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남영동1985>시사회에서 윤사장 역의 배우 문성근이 취재 중인 기자들을 휴대폰에 달린 카메라로 찍고 있다. 옆자리 명계남 배우

2018년 영화 <남영동1985> 시사회에 참석한 문성근, 명계남 배우 ⓒ 이정민

 
국정원 심리전단이 2011년 배우 문성근과 김여진의 합성사진을 작성·유포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사회적 파장이 인 것이 2017년 9월이었다. 당시 국정원은 이들을 좌파 연예인으로 분류, 부적절한 관계로 보일 수 있는 사진으로 이미지를 실추시키는 내용의 계획서를 작성해 상부에 보고했고, 그 뒤 실행에 옮겼다.

"그 사진을 언뜻 예전에 본 기억에 나기는 나요. 김여진씨는 본 적이 없다고 그러는데. 그냥 일베 안에서 그야말로 쓰레기들이 만들어낸 거라고 생각을 했지, 이걸 국정원에서 했을 거라고 정말 상상을 못했죠. 저야 애들이 다 컸지만 김여진씨는 아기가 어린데… 아이고, 제 마음이 다 떨립니다."

당시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한 문성근은 이런 심경을 토로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로 이어지는 문화예술인들에 대한 블랙리스트 피해 사례는 거듭 보도된 것만 봐도 참담한 수준이었다. 국가를 상대로 한 소송을 예고했던 문성근은 그의 일환이라 할 수 있는 '내놔라, 내파일' 시민행동에 참여, 지난달 20일 국정원이 공개한 63개의 존안(없애지 않고 보존하는) 자료 내 자신의 사찰 자료를 확인했다.

이렇게 국정원 자료 공개 이후 관련 문건을 통해 새롭게 드러난 실상은 지난 10년 간 제기됐던 의혹이 사실이었음을 확인시켜 주고 있었다.

최근 JTBC 등 언론 보도를 종합해 보면, 2010년 9월 국정원은 '좌파 방송인 사법처리 확행으로 편파방송 근절'이란 문건을 청와대에 보고했다. 여론을 의식하는 검찰이 정부에 비판적인 방송인들에 대한 사법처리에 미온적이란 내용이 담겨 있는 보고가 있은 뒤 3개월 후 검찰은 총파업을 강행한 전국언론노조 간부들에게 최대 3년 6개월 징역형이란 중형을 구형했다.

이걸로는 부족했는지, 국정원은 아예 '좌파 연예인 대응TF'을 운영했다. JTBC가 공개한 문건 내용에 따르면, 당시 MB 국정원은 방송 통제에 있어 장르를 가리지 않았다. 보도와 시사는 물론 예능과 드라마까지 거침이 없었다. 한 방송사 드라마는 '좌편향', '반미', '종북'이란 이유로 제작을 중단시켰고, 한 개그 프로그램의 시사풍자 코너는 '좌파의 선동 행태'로 지목, 광고를 끊고 재발방지 약속까지 받아냈다. 

잘 알려진 방송인 김미화씨의 경우처럼, 라디오나 예능을 포함해 진행자나 출연자들의 밥줄을 끊어 놓는 일이 다반사였던 것이다. 문성근은 지난달 22일 국정원 사찰과 존안 자료 사건을 다룬 KBS1 <시사직격> 출연, 이런 소감을 피력했다.

"시민 평균이하의 수입으로 근근이 문화예술로 버티고 있는 사람들의 밥줄도 끊었어요. 이거는 생존의 문제예요. 절대 가벼운 일이 아니에요. '정치인들의 문제기 때문에 나하고 관계 없어'가 아니라는 거죠. 이 부분에 대해서 철저한 수사, 철저한 처벌 그리고 (국정원) 구성원들의 철저한 반성, 다시 하지 않겠다는 다짐, 그러니까 '위법은 거부해야 한다'는 그런 인식을 갖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거죠."

끝나지 않은 블랙리스트 논란, 그런데...
 
 국민의힘 서울시장 보궐선거 예비후보인 나경원 전 의원이 1일 서울 용산구 동자동 서울특별시립 서울역쪽방상담소를 찾아 김갑록 소장 등 관계자들과 간담회를 갖고 있다.

국민의힘 서울시장 보궐선거 예비후보인 나경원 전 의원이 1일 서울 용산구 동자동 서울특별시립 서울역쪽방상담소를 찾아 김갑록 소장 등 관계자들과 간담회를 갖고 있다. ⓒ 국회사진취재단

 
'블랙리스트'가 무서운 것은 국가기관에 의해 개인의 명줄이 좌우된다는 사실일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국가폭력의 일환이요, 인권침해의 실상일 것이다. 그런데 최근 이 블랙리스트가 다시 언론 지면에 등장했다.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한 나경원 전 의원에 의해서였다.

"JK 김동욱씨는 무려 10년 간 진행한 프로그램에서 하차했습니다. 개인 SNS를 통해 정권 비판의 목소리를 몇 차례 낸 것이 결국 '찍어내기'로 이어진 것입니다. '친문 블랙리스트'는 무섭게 작동합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 정권은 극렬 지지층의 위험한 횡포를 방관하고 있습니다. 아니, 내심 즐기고 있는 것 같다는 의심을 거두기가 어렵습니다."

수많은 매체가 기사화한 나 전 의원의 2일 페이스북 글의 일부다. 무슨 일이 있었기에 '친문 블랙리스트'가 작동, 가수 JK김동욱이 '찍어내기'를 당했다는 걸까. 발단은 전날(1일) 김동욱이 본인의 소셜 미디어에 2011년부터 진행해온 UBC울산방송 <열린예술무대 뒤란>에서 하차하는 소감을 전한 글이었다.

