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창원 마산자유무역지역 한국산연 노동자들의 천막농성.
 창원 마산자유무역지역 한국산연 노동자들의 천막농성.
ⓒ 금속노조

관련사진보기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고 우리는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청춘을 바친 공장에서 2016년에 이어 두 번씩이나 해고 통지서를 받게 되어 거리로 나올 수 밖에 없었던 '수출노동자'들의 피눈물 나는 이야기에 귀 기울여 달라."

많게는 32년 동안 창원 마산자유무역지역 내 '한국산연'에서 일해 온 노동자들이 호소하고 있다. 노동자 16명은 '청산 철회'를 요구하며 해를 넘겨 싸우고 있는 것이다.

산켄전기는 지난해 7월 한국산연을 청산하기로 결정했고, 폐업 날짜는 1월 20일이다. 회사는 지난해 5월부터 '휴업'에 들어가 노동자들은 공장에 출입할 수 없고, 지난해 7월부터 공장 앞에서 천막농성을 계속해 오고 있다.

엘이디(LED) 조명과 전원을 생산해온 한국산연은 1973년 산켄전기가 100% 투자해 설립되었고, 47년 동안 외국투자기업으로 각종 세금 감면과 값싼 임대료 등 혜택을 받아 운영해 왔다.

회사 "더 이상 운영할 수 없다"

한국산연은 그동안 직원들한테 보낸 안내문을 통해 "10여년간 감당할 수 없는 누적 적자로 대폭의 채무초과의 상태에 빠진 상황에 있으며, 회사를 더 이상 운영할 수 없다"고 했다.

회사는 "지난 수년간 다방면에 걸쳐 회사의 지속을 도모 할 수 없는가라고 하는 논점에 관하여 검토를 거듭해 왔지만 취할 수 있는 수단은 다한 것으로 판단하며 신규로 회사를 재흥으로의 길을 잡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것으로 판단하였다"며 "정말로 괴로운 결단이었지만 회사폐업을 결정할 수 밖에 없었음을 여러분들도 이해를 바란다"고 했다.

그러면서 회사는 "20일자로 당사가 폐업하게 됨에 따라 모든 근로관계는 종료되며, 이후에는 법인이 해산하게 된다"며 "법인 해산 이후에는 어떠한 사유에 의해서도 되돌릴 수 없고, 거리투쟁을 한다하여 회사가 폐업을 철회하는 일은 결코 없다"고 했다.

회사는 "주식회사가 법인 해산(폐업)하고 나면 위로금을 지급하고 싶어도 회사 자체가 없어지고 회사의 재산도 모두 정리(청산)되기 때문에 지급불능의 상태가 된다"고 했다.

또 회사는 "폐업하고 해산된 이후에는 대표이사도 더 이상 한국산연 대표이사가 아닌 한 사람의 자연인이 되고, 더 이상 회사 임직원이 없어 노동조합은 물론, 국가기관에서 중재코자 교섭을 요구하더라도 교섭에 응할 수 있는 사람(주체)이 없어 여러분의 문제를 해결해 줄 곳은 더 이상 없다"고 했다.

"'위로금'으로 공장 재가동에 투자해야"

회사는 지난해 두 차례에 걸쳐 '위로금' 지급을 통지했다. 1차 때는 통상임금 60개월치, 2차 때는 52개월치를 제안했다. 지난해 초 관리직까지 포함해 42명이 있었는데, 이 위로금을 받고 퇴직했으며 지금은 16명이 남아 있다.

지금까지 노동자들은 휴업 급여를 받아왔다. 지난해 5월부터 휴업을 했지만 노사가 합의해 지난해 8월까지 임금 100%, 이후부터는 합의 없이 70%가 지급되고 있다. 21일부터는 이마저도 끊긴다.

노동자들은 전국금속노동조합 한국산연지회를 결성해 투쟁하고 있다. 한국산연지회는 회사가 제시한 '위로금'으로 공장 재가동에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해진 한국산연지회장은 "회사는 위로금이 많다고 하지만, 그 돈이면 공장 재가동에 투자하는 게 맞다"고 했다.

한국산연에서 노동자들의 투쟁은 1997년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산켄전기가 한국산연을 철수하고 인도네시아에 공장을 설립하려 했고, 당시 노조가 결성되어 투쟁했다. 노조는 회사가 오랫동안 설비 투자를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한국산연지회는 "1997년, 복직 후 3년 동안 사측은 설비투자는커녕 생산만 하면 적자가 발생하는 물량으로, 인위적인 적자구조를 만들어서 지금까지 한국의 유일한 생산거점인 한국산연의 청산 준비를 해왔던 것"이라고 했다.

