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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부모 학대로 사망한 생후 16개월 정인이가 잠들어 있는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자연묘지에 5일 오전 추모객들이 적은 추모글과 함께 간식, 장난감이 쌓여 있다.
 양부모 학대로 사망한 생후 16개월 정인이가 잠들어 있는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자연묘지에 5일 오전 추모객들이 적은 추모글과 함께 간식, 장난감이 쌓여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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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개월 여아를 폭행해 사망에 이르게 했던 이른바 '정인이 사건' 가해 양부모의 첫 재판이 13일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열린다. <오마이뉴스>는 재판 시작과 함께 그간 법원이 아동학대 사건을 어떻게 판단해 왔는지 알아보고자 최근 10년간 있었던 아동학대 집행유예 선고 판례 160여 건을 살펴봤다.

이 가운데 피해 사실이 극심했던 세 집행유예 판례를 꼽았고, 아동학대 피해자들의 국선변호를 맡아온 변주은 변호사와 나눈 인터뷰를 통해 각 판결의 문제점을 알아봤다. 가해자의 반성, 훈육 목적의 폭행, 가족들의 탄원, 경제적 문제 등은 각 판결에서 아동학대 가해자들의 형을 줄이는 요소로 사용됐다.

[집행유예 판결 ①] 몽키스패너로 폭행하고, 2개월 간 아이 굶긴 친모

친모가 몽키스패너로 11살 아이의 전신을 내려쳤다. 몽키스패너는 묵직한 쇳덩이로 이뤄진 공구다. 손과 발, 몽키스패너와 플라스틱 막대를 사용해 아이의 전신을 폭행한 친모는 쓰러진 아이를 그 자리에서 수차례 짓밟기도 했다. 2017년 2월, 이날의 폭행으로 아이의 온몸은 멍으로 물들었고 치아는 부러져 나갔다.

친모의 폭행은 상습적이었다. 2018년 3월 28일 부산지방법원(판사 박원근)에서 선고된 이 사건 판결문에 따르면, 친모가 아이 전신을 폭행한 것은 위 사건을 포함해 총 5번에 달했다. 뿐만 아니라 아이를 과도하게 굶기거나 방치한 범행도 있었다. 2~3개월 간 아이에게 식사를 단 한 번만 제공하고 줄곧 굶겨온 일, 양육 스트레스를 이유로 아이를 일주일간 집 밖 베란다에 내쫓고 굶긴 일이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같은 범행을 저지른 친모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면서 아래와 같은 양형이유를 언급했다.
 
"다만 피고인이 훈계의 목적에서 하게 된 행위가 도를 넘어 학대에 이른 것으로 보이는 점, 피고인이 잘못을 뉘우치면서 반성하고 있는 점, 이 사건 범행 이후 피해자가 보호시설에서 생활하고 있어 재범 가능성이 낮아 보이는 점, 피고인에게는 동종의 죄로 형사처벌 받은 전력이 없는 점 (양형이유 중)"

아동학대 피해자의 국선변호를 맡아온 변주은 변호사는 이 사건을 두고 "상당히 부적절한, 이른바 '걸림돌 판례'"라며 "몽키스패너를 사용한 행위마저 훈육의 목적에서 나왔다고 본 것 자체가 상당히 잘못됐다. 일반 폭행이라고 하면 '특수'가 붙을 정도의 사건이다"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변 변호사는 "범죄의 심각성과 상관없이 피해자가 분리된 상황을 가해자의 감형요소로 고려한 것도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불특정 다수에 대한 범죄의 경우 분리조치로 인한 재범가능성을 명확히 판단하는 게 맞다. 하지만 특정 아이를 대상으로 한 아동학대중상해·아동학대치사 사건에서도 이런 예외가 적용될 경우 범행에 대한 합당한 처벌이 내려질 수 없다"고 말했다.

[집행유예 판결 ②] 쇠파이프로 때리고, 쇠사슬로 묶어 감금한 친부

"네모난 프라이팬으로 피해 아동의 머리를 때리고, 쇠파이프로 피해 아동의 몸을 때렸다."

또 다른 판결문에 적힌 첫 번째 범행사실이다. 가해자는 친부인 동시에 스노우보드 선수인 피해 아동을 가르치는 코치였다. 이어지는 그의 범행은 보다 잔혹했다.

2018년 12월, 친부는 아이의 가출을 막겠다며 쇠사슬로 아이의 손목을 묶어 약 1주일간 아이를 유사 감금했다. 2019년 2월에는 아이가 전국 동계체전에서 입상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억지로 술을 마시게 했다. 아이가 구토를 하자, 몸을 발로 걷어차기도 했다. 이밖에 아이의 수업을 지도하던 도중 명치 부분을 주먹으로 친 사건도  있었다.

