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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지방법원 제11형사부(재판장 박주영 부장판사, 김동석·황인아 판사)가 2019년 7월 선고한 '아동학대치사' 사건 판결문 일부. 재판부는 "그 어떤 이유를 갖다 대도 아이를 학대하고 죽은 것에 대한 합당한 이유가 될 수는 없다"라고 밝혔다.
 울산지방법원 제11형사부(재판장 박주영 부장판사, 김동석·황인아 판사)가 2019년 7월 선고한 "아동학대치사" 사건 판결문 일부. 재판부는 "그 어떤 이유를 갖다 대도 아이를 학대하고 죽은 것에 대한 합당한 이유가 될 수는 없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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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 사망자의 마지막 이름이 부디 '○○이'이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2019년 7월 징역 7년이 선고된 어느 '아동학대치사' 사건의 판결문 일부다. 통상 판결문은 건조한 문체로 쓰이지만, 이 판결문은 그렇지 않았다.

재판부는 "유리한 정상을 모두 참작하더라도 자기 아이의 생명을 자신의 손으로 앗아간 이 어이없고 참담한 결과에 대한 엄중한 책임을 피고인은 면할 수 없다"라며 "그 어떤 이유를 갖다 대도 아이를 학대하고 죽인 것에 대한 합당한 이유가 될 수는 없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특히 재판부는 '양형이유'에 공을 들였다. 대개 양형이유 부분은 1~2쪽 분량인데 이 판결문에선 그 부분만 20쪽에 달했다. 아동학대 현황 및 가정폭력·아동학대의 폐해를 설명하며 총 5편의 정부 보고서 및 논문도 인용했다. 이와 관련해 재판부는 이렇게 설명했다.

"양형의 이유를 상세히 부연하는 이유는 아동학대의 폐해가 선연히 드러난 이 사건을 꼼꼼히 기록하고 들여다봄으로써 우리 사회 구성원들 모두 아동학대의 원인과 그 심각성을 다시 한 번 깨닫고 우리 사회로부터 아동학대를 영원히 추방하고자 함에 있다."

해당 판결문을 쓴 재판부는 울산지방법원 제11형사부(재판장 박주영 부장판사, 김동석·황인아 판사)다. 이 재판부는 최근 몇몇 판결로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재판부는 지난해 6월 이른바 '동반자살'을 시도하다 살아남은 모친에게 징역 4년을 선고하며 "동반자살이란 표현에 숨겨진 잘못된 인식을 걷어내야 하며 이 범죄의 본질은 자신의 아이를 제 손으로 살해한 가장 극단적 형태의 아동학대"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10월엔 가출 청소년을 유인해 성매매를 강요한 피고인들에게 중형을 선고하면서 '피해자들이 자발적으로 성매매에 임했다'는 피고인 측 주장을 "순수한 자발적 성매매는 없다"고 배척한 바 있다.

71일의 삶
 

앞서 언급한 아동학대치사 피고인인 남성 A씨는 아내와 함께 집에서 '온라인게임 아이템 채굴'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사건이 벌어진 2018년 하순엔 3500만 원 상당의 대출금을 갚지 못해 추심업체로부터 강제집행 신청이 들어온 상황이었고, 아이가 폐렴으로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다.

이후 퇴원한 아이가 깊이 잠들지 못하고 울며 보채자 A씨는 자신이 하는 일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샤워타월로 아이의 몸통과 다리를 묶기 시작했다. 아이가 생후 50일 정도 된 시점이었다. 이후엔 아이가 잠들지 않고 운다는 이유로 아이의 머리 쪽을 세 차례 가격하기도 했다. 다음날 이상 증세를 보인 아이는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이틀 후 세상을 떠났다. 생후 71일이던 날이었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 아이는 회생이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A씨는 아이가 그렇게 된 이유를 거짓으로 진술하기도 했다. A씨는 현장검증, 부검, 거짓말 탐지기 조사 등을 근거로 검찰이 범행을 추궁하자 범행을 자백했다. 아래는 최초 아동학대 신고자의 진술이다.

"심정지의 위급한 상태로 병원에 후송되어 왔고, 심폐소생술을 실시하여 혼수상태로 중환자실로 이송함. (아내가) 우유를 먹이다 바닥에 떨어뜨렸다는 피해아동의 부친 진술에 따라 추가 검사한 결과, 머리 부위 및 갈비뼈 양쪽 부위에 다발성 골절이 의심된다고 함.

머리 부위엔 소량의 출혈이 있고 갈비뼈 부위엔 양쪽 4~5군데 골절이 있는데 이는 병원에서 실시한 심폐소생술로 인해 발생한 골절뿐 아니라 이전에 어떤 충격으로 생긴 골절 흔적으로 추정. 생후 2개월(71일)에 불과한 아기에게 생길 수 있는 흔한 골절이 아니라고 판단되며 아기를 떨어뜨렸다는 부모의 진술로 보아 아동학대가 의심되어 신고함."


