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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후 16개월 '정인이'를 학대해 숨지게한 양부모에 대한 첫 공판이 열린 13일 오전 서울 양천구 남부지방법원에서 양부인 안모씨가 공판을 마친 후 법원을 나서고 있다.
 생후 16개월 "정인이"를 학대해 숨지게한 양부모에 대한 첫 공판이 열린 13일 오전 서울 양천구 남부지방법원에서 양부인 안모씨가 공판을 마친 후 법원을 나서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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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전 기사 : [인터뷰 ③] "아동과 친부모의 분리, 국가가 고민하고 담당해야"

- 아동의 행복보다 이윤이 우선시 될 수밖에 없는 사설입양기관의 문제점을 몇 가지 지적하면?
"가장 잘 알려진 사설입양기관의 아동인수 실천 중 하나는 친모에게 '아이의 출생 직후 절대로 아이를 보여주지 말라. 안아보지도 젖을 물려 보지도 말라'는 방식으로 실천한 것이다. 입양 보낼 거면 처음부터 아이와의 애착이 형성 되는 것을 피하라, 친모에게 아이를 보여주면 입양 못 보낸다는 것이었다.

주 양육자의 잦은 변경이 아동에게 심각한 위해가 된다는 것을 가장 잘 아는 곳이 입양기관이다. 그럼에도 입양기관은 아동이 친모에게로 돌아갈 길을 단칼에 차단하고 싶어 한다. 뿐만 아니라 입양 외에는 다른 길이 없어 입양기관의 보호에 아동을 맡겼다가 친모가 양육을 결심하고 아이를 되찾아 오려는 경우 종종 그동안의 양육비용을 청구하고, 가난한 친모는 결국 돈 마련을 못해 아이를 포기하는 경우들도 적지 않다.

아이를 양육하던 친부가 아이를 입양기관에 맡겼다는 소식을 들은 친모가 입양기관을 찾아가서 아이를 한 번만이라도 보자고 해도 보여 주지 않았다는 일화도 있다. 또한 입양 보내진 아이의 친모가 아이가 입양부모와 안전하게 자라는지 잘 보호받고 있는지 알고 싶어도 아이의 소재를 알려 주지 않는다는 친모의 제보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아동의 보호과정에서 사고가 나도 그 사실을 친모에게 알려 주지 않는다. 입양기관의 '아동보호'는 이토록 완고한 '철옹성'이다. 아동이 입양기관의 재정적 이익이고, 결국 그 재정적 이익을 포기할 수는 없는 시스템이다. 이제는 바꿔야 한다. 입양기관이 '아동보호'를 해서는 안 된다.

이렇듯 사설 입양기관이 아동의 분리, 인수와 보호를 하도록 허용한 일이 한국입양 역사 68년의 가장 어두운 면모다. '정인이 사건'을 국가가 올바로 재구성하기를 원한다면, 국가는 아동의 분리, 인수와 보호를 국가의 직접 사무, 즉 공공시스템을 통해서 해야 한다. 그게 원래 아동보호의 올바른 길이다. 유럽국가들도 아동보호의 사회서비스를 전적으로 공적체계에서 수행하고 있다. 다른 길은 없다."

- '정인이 사건' 후 보건복지부에서 제시한 대책은 어떻게 평가하는지?
"'정인이 사건' 후 여론이 거대한 산불처럼 일자, 보건복지부는 입양아동과 입양부모의 결연에 대해서는 국가가 좀 더 개입하는 구조를 만들되, 사설입양기관에 대한 지원을 늘리고 입양아동의 발굴은 사설입양기관에 위탁하겠다는 아연실색할 대안을 가지고 나오고 있다. 처벌을 해야 할 기관에게 포상을 하겠다는 어처구니없는 대책이다.

과거 산부인과병원에서 아동을 얻기 위해 로비자금을 운영했고, 형제복지원으로부터도 아동을 건네받고, 실종아동까지도 입양을 보내버렸던, 진짜 적극적으로 아동을 발굴했던 기관이 입양기관이다. 이게 정인이의 죽음에 대한 보건복지부의 대응이라니. 입양기관에게 다시 '철옹성'을 허용하겠다는 말에 다름이 아니다.

사설입양기관은 기관이 보호하고 있는 아동에 대한 정보를 국가기관인 아동권리보장원에게 제공해야 할 의무가 있었지만 그렇게 한 적이 없다. 이런 대응은 보건복지부가 정인이의 죽음과 같은 죽음의 재발을 막을 의사가 없다는 말이고, 들불같이 일어나는 여론이 잠잠해질 때까지 기다리면서 구렁이 담 넘어가듯 하다가, 결국 사설입양기관에게 아동을 인수하고 보호하는 일을 계속 맡겨두겠다는 이야기에 다름 아니다."

해마다 입양아동들이 맞아 죽는다

- 보건복지부의 담당공무원들 중에는 전문성 있는 사설입양기관이 하지 않으면 친모와 분리된 아동에 대한 대안이 없지 않느냐는 푸념도 있는데?
"대안이 없는 것이 아니라 의욕이 없는 것이다. 공무원이 사설입양기관의 눈치를 보고 있을 뿐이다. 현재의 정부시스템으로도 아동의 인수와 분리와 보호가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아동복지학 학자들과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다.

