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씩씩한 마흔을 위해 글을 씁니다. 제 나름의 씩씩함이 다른 이들의 씩씩함까지 낳게 하면 좋겠습니다.[기자말]
한참 바쁜 시기엔 꼭 랙이 걸린다. 중앙 서버를 이용하는 작업인 경우에는 특히 그렇다. 마감이 다가오면 여지없이 사람이 몰리면서 서비스가 버벅댄다. 아놔. 또 시작됐다. 결코 승자가 있을 수 없는 트래픽 다툼. 마감은 코앞이고 작업은 서둘러야 하는데 5G 속도의 내 마음과는 다르게 컴퓨터는 모스 부호를 날리고 있다.

이제 막 4살이 되어가는 연륜 있는 컴퓨터도 한몫 하고 있을 테지만 갓 들어온 신입의 쌩쌩한 옥타코어 워크스테이션도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누군가는 구글링을 통해 얻은 팁들을 적용해 보면서 빨라진 듯하다는 느낌적인 느낌을 말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현실적인 대안으로 담배를 들고 나가 버렸다.

불안과 노력

여기저기서 탄성과 한숨이 터지는 중에 누군가가 말했다. 이쯤 되면 신앙심의 문제라고. 응? 그간 착하게 살지 못해서 그러네. 한동안 운동을 안 해서 게을러진 주인을 컴퓨터가 닮아 버렸네. 내가 모니터를 보고 있어서 그런 것 같네 등등.
 
뭐라도 했다는 안도감을 얻기 위한 일말의 노력
▲ 이상한 믿음 뭐라도 했다는 안도감을 얻기 위한 일말의 노력
ⓒ 남희한

관련사진보기

 
사람들은 이성을 잃고 말도 안 되는 아무 말 대잔치를 시작했다. 툭. 이성의 끈을 놓는 순간, 사람들은 실실거리며 웃고 있었다. 극도의 불안함에 사람들은 현실을 부정했고 서서히 다른 세계로 흘러가고 있었다.

언제나 희망은 있다고 했던가. 절체절명의 순간. 구세주가 나타났다.

"컴퓨터가 느릴 땐, 마우스를 돌려주면 빨라진대요. 과학적인 근거가 있다는데... 확실히 빨라진 것 같아요."

열심히 구글링을 하던, 얼마 전 입사한 신입사원이었다. 눈동자를 반짝이며 말하는, 진지한 그의 발언에 사람들은 잠시 이성을 되찾았다. "에~이~~~". 하나 같이 같은 반응을 보였다. 당연하다. 우리는 대부분 IT 관련 전공자였다. 극도의 불안에 잠시 이성을 잃었지만 이 분야의 나름 배운 사람들이란 뜻이다. 컴퓨터를 채찍질하는 것도 아니고 그런다고 빨라질까 싶었는데, 

스쓱, 쓰쓱, 쓱쓱쓱쓱쓱쓱쓱.
쓱쓱쓱쓱쓱. 쓰쓰쓱. 쓰쓰쓱.


이런... IT 전공자들의 마우스 돌리기가 시작됐다. 어느새 여기저기서 마우스를 돌려보고 있었다. 배운 사람답게 다양한 리듬으로 다양한 시도를 하면서, 이성의 끈을 놓는 대신 지푸라기를 잡았다.

뭐라도 하지 않으면 불안할 때가 있다. 여유는 사라지고 안절부절, 갈팡질팡하게 되는 그런 순간들. 어쩌지 못하는 상황임에도 어찌해보려 하고 부질없어 보이지만 그래도 해야만 마음이 놓이는 상황들 말이다. 자연스레 스트레스가 쌓이고 무리로 인한 피곤은 복리로 적립된다.

그래서인지 요즘 자주 보이는 "노력하지 않아도 괜찮더군요", "애쓰지 마세요. 그래도 잘 살고 있습니다" 하는 말들이 많은 위로가 된다. 스스로를 옥죄는 스트레스와 억누르는 피곤에 찌든 사람들에게 산뜻한 시선을 제공해 주니 말이다.

확실히 이런 글과 영상을 볼 때면 불안감이 줄어든다. 그래서 자꾸 찾아보게 된다. 그리고 결심한다. 지금부턴 달라질 거야. 내일부턴 과감한 내려놓음과 여유로 더는 불안해 하지 않을 거야! 그리고 일상은 혼란에 빠진다.
  
