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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 속헹씨가 사업주가 제공한 비닐하우스 기숙사에서 사망한 지 한 달이 지났다. 사업주가 제공한 기숙사의 열악함에 많은 시민이 분노했다. 심지어 이 기숙사는 한 달에 숙박과 음식 제공이라는 명목으로 20만 원을 급여에서 공제했다. 

이런 상황을 방치한 고용노동부에 대한 질타도 이어졌다. 더불어민주당 고영인, 양이원영, 윤미향 의원, 정의당 강은미, 류호정 의원 등 국회의원들도 뒤늦게나마 관심을 두고 있다. 그렇다면 20만 이주노동자 기숙사 현실은 개선되었을까?

안타깝지만 특별한 변화가 감지되지 않는다.

비닐하우스 내 가설건축물만 위험한가?
 
이주노동자기숙사 화재현장(포천이주노동자센터 제공)
 이주노동자기숙사 화재현장(포천이주노동자센터 제공)
ⓒ 최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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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이주노동자센터(대표 김달성 목사)는 지난 21일 포천에 있는 공장화재로 이주노동자 기숙사 등이 전소했다는 사실을 알려왔다. 이주노동자 세 명이 극적으로 탈출하였으나 그중 한 명은 2층에서 뛰어내려 부상을 당해 입원했다며, 비닐하우스 내 가설건축물만 금지할 것이 아니라 안전이 담보되지 않는 모든 가설건축물은 기숙사로 제공이 금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6일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농어업 분야 고용허가 주거시설 기준 대폭 강화' 관련 대책에는 농지 위에 설치된 비닐하우스 내 가설건축물의 기숙사 제공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내용만 담겼을 뿐이다. 그리고 일반 가설건축물에 대해서는 지자체에 '신고'만 되어 있으면 일단 허용하겠다고 했다.  

고용노동부는 현장 점검을 통해 기숙사 시설의 안정성을 점검할 것이라고 덧붙였지만, 시민단체들은 이런 방식으로는 기숙사의 안전이 확보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고용노동부 공무원들은 건축 분야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기숙사의 안전 여부를 현장 점검으로 걸러낼 수 없다는 주장이다.

가설건축물의 용도와 관련한 국토교통부의 의견도 시민단체의 주장과 일맥상통한다. 국토교통부는 한시적인 용도가 아닌 지속적인 주거 용도로 가설건축물을 사용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그 입장을 이미 밝힌 바 있다.

고용노동부는 국토교통부의 위와 같은 해석이 나온 이후 가설건축물이 주거공간으로 적합하지 않다는 위 해석에 공감하고 관계부처와 논의하여 대책을 다시 발표하겠다고 한 상태다. 가설건축물 중 '비닐하우스 내 가설건축물'만 한정하여 기숙사사용을 금지하도록 한 고용노동부의 1.6 대책이 국토교통부 등 관계부처와 제대로 된 조율 없이 졸속으로 이루어졌음을 사실상 인정한 것이다.

권익보호협의회를 통해 사업장 변경? 일선 고용센터 우왕좌왕 

고용노동부의 1.6 대책에는 사업장변경허용 방침도 담겼다. 기존 사업장에서 비닐하우스 내 컨테이너, 조립식 패널 등을 숙소로 이용 중일 경우 외국인 근로자가 희망하면 사업장변경을 허용한다는 것이다. 영세한 농어가에서 당장 새 숙소를 마련하기 위한 어려운 점을 고려해 우선 외국인근로자의 사업장변경을 허용한다는데, 지방관서에 설치된 권익보호협의회를 통해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시민단체는 권익보호협의회를 통한 진행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다. 지방관서에 설치된 권익보호협의회는 1년에 2차례 정도 열리고, 이를 통한 사업장변경 건수는 지금껏 미미했기 때문이다.
 
불 났을 때 뛰어내린 베트남 출신 이주노동자
 불 났을 때 뛰어내린 베트남 출신 이주노동자
ⓒ 포천이주노동자센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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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노동부 1.6 대책이 나온 후 베트남 국적 이주노동자 2명은 농장주가 제공하는 비닐하우스 내 가설건축물 기숙사를 문제 삼아 지난 19일 이천고용센터에 사업장변경을 신청하였으나, 권익보호협의회 절차는 작동되지 않았다.

이천고용센터 담당자는 20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권익보호협의회는 외부위원들이 있어 개최를 자주 열 수 있는 것이 아니다'며 권익보호협외회를 통한 사업장변경절차의 한계를 인정했다. 또한, '사업주 입장도 확인해야 하는데 사업주는 기숙사를 바꿔주겠다고 하는데, 노동자들이 그냥 나가버렸다. 이탈신고를 하겠다고 한다'며 자신들은 '이주노동자 입장과 사업주 입장도 정리해 권익보호협의회에 올릴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주노동자가 농장주와 통화한 내용이라고 기자에게 제공한 녹음파일에 담긴 대화에서 농장주는 '계약하면 한 달에 방 30만 원씩 내야 한다. 계약금(보증금)도 보통 1000만 원 정도 든다. 그 방에는 냉장고도 없고, 세탁기도 없어 다 사야 한다'라며 기숙사와 관련한 일체의 비용을 이주노동자가 부담해야 한다는 식으로 이야기했다. 

하지만, 이주노동자가 농장주의 체결한 계약서에는 농장주가 '숙박시설'을 제공하겠다고 기재되어 있다. '숙박시설 제공'이라는 의미는 그 시설을 위한 계약금(보증금)은 농장주가 부담하고, 냉장고, 세탁기 등 기본설비가 갖추어 있어야 한다는 걸 포함한다고 해석된다. 농장주는 계약조건을 위반한 것이다.   

이천고용센터가 우왕좌왕하는 사이 이주노동자는 지난 21일, 사업주와 근로계약 해지에 합의했고, 이천고용센터는 '사업자변경신청 외국인 구직등록필증'을 발급했다. 합의해지로 사업장변경을 허가받은 이주노동자는 사업장 변경 횟수 3번 중 1번을 차감당할 뿐만 아니라 4년 10개월 이후 다시 입국할 기회를 잃어버린다. 시민단체는 이주노동자의 사업장변경 사유를 '근로계약 합의해지'가 아니라 '근로조건 등 위반 등'으로 정정해 달라고 요청해 놓은 상태다. 

우리가 미안해야 할 이주노동자가 더 필요한가?
 
이주노동자 기숙사산재사망사건 대책위 제공
 이주노동자 기숙사산재사망사건 대책위 제공
ⓒ 최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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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0년 12월 30일, 속헹씨가 사망한 기숙사와 의정부 고용지청 앞에서 시민단체들은 조화를 헌화하며 속헹씨를 조문하는 시간을 가지며 이렇게 외쳤다.

"속헹씨 미안합니다."

속헹씨가 사망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현재 고용노동부가 내놓은 대책만으로는 이주노동자의 현실이 변화되지 않을 것이라는 징후가 여러 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지난 6일 내놓은 대책은 '보도자료'에만 존재할 뿐 현실에는 작동되지 않는 듯하다. 속헹씨와 같은 피해이주노동자가 더 나오지 않기 위해서는 고용노동부는 현장에서 작동하는 더 세밀한 대책을 내놓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태그:#이주노동자, #기숙사 산재사망, #고용노동부 1.6. 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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