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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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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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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동포 아줌마, 북한에 가다>의 저자 신은미는 지난 1961년 대구에서 태어난 후 7살 때까지 그곳에서 살았다. 3대째 기독교 집안에서 출생한 덕에 그의 어린 시절은 성경공부, 새벽기도 등 온통 교회생활로 이루어졌다. 또 그는 친척들과 어울려 한 가족처럼 살았다. 하지만 그가 7살이 되던 1968년 그는 부모님과 언니의 손을 잡고 대구에서 서울로 이사 오게 되었다.

그의 부친은 육사출신으로 매우 강직하시고 정직한 성품의 소유자였다. 부친은 어려서부터 그에게 6.25전쟁 때 국군을 이끌고 압록강까지 진격한 전쟁무용담을 수시로 들려주었다. 또한 그의 부친은 인정이 넘치던 분이라 그의 집에는 항상 손님이 끊이질 않았다.

그의 외조부는 경상북도에서 태어나 평양신학교를 졸업한 목사였다. 외조부는 해방 후 제헌국회의원으로 시작해 자유당정권이 몰락할 때까지 국회의원을 지냈는데 놀랍게도 제헌의원 시절 가장 강력히 국가보안법을 밀어붙인 의원이었다. 이런 외조부 밑에서 자라난 그의 모친은 아주 보수적인 기독교인이었다.

대구에서 서울로 올라온 그는 서울에서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KBS 어린이 합창단원으로 활동했다. 그러던 중 그는 보다 더 넓은 세상을 보고 배워야 한다는 생각과 함께 외국에 나가 국위를 선양하고픈 마음이 들었다. 그가 그런 생각을 하게끔 만든 것은 모친의 교육과 헌신이었다. 그래서 그는 곧바로 KBS합창단을 나와 테스트를 거쳐 리틀엔젤스에 입단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12살 때부터 3~4년간 국가사절단으로 해외 40여 개 나라에서 공연하게 된다. 당시 한 번 해외공연을 나가면 어린나이에도 불구하고 그는 몇 개월씩 부모님과 떨어져 살아야 했다.
 
 이탈리아 대통령궁에서 레오네 대통령과 함께. 둘째줄 맨 오른쪽이 신은미. (1974)
 이탈리아 대통령궁에서 레오네 대통령과 함께. 둘째줄 맨 오른쪽이 신은미. (1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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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독한 훈련과 장시간 부모를 떠나 해외공연을 다녀야 했으므로 그는 엄청난 스트레스와 힘겨운 시간도 가졌다. 그러나 무대 위에서 공연을 펼친 후, 객석으로 부터 들려오는 "한국으로 부터 온 천사들"이라는 찬사를 들으면 하염없는 눈물과 함께 모든 시름이 사라지곤 했다. 그 시절 감내했던 고된 훈련과 인내심은 살아오면서 지금까지도 도움이 됨을 그는 순간순간 느낄 때가 많다.

이렇게 어린 시절 해외공연 당시 그는 미국의 포드 대통령, 대만의 장개석 총통,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 등 당시 세계의 유명한 지도자를 만나는 소중한 기회를 갖기도 했다.

한편, 서울에서 선화예술중고를 졸업하고 1980년 그는 이화여자대학교 성악과에 입학했다. 당시 전두환이 광주에서 민간인을 학살하고 군사독재정권을 펼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정치나 사회문제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고 그저 자신의 장래 성공을 위해 공부하고 또 즐기는 그런 대학시절을 보냈다.

데모가 한창이던 당시 그는 모여서 구호를 외치는 학우들 앞을 한껏 멋을 부린 채 지나가곤 했다. 그는 시위하는 친구들에게 '학생이 공부는 안하고 데모로 아까운 시간 다 보낸다'며 종종 나무라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1980년대 대학생활을 돌이켜 보면 그는 그 시절 민주화와 독재타도를 외치며 데모를 했던 친구들에게 부끄러울 뿐 아니라, 그들에게 크게 빚을 졌다는 마음이 든다.

