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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전에 없던 순간을 매일 마주하고 있습니다. 나를 둘러싼 세계를 통제할 수 없다고 느끼는 요즘, 우리는 무엇을 해야할까요? 거대한 기후 위기와 예측할 수 없는 전염병 앞에서, 그저 무력하게 손 놓고 있어야 할까요? 그럴 순 없죠! 우리가 살아갈 지구를 위해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작은 실천을 찾아나서려고 합니다. 시민기자가 되어 같이 참여해 주세요[편집자말]
나는 요즘 용기를 내려 노력 중이다. 코로나로 석 달째 외식도 못 하고 아이들과 집에 콕 박혀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외식은 바깥 음식 반입으로 대체할 수 있다. 우리 집도 삼시 세끼 집밥만 해 먹고살 수는 없어서 외부 음식에 의존한다. 그러나 우리가 지키려는 원칙이 있다면 배달을 시키지 않고, 일회용 포장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원칙은 화석 연료와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기 위함이다. 이런 의도를 밝히면 다들 좋은 결심이라며 대견한 듯 바라봐 주지만 현실적으로 실천이 가능한지 고개를 갸웃거린다. 포장이야 직접 매장을 방문하면 가능하다 해도, 배달은 어떻게 할 것인가. 방법이 있다. 별도의 다회용 용기를 들고 가서 양해를 구하면 된다. 서두에 밝혔지 않은가, 요즘 용기를 내려 노력 중이라고. 

최근 나의 전적(비장한 마음으로 실천하고 있기에 다소 과격한 용어를 사용한다)은 꽤 괜찮았다. 대형 장바구니에 법랑 냄비를 들고 가서 낙지볶음을 받아 오는 데 성공하기도 했고, 밀폐 유리 용기에 커피 원두 100g을 담았다. 플라스틱 테이크 아웃 컵이 싫어서 텀블러에 에스프레소 투 샷을 내려와 뜨거운 물을 타 먹기도 했다. 인상 깊었던 '용기내' 에피소드는 서른 한 가지 아이스크림을 파는 가게에서였다. 

지금껏 용기내 캠페인은 동네의 소규모 가게를 대상으로만 시도해왔다. 왜냐하면 여러 차례 이용으로 이미 안면이 트여 있는 상태였고, 전화로 사전에 개인 용기 사용 여부를 문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른 한 가지 아이스크림 가게는 프랜차이즈에다, 고객 응대 매뉴얼 같은 것이 표준화된 형태로 존재할 가능성이 높았다.

스테인리스 통에 아이스크림을 담아 달라고 말하는 것이 무리한 부탁인가 싶어 고민해 보았지만 해당 업체에 막대한 피해를 끼치거나, 상식에 크게 어긋나는 행동은 아니라 판단하고 매장으로 향했다. 

"실례지만 여기에다 패밀리 용량만큼 담아 주실 수 있으세요? 스푼이랑 종이 가방은 안 주셔도 괜찮습니다."

점원의 동공이 여러 차례 흔들렸다. 그분 혼자만 감지할 수 있는 리히터 규모 7의 지진이 덮친 것 같았다. 아마도 아르바이트 생활 중 처음 접하는 종류의 위기였지 않을까. 나는 미안해서 침을 꿀꺽 삼켰다. 의도야 어떻든 간에 점원은 변칙 판매를 감행해야 한다. 만일 거절당한다 해도 깔끔하게 죄송합니다, 하고 물러나는 편이 옳다. 그러나 점원은 곧 안정을 되찾고 용기를 저울에 올려 영점을 맞췄다. 

다섯 가지 맛의 아이스크림을 숙련된 감각으로 퍼서 담은 다음 무게를 쟀다. 표준 용기에 담았다면 무게를 가늠하기가 편했을 텐데, 낯선 통을 사용한 탓인지 두어 번 아이스크림 추가를 해야 했다. 나는 미처 전달되지 못한 진심이 통하기를 바라면서도, 크나큰 배려를 해준 점원에게 무척 고마웠다. 
 