"특례법 있음에도..."

재판부는 판결문을 통해 '아동학대 현황 및 가정폭력과 아동학대의 폐해'를 4쪽에 걸쳐 설명했다. 재판부는 "2014년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 제정되었음에도 2016년 아동학대 신고가 3만 건에 육박한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아동학대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부분"이라며 "이 수치는 일부 중복신고를 감안하더라도 경각심을 갖기에 충분하다"라고 지적했다.

"2010년 국내 조사에 의하면 가정폭력 피해자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유병률은 45~84%에 이르며 이는 다른 외상에 의한 PTSD 유병률에 비해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최근에는 가정폭력 피해나 아동학대 피해와 같이 대인간 폭력을 지속적이고 장기적으로 경험하는 경우 기존의 PTSD로 모두 설명할 수 없는 매우 복합적인 증상을 보이므로 이를 '복합성(Complex) PTSD'라고 명명한다. 이는 일회적이고 단순 외상으로 인한 불안장애와 달리 다양하고 심각한 증상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아동학대는 단순한 타박상, 골절 등에 그치지 않고 사망, 정신지체와 언어장애, 신경학적 이상, 지능부족, 심리적·정서적 후유증을 유발한다고 보고되고 있다. 나아가 자아기능 손실, 급성불안 반응, 병적 대인관계 유발, 원시적 방어기제 및 충동조절 손상, 자학적·파괴적 행동 등의 증상을 보이는 것으로 조사된 바 있다. 특히 부모로부터 신체적 폭력을 경험한 자녀들은 자긍심이 손상되거나 나약함을 보이며 과잉행동장애로 인한 집중력의 결함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재판부는 정인이 사례에서도 드러난 아동학대 대응 시스템의 문제를 지적하기도 했다.

"아동학대 사건이 발생하면 최우선적으로 현장출동과 조사, 아동보호 등의 조치가 필요한데 현장조사 중 상담원 단독조사가 56%인 것 역시 초기대응에 문제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부모에 의한 학대가 80%이고 발생장소 중 가정이 82%이어서 이를 외부에서 인지하고 대처하는 것에 어려움이 크다는 점이 아동학대의 효과적 대응을 어렵게 하는 가장 큰 요인으로 지목된다. 부모 중 한 명에 의한 학대를 인지한 남은 부모에게 신고의무를 부과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적이 있다.

특례법의 제정으로 아동학대범죄에 대한 법원, 수사기관 및 아동보호기관 등이 개입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됐고 피해아동에 대한 보호서비스뿐 아니라 가해자에 대한 제재조치에 대해서도 규정하고 있음에도 아동학대 사건은 계속 일어나고 있다. 2017년 조사에 의하면 아동학대는 2만 2367건에 사망자는 37명이었다."
 

"사회도 일조"
 
박주영 울산지방법원 제11형사부 부장판사.
 박주영 울산지방법원 제11형사부 부장판사.
ⓒ 이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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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는 아동학대 범죄의 사회적 책임을 거론하기도 했다. 먼저 "학대로 사망한 아이들 가정의 절반 가까이가 가정불화를 겪었고 그 이면에는 실직이나 경제적 궁핍 등의 원인도 자리 잡고 있다"라며 "이 사건과 같은 아동학대 피해자들의 안타까운 죽음에는 빈곤과 가정불화, 양육자의 우울증에 더해 방임에 대한 우리 사회의 낮은 인식 수준도 일조한 경우가 많았다"라고 말했다.

이어 "모든 아동학대 가정 역시 누군가의 이웃이다"라며 "어려운 환경에서 아이를 양육하는 가정에 대한 사회적 배려와 지원, 가정폭력과 아동학대에 대한 주위의 적극적 개입과 신고, 단호한 처분이 아동학대를 방지하기 위해 무엇보다 절실하다는 점을 먼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강조했다.

더해 재판부는 '학대의 대물림'을 이야기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초등학생 시절부터 주사가 있었던 아버지에게 이유 없는 체벌을 받았고 성인이 되어서까지 아버지의 폭행이 있었다는 조사결과로 볼 때 가정폭력의 후유증이 일부 발현된 측면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 점과 함께 재판부는 ▲ 자백 후 범행을 깊이 반성하고 있는 점 ▲ 아이가 폐렴에 걸렸을 때 병원에 입원시키며 최소한의 조치는 취했고, 첫째 아이는 육체적·정신적으로 학대받은 정황이 없는 등 이 사건 외 평소 폭력적 성향이 강하진 않았던 것으로 보이는 점 ▲ 경제활동에 의지를 갖고 나름대로 성실히 살았던 것으로 보이는 점 ▲ 가족과 지인이 선처를 호소하고 있는 점 등을 피고인 양형의 유리한 정상으로 삼았다.

