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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확진자가 국내에서 처음 발생한 지 1년째가 되는 20일 오후 광주 북구선별진료소 의료진이 코로나19 검체를 채취하고 있다.
 코로나19 확진자가 국내에서 처음 발생한 지 1년째가 되는 20일 오후 광주 북구선별진료소 의료진이 코로나19 검체를 채취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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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백신의 개발과 도입 소식이 들려오면서 2021년에는 코로나 상황이 종식되고 마스크를 벗어 던진 채 잃어버린 일상을 맞이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찬 전망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미 우리는 많은 것들을 포기한 채 희생을 감내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회복하기 어려운 피해들 역시 사회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특히 의료자원을 동원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의료공백의 상황들은 시민들의 생명과 건강에 직접적인 위험을 야기했다. 취약계층들은 필요한 진료를 받지 못한 채 배제됐고, 정보 및 의료전달체계의 부재 또는 혼선 속에서 진료받지 못해 피해를 입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코로나19가 처음으로 크게 유행한 이후 고 정유엽 학생의 사망 사건 등을 통해 의료공백의 심각성이 간헐적으로 성토되기도 하였으나, 그 피해들은 대책 없이 반복되었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도 지난 2020년 12월 30일 "코로나 19로 투병 중인 사람들과 다른 질병으로 치료받아야만 하는 모든 사람에게 의료적 공백이 없도록 하여야 한다"는 내용이 담긴 성명을 발표한 바 있으나, 여전히 의료공백을 방지할 수 있는 구체적인 대안은 논의조차 시작되지 못하고 있다.

치료받지 못하는 취약계층들

정부는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공공의료기관을 동원하여 감염병전담병원으로 지정하고, 공공의료기관의 병상을 코로나19 환자를 진료할 수 있는 병상으로 동원했다. 그러나 대유행 속에서 발생하는 환자에 비해 정부가 공공의료기관으로 동원할 수 있는 병상의 수는 부족했으며, 공공의료기관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홈리스, 쪽방주민, HIV 감염인 등 취약계층들은 진료를 받지 못하고 병원 밖으로 밀려났다.

"수술 치료를 받고 나서 입원한 채로 재활치료를 받고 있었는데, 재활치료를 다 마치지도 못하고 코로나 전담병원이 되는 바람에 갑자기 퇴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로 치료가 계속 필요한 상황인데도 치료를 받지 못했습니다. 다른 병원을 알아볼 수 없는 상황에서 무작정 퇴원을 하게 됐습니다." (감염병 전담병원 지정에 따른 '노숙인 등' 의료 공백 대책 요구 기자회견 중에서 나온 발언)

공공병원을 이용할 수 없게 된 취약계층들은 긴급한 상황에서 이용할 수 있는 의료서비스를 찾아 헤매었으나 제대로 된 정보를 전달받지 못한 채 의료공백 상황에 놓였다. 다니던 공공병원을 이용할 수 없을 때 어떤 의료기관을 이용할 수 있는지, 발열 등을 수반한 응급상황에서 진료는 어디서 받을 수 있는지 등의 정보를 질병관리청 콜센터, 보건소 등 어디에서도 안내받지 못했다. 심지어 응급환자를 이송하는 119조차 진료할 수 있는 병원을 알지 못했다.

"119를 불렀어요. 원래 코로나가 아니면 A병원(공공의료기관)으로 가요. 거기에 모든 데이터가 다 있으니까. 그런데 코로나로 A병원 응급실이 봉쇄되어 다른 병원에 갈 수밖에 없었어요. B병원으로 갔는데, 열이 38.8도인가 나왔는데 안 받아주는 거죠. 37.5도 넘으면 안 받아준다고 법령으로 정해져 있다고, 거기서 한참 동안 실랑이 하고 119는 나를 태우고 들어가지도 못하고, 119에서 그러면 다른 병원으로 가자 해서 C병원으로 갔어요. C 병원에서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119 대원도 난감해했죠. 결국 119타고 집으로 돌아와 집에서 해열제를 먹고 버텼죠." (쪽방촌 주민 A의 증언, 코로나19 의료공백 인권실태조사보고서)

공공병원을 이용하던 취약계층들이 각자 진료받을 곳을 찾아 헤매는 과정에서 이들의 어려움이 코로나 상황과 맞물려 확대되기도 하였다. 가령, 정신장애인의 경우 정신질환 증상이 일시적으로 악화돼 응급한 입원이 필요한 경우가 발생한다. 그러나 코로나19 대응으로 인해 정신장애인의 응급입원을 받는 병원이 줄어들고, 수소문하여 병원에 방문하더라도 코로나 검사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하다 보니 긴급한 상황에서도 적절한 조치를 받지 못한 채 방치되었던 사례도 있었다. 

부실한 공공의료체계에 대한 보완 필요

다층적으로 나타나는 의료공백의 사례들을 단순히 코로나19로 인한 어쩔 수 없는 피해로 받아들이고 말아서는 안 된다. 만약 공공의료기관이 확충돼 권역별로 제 기능을 다 하고 병상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었다면 취약계층들에 대한 진료 역시 감염병 환자의 치료와 병행될 수 있었을 것이다.

코로나19 대유행을 지나면서 감염병 환자를 적절히 치료·관리하고 의료공백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공공병원을 확충하는 등 공공의료체계를 보완해야 한다는 경고는 의료계와 시민사회에서 여러 차례 있었으나, 결국 3차 대유행이 끝날 때까지 이에 대한 대책은 마련되지 못했다. 지금이라도 공공의료체계의 양적·질적 개선 방안에 대한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

나아가, 감염병 위기 상황에서 병상의 제공, 환자의 관리 등에 있어서 민간병원도 그 도덕적 ·사회적 책무를 다하도록 방법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3차 대유행 과정에서 정부는 병상이 부족해지자 최후의 수단으로 민간병원에서의 병상을 동원했다. 최후의 순간까지 민간의료기관이 나서지 않는 동안 피해들은 누적되었다. 위기 상황에서 민간의료기관도 위기의 극복을 위해 적극 동참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정부에서도 민간의료기관에 대한 권리와 의무를 명시하고 적절한 보상조치를 규정하는 등 이들이 사회적 책무를 이행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또한 공공의료기관이 코로나19 전담병원이 되면서 병원을 이용하지 못하는 취약계층들에게 적절한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정보전달체계와 의료전달체계가 재정비되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감염병 상황에서 진료 및 관리체계 전체를 조율할 수 있는 컨트롤타워를 구상할 필요가 있다.

이제껏 코로나19 전담병원, 선별진료소, 생활치료센터, 코로나19 국민안심병원 등 여러 임시적 기관들을 설치 또는 지정하여 대응했으나 각 조직 간의 소통과 협업의 부족 때문에 적절한 진료를 받지 못하는 상황들이 발생했으므로, 기관 간 환자들을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곳과 연계해 적절히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컨트롤타워가 절실하다.

코로나19의 종식은 백신의 접종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코로나19라는 위기를 견뎌내면서 우리가 희생해야 했던 것들을 돌아보고 무너진 폐허 위에 튼튼한 기둥을 세워야 한다. 코로나19와 같은 재난의 위기가 찾아오더라도 의료공백과 같은 상황이 반복되지 않도록 안전한 토대를 만드는 것이 우리가 진정으로 코로나19 시대의 문을 닫고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아닐까.

태그:#코로나19, #의료공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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