프랜차이즈 매장 용기내 첫 성공 사례
 프랜차이즈 매장 용기내 첫 성공 사례
ⓒ 이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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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해도 괜찮다, 사례를 남길 수 있으니까

용기내의 성공 경험이 늘어갈수록 자신감이 붙었다. 다들 적극적으로 표현을 안 해서 그렇지 속으로는 환경을 염려하는 동질감을 느꼈다고나 할까. 내 경험 범위 내에서는 일회용품 줄이기의 취지에 공감하고 기꺼이 도와주려는 분들이 다수였다. 물론 실패하는 날도 있다. 

가령 오늘은 동네 만두집에 국 끓여 먹을 만두를 사러 갔다. 김밥집에서 먹혔던(?) 다회용 용기를 들고서. 한 달 전에도 고기만두와 김치 만두 스무 개를 담아온 선례가 있기에 한결 느긋한 마음이었다. 그러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찐만두와 달리 만둣국용 만두는 미리 익힌 상태에서 냉동 보관을 하기에 스티로폼 접시에 랩이 씌워져 있었다. 내가 부탁해서 가게 안쪽 냉장고에서 꺼내 오신 만두를 돌연 안 사겠다고 취소할 수가 없었다. 사장님은 내 손에 들린 다회용 용기를 보고서 겸연쩍은 표정으로 말했다.  

"포장이... 얘(만둣국용 만두)는 어쩔 수 없어요. 만두는 다 익은 거니까 처음부터 넣고 끓이지 말고, 끓는 물에 넣으세요."

사장님의 목소리에는 약간의 죄책감과 조금의 짜증이 섞여 있었다. 어쩐지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만두 가게의 생존을 위해서는 손님이 편리한 방향으로 물건을 팔고,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더군다나 이 만두집은 테이크 아웃 전문이라 포장이 기본이다. 나 같이 소수의 별난 고객을 위해 기존의 영업 방침을 바꿀 필요는 없다. 오히려 만두집에서 친환경 포장을 표방했다가는 값비싼 천연 포장 용기를 구입하느라 이익이 줄어들 가능성이 더 크다. 사장님을 여러 차례 곤란하게 만드느니 내가 다른 가게를 찾는 게 더 합당한 선택일 수 있다.

그렇지만 나는 예의 바른 태도를 잃지 않고 계속 동네 음식점 사장님들께 용기를 내 볼 생각이다(꼭 만두 가게가 아니더라도). 이렇게 하면 적어도 세상에 일회용품을 거부하는 신념을 구체적인 형태로 요구하는 사람도 있다는 사례를 남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그렇다. 뜻이 맞는 사람이 함께해 준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 욕심이다. 그래도 우선 시도는 해 볼 예정이다. 

사족으로 덧붙이자면, 아저씨들의 '용기내'를 권장하고 싶다. 나도 아저씨 중 한 명으로서 어디 뭐 사러 가서 뻘쭘하게 인사만 드리고 오는 경우가 다반사인데, 용기내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대화의 물꼬가 트인다. 때때로 공감과 칭찬을 듣고 올 때도 있다.

보통 아저씨들은 말주변이 없다, 귀찮은 걸 꺼린다는 오해를 받기도 하지만 사소한 변화 하나로 동네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느새 친근감이 든다. 지역 화폐 카드로 결제하고 10% 할인받으면 금상첨화고. 그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다. 용기를 내세요. 
 
천가방에 반찬통 두 개면 동네 마실 준비는 끝이다. 남은 일은 용기를 내서 음식을 담아 달라고 부탁하는 일뿐
 천가방에 반찬통 두 개면 동네 마실 준비는 끝이다. 남은 일은 용기를 내서 음식을 담아 달라고 부탁하는 일뿐
ⓒ 이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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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용기내, #마을, #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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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구하는 가계부, 산지니 2021>, <선생님의 보글보글, 미래의창 2024> 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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