2019년 10월 31일 위 사건을 선고한 인천지방법원(판사 양우석)은 가해자에게 징역 6개월에 1년간의 집행 유예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양형이유에서 "피고인이 범행 일체를 자백하면서 잘못을 뉘우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면서 "현재 피고인과 피해아동의 관계가 회복된 것으로 보인다. 피해아동이 피고인의 처벌을 원하지 않고 있다"고 적었다. 피고인에게 아동학대 전과가 없는 점도 고려했다.

이를 두고 변 변호사는 "아동학대 사건을 맡다보면 비가해 가족이 피해자에게 피고인을 위한 탄원서를 쓰라고 강요하는 경우가 상당히 잦다. 그래서 탄원 내용이 아이 의사와 다른 경우가 많다"라며 "그럼에도 재판부가 이걸 무분별하게 받아들이는 경우가 있는데, 상당히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재판부는 피해 아동의 처벌불원 의사를 받아들이기에 앞서 관련 내용을 보다 면밀하게 살펴보거나, 피해자 변호사와 충분한 소통을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한편, 이 사건 재판부는 피고인에게 아동·청소년 기관 취업제한명령을 내리지 않은 이유를 판결문에서 언급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입는 불이익 정도와 예상되는 부작용, 재범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취업제한명령 내리지 않았다고 밝혔다.

[집행유예 판결 ③] 친부의 폭행에 자살 충동까지 느낀 아이, 법원의 판단은
   
입양 후 학대로 사망한 '정인이 사건' 관련 양부모에 대한 첫 공판이 열리기 하루전인 12일 오전 서울 양천구 남부지방검찰청과 남부지방법원앞에 대한학대방지협회 회원 등 시민들이 보낸 조화가 줄지어 놓여 있다.
 입양 후 학대로 사망한 "정인이 사건" 관련 양부모에 대한 첫 공판이 열리기 하루전인 12일 오전 서울 양천구 남부지방검찰청과 남부지방법원앞에 대한학대방지협회 회원 등 시민들이 보낸 조화가 줄지어 놓여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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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부의 극심한 폭행으로 자녀가 자살 충동을 느꼈음에도 집행유예 판결에 그친 사건도 있었다. 피해 아동은 친부의 학대로 인해 고막이 터지거나 결막출혈을 포함한 눈 주변 상해를 입었다. 친부는 친모도 상습적으로 폭행해 왔는데, 아이들이 이를 경찰에 신고했다는 사실을 접한 후에는 되레 보복 폭행을 가하기도 했다.

2016년 11월 30일 서울서부지방법원(판사 김희진)은 친부의 상습 폭행이 인정된다고 했다. 또한 "피고인은 가정 폭력으로 수사 기관의 조사를 받은 직후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거나 반성하지 않고, 오히려 피해사실을 신고했다는 이유로 피해자(자녀)에게 폭력을 행사하기도 했다"면서 친부를 질책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재판부의 최종 판단은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이었다. 재판부는 친부(가해자)가 친모와 아이들을 부양해야 하는 지위에 있다는 점을 주요하게 고려했다. 재판부는 "경제적 부양 능력이 있다는 이유로 형사처벌을 감면할 수는 없는 것이나, 피해아동들 및 피해자가 피고인의 소득활동에 의존해 살고 있는 현실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친모도 경제적인 문제를 이유로 피고인에 대한 처벌을 원하지 않았다고 한 점도 덧붙였다.

이밖에 "피고인이 재판 과정에서 피해 아동들의 심리 상태 등에 대해 알게 돼 범행을 진지하게 반성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고, 꾸준히 가정폭력 관련 상담을 받고 있는 점"도 유리한 양형이유로 언급됐다.

재판부가 남긴 숙제 "경제적 부양 능력 이유로 처벌 감면할 수 없지만..."

변 변호사는 "아동학대 사건을 판단할 때, 이러한 경제적 요인이 자주 문제로 작용한다"고 했다. 대체로 경제적 독립을 못한 비가해 가족들이 직접 피고인을 위한 탄원서를 쓰는 경우가 잦기 때문이다. 재판부 또한 응당 아이를 피고인으로부터 분리시켜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가정의 생계나 유지 등의 이유로 관련 판결을 내리지 못 하는 경우가 있다고 덧붙였다.

변 변호사는 범죄 피해자들의 경제적 자립을 위해선 국가의 지원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도 이들을 도울 수 있는 범죄 피해자 지원제도가 각 검찰청마다 마련돼 있고, 이들을 위한 할당 예산도 있다. 하지만 홍보가 제대로 되지 않아 피해자들이 제대로 된 도움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면서 "경제적 문제가 해결돼야 피해자들의 의사와 무관한 선처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당부했다.

태그:#아동학대, #정인이, #폭행, #집행유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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