"다양한 매체 기자분 들이 인터뷰 요청을 하셨는데 거절한 부분도 이해해주시길 바란다. 그 누구에게도 저와 같은 사태가 절대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늘 그랬듯이 앞으로 음악으로 소식 전하도록 하죠. 음악을 더 이상 할 수 있는 상황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JK김동욱이 '사태'라 표현한 것을 두고 나 전 의원이 '찍어내기'이자 '친문 블랙리스트'라 규정했다. 정리해 보자. 그간 JK김동욱은 소셜 미디어에 여러 차례 현 정부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을 개진했다. 이를 본 현 정권 지지자들이 '악플'을 달며 공격을 했고, 이것이 하차의 원인이라는 것이 나 전 의원의 주장이었다. 일방적인 하차로 비쳐질 수 있는 JK김동욱의 글에 대해 해당 방송 제작진은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나 전 의원이 거론한 연예인은 또 있었다. 지난달 20일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서울 이태원 상인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K팝은 세계 1등, 방역은 꼴찌"란 발언으로 여론의 도마에 오른 '클론' 출신 가수 강원래였다. 직후 강원래의 해당 발언은 '헤드라인'으로 뽑혀 기사화됐고, 이태원에서 주점을 운영 중인 강원래의 이러한 정부 방역에 대한 평가를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기도 했다.

비난 여론이 일자 강원래는 다음날인 21일 본인의 소셜 미디어에 "대한민국 국민과 방역에 열심히 노력해준 관계자, 의료진들에게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며 "자영업자들의 고충을 말하다보니 감정이 격해져 '방역 정책이 꼴등'이라고 표현했다"고 사과를 하기도 했다. 이를 두고도 나 전 의원은 "(강원래가) 전방위적인 테러를 당했다"며 이렇게 덧붙였다.

"결코 정상이 아닙니다(...). 생각이 다른 상대를 절대 인정하지 않고, 문재인 정권을 비판하면 단체로 우르르 몰려가 린치를 가합니다. 이것은 분명한 '폭력'입니다."

사이버 블링과 정치적 공세
 
 광화문에서 릴레이 1인 시위를 진행하고 있는 블랙리스트 피해 문화에술인

광화문에서 릴레이 1인 시위를 진행하고 있는 블랙리스트 피해 문화에술인 ⓒ 문화민주주의실천연대

 
일부 매체는 JK김동욱, 강원래의 사례와 나 전 의원의 주장을 엮어 '블랙리스트 논란'을 부각시키는 모양새였다. 특히 1일 <조선일보>는 지난달 28일 강원래와 한 인터뷰를 공개하며 "내 휴대폰에만 100건 넘는 (비난) 메시지가 왔다"며 메시지 내용이나 메시지를 보낸 사람들의 프로필 사진을 거론하며 "아 이런 사람들이 언론에서 말하는 대깨문인가 싶었다"고 답한 내용을 공개하기도 했다.

연예인이든 유명인이든, 혹은 일반인이든 개인에 대한 비상식적이고 도 넘은 공격은 분명 비판받아 마땅한 행위라 할 수 있다. 특히 소셜 미디어 상의 개인 메시지 등을 통한 욕설과 비난은 정치적 성향과 상관없이 수위에 따라 민형사상 소송 및 처벌까지 고려해야 할 행위이고, 또 수많은 연예인들이 강경 대응으로 맞서는 분위기라 할 수 있다.

JK김동욱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현 정부에 대한 비판 의견을 개진한 것만으로 강원래와 같은 비난을 받았다면 소위 현 정권의 격렬 지지자들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릴 '폭력'이 맞다. 그로 인해 프로그램을 하차한 것이 맞는지 해당 프로그램 제작진의 해명이 반드시 요구돼야 할 것이고.

하지만 이를 '블랙리스트'라고 규정하는 것이 온당한지는 의문이다. 스마트폰과 소셜 미디어의 시대, 이른바 '사이버 블링'(Cyber Bulling, 이메일, 휴대폰 SNS 등을 활용, 특정 대상을 집단적으로 따돌리거나 집요하게 반복적으로 괴롭히는 행위)은 전 세계적인 문제로 대두된 지 오래다. 그 중 연예인은 특히 '사이버 블링'에 노출되기 쉽고, 정치적 의견을 피력하는 연예인일수록 특정, 상대진영으로부터 공격을 당하는 일도 다반사다. 그것이 옳다는 것이 아니다. 구글을 필두로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트위터 등 전 세계인이 함께 사용하는 소셜 미디어가 발달하면 발달할수록 '사이버 블링'의 역사(?) 또한 누적돼 왔다는 얘기다.

같은 듯 다른 두 사안의 경우, 블랙리스트라기보다 정치적 의견을 피력했거나 피력한 것으로 오해를 받은 연예인이 연달아 '사이버 블링'의 피해를 입은 것으로 보인다. 그것이 선거 국면에 돌입한 정치인을 통해 '친문 블랙리스트'라 비화된 것이고. 정치적 견해를 피력했다는 것만으로 비난과 공격을 가하는 이들에 대한 비판과 제도적 방지책을 고민하는 것은 옳고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이를 '블랙리스트'라고 침소봉대하며 또 다른 정치적 공세로 이용하는 것은 불필요하지 않을까.

지금도 실제 블랙리스트의 피해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피해자들을 위해서라도, 오늘도 광화문광장에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국가 책임 촉구'를 위한 릴레이 1인 시위를 진행 중인 문화예술인들을 고려한다면 말이다.
문성근 블랙리스트 강원래 JK김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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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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