에겐 연필이나 볼펜보다 태블릿 피시의 전자펜이 더 익숙하고, 고무지우개는 조만간 박물관에서나 만날 수 있는 물건이 될 것이다. 지난해 원격수업이 진행되면서 분필은 아예 쓰임새를 잃었다. 그러잖아도 교실에 전자칠판이 도입되면서 전자펜으로 대체되던 참이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수업하러 교실에 들어갈 때 교사의 손엔 교과서와 출석부, 그리고 분필이 들려 있었다. 요즘에는 노트북이나 태블릿 피시 하나면 충분하다. 교과서는 전자책(e-Book)으로, 칠판은 빔프로젝터로 대체되었기 때문이다. 원격수업이 보편화한 지금은 그마저도 필요 없다.

교과서와 나란히 꽂힌 지도책을 보고서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대체 언제 적 물건이냐며, 마치 골동품을 만난 듯 놀라워했다. 지리나 역사 과목을 좋아하지만, 종이로 된 책을 통해 지도를 검색한다는 걸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에게 지도란 '구글맵'과 동의어였다.

그는 하루가 다르게 환경이 달라지는 현실에서 지도책을 통해 지리 정보를 얻는다는 건 바보짓 아니냐고 반문했다. 첨단 '구글맵'조차 정보가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지 않아 사용자들의 불만이 적지 않다는 거다. 그가 교과서는 사도, 지리부도는 필요 없다고 말하는 이유다.

'글로벌 감각을 익히는 해외여행의 필수품.' 지도책 첫머리에 적힌 이 글귀를 보더니, 그는 한참을 키득거렸다. 어느 누가 해외여행을 가면서 이렇게 두껍고 무거운 책을 배낭에 넣고 다니겠느냐는 거다. 시대에 뒤떨어진 지도책으로 무슨 글로벌 감각을 익히느냐며 비웃기도 했다.

아이들과 친해지려고 무던히 애를 썼는데, 책상 위 손때 묻은 물건들이 방해가 될 줄은 미처 몰랐다. 그는 세대 차이를 느낀다고 했지만, 수십 년 동안 몸에 밴 '아날로그' 생활 습관까지 그들에게 맞추긴 힘들 것 같다. '꼰대' 취급 당하지 않기 위한 교사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

댓글9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