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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에서도 본래 혼동했었다?

우리 주변에서 많은 사람들이 '다르다'와 '틀리다'를 혼동하고 잘못 사용하고 있다. 이를테면, "이것과 저것은 틀리다"라고 말하는 경우가 흔하다. 물론 이는 잘못된 표현이다. "이것과 저것은 다르다"라는 표현이 정확한 사용법이다. 그런데도 무려 90%의 사람들이 여전히 "틀리다"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했는가에 대해서도 적지 않은 논의가 있어왔다. 그 중의 하나가 일본어의 영향 때문인가의 문제다.

이 문제에서 현재 일각에서는 예를 들어, <숙향전>에 "초왕에게 그 족자를 보이고 오랑캐 출신의 종과 비교하여 보였더니, 그 그림과 종의 얼굴이 조금도 틀리지 않았으니"라 하여 '다르다'라고 사용되어야 할 곳에 '틀리다'라는 용어가 사용된 것 등 우리 고전 중  '다르다'와 '틀리다'가 혼용된 몇 가지 사례를 내세워 일본어 영향보다 본래 우리말에서도 '다르다'와 '틀리다'가 혼용되었다는 가설을 주장한다. 그리고 현재 이러한 주장은 주류 해석으로 자리 잡은 듯 보인다.

그런데 우리 <훈민정음 언해본>에는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에서 보이듯, '달아'라는 표기법이 출현하고 있다. 즉, '틀리다'가 아니라 '다르다'라는 표기법이 분명하게 나오고 있는 것이다. 최소한 조선시대에서 '다르다'와 '틀리다'는 분명히 상이하게 별개의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가령 같은 동양어인 한자 차(差)는 "차이가 나다", "다르다"라는 의미로서 주로 사용되고 있지만, "차이가 나다"라는 의미가 확대되어 "틀리다"라는 의미도 '부분적으로' 담게 되었다. 이와 같이, 우리말의 "다르다"도 의미가 확대되어 "틀리다"의 의미를 '부분적으로' 지니게 되지 않았을까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다르다'와 '틀리다'가 완벽하게 혼용되고 있는 일본어

우리말 '다르다'에 상응하는 일본어에는 異なる와 違う의 두 가지 용어가 있다. 먼저 異なる는 '다르다', 즉 different의 뜻이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違う로서 일본 사전에서도 '다르다(different)'와 '틀리다(wrong)'의 두 가지 의미를 동시에 지니는 용어로 설명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언어는 사회 분위기라는 조건으로부터 형성되는 경우가 많다. 역사적으로 줄곧 전체주의 국가로서의 속성이 관철되어왔던 일본에서 "남들과 다른 것은 틀린 것"이라는 전체주의적 사회 분위기가 형성되었고, 이러한 조건으로부터 '다르다'와 '틀리다'는 동일한 의미로서 사용되어왔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일제 강점기, 일본어의 간섭과 개입은 상상 이상으로 크다

예를 들어, "염두에 두다"라는 말도 오늘날 "염두하다", "염두해 두다"라고 잘못 사용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서 이 용어가 순수한 우리말일까 아니면 한자어일까 추론해보기도 하지만, 이 말은 결국 일본어 念頭に置く를 그대로 우리말로 옮겨 사용하고 있는 경우다. 이와 같은 용례는 "순풍에 돛을 달다(順風に帆を揚げる)", "귀에 못이 박이다(耳にたこが出來る)", "가슴에 손을 얹고 ( 胸に手を置く)" 등 수많은 우리 관용어에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이처럼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우리 현대어의 어근이나 어간, 접미사 등 문법 형태소(形態素) 하나하나의 기능과 의미가 일본어와 완전히 정확하게 일치하고 있는 것은 안타깝지만 이들 우리말들이 일본어의 '간섭' 혹은 '개입'과 무관하게 독자적으로 만들어졌다고만 주장하기 어렵다는 점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우연히 발생했거나 자생적인 것으로 보기는 불가능하며, 현대 한국어에 나타나는 이러한 현상은 일제 강점기 시대 강요되어 철저히 일상화된 일본어의 학습이라는 '간섭'을 통하여 나타난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일제 강점기에 일제는 민족정신을 말살하기 위하여 최우선적으로 우리말과 글 말살에 나섰고, 결과적으로 우리말은 철저하게 파괴된 채 '일본어화'되었다. '다르다와 '틀리다'의 혼동 현상도 이러한 맥락에서 파악되어야 할 것이다. '다르다'와 '틀리다'라는 용어도 기존 우리말에서 나타난 "부분적인 혼동"이 아니라 '다르다' 와 '틀리다'의 두 가지 의미를 동시에 지니면서 완벽하게 '혼용'하고 있는 일본어와 동일하게 '완벽한', 최소한 '커다란' 혼동현상이 발생하게 되었다는 추론이 타당할 것이다.

태그:#다르다, #틀리다, #일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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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관계학 박사, 국회도서관 조사관으로 근무하였고, 그간 <오마이뉴스>와 <프레시안> 등 여러 매체에 글을 기고해왔다. <이상한 영어 사전>, <변이 국회의원의 탄생>, <논어>, <도덕경>, <광주백서>, <사마천 사기 56>등 여러 권의 책을 펴냈다. 시민이 만들어가는 민주주의 그리고 오늘의 심각한 기후위기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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