'내려놓자! 뭘 내려놔야 하지? 평가? 대인관계?'
'여유를 가지자! 잔업시간도 남았다는 여유? 주말도 있다는 여유?'

  
격했던 공감과 신선한 충격과 따뜻했던 위로는 그렇게 짧은 생을 마감한다. 불안해하지 않고, 노력하지 않는데도 생각 이상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으면서.

어머니는 일곱이 편하다 하셨어

어머니는 무엇이든 잠그고 나면 일곱을 센다. 외출을 할 때면 가스를 잠그고 하나, 둘, 셋... 대문을 잠그고 하나, 둘, 셋... 도착해서 차 문을 잠그고 하나, 둘, 셋... 괜찮다고 아무리 일러드려도 여전히 바꾸지 못하는 습관이다.

워낙 어릴 적부터 봐 왔던 모습이라 그저 그러려니 하던 중, 좀 심하다 싶어 타박하듯 여쭤본 적이 있다. 왜 그렇게 불안해 하시냐고. 매번 불편하시지도 않으냐고. 핀잔을 질문에 감싸 던졌다. 그랬더니 차 문을 잡고 일곱을 다 세고 난 어머니가 곤란한 듯 웃으며 답했다.

'이래야 마음이 편해서...'

이런. 어머니는 일곱이라는 매직 넘버로 불안에서 해방된 거였다. 마음 편하자고 하던 노력을 나는 쓸데없는 것으로만 보고 있었구나.

생각해 보면 모든 게 마음 편하자고 했던 행동이었다. 그것을 노력이라 치켜세우기도 하고 삽질이라 폄하하기도 했지만, 분명 마음을 추스르고 지금 여기 있게 한 과정이었다.

내게는 자리만 지켰던 야간 자율학습이 그랬고, 시험 전날 공대 도서관에서 불편하게 엎드려 잔 잠이 그러했으며, 입사 면접에서 스마트해 보이기 위한 안경 구매가 그러했다.

그 노력이 얼마의 영향을 끼쳤는지는 알 수 없다. 그저 그 당시 할 수 있는 것들을 했고 할 만큼 했다는 자기위안을 가졌다. 그리고 지금에서야 그 모든 것 덕분에(?) 그나마 이렇게 살고 있다고 생각할 뿐이다. 종종 불안해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지금 하는 일이 맞는지 모르겠어요."
"이렇게 한다고 달라질지 모르겠어요."
"낭비하는 일이 될까 두려워요."


해줄 수 있는 말이 없다. 나도 알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지금 하는 그네들의 노력이 마우스를 돌리는 것보다는 확실히 도움이 될 거라는 사실이다.

당장은 허황돼 보이고 부질없어 보여도 분명 흩뿌려지는 씨앗이고 어딘가에 태풍이 불지도 모를 날갯짓이란 말이다. 뒤에 안 사실이지만 마우스를 돌리는 것이 일부 운영체제에선 IDLE타임(CPU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줄여 미세하게나마 빠르게 할 수도 있다고 하니, 전혀 쓸모없는 노력은 아니었다(휴. 다행이다. 허튼 짓은 아니었어).
  
다시 마감일로 돌아와서 이야기를 이어가면, 다행히 마감을 지켰다. 기도도 하고 마우스도 돌리고 커피를 마시며 모니터도 뚫어지게 바라봤다. 무신론자에게 기도가 무슨 소용 있겠냐마는 위기에 처하면 기도라도 하게 되는 게 사람이다.

무신론자의 기도도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데, 지금 하고 있는 보다 건설적인 노력을 믿으면서 조금 마음을 놓아도 되지 않을까. 최소한 오늘도 불안함에 마우스를 돌리는 행위를 하고 있다면, 그 노력의 대가로 마음의 평화는 얻었으면 좋겠다.

아, 그때 차를 주차하고 집으로 들어오며 어머니가 조금 뿌듯해 하며 한 얘기가 아직 남았다. 

"예전엔 열까지 셌는데 일곱으로 줄였다 아이가, 이제 다섯만 세 볼라고."

아무래도 보다 효율적으로 마음의 평화를 얻으려면 역시 연륜이 필요한가 보다. 수많은 반복과 시간의 힘, 그리고 이 정도면 됐다는 적정선이.

덧붙이는 글 | 개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나는 글렀지만 넌 또 모르잖아"라는 생각으로 내일의 나에게 글을 남깁니다. 풍족하지 않아도 우아하게 살아가 보려고요.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