하지만 재판부는 "유리한 정상을 모두 참작하더라도 자기 아이의 생명을 자신의 손으로 앗아간 이 어이없고 참담한 결과에 대한 엄중한 책임을 피고인은 면할 수 없다"라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은) 방어능력이 전무한 영아에 대한 범행"이라며 "육아의 고통은 부모라면 누구나 겪는 것이며 양육은 부모로서 피할 수 없는 책임이다. 뿐만 아니라 (피고인은) 첫째 아이가 있어 양육 지식도 어느 정도 있을 것으로 보임에도 범행에 이르렀기에 죄질이 대단히 불량하다"라고 밝혔다.

이어 ▲ 학대와 폭행의 정도가 가볍지 않고 피해아동이 사망하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가 발생한 점 ▲ 일반의 상식으로 상상하기 어려운 가혹행위를 저지른 점 ▲ 폭행으로부터 12시간이나 경과한 시점에 병원으로 후송했다는 점 ▲ 사건 초기 범행사실을 은폐하고 부인하면서 죄책을 전가하려고 한 점 등을 피고인 양형의 불리한 정상으로 삼았다.

"씻을 수 없는 범죄"

특히 재판부는 "가정은 아동이 처음으로 접하는 중요한 환경이자 부모를 통해 세상에 대한 지식을 습득하고 사회화의 기초를 형성하는 장이 된다"고 강조했다. 2008~2014년 아동학대로 목숨을 잃은 아이들의 이름에 이 사건으로 숨진 아이의 이름을 덧붙이며 "마지막 이름이길 간절히 소망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가정이야말로 '고달픈 인생의 안식처요 큰 사람이 작아지고 작은 사람이 커지는 곳'(H. G. 웰스)이다. 가정이야말로 '찬밥처럼 방에 담긴 아이가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장에 간 엄마를 걱정하며 애타게 기다리는 곳'(기형도 '엄마생각')이고, '십구문반 해진 신발을 신고 가족을 위해 온갖 험한 길을 마다않는 아버지가 사는 곳'(박목월 '가정)이다. 이처럼 소중한 가정 내에서 가족 구성원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저항할 수 없는 어린 아이를 학대하는 행위는 인간 생존의 최소 단위와 영혼을 파괴하는 씻을 수 없는 범죄다.

<한겨레신문> 탐사기획팀 다섯 기자는 2008년부터 2014년 사이 우리나라에서 학대로 사망한 아동의 실태를 꼼꼼하게 조사한 후 책을 펴낸 바 있다. 263명의 아이들은 '소풍가고 싶어요', '마이쭈 먹고 싶어요'라고 말했다고, 식탐이 많다고, 자주 운다고, 대소변을 못 가린다고, 부모에게 맞고 학대당하고 방치되다 사망했다. 다섯 기자는 아동학대의 참혹한 현실을 기록하여 고발하고, 아동학대 방지를 위해 이들을 반드시 기억하자는 의미에서 263명 아이들의 이름을 일일이 호명했다. △△, □□, ◇◇, ▽▽, ▲▲, ■■, ◆◆, ▼▼...

참담한 심정으로 이 아이들 이름에 이름 하나를 더한다. 태명이 '●●'인 아이, 아이의 부모가 바르고 곧은 성품으로 잘 살라고 '~○'에 '~○'자를 써서 이름을 지어준 아이 바로 '○○'이다. 아동학대 사망자의 마지막 이름이 부디 '○○이'이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이어 재판부는 "그 어떤 이유를 갖다 대도 아이를 학대하고 죽인 것에 대한 합당한 이유가 될 순 없다"고 재차 강조하며 아래와 같이 판결문을 마무리했다.

"'소풍 가고 싶어요', '마이쭈 먹고 싶어요'라고 말했다고, 식탐이 많다고, 거짓말을 잘 한다고, 고집이 세다고, 다른 아이에 비해 유별나게 행동한다고, 밥을 잘 안 먹는다고, 공부를 못한다고, 말을 안 듣는다고, 남의 물건을 훔친다고, 경제적 형편이 어렵다고, 육아에 무지하다고, 육아로 인한 스트레스와 고통이 극심하다고, 그 어떤 이유를 갖다 대도 아이를 학대하고 죽인 것에 대한 합당한 이유가 될 순 없다."
 
양부모 학대로 사망한 생후 16개월 정인이가 잠들어 있는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자연묘지에 5일 오전 추모객들이 적은 추모글과 함께 간식, 장난감이 쌓여 있다. 추모함에 쌓인 눈을 걷어내자 정인이의 생전모습이 담긴 사진이 보인다.
 양부모 학대로 사망한 생후 16개월 정인이가 잠들어 있는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자연묘지에 5일 오전 추모객들이 적은 추모글과 함께 간식, 장난감이 쌓여 있다. 추모함에 쌓인 눈을 걷어내자 정인이의 생전모습이 담긴 사진이 보인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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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아동학대, #정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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