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 조건에 묶여 있는 몇몇 한국축구 해외파 선수들이 2021년 가장 기다리는 소식이 있다면, 바로 다른 구단으로의 이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코리안메시' 이승우(신트트라위던)은 최근 벨기에를 떠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승우는 올시즌 초반만 해도 출전시간이 늘어나며 좋은 경기력으로 호평 받았지만, 최근 팀성적 부진과 함께 감독까지 교체되며 다시 그라운드에서 사라졌다. <부트발벨기에>등 일부 현지 언론이 이승우에 대하여 감독과의 불화설, 태도 문제를 지적하는 보도까지 내놓으면서 상황은 더욱 안 좋아지고 있다. 

신트트라위던은 벨기에 리그에서 힘겨운 강등권 탈출싸움을 펼치고 있으며, 이승우는 사실상 후반기 팀 전력에서 제외된 모양새다. 최근에는 이승우의 터키 이적설이 거론되기도 했다. 스페인-이탈리아에 이어 유럽에서 중상위권 정도의 리그에 불과한 벨기에에서도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는 이승우로서는 성인무대에서의 경력이 중요한 분기점에 서 있다고 할만하다.

지금의 이승우에게는 단순히 팀을 옮기는 문제를 떠나 진지한 자아성찰이 필요해보인다. 이승우는 더 이상 어린 선수도 아니고 23세면 프로무대에서 증명이 필요한 시점이다. 하지만 이승우는 바르샤 유스 시절과 연령대별 대표팀에서 보여준 짧은 활약을 제외하면, 성인무대에서는 아직 이룬 것이 하나도 없다.

운이 따르지 않았던 측면도 있지만, 유럽에서 벌써 여러 리그와 팀-감독을 거치면서도 중용 받지 못한 경우가 훨씬 더 많았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유럽의 저니맨'으로서 성장기를 허비하는 것보단 차라리 한국축구로 돌아와 K리그에서 새롭게 시작해보는 것도 고려해봐야할 시점이다.
 
 발렌시아 이강인이 6일 스페인 2부 리그 카르타헤나를 상대로 치른 프리시즌 친선경기에 선발로 나서 멀티골을 뽑아내며 발렌시아를 3-1 승리로 이끌었다. 사진은 이강인의 경기 모습

발렌시아 이강인이 6일 스페인 2부 리그 카르타헤나를 상대로 치른 프리시즌 친선경기에 선발로 나서 멀티골을 뽑아내며 발렌시아를 3-1 승리로 이끌었다. 사진은 이강인의 경기 모습 ⓒ 발렌시아 홈페이지 캡처

 
'한국축구의 미래' 이강인과 발렌시아의 결별도 시간 문제로 보인다. 스페인 매체 '마르카' 등 현지 언론들은 이강인이 지난해 여름부터 발렌시아의 재계약을 거부하고 있다고 보도하며 2022년 6월 계약이 만료되는 이강인이 어떤 형태로든 조만간 팀을 떠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하고 있다.

발렌시아 유스를 통하여 성장한 이강인이지만, 본격적으로 1군 무대에 진입한 2018년 이후 생활을 시작한 이강인은 자신의 기대만큼 많은 출전 기회를 잡지 못했다. 2018-19시즌 11경기 출전에 그쳤고, 2019-20시즌은 24경기에 나섰으나 선발로 나선 경기는 6경기에 불과했다. 제한된 출전 시간에 실망한 이강인은 지난 여름 이적을 추진하다가 구단의 만류로 일단 잔류했지만 상황은 여전히 호전되지 않았다.

하비 그라시아 신임 감독 체제에서도 팀이 치른 20경기 중 13경기만 나섰고 90분 풀타임 출전은 한 번도 없었다. 들쭉날쭉한 출전 기회 속에서도 1골 3도움으로 나름 분전했지만 이강인의 재능을 다 보여주기에는 기회가 부족했다. 발렌시아가 스페인리그의 명문팀이지만 최근 몇 년간 재정 위기와 주축 선수들의 이적 속에 하위권으로 추락하며 구단의 미래 비전이 불투명하다는 것도 이강인이 발렌시아와의 재계약을 꺼려하는 또 다른 이유다.

유럽 정상급 유망주로 꼽히는 이강인은 이적시장에 나올 경우 관심을 보일 구단이 많다는 것이 희망이다. 이강인의 발렌시아 팀동료였던 페란 토레스를 영입한 맨체스터 시티가 이강인에게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애매한 포지션과 수비가담 능력 등 아직 풀타임 주전으로서의 역량을 명확하게 증명하지 못했다는 점이 이강인에게 숙제로 남아 있다. 

