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뉴욕 다음 가는 도시로 유명한 로스앤젤레스, LA는 1980년대 최고의 호황을 누렸다. 다양한 국적과 인종이 모여들어 우여곡절 끝에 독특한 문화를 이룩했고,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군수공장이자 주요 항구로 상공업이 크게 발달했으며,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영화 산업의 메카인 할리우드로 유명세를 떨쳤다. 그런가 하면, 교황과 영국 여왕이 방문하고 1984년엔 올림픽까지 개최했다. 범죄율도 급락했다.

1980년대 LA는 '나쁜 점은 없고 좋은 점만 있는 도시', '자랑스러운 도시', '대단한 10년'같은 수식어가 함께할만 했다. 하지만 다른 한켠에 LA는 허울이었다고 말할 근거가 있다. 화려하고 유명인들로 가득했지만 반대쪽으로 돌아가 보면 아주 어두운 면이 드러났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시리즈 <나이트 스토커: 연쇄살인범을 추적하다>는 바로 그 1980년대 LA의 어두운 한 단면을 세밀하게 보여 준다. 

작품은 LA 카운티 보안관국의 패기로운 젊은 형사 길 칼리요와 전설적인 베테랑 프랭크 살레르노가 한팀이 되는 것에서 시작한다. 베트남 참전 용사 칼리요는 전역 후 결혼을 하고 형사가 되어 살레르노와 한 팀을 이룬다. 젊지만 똑똑하고 호기로운 데다가 성실한 칼리요를 살레르노가 파트너로 점 찍은 것이다. 그들이 함께한 첫 사건은 1985년 3월 17일 일어난 살인 사건이었다. 

LA의 무차별 연쇄 살인마, 나이트 스토커

대부분 연쇄 살인마의 살인 동기에는 어느 정도의 일관성이 존재한다. 거기엔 개인적인 트라우마와 경험에서 오는 나름의 확고한 이유가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예외적인 경우도 있는데 칼리요-살레르노 팀이 맡은 사건이 그러했다. 1985년 3월 17일 이후 일어난 연쇄 살인, 후에 타블로이드지가 '나이트 스토커'라고 이름붙인 이 사건들은 말 그대로 무차별적인 살인이었다.

베테랑 살레르노는 유명한 연쇄 살인마 '힐사이드의 교살자'를 체포한 경험이 있는 인물이었다. 그런 그는 공과 사를 철저히 구분하며 자신을 지킨 반면, 신참 칼리요는 사생활을 완전히 뒤로 하고 오로지 연쇄살인마를 잡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얼핏 일관성 없어 보이지만 근거리에서 벌어지는 연쇄 살인사건의 실마리를 잡기 힘들었다. 범인은 각종 무기로 살인을 저질러 사방에 피가 흥건했고, 성폭행까지 저질렀다. 생존자도 있었지만 흔적을 전혀 찾을 수 없었다. 

그나마 생존자의 힘겨운 증언으로 마련된 몽타주와 범인이 남긴 유일한 흔적이라고 할 만한 발자국이 희망이었다. 평화롭고 안전한 자택에서 이뤄지는 살인. 1985년 당시 LA는 그야말로 안전한 곳이 없는 지옥이나 마찬가지였다. 외부에서 바라보는 LA와 내부에서 느끼는 LA는, 말 그대로 하늘과 땅 차이였다. 잔혹하고 무차별적인 강도, 폭행, 살인 행각에 경찰은 발끝도 따라가지 못했다. 

두 경찰의 화려한 무용담

작품은 시종일관 '나이트 스토커'를 쫓던 두 형사 칼리요와 살레르노의 무용담(?)만 늘어놓는 것 같다. 그 무용담은 '얼마나 열심히 범인의 뒤를 쫓았는지 아느냐', '그런데도 범인의 흔적 하나 발견하지 못했다', '악마같은 범인은 남녀노소를 불문하니 예측을 하기가 힘들다', '이런 연쇄살인마는 처음 본다'는 식이다. 코미디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맨날 범인의 뒤꽁무니를 쫓으면서 항상 한 발 늦는 못난 콤비 형사라고 해도 충분하다.

그래서 이 작품이 신선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대개 범죄 다큐멘터리는 대부분 피해자 또는 가해자에 초점을 맞추면서 사회 또는 시대의 문제를 함께 비추거나, 피해자를 제대로 보호하지 못한 시스템의 문제를 비춘다. 혹은 제대로 할 일을 하지 못한 공권력의 무능을 지적하거나, 황색 언론의 문제점을 비추기도 한다. 그러나 <나이트 스토커>는 '연쇄살인범을 추적하다'라는 부제에 걸맞게 추적하기만 할 뿐이다. 짧은 기간 사이 피해자 십수 명이 죽어나가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경찰들을 말이다. 

콤비 형사 이 외에도 사건 자체의 어려움이나 문제점을 전하기도 한다. 담당 구역이 세밀하게 나뉘어 있기에 범인이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범죄를 저지르면, 서로 협조가 어렵다. 언론의 특종 경쟁은 경찰을 난감하게 만들 때가 있다. 현장을 모르는 경찰 조직 내부의 상사는 오히려 수사를 방해한다. 그러나 이런 장면들은 이 살인사건의 궁극적인 문제점이 아니다. 

매력적인 연쇄 살인마, 리처드 라미레스

나이트 스토커는 결국, LA가 아닌 같은 주의 샌프란시스코에서 잡힌다. 주로 LA에서 활동하다가 샌프란시스코에서도 살인 행각을 벌였는데, 그곳 담당 형사가 나이트 스토커의 신상명세를 입수했고 곧 잡아 낼 수 있었다. '리처드 라미레스'라는 본명을 가진 그는 사실 살인행각보다 체포와 재판 과정에서 더 유명해졌다. 베트남전쟁 참전용사인 사촌 형이 하는 민간인 학살의 무용담을 듣고 자랐고, 아내를 살해하는 현장에 함께 있기도 했다고 한다. 

또한 그는 체포 과정에서 시민들의 손에 의해 죽을 뻔 하기도 했다. 리처드 라미레스의 대대적인 신상공개로 신문 1면에 난 걸 본 시민들이 그를 알아보고 추격해 집단 폭행했기 때문이다. 경찰이 이들을 통제한 후에야 겨우 용의자를 체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잘생기고 매력적인 외모를 지녔던 그는, 재판 당시 카메라를 향해 포즈를 취하기도 했다. 법정을 나서며 그가 했던 "별 일 아니야. 죽음은 도처에 있다고. 여러분, 나중에 디즈니랜드에서 만나자고요"라는 말은 그의 성향을 정확히 설명해 준다. 

작품은 이러한 센세이셔널한 대목들도 스치듯 지나가버린다. 다큐멘터리다운 분석이나 통찰을 찾아보기도 쉽지 않다. 아니, 일부러 강조하지 않으려고 했던 것 같다. 대신, 그 자리를 두 형사 칼리요와 살레르노에 할애한다. 그들이 오랜 추격을 뒤로 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에 더 집중한다. 독특하고 신선한 다큐멘터리였지만, 정작 남는 게 없었다고 할까. 영화를 보고 나면 이 한 마디만 남는다. '1980년대 화려했던 LA에 연쇄 살인마 나이트 스토커가 출현해 모두를 벌벌 떨게 했지만 오래지 않아 잡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