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따금 취향에 관한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좋아하는 음식이나 영화, 색깔에 관해 누군가 물어오면 나는 대체로 빠르고 명쾌하게 대답하는 편이다. 매사 싫고 좋은 것이 분명한 데다가 한번 결정한 것은 좀처럼 바꾸는 법이 없는 고지식함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질문이 '사람'을 향해있을 땐 나도 모르게 멈칫하게 된다. 연예인이든 정치인이든 내가 직접 겪어본 적이 없는 사람에 관해선 그 호불호를 논하는 것 자체가 어쩐지 그 사람 뒤에 숨어 몰래 악플을 다는 것처럼 치사하단 생각이 들어서다. 그런데 얼마 전 "유재석을 좋아하세요?"라는 질문을 받았을 땐 사뭇 달랐다.

사실 '얼마나 웃긴가?'를 기준으로 예능인의 순위를 매겨본다면 내 마음속 '원픽'은 유재석이 아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유재석을 좋아하느냐는 물음에 일 초의 망설임도 없이 이렇게 되물었다.
 
"유재석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나요?"
 
그의 진가들
 
'MBC 방송연예대상' 유재석, 완벽한 웃음정복! 유재석 코미디언이 29일 오후 열린 <2020 MBC 방송연예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 'MBC 방송연예대상' 유재석, 완벽한 웃음정복! 유재석 코미디언이 29일 오후 열린 <2020 MBC 방송연예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 MBC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유재석을 '유느님'(유재석+하느님)이라는 호칭으로 부르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그만큼 유재석이라는 한 예능인을 향한 대중의 신뢰는 깊고, 또 사랑은 절대적이다. 생각해보면 좀 이상한 일이다.

보기만 해도 입이 떡 벌어지는 특출난 개인기를 가진 것도 아니고, '얼굴 천재'라는 차은우처럼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화보가 될 정도로 근사한 외모를 자랑하는 것도 아닌데 유재석은 어쩌다가 '유느님' 내지는 '국민 MC'로 불리며 모든 세대에 걸쳐 폭넓게 사랑받는 전무후무한 예능인이 된 것일까.
 
그 해답을 찾기 위해선 먼저 상대방에게 시종일관 무례한 질문을 던지고 말꼬리를 잡으면서 조롱하는, 그래서 그 과정의 반복을 통해 가학적이고 자극적인 웃음을 연출해내는 몇몇 방송인의 얼굴을 떠올려 볼 필요가 있겠다.
 
유재석이 그들과 다른 점은 '선'을 지킬 줄 안다는 사실이다. 나는 그가 남을 비꼬거나 깎아내리는 대신 적재적소에서 자신을 낮추고, 상대방의 허술하면서도 밉지 않은 면모를 끌어내며 '상생의 웃음'을 추구한다는 사실을 높게 평가한다. 또한 그것이 그가 오랜 세월 변함없이 사랑받고 있는 비결이라고 확신한다.
 
물론 유재석도 가끔은 곤란한 질문을 던져 게스트를 당황시키고, 상대방의 외모나 패션을 트집 잡아 깐족거릴 때도 있다. tvN 예능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에서 함께 진행을 맡은 조세호에게 툭하면 "오늘 입담이 엉망진창이네요"하고 무안을 주는 것처럼 말이다.

유재석은 방송 도중 조세호의 말이 길어진다 싶으면 가차없이 끊어버리고, 조세호의 질문이 논리적이지 못할 땐 일부러 전혀 다른 대답을 내놓아 그를 민망하게 만든다. 그럴때마다 웃음을 꾹 참고 있는 유재석의 짓궂은 표정은 억울해서 팔짝 뛰기 직전의 조세호와 묘한 대비를 이루면서 재미를 준다. 그제야 시청자들은 유재석의 그 깐족거림이, 긴장할 때마다 엉뚱한 말실수를 하는 조세호의 캐릭터를 돋보이게 해주려는 영리한 배려였음을 눈치채게 되는 것이다.

덕분에 <유 퀴즈 온 더 블럭>은 회를 거듭할 수록 재미와 감동을 동시에 잡았다는 호평을 받으며 승승장구하는 중이다. 물론 조세호의 인기 또한 상승세다. 그야말로 모두가 윈윈이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유재석 식의 '상생'의 웃음이다.
 
유재석은 지난해에도 여러 방송국을 누비며 종횡무진 활약했다. 그리고 그 공을 인정받아 2020년 MBC 방송 연예대상에서 대상의 영광을 안았다. 유재석에게 통상 15번째 대상을 안겨준 프로그램은 MBC의 <놀면 뭐하니?>다.

2019년 7월 첫 방송을 시작한 <놀면 뭐하니?>는 방송 시작 전부터 김태호 피디와 유재석의 재결합이라는 이유만으로 <무한도전>의 스핀오프 버전이라는 오해를 불러일으켰고 자칫하면 김태호 피디의 식상한 자기 복제에 그칠 수도 있다는 지적에 시달렸다.

변화무쌍한 캐릭터

 
 2020년 유재석은 MBC'놀면 뭐하니?'를 통해 부캐 열풍을 주도하면서 예능 1인자 다운 면모를 여전히 과시했다.

2020년 유재석은 MBC'놀면 뭐하니?'를 통해 부캐 열풍을 주도하면서 예능 1인자 다운 면모를 여전히 과시했다. ⓒ MBC

 
그러나 <놀면 뭐하니?>는 유재석이 천재 드러머 '유고스타'가 되어 드럼을 배우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무대에 올라 직접 밴드와 합주하게 되는 과정을 담은 '유플래쉬'편에서 슬슬 시동을 걸기 시작하더니 '뽕포유'편에서 드디어 일을 냈다. 유재석이 화려한 반짝이 의상 차림의 트로트 가수 '유산슬'로 분하며 소위 대박을 터뜨린 것이다. 2020년을 강타한 '부캐' 열풍의 시작이었다. 이로써 유재석은 그 자체로 시대를 아우르는 하나의 트랜드가 되었음을 몸소 입증한 셈이다.

1991년 제1회 KBS 대학 개그제에서 장려상을 받으며 방송계에 입성한 유재석은 올해로 데뷔 30주년이 된다. 툭 튀어나온 입에 촌스럽고 깡마른 청년이 남을 웃기는 일을 업으로 삼아서 대사 한 줄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고 버벅대던 얼뜨기 리포터 시절을 거쳐 오늘날 대중에게 '유느님'이라는 호칭으로 사랑받는 예능인이 되기까지 얼마나 무던한 노력을 이어왔을지 짐작해보면 그 열정과 끈기에 절로 존경하는 마음이 든다.

유재석의 지난 30년이 그러했듯이 앞으로도 나는 그가 누군가의 약점을 파고들어 불편한 웃음을 쥐어짜는 무례한 방송인이 아니라 긍정적인 에너지를 발산하며 건강한 웃음을 만들어낼 줄 아는 진짜 좋은 방송인으로서 쉬지 않고 전진하기를 바란다. 이쯤되면 김태호 피디의 말이 정답인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인간은 언젠가는 유두래곤(유재석)을 귀여워하게 되어 있다."
유재석 유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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