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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스탑의 최근 주가 차트
 게임스탑의 최근 주가 차트
ⓒ CBC 뉴스 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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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이 열리자마자 순식간에 주당 513달러라는 신고가를 달성했던 '이 주식'의 가격은 일주일 전만 해도 주당 41달러의 중소형주에 불과했다. 단순 계산하자면 불과 며칠 새 1100%가 넘게 폭등한 셈. 

놀라긴 아직 이르다. 주당 513달러였던 이 주식의 가격은 그로부터 3시간 만에 249달러까지 추락했다가 45분 뒤 482달러로 급등한다. 이후 다시 112달러까지 폭락한 뒤 '소폭' 올라 전날 종가였던 347달러보다 약 44% 빠진 193달러에 장을 마감했다.

듣기만 해도 심장이 쪼그라드는 듯한 이 장면은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니다. '게임스탑(GME)'이라는 개별 종목을 둘러싸고 현재 미국 주식 시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로빈후드 투자자들과 헤지펀드 간 전쟁의 단면을 소개한 것이다. '로빈후드 투자자'란, 지난해 초 코로나19 확산으로 주식 시장이 폭락을 경험할 당시 투자에 뛰어든 미국 개인 투자자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국내에선 '미국판 동학 개미'로 잘 알려져 있다. 미국 개미 투자자들이 '로빈후드'라는 주식 거래 앱을 주로 사용하는 데서 유래했다.

먼 나라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미국 주식시장에서 벌어지는 '개미'와 '기관' 사이 전쟁에 국내 투자자들의 관심 또한 뜨겁다.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는 연일 로빈후드나 게임스탑, GME 등 관련 단어들이 오르내리고 있다. 각종 커뮤니티에서 '참전 후기'를 밝힌 누리꾼들 또한 적지 않다. 한국예탁결제원 증권정보포털에 따르면 지난 18일부터 27일까지 국내 투자자들은 게임스탑 주식을 5992만달러(약 667억원)어치 결제했다. 

도대체 게임스탑이라는 종목이 무엇이길래 전 세계 누리꾼들로부터 이처럼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걸까. 또 로빈후드 투자자들은 왜 헤지펀드와의 전쟁을 선포했을까.

전쟁의 서막

게임스탑은 1984년 설립된 비디오 게임 판매점이다. 미국이나 캐나다뿐 아니라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 유럽 국가에도 진출할 만큼 한 때는 '잘 나가는 회사'에 속했다. 그러나 게임 시장의 디지털화에 따라 콘솔 게임이나 PC 등에 밀려 고전을 면치 못했고, 지난 2019년에는 수백 명의 직원들을 해고해야 할 만큼 경영난을 겪었다. 주가 하락세 역시 수 년 간 지속됐다. 코로나19가 터지면서 오프라인 기반이었던 게임스탑은 생사의 갈림길에 놓였다.

헤지펀든 멜빈 캐피털(Melvin Capital)이나 시트론 리서치(Citron Resaerch) 등 '큰 손' 투자자들은 게임스탑의 주가 전망을 비관적으로 봤다. 그래서 1년 넘게, 주식 시장에 유통되고 있던 게임스탑 주식의 두 배 넘는 물량을 '공매도' 해 돈을 벌었다. 공매도란, 먼저 주식을 빌려 팔고, 주가가 떨어지면 더 저렴한 가격에 주식을 재구매해 갚는 방식의 투자다. 주식 매도 가격과 다시 사들인 금액의 차이 만큼의 수익을 거둘 수 있다. 

하지만 지난해 8월부터 반려동물용품을 판매하고 있는 회사 츄이(Chewy.com) 설립자 라이언 코헨이 게임스톱 주식을 10% 넘게 취득한 뒤부터 주가 하락세는 반전됐다. 특히 코헨이 지난 1월 11일 이사회에 합류해 게임스탑의 체질을 개선하겠다고 밝히면서 개인 투자자들의 투자는 집중됐다. 2020년 8월 초 4달러에 불과했던 주가는 지난 1월 13일 31달러까지 가파르게 상승했다.

전쟁의 서막을 알린 건 '큰 손들'이었다. 시트론 리서치는 지난 19일 트위터를 통해 "게임스탑의 주가가 20달러로 급락하게 될 5가지 이유를 라이브 방송을 통해 공유하겠다"고 선전포고했다. 또 게임스탑을 "실패한 소매업체"라며 "지금 주식을 사는 사람은 포커게임의 멍청이"라고 맹비난했다.

화가 난 개미들은 미국의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Reddit)의 주식 게시판인 '월스트리트베츠(wallstreetbets, WSB)'으로 모여들었고 헤지펀드와의 전쟁 계획을 세웠다. 빌린 주식을 갚아야 하는 공매도 투자자들의 경우, 주가가 상승하면 손실 폭을 줄이기 위해 매도한 가격보다 비싸도 주식을 사들일 수밖에 없다(숏스퀴즈, short squeeze)는 점에서 착안해 게임스탑 주식을 다함께 매입하기로 한 것.

뿐만 아니라 개미들은 게임스탑의 콜옵션(특정 자산을 만기일에 미리 정해둔 가격으로 살 수 있는 권리)까지 대거 매수했다. 콜옵션을 사들이면 콜옵션을 판매한 월가 금융사들이 위험성을 줄이기 위해 주식을 사들인다(감마 스퀴즈, gamma squeeze)는 사실을 고려했다. 