한편, 이화여대를 졸업 후 지난 1986년 그는 미국유학길을 떠났다. 미국 미네소타 대학교 음대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취득 후 그는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학생들을 가르치고 연주회 활동을 하던 중 사랑해 빠져 결혼도 했다. 그리고 지난 2002년 그는 미국에 정착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이어서 바로 은퇴를 하고 그는 아이들 교육에 전념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지난 2011년 그는 생애 처음으로 북한여행을 가게 됐다. 그는 당시 북한은 "지구상에서 맨 마지막으로 갈 나라"라는 생각으로 여행을 떠났다.
 
 다가가자 수줍어 하는, 매미를 잡아 놀고있는 황해도의 아이들. (2013년 8월18일)
 다가가자 수줍어 하는, 매미를 잡아 놀고있는 황해도의 아이들. (2013년 8월18일)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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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로 지금까지 그는 그동안 북한을 총 9번이나 방문하는 '북한전문가'가 되었다. 9번의 북한방문을 통해서 그는 북한의 경제가 나날이 나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매번 실감했다. 매년 북한을 방문할 때 마다 그는 북한에 현대적인 시가지, 고급식당, 카페 등 소비성 업소들이 여기저기 많이 늘어나는 것을 수시로 목격했다.

또한 그는 매년 북한을 방문하면서 만나는 북녘동포들이 급격히 변화하는 것을 수시로 실감했다. 예를 들어, 그는 북녘동포들의 붙임성이나 사교성이 나날이 높아져 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아마도 북녘동포들이 원래 그런 사람들이었는데 자신이 어려서부터 받은 반공교육을 통해 형성된 선입견을 갖고 북한을 방문해 그들을 바라보다가, 여러 차례의 여행을 통해 차츰 그들의 원래 모습을 보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될 때가 있다. 즉, 북녘동포들이 변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변한 것은 아닐지 그는 수시로 자문하기도 했다.

지난 2014년 박근혜 정권하에서 그는 국가보안법위반죄로 향후 '5년간 미국으로 강제추방'되는 고초를 겪었다. 그런 고초를 겪으면서 그는 박근혜 정권의 검찰, 사법부가 모두 권력으로 부터 자유롭지가 못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당시 자신에 대해 청와대가 지시하고 검찰이 수사를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가 말한 '대동강맥주가 맛있다', '북한의 핸드폰 수가 수백만이다', '북한의 강물이 깨끗하다'는 표현이 박근혜 정권하에서는 국가보안법위반죄라는 것을 알고 큰 충격을 받았다.

후일, 박근혜 정권에서 민정수석을 지낸 김영환의 <비망록>을 통해 당시 그에 대한 수사는 청와대가 기획하고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했으며 검찰이 협조를 했다는 것을 그는 나중에 알게 되었다.

그가 추방돼 미국으로 돌아와 한국의 변호사를 통해 제기한 '강제추방무효' 행정소송을 통해 경험한 사법부도 그는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을 실감했다. 그는 지금 문재인 정부가 진행 중인 사법개혁과 검찰개혁을 통해 법원과 검찰이 진정으로 국민들을 위한 기관으로 거듭 태어나길 기대하고 있다.

지난 2014년 그는 전북 익산에서의 공개강연 중 사제폭탄테러사건을 겪었고 뒤이어 미국으로 강제추방되었다. 당시 그와 남편은 한국에 있는 가족이나 친지들과 일체 연락이 두절된 상태에서 지냈다. 그래서 당시 한국에 있던 가족과 친지들이 그가 겪은 폭탄테러와 강제추방사건에 대해 어떻게 느끼고 받아들였는지는 전혀 모른다. 후일 한국의 가족이나 친지와 재회한 후에도 오늘까지 그 누구 하나 당시 얘기를 꺼내지 않는다. 폭탄테러와 강제추방사건은 그와 가족들에게 아무도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은 큰 상처로 남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동안 그가 쓴 북한방문기에 대해 일부에서는 북한을 '맹목적으로 찬양하는 것 같다'라는 비난도 있다. 하지만 그는 그가 북한에서 직접보고 경험한 것을 담담하게 적었을 뿐이었다라고 이야기 한다. 첫 북한여행기 서문에 그는 이렇게 적었다.

