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해 11월 초겨울에 찍은 사진인데도 푸른 들이 보인다. 들 울타리 뒤에 보이는 건물들이 평화나무농장에서 사용하는 건물들이다
▲ 농장 입구에서 본 평화나무농장 전경.   지난해 11월 초겨울에 찍은 사진인데도 푸른 들이 보인다. 들 울타리 뒤에 보이는 건물들이 평화나무농장에서 사용하는 건물들이다
ⓒ 노준희

관련사진보기

 
페이스북에서 원혜덕씨가 올린 이야기를 종종 봤다. 오늘은 무슨 작물을 심었고 어떤 증폭제를 땅에 묻었고 이런 방식으로 지은 농산물의 상태가 어떻고 어떤 특징과 장점이 있는지 등. 바쁘다는 이유로 텃밭 한 평 가꿀 새 없고 획일화된 아파트 생활을 벗어나지 못하는 나지만, 아니 그래서, 흔들리지 않고 오래도록 자연 그대로 생명을 가꾸는 사람들 이야기가 솔깃했다. 

지난해 11월 '생명역동농업'을 기반으로 40년 넘게 농사를 지어온 김준권 원혜덕 부부를 만났다. 생명역동농업이 무엇이길래 많은 사람이 경기도 포천 '평화나무농장'까지 찾아가 그들의 농법에 관심을 두고 배우길 원하는지 궁금했다. 

색과 촉감, 냄새가 다른 농장의 흙
 
 밭에 멀칭하지 않고 왕겨를 뿌려놓았다. 왕겨 아래로 검은 흙이 보이는데 이 흙이 수십 년간 생명역동농업으로 일군 흙이다. 부드럽고 냄새가 좋았다. 사진 오른쪽에 검은 막대를 꽂은 곳이 증폭제를 묻고 표시해둔 곳이다.
▲ 양파 모종을 옮겨 심은 모습.   밭에 멀칭하지 않고 왕겨를 뿌려놓았다. 왕겨 아래로 검은 흙이 보이는데 이 흙이 수십 년간 생명역동농업으로 일군 흙이다. 부드럽고 냄새가 좋았다. 사진 오른쪽에 검은 막대를 꽂은 곳이 증폭제를 묻고 표시해둔 곳이다.
ⓒ 노준희

관련사진보기

 
평화나무농장의 흙은 검고 부드러웠다. 잘 발효된 거름처럼 은은한 냄새가 배어 나왔다. 발효가 훌륭한 고급 와인에서 맡을 수 있다는 촉촉하고 조화로운 흙냄새, 바로 그 냄새 같았다. 

부부는 벼와 밀, 토마토, 배추, 무 등 50여 가지 다양한 작물을 키운다. 특히 토마토 농사를 많이 지어 주 수입원이다. 농사짓고 난 부산물은 버리지 않고 발효시켜 소와 산양의 먹이로 공급한다. 가축에게선 불쾌한 냄새가 나지 않았고 동물들 털은 깨끗하고 윤기가 났다. 

원혜덕씨는 "평화나무농장 흙은 농약과 화학비료 전혀 없이 생명이 순환하는 생명역동농업으로 수십 년 농사를 지어서 나온 흙"이라며 "이 흙에서 자란 농산물을 우리가 먹고 동물에게 그 부산물을 먹인다. 그러면 동물의 배설물은 다시 거름으로 활용돼 땅의 힘이 좋아지는데 이 땅에 증폭제를 묻어 매년 지기(땅힘)를 돋운다"고 말했다. 김준권씨는 "증폭제는, 생명역동농업에서 땅의 기운을 생성하고 필요한 영양소를 공급하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특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월마다 만드는 증폭제가 다르고, 아주 미량이지만 꼭 필요한 것들이 들어가고 안 들어가고에 따라 증폭제를 사용한 땅과 아닌 땅은 확연히 달라요. 눈에 보이지 않으니 물질주의자들에게 비물질 요소를 설명하긴 매우 어려워요. 하지만 우린 그 힘을 느끼고 있어요."

