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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살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좋은 사람일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어떠한 사람이든 깊은 인상을 남기며 내 머릿속에 남는다. 물류창고에서 근무할 때도 그런 사람들이 많았다. 

물류창고가 물건을 수없이 나르는 장소다 보니 사람들과의 교류가 적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소통하고 새로운 관계를 쌓아간다. 오히려 사람이 많다 보니 물류창고에서 사람을 사귀는 것은 어렵지 않다. 소극적인 성격인 나도 여러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는 했다.

사람들을 만나면서 나는 내가 경험해보지 못했던 세계를 알게 되거나, 모호하게만 알던 것들을 명확하게 알게 된다. 오늘은 그런 경험을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원주에서 온 사람들 
 
 8월 3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쿠팡 서초1배송캠프에서 직원 1명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음에 따라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
 서울 서초구 쿠팡 서초1배송캠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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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한가운데에 있는 물류창고를 생각해보자. 어느 지역 사람들이 가장 많이 출근할까? 경기도니까 인근 시나 군에서 온 사람이 많을까? 의외로 서울이 많을까? 모두 틀렸다. 정답은 강원도 원주다.

원주에서 온 버스는 3대 정도다. 다른 지역은 아무리 많아봤자 2대인데 원주는 이보다 많다. 그렇게 많은 버스가 배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버스는 사람으로 가득 찬다. 자리가 너무 없어서 택시를 타고 출근하는 노동자들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퇴근 시 개인 식별 바코드를 찍을 때면 원주 사람들에게 양보하는 게 암묵적인 규칙처럼 되기도 했다. 원주 차를 타는 사람이 먼저 바코드를 찍지 못한다 하더라도, 먼저 바코드를 찍고 퇴근하는 다른 노동자에게 가방을 맡겨 원주행 퇴근 차량 자리를 미리 확보해 두어야만 했다. 그래야 편하게 앉아서 갈 수 있다고 한다.

콩나물시루 같은 버스를 타고 출근했다가 퇴근하는 사람들을 보면 일종의 존경심이 들 정도다. 사람이 가득 찬 버스를 타는 것이 얼마나 고역인지 아침 지하철을 여러 번 타 본 나로서는 쉽게 짐작이 갔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당신은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최저임금 혹은 그보다 약간 높은 임금을 받고, 출퇴근 시간이 최대 3시간이 걸리는 여기까지 올 이유가 있을까? 다른 곳으로 가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동료 노동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거기는 일자리가 별로 없어."

이런 대답을 들으면 섣불리 질문을 꺼냈던 사람도 미안하다면서 추가 질문을 하지 않는다. 

내가 물류창고에 출근하기 시작했을 때, 창고도 막 개장한 상태였다. 많은 것들이 정리되지 않아 어수선했지만 능숙하게 일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대부분이 경기도 내 다른 창고에서 일하던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원주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은 이전에도 창고 노동을 계속해왔던 것이다. 

물론 이들뿐만이 아니다. 일자리를 찾기 위해서 많은 지역의 사람들이 여기에 몰린다. 버스는 충청도에도 가고 강원도, 서울에도 간다. 한 번에 모이기 어려운 지역 사람들이 창고를 통해서 만난다.

스치듯 지나가는

쿠팡 물류창고의 사무직들은 한국 이름으로 불린 적이 별로 없다. 그들은 모두 영어 닉네임을 가지고 있다. 이들이 외국인인 것은 아니지만, 사내에 그런 문화가 있어 서로를 닉네임으로 부른다고 한다. 물론 현장에서 뛰는 계약직들에는 적용되지 않는 문화다.

그런데 '진짜 외국인들'이 올 때도 있다. 센터장이라고 불리는 사람이다. 이곳의 최고 책임자라고 한다. 내가 근무했을 동안에는 센터장이 한 번 바뀌어서 나는 2명의 센터장을 겪었다.

그러나 존재만 알고 거의 보지는 못했다. 원래 높은 사람 보는 것이 어렵기도 하고, 설사 보게 되더라도 만반의 준비를 다 마쳐놓고 평소보다 더 열심히 일해야 하므로 얼굴을 보게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어느 센터장은 현장 점검을 한답시고 매주 특정 요일에 창고로 올라오기도 했다. 그는 통역사로 보이는 사람 한 명과 여러 명의 임원을 끌고 다녔다. 땀으로 절인 우리 노동자들보다 깨끗한 외양을 가진 사람들이 창고를 배회하고 다녔다.

우리는 그가 올 때마다 사방을 청소해야 했다. 관리자도 그날이면 물건을 조금 천천히 나르라면서 편의를 봐줄 정도였다. 일주일이면 금방 뜯길 각종 표시 테이프를 바닥에 다시 붙이는 작업도 했다. 이렇게 하면 평소보다 깨끗해진다. 

쉬는 시간이 다가올 찰나에 센터장이 올라왔다는 신호가 창고 사방에 퍼진다. 쉬려고 준비하던 사람들이 깜짝 놀라 다시 일을 시작한다. 관리자도 '쉬세요' 한마디를 안 한다.

센터장이 꼼꼼하게 이것저것 지시를 한 다음 재빠르게 나간다. 다음 날 관리자의 표정이 어두워지겠지만, 일단 오늘의 위기는 이것으로 넘어갔다. 비로소 관리자는 외친다.

"10분간 쉬세요!"

