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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5일부터 중앙선에 새로 투입된 ‘KTX-이음’ 호 .
 지난 1월 5일부터 중앙선에 새로 투입된 ‘KTX-이음’ 호 .
ⓒ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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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원주까지는 100여 킬로미터라고 한다. 내가 원주에 정착하고 있는 이유 중의 하나는 서울과 적당한 거리 때문이다. 나는 글이 잘 써지지 않을 때나 지난날 가까웠던 이가 보고 싶을 때는 이따금 열차를 타고 서울로 가곤 한다. 그뿐 아니라 밤새워 글을 쓴 다음 날은 중앙선 남행열차를 타고 경북 풍기로 가서 그곳 온천에 몸을 푹 담근다.

그동안 원주역에서 청량리역까지는 무궁화열차로 1시간 30분 내외, 풍기까지는 그보다 조금 더 걸렸다. 그때마다 변화무쌍하게 펼쳐지는 열차 차창 밖 풍경을 바라보는 즐거움이 컸다. 계절마다 달라지는 그 절경을 바라보면 세상 번뇌도 잊을 수 있고, 문득문득 새로운 영감도 떠오르기 마련이다.

내가 사는 치악산 밑 마을에는 중앙선 철길이 깔려 있다. 내 집 창을 통해 이따금 기차 길 옆 오막살이 소년처럼 그곳을 지나가는 열차를 바라보는 즐거움도 있었다. '여행처럼 즐거운 인생도 없다'는데 그 열차를 바라보노라면 어딘가로 떠나고픈 충동을 느끼곤 한다. 그럴 때 가벼운 차림으로 치악산 구룡사 계곡, 아니면 남한강 강둑, 또는 열차를 타고 동해안 강릉 경포바다를 찾기도 한다.

그동안 중앙선 철길은 단선이었다. 원주에서 남행열차를 타고 반곡역을 지나면 곧 루프식 똬리 터널이 나왔다. 또 단양역에서 희방사역 사이에는 또 다른 똬리굴도 있었다. 이 루프식 타원형 터널은 한참을 지나도 차창 밖 풍경은 같은 모양새로 다만 철로의 지대 높낮이만 다를 뿐이다.

이런 예스런 중앙선 철도가 지난 2021년 1월 5일부터 청량리~안동 간 복선철도 개통과 더불어 'KTX-이음' 호 운행으로 기존의 중앙선은 그 면모가 새로워졌다. 그와 함께 기존의 중앙선 단선도 새 복선 철로에 밀려났다. 그리하여 내가 이따금 찾아갔던 간이역 반곡역사도, 희방사역사도, 루프식 똬리터널도 이제는 추억 속에만 남겨 됐다.

지난날 죽령 루프식 원형의 똬리굴 대신에 이제는 일직선 쌍갈래 철로가 터널로 관통하고 있다. 그 철로 위를 'KTX-이음' 호가 기적도 없이 총알처럼 달린다.
  
치악산 밑을 지나는 단선 중앙선 철로, 이제는 사라져 버린 퇴물이 됐다.
 치악산 밑을 지나는 단선 중앙선 철로, 이제는 사라져 버린 퇴물이 됐다.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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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터전을 잃어가다

아직도 호기심이 많은 소년과 같은 나는 지난 1월 12일 새로이 세워진 원주역에서 'KTX-이음' 호를 타고 청량리로 갔다. 무궁화 호를 타면 도중에 보통 4~5 정거장은 쉬어 갔다. 하지만 'KTX-이음' 호는 새로 생긴 서원주역에서만 잠시 정차할 뿐, 이후 청량리역까지 무정차로 불과 49분 만에 도착했다.

원주 청량리행 'KTX-이음' 호는 지난날 무궁화 열차보다 30~40여 분 시간이 단축된 듯하다. 중앙선 개통 초창기의 증기기관차에 견주면 아마도 2시간은 더 단축됐을 것이다.

그날 청량리역에서 'KTX-이음' 호를 타고 내 집으로 돌아오면서 시간이 단축된 만큼 우리는 행복해지고 있는지 자문자답해 보았다. 뭔가 정신없이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에서 우리는 가장 중요한 자연환경을 파괴하면서 소중한 또 다른 그 무엇을 잃어가고 있는건 아닌지...

오래되고 낡은 것은 사라져 가는 세상의 한가운데서 어느새 골동품이 된 나는 점차 삶의 터전을 잃어가는 듯하다. 현대인들은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빠르고 편리한 것만 쫓나 보다. 그러다 보니 산에 터널을 마구 뚫고, 바다에서도 섬과 섬을 다리로 잇거나 해저터널로 연결시키고 있다. 곧 우리가 편리해지는 만큼 자연파괴와 환경오염은 뒤따르기 마련이다.

이런 개발로 그동안 지구가 고통을 견디다 못해 이제는 더 이상 가만히 지켜볼 수 없나 보다. 그 반격 신호탄으로 이즈음 코로나19와 같은 괴질 바이러스를 지구촌 곳곳에 퍼뜨리는 건 아닐까? 

이전의 무궁화보다 훨씬 더 쾌적하고, 더 빠른 'KTX-이음' 호를 타고 가면서 이런저런 망상에 젖다가 갑자기 두려움이 엄습했다. 더 빠르게, 더 편리하게 살려는 인간들의 무한한 탐욕은 마침내 신의 노여움을 사서 점차 이 지구에서 사라지는 세상이 오는 건 아닐까? 나야 살만큼 살았지만 다음 세대들의 삶이 심히 걱정이 된다.

문득 안톤 슈낙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에 이 한 대목을 삽입하고 싶다.

"바람처럼 다가왔다가 총알처럼 사라져 가는 'KTX-이음' 호가 우리를 슬프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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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년 교사생활 후 원주에서 지내고 있다. 장편소설 <허형식 장군> <약속> <용서>, 역사다큐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사진집<지울수 없는 이미지> <한국전쟁 Ⅱ> <일제강점기> <개화기와 대한제국> <미군정 3년사>, 어린이 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 <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 <독립운동가, 청년 안중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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