화 난 개미들, 온라인 커뮤니티에 모여 작전회의... 완승 
 
블라디미르 테네프 로빈후드 최고경영자는 28일(현지시간) CNBC에 출연해 게임스탑 주식 거래 제한에 대해 해명하고 있다.
 블라디미르 테네프 로빈후드 최고경영자는 28일(현지시간) CNBC에 출연해 게임스탑 주식 거래 제한에 대해 해명하고 있다.
ⓒ CNBC 인터뷰 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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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과 골리앗의 대결이 될 것으로 보였던 개미 대 큰 손의 전쟁은 개미들이 완승을 거두는 분위기로 흘러가고 있다. 인터넷 커뮤니티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단결한 개미들의 돈이 쏟아져들어오면서 주가 폭등이 이어지자 시트론 리서치는 21일 게임스탑에 대한 공매도를 포기했다. 멜빈 캐피털은 125억 달러 자산의 30%에 달하는 손실을 입으면서 파산위기에 몰렸고 지난 25일에는 27억5000만 달러를 긴급 조달하기도 했다. 금융분석업체 S3파트너스에 따르면, 올해 초부터 지난 26일까지 기관의 공매도 손실은 910억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후로도 헤지펀드들의 공매도를 응징하자는 전투는 계속됐다. 이에 따라 지난 27일에도 게임스탑의 주가는 '역대급' 롤러코스터 장세를 보였다. 351달러로 시작된 게임스탑의 주가는 45분 만에 182달러까지 추락했다가 한 시간 뒤 다시 385달러로 올라섰다. 게임스탑을 사들이려는 개인과 공매도 하려는 기관이 팽팽한 대결을 이어갔기 때문이다. 이날 게임스탑의 주가는 전날 대비 약 134% 오른 347달러로 마감했다. 

전투는 28일에도 이어졌다. 28일 주가 역시 지옥과 천국을 오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앞서 언급한 대로 28일 주식의 최저가는 약 112달러, 최고가는 약 483달러로 4배 이상 차이가 났다.

특히 청년 세대를 투자의 길로 이끌었던 미국의 무료 증권앱 '로빈후드'가 게임스탑이나 미국 영화관 체인 AMC 등 일부 종목의 신규 매수를 차단하고 매도만 가능하게 하면서 개미들의 분노는 한층 더 커졌다. 미국의 개인 투자자들은 로빈후드의 주식 거래 제한으로 투자 기회를 잃었다며 잇따라 소송을 제기하고 있다. 벌써 레딧에는 '로빈후드 집단소송'이라는 대화방도 만들어졌다. 개인 투자자는 로빈후드가 헤지펀드 편에 서 주가를 조작했다고 여긴다. 실제 로빈후드가 매수를 차단하자 게임스탑의 주가는 폭락했다가 다시 매수를 일부 허용하자 폭등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논란이 커지자 블라디미르 테네프 로빈후드 최고경영자(CEO)는 28일(현지시간) CNBC에 출연해 "시장 조성자나 헤지펀드의 지시에 따라 거래제한을 실시한 게 절대 아니다"라며 "자사와 고객들을 보호하기 위한 어려운 결정"이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개미들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고 있다.

미국 정치권에서도 게임스탑의 거래 제한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스 하원의원은 자신의 트위터에 "헤지펀드는 마음대로 거래할 수 있는 상황에서 개인들의 주식 매수를 막은 로빈후드 결정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 필요가 있다"는 글을 올렸다. 공화당 소속 테드 크루즈 역시 "동의한다"며 오카시오 코르테스 의원의 트윗을 공유했다. 미 워싱턴 정가에서는 로빈후드의 거래 제한에 대한 청문회 개최 가능성도 거론되는 등 이번 사태의 불똥이 정치권으로도 튀고 있다. 

월스트리트를 향한 뿌리 깊은 분노
 
미국의 한 누리꾼은 지난 28일 월스트리트베츠에 '멜빈 캐피털과 CNBC, 부머, WSB에 보내는 공개 서한'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고 헤지펀드가 2008년 금융위기로 자신의 삶을 망쳐놨다며 성토했다.
 미국의 한 누리꾼은 지난 28일 월스트리트베츠에 "멜빈 캐피털과 CNBC, 부머, WSB에 보내는 공개 서한"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고 헤지펀드가 2008년 금융위기로 자신의 삶을 망쳐놨다며 성토했다.
ⓒ 월스트리트베츠 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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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번 공매도 전쟁에서 드러난 미국의 개미들의 분노는 뿌리가 깊다.  이들은 월스트리트의 탐욕이 불러온 2008년 금융위기로 자신의 삶이 망가졌다며 헤지펀드들의 행태에 반감을 드러내고 있다. 

미국의 한 누리꾼은 지난 28일 월스트리트베츠에 '멜빈 캐피털과 CNBC, 부머, WSB에 보내는 공개 서한'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고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터졌을 때 나는 중학생이었다"며 "나는 아직도 그당시 월스트리트가 무모한 행동으로 어떻게 내 청소년기와 친척들, 그리고 지인들을 힘들게 했는지 기억하고 있다"며 글을 시작했다.

특히 그는 멜빈 캐피털을 지목해 "헤지펀드들은 시장을 조작하고 회사를 착취해 돈을 버는 쓰레기들"이라며 "당신들의 존재는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일으킨 장본인들이 아직도 벌을 받지 못했다는 증거, 당신들에게 최대한의 고통을 주겠다"라고 맹비난했다. 

태그:#로빈후드, #헤지펀드, #공매도, #GME, #게임스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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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마이뉴스 류승연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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