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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가 장날이라 철물점에 들러 드릴을 두 개 샀다. 십자 드릴과 일자 드릴인데 할머니가 그냥 가져가란다. 이 집에서 연초에 2만 4000원짜리 스테인리스 양동이를 사면서 2만5000원을 드리고 잔돈을 안 받겠다고 했는데 그 보답인가 싶다. 당시에 나는 잔돈 1000원을 거절하면서 "날도 추운데 할머니 겨울 파카도 하나 사 입으시고 털 목도리도 하나 사 두르시라"고 하면서 서로 크게 웃었었다.

짧은 병상 생활을 뒤로하고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로 혼자 사시는 할머니다. 서울 사는 아들이 같이 가서 살자고 했으나 할아버지가 하던 철물점을 계속하면서 시골에 살겠다고 한 할머니였다.
 
새해 첫 장날에 이것저것 사면서 점포 주인들에게 모두 1000원을 더 드렸다.
 새해 첫 장날에 이것저것 사면서 점포 주인들에게 모두 1000원을 더 드렸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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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물점을 할머니 혼자 운영하면서 손님이 줄어들었는지 자구책으로 한쪽 벽면에 그릇들을 진열하기 시작했다. 플라스틱 용품들과 양은그릇들 옆으로 값이 조금 더 비싼 스테인리스 그릇들도 있었으니 철물점이기도 하고 그릇 집이기도 해서 간판도 만물상으로 바뀌었다.

돌아가신 할아버지 얘기만 꺼내면 눈물 바람인 할머니는 눈을 감을 때까지 가게 문을 닫지 않겠다고 하신다. 술 한 잔, 담배 한 대를 입에 안 대고 철물점 하나로 자식 넷을 대학까지 보낸 할아버지라며.

양동이 산 그릇 집에서 드릴을 산 나는 드릴 두 개 값이 1000원이 넘는지 어떤지 관심이 없었다. 할머니도 그랬으리라.

이런 일은 더 있다. 특히 1월 3일, 새해 첫 장날에 이것저것 사면서 점포 주인들에게 모두 1000원을 더 드렸다. 혹여 부른 물건값이 깎일까 봐서 남지 않는 장사라는 결연한 표정을 짓는 가게 주인들은 새해 복이 어쩌고 하는 덕담 대신에 1000원씩 값을 더 드렸더니 끝내 검은 비닐봉지에 한 줌씩 더 담아 주었다. 1000원어치가 넘어 보이는 양이었다. 덕분에 참 흥겨운 장보기였다.

붕어빵 집에서는 안 팔리고 식어버린 붕어빵을 다 담아 주기도 했다. 이 여세를 몰아 어느 국밥집 앞에서 나는 대형 사고를 치고 말았다. 새해 벽두라 손님이 하나도 없는 그 국밥집에서는 주인아저씨랑 아주머니(사실은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그 식당에서 일하는 할머니랑 동네 할아버지 이렇게 네 분이 둘러앉아 고스톱을 치고 있었다.

연탄난로를 곁에 두고 손님은 오는지 마는지 신경도 안 쓰고 화투놀이에 정신이 팔려있는 모습이 세계적인 명화인 밀레의 '저녁 종' 못지않게 따뜻해 보였다. 그래서 대형 사고가 일어난 것이다.

옆에 있는 시장 상점에 들러 큰 오징어를 8000원씩에 두 마리를 사서 갖다 드렸다. 아직껏 고스톱을 배우지 못한 내가 화투는 오징어 구워 먹으며 쳐야 제맛이라고 하면서. 놀란 그들은 몇 번을 고맙다며 활짝 웃더니 다시 고스톱판의 재미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 뒤 어느 날. 우리 집에 온 손님들과 그 국밥집에 들렀는데 완전 칙사 대접이었다. 뚝배기마다 음식을 넘치게 담았고 끊임없이 부대 반찬들을 식탁에 올려놓으셨다. 역시 시골 인심이 살아있다는 친구들 앞에서 나는 우리 고장 홍보대사라도 된 듯 으쓱댔다.

택배 물량이 늘어나서 그렇다며 깜깜해진 밤에야 눈길을 뚫고 온 기사님에게 준비한 두유를 하나 드렸더니 운전석 옆에 할머니들이 주신 두유가 가득 쌓여 있다며 끝내 거절하신다. 그래서 잠시 기다리게 하고는 고급 천연 비누 한 세트를 가져다 드렸다. 인심 좋은 동네 할머니들 때문에 두유 대신에 1만 6000원 하는 선물세트가 사라졌다. 흐뭇한 손해였다. 시장 경제를 넘어 선 선물 경제, 호혜 경제의 씨앗들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경남도민일보에도 실립니다.


태그:#선물, #호혜경제, #선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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