좋은 방식으로 키운 농산물을 먹고 그 부산물을 활용해 가축을 키우고 다시 그 배설물을 농사에 사용하는 방식, 바로 생명순환농법이다. 이 생명순환농업이야말로 유기농의 진정한 방식이라 할 수 있다. 
 
 김준권 씨는 올해 한국 나이로 74세가 되었고 원혜덕 씨는 66세를 맞이했다. 나이보다 건강한 활력이 느껴지는 부부의 미소가 아름답다. 뒤에 보이는 집은 부부가 사는 집.
▲ 김준권 원혜덕 부부.   김준권 씨는 올해 한국 나이로 74세가 되었고 원혜덕 씨는 66세를 맞이했다. 나이보다 건강한 활력이 느껴지는 부부의 미소가 아름답다. 뒤에 보이는 집은 부부가 사는 집.
ⓒ 노준희

관련사진보기

 
생명역동농업은 무엇? 

농사짓는 방법에 관심 없는 사람은 많지만 그 관심 없는 농사법으로 지은 농작물을 우린 매일 먹고산다. 공기와 물, 땅의 오염이 심각해지는 요즘, 지구 생태계를 망가트린 데 인류의 책임이 절대적이라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듯하다. 그러면서도 인간은 건강하게 살고 싶어 한다. 그러니 어떤 방식으로 농사지은 농작물이 내 입으로 들어가는지 관심을 두지 않을 수 없다. 

사전에서 생명역동농업(Biodynamic)은 '토양에 생명을 넣어 주고 대량 생산이 아닌 소량 생산, 곧 품질이 우수한 농산물의 생산을 목표로 하는 농업 방식. 농사를 단순한 생산 행위가 아니라 우주의 기운을 인간에게 전달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본다'고 설명되어 있다. 친환경 이상 농업을 하는 사람들에게 유기농업의 최고봉으로 알려진 게 생명역동농업이다. 여기서 우주라는 말이 나오니 사람들은 일단 의구심부터 들 수 있다. 

생명역동농업은 독일 발도르프 교육의 창시자 루돌프 슈타이너 박사가 가장 먼저 시작했다. 김준권씨는 "이 농업은 독일은 물론 프랑스, 이탈리아, 스위스, 오스트리아, 이집트, 인도, 미국, 캐나다, 중국 등 여러 국가가 국가적 역량을 쏟아 넣어 활성화돼 있다"라고 소개했다. 

"생명역동농업은 농산물만 잘 키우는 게 아니라 땅의 힘과 면역력을 키우는 목적이 커요. 그러기 위해 별자리와 행성을 보며 농사를 짓는데 이를 놓치지 않고 잘할 수 있게 만든 것이 파종달력이지요. 생명역동농업은 태양과 달, 지구와 가까운 12개 별자리에 따라 우주의 파동이 달라져 그 파동에 따라 달라지는 식물특성을 반영한 농업이랍니다. 우주의 순리에 순응하며 짓는 농법이지요."
  
파종달력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와 파종달력을 보는 법을 설명하는 페이지다. 월 페이지마다 증폭제에 대한 설명이 되어 있어 생명역동농업으로 농사를 지으려는 사람들에게 아주 유용하다.
▲ 파종달력 파종달력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와 파종달력을 보는 법을 설명하는 페이지다. 월 페이지마다 증폭제에 대한 설명이 되어 있어 생명역동농업으로 농사를 지으려는 사람들에게 아주 유용하다.
ⓒ 노준희

관련사진보기

 
파종달력은 독일 마리아 툰 가족이 만들었는데 부부는 한국에 맞게 파종달력을 개편했다. 달력에는 9가지 증폭제가 무엇이며 각 증폭제 특징과 무슨 달 무슨 일에 어떤 작용이 일어나는지 자세히 나와 있다. 