"여행 중에 만난 따뜻한 북한 동포들에 대한 기억에 아직도 가슴이 뭉클하고, 스쳐 지나는 사이에 비친 그들의 가난에 지금도 가슴이 에이듯 슬프고 고통스럽습니다. 여행을 다녀온 후 사람들이 제게 '북한은 어떤 나라냐'고 물으면 저는 이렇게 답하곤 합니다. '아름다운 사람들이 사는 가난한 나라'라고."

그가 북한을 방문하기 전에는 '북한사람들은 자식이 부모를 신고하는, 인간성이란 찾아볼 수도 없는 무지막지하고 잔인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키지 않은 마음으로 떠난 여행에서 북한동포들을 직접 만나고 그는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그가 만난 북한동포들은 인간적인 면에서 남한동포들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 또 어떤 면에서 그는 북한동포들이 남한동포들보다 훨씬 더 인간적이라고 느꼈다. 그래서 그는 이를 글로 남겼다. 그는 자신의 북한여행기는 이국의 '풍물'에 관한 글이 아니라 '사람'에 대한 이야기라고 담담하게 말한다.

그는 북한에 관한 한 진실에서 우리는 철저히 차단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한국의 과거 냉전수구정권들이 왜곡된 북한의 모습, 즉 악마로 묘사된 북한의 모습을 남한국민들에게 강제로 주입시켰지만 그는 그런 북한은 없다고 단호히 주장한다.

그는 남북이 서로에 대해 편견이나 선입관 없이 있는 그대로 알고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 한다.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무슨 음악을 들으며, 무슨 영화를 보며, 무슨 음식을 먹으며, 무슨 옷을 입으며, 무슨 일을 하며, 아이들은 어떤 모습이며 등등. 그리고 북한에 대해 있는 그대로 알고 있다고 해도 우리와는 많이 다른 북녘의 모습을 틀린 것이 아닌, 다름 그 자체로 받아들이고 그들을 문화적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만일 우리의 잣대로 북한을 바라보고 판단한다면 남과 북은 영원히 화합할 수 없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이는 북녘의 동포들이 남한을 바라보는 자세에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그는 향후 미국의 바이든 정부에 북미관계의 발전을 기대한다. 그도 지난 미국대선에서 바이든 후보에게 투표를 했는데 '북미관계 발전'이 중요한 판단의 근거 중 하나였다. 그는 트럼프의 대북정책은 전혀 결실을 맺지 못했고 게다가 낙선 후 행동에서 보여주듯이 트럼프는 정치가의 자질을 전혀 갖고 있지 않다고 판단한다. 북미관계도 그는 트럼프가 자신의 정치적 이득을 위해 북한을 이용했다고 생각한다. 그는 부디 남북미가 잘 조화를 이루어 조국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되길 기원한다.

그는 문재인 정부가 4.27 판문점선언, 9.19 평양선언 같은 훌륭한 합의를 해놓고도 미국의 간섭으로 인해 한걸음도 움직이지 못한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이런 말을 남겼다.

"이는 주권국가로서 수치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남북관계에 대해 좀 더 과감하고 대범한 지도력과 집행력을 보여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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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영국통신원, <반헌법열전 편찬위원회> 조사위원, [함석헌평전], [함석헌: 자유만큼 사랑한 평화] 저자. 퀘이커교도.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 한국투명성기구 사무총장, 진실화해위원회,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 국민권익위윈회 청렴포럼위원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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