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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나 뜻이 통하지 않을 때 '벽 보고 말하는 것 같다'라고 표현한다. 어떤 기준이 무너졌을 때 '벽이 깨졌다'라고 말한다. 자신만의 신념이나 고집 등으로 사는 사람을 일컬어 '벽 속에 갇혀 있다'라고도 한다. 코로나 19 감염 완치 후 주변 사람들로부터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 뭔가 다른 그런 막연한 벽을 느낀다고 호소하는 글도 여러 편 읽은 것 같다. 이주민들이나 새터민들이 겪는 차별의 벽, 그에 관한 기사들도 잊을만 하면 보도되곤 한다.
 
 "너무 오래돼서 벽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이것도 문이다." - <설국열차>에서.

등장인물들이 통념의 벽을 깨부수게 한 이 대사도 생각난다. 또 어떤 벽이 있을까? <벽>(고트 펴냄)은 이처럼 다양한 의미로 쓰이는 벽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하는 소설이다.

 
<벽> 표지. 앞과 뒤를 펼친 모습이다. 표지 디자인과 책을 쥐었을 때의 감기는 느낌 등 자체 매력이 많은 책이다.
 <벽> 표지. 앞과 뒤를 펼친 모습이다. 표지 디자인과 책을 쥐었을 때의 감기는 느낌 등 자체 매력이 많은 책이다.
ⓒ 고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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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마지막 날, 주인공은 사촌 부부가 소유한 산장에 초대받는다. 도시 생활의 긴장을 해소할 겸 사촌 자매의 남편이 마련한 작은 산장이다. 그동안 셋이 산장에서 자주 어울리곤 했다. 이번에도 삼일 정도 여유 있게 쉴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 소소한 행복은 뜻하지 않던 일로 산산조각나고 만다.

인근 마을로 산책 나간 사촌 부부가 다음날 오후가 되어도 돌아오지 않자 주인공은 부부를 찾아 나선다. 그런데 어느 순간 강한 무엇에 튕겨 나동그라지고 만다. 손으로 허공을 더듬어야만 겨우 느낄 수 있을 정도로 투명한, 느닷없이 생겨난 '벽'에 부딪쳐 다친 것이다. 주인공은 벽 너머 상황에 절망한다. 동물들은 물론 나무나 풀까지 화석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소설은 어느 날 갑자기 숲에 설치된 거대하며 불가사의한 벽에 의해 숲에 고립된 여성이 두 번째 겨울부터 봄까지 넉 달에 걸쳐 지난 2년을 기록하는 형식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주인공은 지난 2년 동안 틈틈이 산 능선으로 올라가 멀리 이동하면서 산 아래 지역들을 살피곤 했었다. 벽 가까이로 가 주변의 변화 등을 살펴보곤 했었다. 살아있는 누군가를 찾아서였다. 하지만 2년 동안 살아있는 누군가의 흔적은 물론 사람을 전혀 만나지 못했다.

그런데도 주인공은 2년쯤 무렵에 나타난 어떤 남자를 총으로 쏴 죽이고 만다. 고립 후 처음 본 사람이었다.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우선 반가울 법하다. 어쩌면 숲에서 나갈 수 있는 길을 알려줄지도 모를 사람이다. 그런데 다짜고짜 죽이고 만 것이다. 왜? 대체 누구이길래?
 
나는 벽이 강대국 중 하나가 몰래 개발한 신무기일 거라고 추측했다. 아마 그 무기는 땅에는 아무런 피해도 입히지 않고 사람과 동물만 살해하는 이상적인 무기일 것이다. 물론 더 좋은 무기였다면 동물들은 살려두었어야 했겠지만 그렇게까지는 성공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인간들이 살아있는 한 그들은 죽이고 죽는 살육전에서 동물들까지는 배려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독가스(주: 아마도 핵무기에 의한)의 효력이 끝나고 나면 이 땅을 차지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인간의 두뇌가 생각해낸 가장 인간적인 악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땅이 앞으로 얼마 동안이나 불모 상태로 있을지는 알 수 없다. 발을 들여놓아도 좋을 만한 상태가 되면 벽이 사라지고 승리자들이 들어올 것이다. 지금은 그 실험이, 정말로 실험 같은 것을 했다면, 별로 성공적인 것은 못 되는 것이 아닌가 의심스러울 때가 많다. 승리자들이 너무 오래 지체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승리자 같은 것은 없을지 모른다. - 54~55쪽

