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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human rights). 인권은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다는 천부성의 특성이 있다. 그러나 인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를 '인권 침해'라고 한다. 인권 침해를 구제받기 위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하기도 한다.
 인권(human rights). 인권은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다는 천부성의 특성이 있다. 그러나 인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를 "인권 침해"라고 한다. 인권 침해를 구제받기 위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하기도 한다.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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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진정하다. 이름만 들어도 결코 쉬운 일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생각보다 어렵지는 않다. 나는 학교를 대상으로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했다. 그 진정은 나름 성공적이었다. 이 글에서는 학교를 진정하면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앞으로는 어떻게 되어야 할지 이야기를 풀어나가고자 한다.

2020년 2월 말, 내가 교칙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하고 변화를 위해 무언가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때다. 하지만 그때는 교칙을 바꾸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잘 몰랐다. 고민하던 와중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진정을 해보는 일은 이번이 처음이라 두렵기도 했다. 하지만 두렵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변화하지 않는다고 생각해, 떨리는 마음으로 진정을 제기했다.

교칙에 전반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수정의 필요성이 큰 3가지 사항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했다.

첫째는 '교내에서 학생들이 회의, 모임이나 단체 활동을 할 때', '게시판에 게시글을 부착하고자 할 때' 담당 교사나 담임교사에게 승인을 받아야만 하는 교칙, 둘째는 '긴 머리일 경우 교육활동에 방해되지 않도록 단정히 묶는다'라는 교칙, 셋째는 교칙 개정 과정에서 학생들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 문제점. 위 3가지 사항에 대하여 진정을 제기했었다. 국가인권위원회 홈페이지로 진정 신청을 하면 인권상담조정센터를 거쳐 정식 진정으로 접수된다. 나 역시도 인권상담조정센터를 통해 진정을 접수했고, 사건번호를 부여받았다. 진정이 접수되고 하루 뒤에 사건이 배정되었다.

사건 배정 이후에는 사건 조사가 이루어진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진술서 및 자료제출 요구'를 해 피진정기관인 학교로부터 자료를 받고, '당사자 및 관계인 조사'를 진행하게 된다. 나는 진정서 및 전화 조사를 통해 내 피해 사실을 조사받았고, 학교는 답변서 및 전화 조사를 진행하고, 여러 자료를 제출했다. 필요한 경우 추가 자료제출 요구, 참고인 조사, 현장 조사, 감정 등을 통해 사실관계를 확인하기도 한다.

생각보다 조사가 철저하게 진행되는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조사가 완료되고 안건이 상정되었다. 2020년 9월 15일에 안건이 상정됐고 22일에 심의하고 의결되었다. 나는 결정문 작성을 기다렸다. 결정문 작성은 12월 7일에 완료되었고 국가인권위원회는 집으로 결정문을 보내왔다.
 
국가인권위원회 아동권리위원회에서 내린 결정문 일부입니다.
 국가인권위원회 아동권리위원회에서 내린 결정문 일부입니다.
ⓒ 국가인권위원회 결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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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문을 읽으며 한편으로는 뿌듯하고 또 한편으로는 아쉬웠다. 일단 교내에서 모임을 할 때 승인을 받도록 하는 교칙, 긴 머리를 반드시 묶도록 하는 교칙은 인권 침해로 규정되었다는 사실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교내 게시글 부착 승인제, 교칙 개정 과정에서의 학생 의견 미반영은 기각되었지만, 교내 게시글 부착 승인제는 내가 진정을 제기한 이후 학교에서 자체적으로 시정하였다. 교칙 개정 과정에서 학생 의견의 미반영된다는 진정은 받아들여지지 않아 아쉬움이 남는다. 교칙 개정 과정에서 규정상으로는 학생의 의견을 반영하고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학생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을 내가 제대로 입증하지는 못한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현재는 결정문이 작성된 단계이다. 이제 피진정기관의 장인 학교장은 국가인권위원회법 제25조에 따라 권고 사항을 이행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며 90일 이내에 권고 사항의 이행 계획을 위원회에 통지해야 하고, 권고의 내용을 수용하지 않을 때는 그 이유를 위원회에 통보해야 한다.

진정 처리 과정에서 제도적으로 아쉬운 점도 있다. 첫째는 진정 처리 기간이 너무 길다. 사건이 배정된 2020년 2월 27일부터 결정문 작성이 완료된 12월 7일까지, 285일이 걸렸다. 물론 사건이 많이 접수되어 업무 부담이 있을 수도 있고, 사건을 늘 빠르게 처리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하지만 인권 관련 사건이라는 특수성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진정이 완료되기 전까지 계속 인권 침해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진정인의 삶을 고려할 때, 지나치게 긴 진정 처리 기간은 줄일 필요가 있다.

둘째는 권고의 효력이 없는 점이다. 권고를 받은 사람은 권고를 이행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지만 현행 국가인권위원회법으로는 결정문을 무시하더라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는 말 그대로 권고일 뿐, 아무런 이행 강제 수단이나 처벌 수단 등이 없기에 그저 무시해버리면 그만인 권고가 될 수 있다. 이러한 권고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수단도 논의할 필요가 있다.

국가인권위 진정을 통해 많은 권고가 내려진다. 나의 경우처럼 교칙 문제가 공론화되기도 한다. 외투를 입지 못하게 하는 것은 자기결정권 침해이기에 시정을 권고한 이후로 몇몇 학교들은 교칙을 바꾸었다. 핸드폰 강제 수거는 통신·행동의 자유 및 정보 접근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는 권고 이후 몇몇 청소년단체에서는 핸드폰 강제 수거 반대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인권위의 권고를 통해 조금씩 세상이 진보하고 있다.

학교를 진정하는 것이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 그러나 의미 있던 일임은 분명하다. 나 개인적으로는 진정을 제기하는 일 자체만으로도 의미 있는 일이었다. 사회적으로도 결사의 자유를 지나치게 침해하는 교칙, 학생의 개성을 실현할 권리를 침해하는 교칙 등 각종 인권 침해적 교칙에 대해 논의가 활발해지기를 기대한다.

또한, 인권위로부터 권고를 받은 우리 학교에서는 교칙 개정 관련 설문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이번 권고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긍정적인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우리 학교의 교칙을 포함, 많은 학교의 교칙이 학생 인권을 존중하고, 청소년을 지배의 대상, 통제의 대상이 아닌 학교의 구성원으로 인정하는 방향으로 바뀌기를 바란다. 그리고 인권위 진정, 생각보다 어렵지 않습니다.

덧붙이는 글 | 필자는 중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입니다.


태그:#국가인권위원회, #인권위, #진정, #교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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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과 열정 사이를 오가는 글쓰기. 문의는 j.seungmin2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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