전국 17개 광역자치구와 시도에는 가정위탁시스템의 공적체계가 돌아가고 있다. 지자체의 아동보호시스템 창구에서 심층상담을 하고 양육지원을 하다가 분리의 불가피성이 드러난 경우 이 아동들을 가정위탁체계에서 받아서 보호하면서, 아동을 보호하는 동안 공적체계에서 아동의 최선의 이익에 따른 다음 단계의 보호배치를 검토하면 된다. 원가정 복귀가 답인지, 단기적 가정위탁이 해결책인지, 국내입양 배치가 해결책인지를 면밀하게 검토해서 아동에게 다음 단계의 삶의 자리를 마련해 줄 수 있다고 여러 전문가들은 주장하고 있다.

여기서 한 가지 고려해야 할 지점이 있는데, 대개 아이 양육의 곤경에 몰린 친모(부)는 종종 어리기도 하고 양육의 자원이 없는 것은 물론 자신의 몸조차 둘 데가 없는 궁박에 몰려 있다는 사실이다. 아동을 맡긴 후 다시 거리의 삶으로 돌아가야 하는 여성들이 있을 수도 있다. 이 여성들에게도 국가가 연민과 지원의 손을 내밀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하는 것도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이미 서울의 애란원처럼 광역시마다 일반 미혼모의 집들이 있고, 미혼모 자활시설들도 있다. 물론 가장 좋은 것은 재가지원이다.

또 여성가족부에서 조만간 전국에 산재한 건강가정진흥원의 지부들을 가족센터로 재편성할 것이라는 소식이 들린다. 이 가족센터는 위기에 처한 여성들의 상담센터로도 기능할 것이고, 가정폭력에 내몰린 여성 혹은 성폭력을 당한 여성들을 위한 쉼터들과 긴밀히 연결되어 운영되리라고 짐작이 된다. 여기에 임신과 출산의 위기에 내어 몰린 여성들을 위한 재가지원은 물론 위기상황인 경우 긴급일시 시설보호와 상담 및 지원 기능을 추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지자체의 아동보호전담 내지 사회서비스 담당 공무체계와 가정위탁체계와 가족센터가 유기적으로 결합해서, 친모와 분리된 아동은 공공이 운영하는 가정위탁체계 안으로 받아들이고, 궁박에 내몰린 엄마와 아이는 가족센터와 연계해 지원과 보호에 나서면 안 될 것이 없어 보인다. 아동의 분리와 인수와 보호는 전적으로 국가의 공적체계에서 담당해야 한다."

- '정인이 사건'과 관련해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입양실천의 영역에서 입양아동, 입양부모, 친모(부)를 입양삼자라고 일컫는다. 입양이 그들의 삶을 관통하는 핵심당사자들이다. '정인이 사건'은 입양시스템의 오작동으로 인해 입양삼자가 처절하게 패배한 사건이다. 아동의 복리와 인권을 보호하는 한 방식인 입양은 이 입양삼자에게 곤경의 해결과 행복을 약속하는 대안양육체계 중의 하나다. 이 실천의 현장에서 시스템의 오작동이 일어났다. 결국 입양아동 정인이는 16개월의 나이로 참혹한 죽음을 당했다.

입양모는 자기의 자격 없음을 알고 피했어야 할 일인데, 입양양육이라는 지난한 과업을 무분별하게 선택했다가 적어도 10년 이상의 세월을 교도소의 철장 안에서 보내야 한다. 양부 역시 교도소행으로 판결을 받을 수도 있다. 이 가정의 친자식인 하나뿐인 딸은 일거에 부모 없이 어린 시절의 삶을 살아야만 하는 비극에 내몰리고 있다.

정인이 친모는 어떤가. 원치 않는 임신과 출산 그 자체도 트라우마로 점철된 일이었을 터인데, 마지막 출구로 아이에게 더 나은 삶을 줄 수 있으리라는 한 가닥 희망을 안고, 아이가 더 좋은 가정에서 성장하게 해주겠다는 약속 안에서 아이를 내려놓았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아이의 죽음이라는 배신이다. 깊은 자책과 트라우마의 나락으로 내몰리지 않을까. 입양결연과 사후관리에 실패하면, 입양삼자의 참혹한 패배를 가져 올 수 있다는 것을 이 사건은 드러내 주고 있다. '입양삼자의 행복'을 외쳐온 모든 관련자들의 참회와 사과가 요청되는 비극이다.

지난 2014년 미국으로 입양 보내어진 현수가 양부에게 맞아 죽었다. 2014년에는 울산입양아동 사랑이가 양모에게 맞아 죽었다. 2016년에는 대구의 은비가 죽었고, 같은 해에 포천의 입양아동도 입앙부모에게 맞아 죽어서 시신이 산에 흩뿌려졌다. 2016년 이후에도 입양된 아동 몇 아이가 더 방치와 학대로 죽었다. 거의 해마다 입양아동들이 죽어나간 것이다. 그리고 2020년에 죽은 정인이를 애도하며 분노하며, 대안이 무엇인지를 묻고 있다. 우리는 누구이며. 누구여야 합니까."

태그:#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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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영국통신원, <반헌법열전 편찬위원회> 조사위원, [폭력의 역사], [김성수의 영국 이야기], [조작된 간첩들], [함석헌평전], [함석헌: 자유만큼 사랑한 평화] 저자. 퀘이커교도.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 한국투명성기구 사무총장, 진실화해위원회,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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