생명역동농업을 주창한 슈타이너 박사는 농업과 식물의 성장을 단지 물리 화학적 요소에만 주력해 보는 한계가 있음을 지적하며 편협한 현대과학이 화학비료와 농약 사용을 증가시켜서는 당면한 농업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식물의 성장에는 우주가 관여한다. 농업은 우주의 한 부분인 땅, 식물, 동물, 인간이라는 요소를 가진 유기체이며 우주의 행성과 항성에서 오는 기운이 작용한다"고 역설하며 "단위 농장 안에서 생물다양성을 최대로 높여 생태계 균형과 조화를 이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생명역동농업으로 키운 채소의 맛 

그렇다면 정말 생명역동농업으로 지은 농작물은 문제없이 잘 자랄까. 더 건강하고 좋은 에너지가 많이 들어 있다고 증명할 수 있을까. 

초겨울이었지만 평화나무농장 하우스에는 루꼴라가 남아 있었는데 원혜덕씨는 "이게 끝물이라 질기고 맛이 덜하겠지만 바로 뜯어서 먹어보라"고 권했다. 나는 깜짝 놀랐다. 지금까지 먹어본 루꼴라 중에 가장 맛있었고 고소한 풍미가 살아 있었다. 루꼴라가 이렇게 맛있는 채소였나 할 정도였다. 여기에 직접 키운 '루바브'라는 식물의 줄기로 담근 잼과 발사믹 식초로 버무린 드레싱을 얹고 직접 키운 당근을 섞어 내놓으니 멋진 샐러드가 되었다. 
 
평화나무농장의 상차림
 평화나무농장의 상차림
ⓒ 노준희

관련사진보기


빵을 좋아하지 않는 나지만 이곳에서 직접 키운 통밀로 만든 빵은 소화가 잘돼 부담이 없었다. 농장에서 키우는 산양의 젖은 비린 맛이 전혀 없고 고소함과 신선함이 살아 있었다. 생명역동농업으로 지은 농산물로 차린 성찬의 점심을 맛보니 진심으로 감사했다. 화려할 것 없는 소박한 점심이지만 하나하나 생명력이 깃든 것처럼 맛과 풍미가 탁월했다.
 
 산양들은 축사 안팎을 마음껏 돌아다니며 낯선 이에게도 스스럼없이 다가오곤 했다. 가까이서 보면 털빛이 매우 건강해 보인다.
▲ 맛있는 산양유를 내어준 산양들.   산양들은 축사 안팎을 마음껏 돌아다니며 낯선 이에게도 스스럼없이 다가오곤 했다. 가까이서 보면 털빛이 매우 건강해 보인다.
ⓒ 노준희

관련사진보기

 
생명역동농업을 짧고 명확하게 설명하긴 곤란하다. 그런데 이렇게 몸으로 확인하고 나니 생명역동농업이 신비롭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원혜덕씨가 수시로 페이스북에 써내려간 농사일기를 보면, 그 작은 생명을 가꾸는 것에 얼마나 큰 노력과 과정이 숨어 있는지 알 수 있다. 이 부부에게 생명역동농업을 배우려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이유를 알 만했다. 

그 울림은 충북 괴산에도 전해졌다. 이들의 농업을 1년간 배우고 간 이가 괴산에 공동체를 열게 된 것이다. 바로 이 생명역동농업으로 농사지은 먹거리를 먹겠다는 각오로 뜻을 같이 하는 젊은 부부들이 모여 공동체를 일궜다. 

생명력 가득한 농산물, 병치레 없는 건강한 삶 살게 해

지속가능한 농업, 질병 없는 건강한 삶은 인류의 최대과제이다. 김준권 원혜덕 부부와 만남을 통해 막연히 알았던 그 중심이 땅이라는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됐다. 

원혜덕씨는 7년 전 구제역이 심하게 돌았을 적 에피소드를 말해주었다. 이웃집 돼지들이 구제역에 걸려 300m 반경 안 소들도 함께 살처분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어쩌나 했는데 우연하게도 바로 다음 날 법이 바뀌어 평화나무농장의 소들은 죽음을 면하게 되었다. 그런데 평화나무농장의 소들은 바로 옆 축사에서 구제역이 돌았는데도 단 한 마리도 감염되지 않고 건강하게 살아남았다. 

그는 "생명역동농업을 통해 나온 부산물을 먹고 널찍한 축사에서 자란 소들이 얼마나 건강한지 한눈에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했다. 이들은 100두를 키울 공간에 25마리 정도만 사육하고 있다. 