이들은 "사측은 한국산연에서 생산하던 물량을 외주와 타기업에 몰래 빼돌려 한국산연에서 생산한 것처럼 위장해서 유럽으로 수출해 왔음이 확인되었다"며 "산켄 역시 2018년 사모펀드를 앞세워 천안과 파주에 '이케이'라는 공장을 한국의 새로운 생산 거점으로 160억에 인수하였으며, 지금도 상당한 흑자를 누리고 추가 투자 계획까지 가지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고 했다.

이들은 "대외적으로 한국산연은 누적된 적자로 청산이 불가피한 것처럼 포장하고 있지만, 동종업계 세계 8위라는 매출 기록을 가지고 있는 산켄전기가,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한국에서 생산을 접은 것도 아니며, 오로지 한국산연을 정리하기 위한 '위장폐업'을 결정한 것"이라고 했다.

한국산연지회는 "산켄은 한국산연 회사를 청산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조합이 있는 한국산연 노동자들을 청산하겠다는 것이고, 비정규직 ,저임금 노동자들의 노동력을 착취하여 한국땅에서 발생한 엄청난 이윤을 또다시 일본으로 빼돌리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전국금속노동조합 경남지부 한국산연지회가 공장 앞에 '청산 철회'를 촉구하는 펼침막을 걸어 놓았다.
 전국금속노동조합 경남지부 한국산연지회가 공장 앞에 "청산 철회"를 촉구하는 펼침막을 걸어 놓았다.
ⓒ 윤성효

관련사진보기

 
"법적으로 제기된 문제가 많다"

회사는 20일 폐업 이후 법적으로 청산 절차를 밟을 것으로 보인다. 회사는 법인등기 해지로 청산 절차가 완료된다. 회사가 이후 공장 매각 절차를 밟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회사를 다시 살릴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오해진 지회장은 "공장을 재가동할 수 있다. 회사가 청산 절차를 밟겠지만, 법적으로 제기된 문제가 많다"고 했다.

오해진 지회장은 "휴업과 폐업을 하기 전에 노조와 합의를 해야 하는데, 그런 절차를 이행하지 않아 단협 위반이다, 그래서 고용노동부에 단협위반으로 제기를 해놓았다"며 "또 조기퇴직제 역시 교섭 없이 회사가 일방적으로 진행한 것이었다. 임금 미지급의 체불 문제도 있다"고 했다.

또 한국산연 폐업은 일본 정부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으로서 1976년 체결한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을 준수해야 할 의무에 위배된다는 지적이 있다.

창원시의회는 18일 채택한 건의문을 통해 "일본 기업으로서 산켄전기도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 준수 의무와 무관하지 않다"며 "산켄전기는 가이드라인을 준수해야 할 것이며 일본정부는 자국의 기업이 이를 준수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관리, 감독을 즉각 실시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또 창원시의회는 일본정부에 "산켄전기가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을 준수할 수 있도록 지도, 감독해 줄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한국 정부에 "한국산연 노동자들이 외자기업으로부터 부당한 대우와 권익 침해를 받지 않도록 자국민 보호를 위한 적극적인 조치를 강구해줄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했다.

일본에서도 한국산연 노동자들의 폐업 철회 투쟁을 돕고 있다. 일본지역 시민·노동단체는 '한국산연노조를 지원하는 모임'을 지난해부터 결정해 집회와 선전전을 벌이고 있다.

코로나19 때문에 한국산연 노동자들이 원정투쟁할 수 없게 되자 일본 시민·노동단체들이 나선 것이다. 한국산연 노동자들은 2016년 때 원정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한국산연노조를 지원하는 모임'은 금속노조 국제부로부터 받은 '항의 공문'을 일본 산켄전기와 외무성에 전달하는 투쟁을 최근에 벌이기도 했다.

한국산연에는 50대 노동자들이 여럿 있다. 이들 가운데 가장 오래 된 노동자는 32년째 입사자다. 한 노동자는 "우리는 청춘을 바쳐 일해 왔다. 우리 일터를 지키기 위해 싸울 것"이라고 했다.

태그:#한국산연, #산켄전기, #금속노조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