작가 '마를렌 하우스호퍼'는 1920년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나 1970년에 삶을 마감했다. 대부분의 작품을 집필하던 1950년대, 핵전쟁과 그 피해에 대한 불안과 부정적인 시각이 사람들 사이에 확산되었다고 한다. 미국(1945년)을 시작으로 소련(1949년), 영국(1952년) 등 여러 나라가 보유국이 될 정도로 당시 핵무기 개발에 열을 올리는 나라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벽>은 핵전쟁 그 바탕이 되는 기술 즉, 현대문명기술과 그 기술이 남용되는 문명사회를 비판하는 소설이다. 하지만 그에 대해 조금 언급하는 것으로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인지 암시할 뿐, 소설 대부분 문명기술이 사라진 곳에서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이야기, 처음부터 옆에 있었던 룩스(개)를 비롯하여 시간이 감에 따라 생명의 온기를 찾아 들어온 소와 고양이와 나누는 교감, 계절과 시간에 따라 변하는 자연의 모습 등을 훨씬 높은 비중으로 들려준다.

그래서 인간과 자연과 동물과의 순수하고 아름다운 공생 자연 다큐멘터리를 볼 때의 감동을 얻곤 했다. 이는 아마도 지나친 문명으로 인한 인류 재앙으로 모든 것이 부족하지만 그럼에도 얼마든지 살 수 있는 평화로운 삶을 들려주는 것으로 독자 스스로 문명기술의 남용 그 폐해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고자 아닐까?

이런 이 소설은 동시에 글쓰기로 자신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작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으로 여성들에게 전하는 어떤 메시지로도 읽힌다.
 
벽은 이제 내 삶의 일부분이 되었기 때문에 몇 주씩 벽을 잊어버리고 지내기도 한다. 벽을 떠올릴 일이 있더라도 이제 벽은 내 발길을 가로막는 벽돌담이나 정원의 울타리 같은 것일 뿐이다. 사실 벽이 그들과 다를 게 뭐란 말인가? 내가 모르는 물질과 방식으로 만들어진 대상일 뿐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그런 것들은 벽 말고도 얼마든지 있었다. 벽 때문에 나는 완전히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도 내 마음을 움직이는 것들은 이전이나 다름이 없다. 태어남, 죽음, 계절의 바뀜, 성장과 소멸, 벽은 죽어 있지도 않고 살아있지도 않다. 말하자면 벽은 내가 마음을 쏟을 문제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벽에 관해서는 꿈을 꾸지 않는 것이다. 언젠가는 벽과 맞설 날이 올 것이다. 영원히 이곳에서 살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날까지 나는 벽과는 무관한 삶을 살고 싶다. - 210쪽.

작가는 집안일은 물론 치과의사인 남편의 병원 일까지 하며 하루 세 시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집필했다고 한다. 그렇다 보니 외부활동은 전혀 하지 못했다고 한다. 여성으로서, 그리고 작가로서 느끼는 벽이나 그로 인한 고립감과 상실감이 얼마나 컸을지 누구든 어렵지 않게 추측 가능한 삶을 산 것이다.

주인공이 글을 쓰기로 마음먹은 것은 어떻게든 겨울을 이겨내야 한다는, 그러려면 이성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절박함 때문이다. 작가가 느끼는 벽이 오죽했으면 대부분의 생명들을 화석으로 만들어 버린 핵전쟁 폐해와 동일시했을까.

글을 쓰기 시작하던 무렵 재앙이 온 그날 차라리 사촌 부부와 산책을 갔더라면 훨씬 짧은 고통으로 죽었을 것이라며 자포자기하던 주인공은 글을 써나가며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바꾼 숲속의 '벽'에 더는 신경 쓰지 않게 된다. 그리고 글을 마칠 무렵에는 자신감을 얻는다. 혹독한 겨울을 이겨낸 것이다.

우리는 크고 작은 수많은 벽과 살아간다. 동시에 우리 스스로 어떤 벽을 만들기도 한다. 이렇듯 한 벽들은 소통을 가로막거나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장애가 되기도 하지만 누군가의 침입을 막아주는 보호벽이 되기도 한다. 내 앞의 벽은 정말 벽일까? <설국열차>의 벽이나 소설 주인공의 벽처럼 '희망적인 어떤 가능성'인데 단지 장애물로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며칠째 생각이 이어지고 있다.

마를렌 하우스호퍼 (지은이), 박광자 (옮긴이), 고트(goat)(2020)


태그:#벽, #마를렌 하우스호퍼, #핵전쟁(핵무기), #읽을만한 소설, #유럽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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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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