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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1년, 우리의 공간들이 하나둘 사라지고 있습니다. 학교나 도서관과 같은 공공 시설들은 기약 없는 운영 중단을 맞았고, 동네 곳곳엔 불 꺼진 가게가 부지기수입니다. 과연, 이같은 현상을 단순히 '물리적 공간이 하나 없어졌다'는 말로 요약할 수 있을까요. <오마이뉴스> 청년기획단 시민기자들과 함께, 우리의 터전이나 다름없었던 공간들에 대한 기억을 떠올려봤습니다. 사람, 관계, 추억... 공간과 함께 잃어버린 것들을 되짚어봅니다. [편집자말]
 공항은 알지 못하는 내면의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공항은 알지 못하는 내면의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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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새벽 어스름이 다 가지 않은 시간, 졸린 눈을 비비며 무거운 몸을 일으킨다.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양치를 하다 보면 웃음이 피식피식 새어 나온다. 오랫동안 기다렸던 날이다. 전날 싸놓은 가방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마지막으로 휴대전화 충전기까지 가방에 챙겨 넣은 뒤 아침밥도 건너뛰고 집을 나선다.

이른 아침 차를 타고 바다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긴 다리를 건널 때면 여러 생각이 머릿속을 스친다. 근심과 고민은 잠시 뒤로 한 채 사소한 걱정과 기대가 꼬리에 꼬리를 물을 때쯤 커다란 공항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누군가의 일상이, 누군가의 꿈이, 누군가의 작별과 외로움이, 누군가의 진한 설렘이 그곳에 모여 있다. 

출국 수속을 마치면 오롯이 나만의 시간이 찾아온다. 살 것도 없는 면세점을 괜히 기웃대며 출국 게이트 현황 전광판을 살핀다. 내가 가야 할 곳이 정해지면 등에 멘 짐가방을 다시 추켜 올리며 출국 게이트로 향한다. 게이트에 가까워질수록 다양한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노트북을 무릎에 올려놓고 통화하는 금발의 외국인, 얼굴에 설렘을 잔뜩 묻히고 옆 사람과 신나게 수다를 떠는 단체 관광객, 들뜬 아이들을 진정시키느라 바쁜 부부, 피곤한 듯 베개를 목에 끼고 서로 어깨에 기대 잠을 청하는 젊은 연인, 그리고 커다란 짐가방을 옆에 두고 연신 창 밖을 보는 사람. 서로 다른 사연을 가진 사람을 거쳐 마침내 게이트 한구석에 앉는다. 나를 낯선 곳으로 데려갈 비행기가 잘 보이는 구석 자리에 앉는 그 순간부터 비로소 여행이 시작된다.

코로나 시대 1년, 가장 그리운 것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주저 없이 바로 이 순간이라고 말하고 싶다. 가보지 못한 곳을 상상하고 기대하며 준비한 여행을 시작하는 순간, 긴장과 설렘, 기대와 외로움, 온갖 감정이 교차하는 그 순간 말이다.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렸던 지난 일 년과 지금, 그것이 우리에게 앗아간 것은 자유로운 세상 자체가 아닐까 생각한다.

원하는 곳을 가고, 원하는 사람을 만나고, 원하는 행동을 할 수 있었던 그 자유로움, 그것을 누릴 수 있었던 세상. 너무 당연한 일상이라 그것이 행복인 줄도 모르고 살았던 지난날을 그리워한다.

의심과 경계가 미덕이 된 시절 

우리는 지금 마스크를 쓰고, 매일 오전 11시 코로나19 공식 브리핑에 귀를 기울이고, 웬만하면 사람을 만나지 않으며, 모두의 행복과 자유를 위해 나의 자유를 조금씩 희생하고 있다. 이전엔 상상할 수 없었던 삶의 모습이다.

집과 직장, 학교, 병원 등 꼭 가야만 하는 필수 공간만 오가고, 꼭 만나야만 하는 사람만을 만나며 익숙한 생활을 이어간다. 지인과의 전화 통화나 메신저 연락의 말미엔 '코로나 끝나면…'이란 말을 붙이며 만남의 약속을 뒤로한다. 스스로마저 의심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 낯선 공간이나 새로운 사람의 존재는 우선 경계 대상이 된다. 내게 익숙한 곳이더라도 예외가 되는 건 아니다. 

적극적인 의심과 경계가 일종의 미덕이 된 이 시절에 내가 잃어버린 것은 여행을 통해 종종 마주했던 낯선 순간이다. 내가 사는 울타리를 넘어 이전에 보지 못한 낯선 것을 만날 때 느끼는 생경함을 한동안 잊고 지냈다. 낯선 장소에 가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들어보지 못한 문화를 체험하는 일이 그동안 나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다시금 생각하곤 한다. 우리가 자유롭다고 느끼는 건, 예상치 못한 상황 속에 스스로를 던져 넣고 새로운 나를 발견할 때가 아닐까.

코로나 시대에 그것이 완전히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재미있게도, 모두가 되도록 집에 머물러야 했던 이 시기는 내 주변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나는 우선 그 어느 때보다 내가 사는 곳 주위를 잘 알게 됐다. 갈 수 있는 곳이 없어 집 근처를 산책하는 일이 많아졌고, 더 멀리 걸어 나가곤 했다. 별일 없이 걷다 보니 몰랐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여기에 이런 의자가 있었다니.'
'이 책방이 이렇게 가까웠구나.'


숨어 있던 명소를 찾아내자 먼 줄만 알았던 곳이 가까이 다가왔다. 그동안 더 거창한 것을 좇는다는 핑계로 놓쳤던 일상 속의 낯섦을 발견하게 된 셈이다. 바이러스는 내게 큰 세상을 앗아가고 작은 세상은 돌려줬다. 낯선 곳을 향해 멀리 떠나는 경험은 어렵게 만들었지만, 내가 사는 작은 세상을 다시 느낄 기회를 주었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뜬금없이 발견하게 되는 이런 벽의 그림도 산책의 즐거움 중 하나다.
 뜬금없이 발견하게 되는 이런 벽의 그림도 산책의 즐거움 중 하나다.
ⓒ 최한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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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섦을 기꺼이 받아들일 그 날을 그리며 

"언제쯤 다시 여행 갈 수 있을까? 다시 마음껏 여행할 수 있는 날이 오긴 할까?"

요즘 친구들과 여행에 대해 말하기 시작하면 결국 이런 말로 이야기를 마치곤 한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지금, 여행을 꿈꾸는 건 사치가 된 것 같다. 종종 여행을 향한 갈증이 심해질 때면 이런 생각으로 나를 위로한다.

꼭 비행기를 타고, 기차를 타고 멀리 나가는 것만이 여행이 아니다. 익숙하고도 낯선 곳에서 새로운 영감을 얻을 수 있다면 그것 또한 여행이 될 것이다. 내가 손에 쥐고도 알지 못했던 낯섦을 새로이 만나는 일은 때때로 더 큰 충격을 주기도 하니까. 

밑도 끝도 없는 나의 개똥철학으로 여행을 찬양하려던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언젠가 이 교묘한 바이러스의 위협에서 해방되는 날 나는 가장 먼저 자유로운 여행을 떠나고 싶다. 낯선 삶의 모습이 있는 곳에서 이전엔 하지 않았던 생각을 하는 나를 다시 만나고 싶다. 그것이 대단한 것이 아니더라도.

오늘도 잃어버린 소중한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우리의 낯선 곳을 다시 찾을 수 있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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