평소보다 늦은 쉬는 시간에 많은 사람이 한숨을 쉰다. 옆에 있던 노동자는 물건을 조심히 주위에 내려놓고 풀썩 팔레트에 앉아버린다.

창고에서 울려 퍼지는 노래

그래도 나름 꼼꼼하게 작업환경을 봤던 덕분인지 많은 편의가 생기고는 했다. 여름에는 너무 더우니 음악이라도 틀라고 한 조치가 그렇다. 각 파트에는 전산처리하기 위한 컴퓨터가 있는데 여기에 스피커를 달아 음악을 들으라고 한 것이다.

덕분에 일하면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호사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처음에는 어리둥절했던 노동자들도 음악을 매우 기쁘게 받아들였다. 다만, 새로운 문제가 생겼다. 어떤 노래를 틀어야 모두가 만족할 수 있을까? 

처음에는 TOP100을 그대로 틀었다. 하지만 그러자 항의가 빗발쳤다. 여름임에도 불구하고 신나는 노래보다 힘이 빠지는 발라드가 계속 나왔기 때문이었다. 창고 분위기는 가라앉았고, 몸은 배로 힘들어졌다.

최신 아이돌 노래가 나오기 시작하자 중장년층에서 항의가 들어왔다. 신나기는 하는데, 자신들도 좀 같이 즐길 수 있는 노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었다. 

결국 매일 바뀌는 DJ가 고생이었다. 그는 잠시 컴퓨터를 만지는 노동자일 뿐이었다. 그래서 빨리 노래를 설정하고 일하러 가야 하는데, 이런저런 요구가 너무 많았다. 하지만 종국에는 모두가 원하는 노래 목록이 만들어졌다. 미스터트롯도 나오고, BTS 노래도 나오고, 가끔가다 발라드도 나왔다. 

다양한 노래가 창고 내에 울려 퍼졌다. 어느 노동자 말대로 노래는 일하는 데 유일한 낙이었다. 휴대폰 반입도 안 되고, 쉬는 시간도 오후에 한 번 주어지는 상황에서 노래는 최고의 활력소였다. 다른 사람의 취향을 존중하고 새로운 음악을 접할 수도 있었다. 이는 중요한 경험으로 다가왔다. 의외의 수확이었다.

오는 사람 가는 사람
 
 11일 송파구 쿠팡 물류센터에 관계자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이 물류센터에서 종사자 1명이 이달 4일 처음으로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고, 9일까지 12명, 10일에 3명이 추가로 확진돼 총 16명의 관련 환자가 나왔다. 2020.9.11
 송파구 쿠팡 물류센터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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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수십 명의 신규 일용직 노동자가 오고 가는 물류창고. 만남과 이별이 익숙한 곳이다. 오래 같이 근무한 계약직 노동자라 할지라도 그렇다.

많은 계약직 노동자들이 퇴사하는 것을 지켜봤다. 모두 각자의 사정이 있었다. 더 좋은 일자리를 찾으러 떠난 사람도 있었고, 관리자와의 갈등 끝에 나가버리는 사람도 있었다. 보통 회사에서 퇴사한다고 하면 조촐한 행사라도 연다고 들었는데, 여기에는 그런 것이 없었다.

그냥 "오늘 저 나가요" 하면 사람들이 '안타깝다'고 말하고 끝난다. 퇴근하면 다른 지역으로 흩어지기 때문에 모여서 밥 먹기도 어렵다. 떠난 사람이 출근하지 않는 다음 날이면 사람들은 허전하다고 말하면서도 평소처럼 일한다.

그러면 어제 일용직 노동을 했던 사람은 자신이 계약직 노동자로 전환되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 사람이 처음 일용직 노동자로 들어왔을 때 일을 가르쳐 준 기억이 스쳐 지나간다. 시간이 이렇게나 빨리 흐른다. 일용직 노동자가 계약직 노동자가 되는 순간을 수차례 보면서 나는 시간이 많이 흘렀음을 자연스럽게 깨닫는다. 

나 또한 계약직 노동자로 일하자고 많이 권유받았다. 언젠가는 쿠팡 측에서 연락이 와서 계약을 맺지 않겠느냐고 말하기도 했다. 아직 학생 신분이었기 때문에 고사했다. 덕분에 끝까지 일용직 노동자로 남았다.

매일 새로운 노동자가 계약을 맺고, 퇴사한다. 새로 들어온 사람들과 잠시 어색해하다가 곧잘 같이 일한다. 그러다 어느 날 그가 인사하고 떠난다. 간혹 퇴사했던 사람이 일용직으로 며칠 알바를 뛰는 날이 있기도 하다. 그러나 그들은 다시 자기 일을 찾아서 어디론가 떠난다. 그런 나날들이 반복됐다. 내가 처음에 일을 같이했던 구성원의 절반 이상이 사라지고 새로운 노동자로 채워졌다. 

이제 그 새로운 절반과도 정이 들던 시기가 됐다. 일도 능숙해졌고, 내가 이 일을 한 지도 2년이나 다가왔다. 그때 누군가 내게 물었다. 이제 사람들 빠져나가는 것 보니 슬슬 너도 나가게 되지 않겠냐고 말했다. 나는 "그래도 좀 더 일하지 않을까"라고 답했지만, 정말로 다음 차례는 바로 나였다.

태그:#노동, #쿠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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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군대' 저자 게이, 에스페란티스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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