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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확산 뉴스를 비집고, 급격히 떨어지는 출산율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언론이 이 문제가 심각하다고 아무리 외쳐도 '애를 낳겠다'는 사람들이 없습니다. 왜 그런지 혹은 아이가 꼭 있어야 하는지 등 출산에 대한 각계각층 시민기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편집자말]
나는 결혼할 생각도, 아이를 낳을 생각도 없다.
 나는 결혼할 생각도, 아이를 낳을 생각도 없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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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올해로 서른이 되었다. 엄마는 나를 이제 서른둥이라고 부른다. 서른이라는 나이는 엄마가 나를 낳았던 나이보다 네 살 많고, 아빠가 나를 처음 봤던 나이보다 한 살 많다. 그런데 나는 지금 결혼은커녕 단 한 번도 피임에 실패해본 적 없는 비혼 여성이다.

우리나라 출생률이 평균 0명대로 접어든 지는 꽤 된 것 같고, 뉴스에 나온 걸 보면 작년 부로 우리나라에 '데드크로스'라는 현상이 일어났다고 한다. 나는 사실 큰 관심이 없었다. 데드크로스. 이름만 들으면 굉장히 무시무시한 것 같고 뭔가 큰일이 난 것 같은데, 실상은 출생자 수보다 사망자 수가 더 많아서 인구가 자연 감소 추세에 들어갔다는 말이다.

기사를 좀 찾아보니 아주 호들갑들이다. 경제성장률에 영향이 있을 거라느니, 노인 부양 부담이 커질 거라느니, 경제활동 인구를 늘려야 한다느니. 기사를 읽던 중 익숙한 기관의 이름을 발견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이곳의 한 연구원은 지난 2017년 '인구포럼' 발제를 통해 혼인율 제고정책 중 하나로 "미혼자가 교육에 투자하는 기간을 줄이는 것"을 제시해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심지어 이 연구원은 "여성의 교육 수준과 소득 수준이 상승함에 따라 하향 선택 결혼이 이루어지지 않는 사회관습 또는 규범"을 바꿀 수 있는 문화콘텐츠가 필요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당시 이 발제는 여성의 교육 수준이 높아지고, 사회에 활발하게 진출하는 것 때문에 혼인율이 낮아지고 있다는 문제적 진단을 내놓고, 여성의 '하향 선택 결혼'을 주장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처럼 여러 기관과 언론 등은 '인구 절벽'이 위기라고 말한다. 마치 절벽 아래로 떨어지면 모두 다 죽는 것처럼 이야기한다. 하지만 정작 그들이 지적하는 문제의 원흉, 시집도 안 가고 애도 안 낳는 가임기 여성인 나는 너무나 평온하다.

비혼은 나의 전략이다

나는 애를 낳지 않기로 꽤 어렸을 때 결정했다. 자식 하나 키우는 것도 뼈 빠지는 노력이 들어가고, 자식이란 존재는 내 마음대로 커주지 않을 것이 분명한데 돈 쓰고 애써서 그런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 않았다. 좀 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살고, 남편이나 자식에게 의탁하지 않는 삶을 꿈꿨다.

아이를 낳지 않기로 결심한 시기와 결혼을 하지 않기로 결심한 시기는 좀 차이가 있다. 내가 결혼하지 않기로 결심한 건 여고 시절 친구의 영향이 큰 것 같다. 자기는 절대 결혼 안 할 거라면서 죽을 때까지 혼자 살 거라고 했다. 그때는 나도 감수성이 낮았을 시절이라 '저런 애들이 제일 빨리 간다더라' 하는 실없고 무례한 농담으로 그 친구의 결의를 장난스럽게 바라보았다.

그런데 하나둘 나이를 먹어갈수록 '결혼을 안 한다'라는 건 다른 어떤 신념보다 내 삶에 먼저 와닿은 전략이었다. 나는 어떤 대단한 신념을 가지고 비혼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좀 더 행복하기 위한 전략으로 결혼을 안 하는 것을 선택했다.

이렇게 '하지 않을'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할 일이 거의 없는 나지만 그래도 가끔 엄마와 결혼 이야기가 나올 때가 있다. 한 번은 펑퍼짐한 원피스를 사 와서 예쁘다며 좋아하는 나에게 엄마가 옷이 예쁘다며 칭찬이라고 한마디 하셨다.

"사이즈가 넉넉하니 시집가서도 입을 수 있겠네."

그 한 마디에 나는 갑자기 진지하게 엄마에게 화를 냈다. 나는 결혼 안 할 거라고 몇 번이나 말했는데 왜 진지하게 들어주지 않는 거냐며. 그 이후로 엄마는 절대 나에게 결혼을 하라느니 아이를 낳으라느니 하는 말씀을 하지 않는다. 물론, 엄마가 나한테 뭔가 서운한 게 있을 때 '너도 자식 낳아서 키워보면 알 거야'라고 말할 때를 빼면 말이다.

엄마, 죄송한데 저는 자식을 낳을 생각이 없어요. 대신 엄마한테 더 잘할게요. 이런 생각을 하는 나는 효녀일까 불효녀일까? 글을 쓰는 김에 지금 다시 엄마에게 진지하게 물어본다.

"엄마, 엄마는 제가 결혼 안 하고 애 안 낳고 사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제는 모범적인 페미니스트 엄마의 답변이 흘러나온다.

"나는 좋다고 생각해. 너 하고 싶은 거 하고 살아."

이만하면 성공적인 설득이었나? 그렇다면 질문을 바꿔본다.