하지만 땅의 기운이 우러나는 방법으로 농사를 짓는 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몸이 으스러지게 일할 때도 많고 소출도 그때그때 다르다. 또 정직하고 건강하게 농사짓는다고 누구나 고부가가치를 매겨주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김준권씨는 단호하고 자신 있게 말했다.

"사람은 가치를 추구하는 동물이에요. 나는 생태를 살리고 지키는 일을 하면서 한 번도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초기에 시작한 사람들은 지금은 그만뒀거나 유기농 강사로 활동합니다. 강사는 필요하지만 힘드니까 유기농업을 안 하는 경향은 있어요. 힘들어도 힘듦 속에 휴식과 즐거움이 이미 포함돼 있어요.

농업의 가치와 중요성을 알게 되면서 더 이상적이고 제대로 된 농사방법이 뭘까 고민하다 만난 게 생명이 순환하는 경축순환농업, 생명역동농업이었어요. 이를 알고부터는 더 이상 다른 선택은 없다고 생각했어요. 자신이 흘린 땀의 대가를 받는 농업이야말로 사람답게 사는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육체와 마음과 영혼이 유기적으로 결합한 것이 사람인데 이 3가지가 건강해야 완전한 건강체이지요. 몸엔 영양소가 필요하고 정신은 활력이 필요해요. 영혼에 가까운 인문학적 용어가 양심이고요. 양심 있는 정신이 육체를 지배할 때 인간의 면모를 유지해요. 활력 있는 땅에서 자란 식물과 그렇지 않은 곳에서 자란 식물은 매우 달라요. 좋은 활력을 주는 음식물을 먹어야 합니다. 그래서 자연이 잘 순환하게 하면 모든 게 잘 돌아가고 우리도 건강해지는 겁니다."
 
 원경선 선생은 ‘유기농의 대부’라 불리며 평생 어려운 이웃을 돌보며 생명존중 사상을 실천한 생명 농부로 추앙받고 있다. 원경선 선생의 신념을 이어받아 지금까지도 생명역동농업에 흔들림 없는 믿음으로 농사짓는 부부가 바로 김준권 원혜덕 부부이다.
▲ 원혜덕 씨가 아버지 원경선 선생과 어머니를 이야기하며 자료를 보여주는 모습.   원경선 선생은 ‘유기농의 대부’라 불리며 평생 어려운 이웃을 돌보며 생명존중 사상을 실천한 생명 농부로 추앙받고 있다. 원경선 선생의 신념을 이어받아 지금까지도 생명역동농업에 흔들림 없는 믿음으로 농사짓는 부부가 바로 김준권 원혜덕 부부이다.
ⓒ 노준희

관련사진보기

 
김준권씨는 "착취하거나 부조리 편승하지 않고 자기 삶 자기 먹거리를 가꾸는 게 가치 있는 삶이라고 생각한다. 원경선 선생의 말씀에서 깨달음을 얻었다"며 생명역동농업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보였다. 원경선 선생은 평생 바른 먹거리를 지향하고 힘든 이웃을 살펴온 풀무원농장의 대표이며 원혜덕씨의 아버지다. 원혜덕씨는 진심을 담아 말했다. 

"아버지의 생명존중 신념을 이어받아 44년간 실천하는 삶을 살아온 남편을 정말 존경해요. 지나고 보니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더라고요." 

김준권 원혜덕 부부는 그렇게 서로를 신뢰하면서 자연이 순환하는 방식으로 땅을 가꾸면 모든 것이 잘 돌아간다는 그 간단한 이치를 사람들에게 행동으로 전하고 있다. 땅이 원하는, 지구가 잘 순환하는, 인간에게 이로운 농업을 그들은 말이 아닌 몸으로 실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앞으로도 여전히 그 삶을 살아갈 것이다. 

태그:#평화나무농장, #생명역동농업, #파종달력, #증폭제, #생명순환농업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충남과 천안 아산을 중심으로 한 지역소식 교육 문화 생활 소식 등을 전합니다. 지금은 출판 분야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