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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1년, 우리의 공간들이 하나둘 사라지고 있습니다. 학교나 도서관과 같은 공공 시설들은 기약 없는 운영 중단을 맞았고, 동네 곳곳엔 불 꺼진 가게가 부지기수입니다. 과연, 이같은 현상을 단순히 '물리적 공간이 하나 없어졌다'는 말로 요약할 수 있을까요. <오마이뉴스> 청년기획단 시민기자들과 함께, 우리의 터전이나 다름없었던 공간들에 대한 기억을 떠올려봤습니다. 사람, 관계, 추억... 공간과 함께 잃어버린 것들을 되짚어봅니다. [편집자말]
 비 오는 날
 비 오는 날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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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오후 3시였다. 우산을 들고 아무도 없는 건물 앞에 도착했다. 문 앞에 종이가 하나 붙어 있었다. '도착 시 OOO-OOOO으로 연락 바랍니다.' 나는 침을 꼴깍 삼켰다.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들었다. 수화음이 몇 번 울리고 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차로 오셨나요, 걸어오셨나요?"

걸어왔다고 답하자, 그녀는 신원을 조회하기 위해 한 가지 질문을 했다. "도서증 뒤에 네 자리 말씀해주세요." "5376" "확인되었습니다. 앞에 보이는 캐비닛 앞에 도서증을 두시고 세 걸음 물러나 주세요." 지시 사항에 따른 뒤 기다리고 있자 어두운 도서관 안에서 사람 형체가 보였다.

방역 태세를 갖춘 사서 한 분이 내가 예약한 책을 들고 나왔다. 흰색 봉투에 예쁘게 책을 담아 캐비닛 위에 올려주셨고, 나는 그것을 품에 안고 밀수품을 거래하듯 조심스레 현장을 떠났다. 은밀한 거래가 이루어지는 이곳은, 도서관이다.

코로나19 확산이 심화됨에 따라 다중이용시설인 공공도서관도 운영이 중단되었다. 대신 온라인 홈페이지에서 사전 예약 도서 대출 서비스를 운영했다. 각 지역마다 차이가 있겠으나 우리 시는 오전 10시부터 선착순으로 한정된 인원의 예약을 받았다.

처음엔 생소했으나 이내 재미를 느꼈다. 차에 앉아 창문 너머로 책을 주고받을 땐 007 첩보원 같기도 했고, 봉투에 항상 책에 관한 명언 책갈피를 넣어 주시는 것도 좋았다. 어느새 오전 10시에 책을 예약하는 것이 하루 일과가 되었다.

평소처럼 사전 예약 도서를 수령하던 날이었다. 도서관 앞에서 한 아주머니가 서성이고 있었다. 이윽고 사서 한 분이 나왔다. 아주머니는 물었다. "정말 도서관에 들어갈 수 없나요?" 사서는 임시 휴관 중임을 설명하며 현재 사전 예약 대출만 가능하다고 알려주었다.

차근차근 온라인 예약 방법을 아주머니에게 알려드렸으나, 그녀는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한 얼굴로 고개만 기계적으로 끄덕였다. 그리고는 돌아올 대답이 무엇인지를 알면서도, 아쉬운 얼굴로 다시 한번 사서에게 물었다. "그럼 지금 들어가서 책을 빌릴 수는 없는 거네요?"

사서는 고개를 끄덕였고, 아주머니는 알겠다며 인사를 꾸벅 한 뒤 도서관을 떠났다. 그간 우스갯소리로 '아무도 모르게 밀거래를 하는 것 같다'고 했는데, 이 흐름 속에서 온라인 이용이 버거운 누군가는 분명 소외감을 느끼고 있었다.

도서관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코로나-19 도서관 임시휴관 협조문
 코로나-19 도서관 임시휴관 협조문
ⓒ 시립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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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뒤 도서관 홈페이지에 한 공지가 올라왔다. '시민 여러분의 이해와 협조 바랍니다'라는 제목의 글은 이러했다. '코로나로 인해 부분 사전 예약 대출을 운영 중에 있으나 시민 여러분이 불편함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 코로나 상황이 안정되는 대로 오프라인 시립도서관을 개관할 테니 조금만 양해를 부탁드린다'는 내용이었다.

글에서 얼마나 많은 시민들이 불편함을 호소해 왔는지, 더불어 도서관 측도 그 요구에 충분히 답할 수 없어 얼마나 답답할지가 느껴졌다. 돌이켜보니, 내가 떠올린 도서관의 풍경 속에는 항상 사람들이 있었다.

만화책을 잔뜩 쌓아 놓고 아빠와 함께 열중하고 있는 어린 아들의 모습, 한쪽에 이어폰을 꽂고 책장을 둘러보며 끌리는 책을 고르는 젊은 여성의 모습, 돋보기 안경을 쓰고 커다란 요리 레시피 책을 읽는 아주머니의 모습, 책 꾸러미를 들고 와 자동대출기를 등진 채 사서가 봐주기를 기다리는 어르신의 모습. 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내가 잃어버린 건 독서가 아니었다 
 
 이탈리아 대학교 도서관
 이탈리아 대학교 도서관
ⓒ 정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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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해외여행을 가면 빠짐없이 들르는 곳이 있었다. 바로 도서관과 서점이다. 이탈리아에서도 퉁퉁 부은 발로 기어코 대학교 도서관에 갔는데, 하필 그날이 휴관이라 아쉬운 맘에 통유리 창문이 있는 위층에서 책들을 내려다보았다. 대만에서도 타이베이 대표 서점이라는 성품 서점에서 1시간을 멍 때리고 앉아 있었고, 하와이에서도 그러했다.

친구들은 '어차피 외국어로 된 서적뿐인데 가서 뭐 하냐'고 물었다. 나는 단지 그 분위기가 좋다고 답했다. 책처럼 온화하게 빛바랜 어르신 얼굴이 좋고, 나라마다 다른 책 코너 배치가 재미있고, 나보다 한 뼘은 넘게 큰데 위압적이긴커녕 마음이 편안해지는 책장이 좋다 얘기했다.

난 책이 좋아서 도서관에 간다 생각했는데, 거꾸로였다. 나는 도서관이 좋아서 책을 핑계 삼았던 것이다. 코로나로 인해 내가 잃어버린 것은 독서가 아닌 도서관의 풍경이었다.

2021년 1월 기준, 코로나 확진자 수가 300~400명 대로 떨어져 얼마 전 우리동네 시립도서관이 임시 개방했다. 오랜만에 보는 사서분들이 반갑고, 익숙한 열람실 풍경이 반갑고, 읽어줄 사람을 기다리던 책장 속 책들이 반갑다. 띄엄띄엄 떨어져 있는 좌석 중 빈 자리에 슬쩍 앉았다.

같은 책인데도 사람들 속에서 읽으니 더욱 맛이 깊었다. 책도 모여 있을 때 힘이 생기나 보다. 어린 아이에게는 모험의 출발지가 되고, 청년에게는 도전의 도약이 되고, 노인에게는 말 상대가 되어주는 이 소중한 공간이 오랫동안 모두에게 열려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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