공격형 미드필더가 주 포지션인 이강인은 발렌시아와 성인 국가대표팀에서 모두 제한된 활용방식으로만 기용되고 있다. 현대축구에서 공격에만 특화된 플레이메이커형 10번의 전술적 가치가 떨어지고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강인이 자칫 반쪽짜리 선수 꼬리표를 벗어나지 못할 위험도 남아있는 것이다.

'국산 황소' 황희찬은 독일 무대 재도전이 실패로 기울어가고 있다. 지난 여름 오스트리아 레드불 잘츠부르크를 떠나 독일 분데스리가 라이프치히RB에 입단한 황희찬은 데뷔전인 독일축구협회(DFB) 포칼 1라운드 뉘른베르크전에서 1골 1도움을 올리며 많은 기대를 모았으나 이후로 주전경쟁에서 밀리며 제 기량을 펼치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지난해 11월엔 코로나19에 감염돼 많은 경기를 결장해야 했고, 경기력은 더욱 저하됐다. 황희찬의 새해 첫 복귀전이었던 지난 10일 도르트문트전(1-3)에서는 후반 25분 교체투입돼 오랜만에 그라운드를 밟았으나 이렇다할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독일 빌트지는 지난 여름 라이프치히가 황희찬을 비롯하여 이적시장에 영입한 알렉산데르 쇠를로트, 저스틴 클루이베르트, 라자르 사마르지치 등의 기록을 합쳐도 30경기에서 2골을 넣는데 그쳤다며 '실망스럽다'는 평가를 내렸다. 잘츠부르크 시절 황희찬의 팀동료였던 엘링 홀란드가 올시즌 도르트문트에서 홀로 10경기 12골을 넣은 것과 대조된다. 특히 황희찬은 다른 이적생들에 비하여 먼저 영입된 선수임에도 불구하고 출전기회는 가장 적었을만큼 나겔스만 감독의 신임을 얻지 못했다는 평가다.

결과론일 수 있지만 황희찬은 팀을 잘못 골랐다. 라이프치히가 분데스리가 상위권 팀이고 챔피언스리그에도 도전하는 강호임을 고려할 때 황희찬에게 다시 기회가 돌아올 가능성은 낮다. 이미 라이프치히에서 황희찬이 뛸 수 있는 포지션은 경쟁자가 포화상태임에도 추가 영입 가능성까지 거론된다. 황희찬으로서는 겨울이적시장에서 경기에 뛸 수 있는 팀으로 임대나 이적을 모색하는 것이 더 현실적으로 보인다.

현재 중국무대에서 뛰고 있는 '괴물수비수' 김민재(베이징)의 유럽 진출설도 다시 점화되고 있다. 영국 '미러'지 등은 손흥민의 소속팀이기도 한 토트넘이 김민재 영입에 다시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토트넘은 지난해 여름에도 김민재 영입을 둘러싸고 가장 유력한 후보로 꼽혔지만 베이징의 반대로 끝내 무산된 아쉬움이 있다. 김민재는 비록 유럽행에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토트넘 외에도 라치오(이탈리아), PSV아인트호벤(네덜란드) 등 유럽 다수의 명문구단들로부터 언급되며 높은 주가를 증명해 보이기도 했다. 

김민재는 2019년 1월 전북에 이적료 600만 달러(약 66억원)를 안기고 중국 슈퍼리그 베이징궈안 유니폼을 입은 바 있다. 중국무대에서 뛰면서 꾸준히 유럽진출에 대한 열망을 드러내기도 했지만, 지난해 한 유튜브 방송에서 팀동료들과 중국축구에 대한 농담성 실언이 도마에 오르며 구단의 징계를 받는 등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김민재는 지난 시즌을 정상적으로 소화했지만 중국 언론과 팬들로부터 지속적인 비난을 받는 등 힘겨운 시간을 보내야했다.

김민재와 베이징의 계약은 오는 12월로 만료된다. 유럽행 의지가 강한 김민재가 베이징과 재계약할 가능성이 없다고 봤을 때, 시간이 끌수록 손해를 보는 것은 베이징 구단이다. 이미 아시아 최고의 수비수로 성장한 김민재 입장에서도 더 높은 단계로 올라갈 필요성이 있는 시점이다. 공격수나 미드필더에 비하여 성공사례가 드문 중앙수비수 포지션에서 유럽 빅리그 진출에 성공한다면 한국축구에도 특별한 이정표가 될 수 있다.

이강인-황희찬-이승우-김민재 등은 앞으로 10년 이상 한국축구를 책임져야할 주역들이다. 현재의 대표팀에서도 손흥민과 함께 벤투호를 끌어갈 위치에 있는 선수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이 현재의 소속팀에서 본인의 재능과 잠재력을 충분히 꽃피우지 못하고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것은 한국축구의 손실이기도 하다. 이들이 조만간 좋은 소속팀을 만나 새로운 출발을 기약하는 모습을 축구팬들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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