"엄마, 그럼 제가 결혼하고 애 낳고 살 거라고 하면 반대할 거예요?"

엄마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엄마는 아무 말 없이 스마트폰만 바라본다. 왜 대답이 없냐며 답을 재촉하는 나에게 한 마디가 돌아온다.

"그건 좀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네요."

나는 너무 재밌어서 깔깔대며 방으로 돌아왔다. 나에게 결혼과 출산을 촉구하던 엄마는 어디로 갔으며, 딸의 비혼과 비출산을 당연하게 여기는 이 래디컬한 중년 여성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엄마의 진정한 변화에 나는 기분 좋은 웃음과 그 답변이 궁금해졌다.

다음날이 되었다. 어젯밤 먼저 잠이 든 나와 달리 엄마와 남동생은 이야기를 좀 나눴다고 한다. 지난밤 갑자기 의뭉스러운 질문을 던지는 날 본 남동생의 반응이 더 재미있었다.

"엄마, 누나가 왜 갑자기 저런 말을 해요? 누나 혹시 임신한 거 아니에요?"

나는 정말 배를 잡고 웃었다. 귀여운 자식. 나는 남동생에게 '네 누나는 현재까지 100%의 피임 성공률이었다'고 자랑하며 배짱을 부렸다. 물론 나도 언젠가 실수로 피임을 실패할 수도 있고 그건 전혀 나의 잘못이 아니기 때문에 낙태죄는 폐지되어야 하고 실제로 폐지되었다는 이야기는 생략했다. 그리고 엄마에게 다시 물었다. 어젯밤 나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촉구했다.

"조금 더 생각해 보고."

데드크로스와 인구절벽은 당연한 결과다

아직도 결론 나지 않은 엄마의 생각. 엄마도 이미 나의 설득과는 상관없는 어떤 지점에 들어선 것 같다. 자신의 삶에서 그리고 이 사회를 보며 자신의 주변 사람들을 보며 아직까지 한국 사회에서 결혼은, 임신은, 출산은 여성에게 희생을 강요하고 큰 짐이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야말로 현실을 자각하게 해주는 매트릭스의 빨간약을 온 가족이 꿀꺽 삼켜버린 것이 아닐까?

여전히 결혼에서 한 쪽 성별을 희생시키는 문화가 당연하다면, 남편이 돈을 더 많이 버니까 육아는 당연히 아내가 해야 한다는 인식이 당연하다면, 맞벌이든 외벌이든 상관없이 한국 남편의 가사노동시간이 여전히 세계 최하위에 머물러 있다면, 임신과 출산 과정에서 여성이 겪어야 하는 신체 변화와 고통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는다면, 데드크로스와 인구절벽은 당연한 결과다.

물론 이 모든 변화가 선행되어도 젊은 세대는 결혼을 할까 말까, 아이를 낳을까 말까다. 그럴 바엔 인공 자궁이나 남성이 임신을 할 수 있는 기술이 빨리 개발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한다. 하지만 정부 부처나 지자체는 아직도 변화의 흐름을 짚지 못한 채 헛다리를 짚고 있다.

'애 낳아야 하니까 애 낳아야 해.'

국민들이 아이를 왜 낳아야 하는지에 대한 설득력 있는 이유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매번 설득에 실패한다. 젊은 세대는 결혼과 출산을 거부한다. 그리고 그런 삶을 더 잘 살기 위해 젊은 세대는 자신의 부모를 설득한다. 그리고 그 부모님들도 점차 젊은 세대의 생각에 동조하고 있다.
 
과거의 디즈니 여성캐릭터와 현재의 디즈니 여성캐릭터 그림이 비교되어 있고  20세기 여주인공 그림 하단에는 '사랑-가족-출산-행복'이라는 문구가, 21세기 여주인공 그림 하단에는 '나는 뭐든 할 수 있어!'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과거의 디즈니 여성캐릭터와 현재의 디즈니 여성캐릭터 그림이 비교되어 있고 20세기 여주인공 그림 하단에는 "사랑-가족-출산-행복"이라는 문구가, 21세기 여주인공 그림 하단에는 "나는 뭐든 할 수 있어!"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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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조차 과거의 결혼과 출산으로 행복을 찾던 공주 캐릭터에서 벗어나 결혼 없이 왕이 되고 싶어하는 자스민 공주, 그리고 결혼하지 않고 여동생과 행복하게 살아가는 엘사 공주를 그려내고 있지 않은가?

단적으로 디즈니가 그렇듯 온 세계가 성평등한 사회를 지향하며 새로운 여성상을 적극적으로 전파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시점에 인구 고령화 때문에, 경제성장률 때문에, 고령인구 부양비 때문에 애를 낳으라니. 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설득 방식인가?

절대 거부한다. 인구 고령화도, 경제성장률도, 고령인구 부양도, 줄어든 인구에 맞춰서 다시 설계해야 한다. 과거의 시스템에 맞춰서 인구가 늘어나야 하니까 애를 낳으라고 강요하지 말고, 애 안 낳는 사회를 기본값으로 두고 시스템으로 바꿔야 한다. 경제성장을 멈추고 기후위기를 잡고 고령 인구도 이후 세대에 빚지지 않는 방식으로 충만하게 살아갈 수 있는 시스템을 상상해야 한다. 이제는 정부와 지자체가 우리에게 설득될 시간이다.

태그:#비혼, #비출산, #데드크로스, #경제성장률, #인구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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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의 몸과 섹슈얼리티를 주제로 운동하는 불꽃페미액션 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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