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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를 애정한다면 그 애정하는 대상에 대한 걱정하는 마음이 따라 나오는 건 당연하다. 사랑하기에 걱정이 된다는 말은 별다른 설명이 없이도 쉽게 이해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애정하지 않는 존재에 대해 걱정하는 마음이 드는 것은 조금 다르다. 이 경우에는 약간의 설명이 필요하다. 사랑하지는 않지만 걱정은 된다는 그 묘한 감정을 분명하게 표현해내기 위해서는 말이다.

나에게 고양이는 그런 묘한 감정을 가져다주는 존재다. 
 
나는 고양이를 무서워하지만 동시에 고양이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나는 고양이를 무서워하지만 동시에 고양이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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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양이를 무서워한다. 내가 고양이를 무서워하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 때문이다. 첫째, 나에게는 왠지 모르게 매섭게 느껴지는 고양이의 눈. 둘째, 아기 울음소리 같이 들려 듣는 순간 괜스레 등골이 오싹해지는 고양이의 울음소리. 셋째, 이건 조금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좁은 울타리도 손쉽게 통과하는 고양이 특유의 용수철 같은 유연함. 이러한 이유들로 나는 고양이를 무서워하지만 내가 왜 이러한 이유들을 갖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모르겠다.

벌레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벌레를 싫어하는 이유는 대개 벌레가 징그럽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징그럽다'는 것, 그것이 벌레를 싫어하는 이유가 된다. 그리고 그 이유는 꽤 분명하다. 하지만 그들 역시 왜 본인들이 그런 '이유'를 가지게 되었는지, 왜 벌레를 징그럽다고 느끼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별다른 이유 없이 그저 그렇게 느껴질 뿐이기 때문이다. 내가 나만의 이유들로 고양이를 무서워하지만 내가 왜 그런 이유를 가지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처럼 말이다.

고양이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고양이를 무서워하는 나의 '이유'들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건 서로에게 느껴지는 부분이 다른 것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벌레를 싫어하지도 무서워하지도 않는 것처럼 말이다. 나에게는 벌레를 싫어하는 '이유'가 없다. 벌레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그 이유로 말하는 '징그럽다'가 나에게는 느껴지지 않는다. 나는 벌레를 징그럽다고 느끼지는 않지만, 고양이는 무섭다고 느끼는 사람일 뿐이다.

고양이든 벌레든 무언가를 무서워한다는 건 결국 사람마다 느껴지는 것이 다르기 때문일 뿐 그 누구도 이상한 게 아니다. 나는 때로 벌레를 무서워하거나 싫어하는 것은 큰 이상함 없이 받아들여지면서, 고양이나 강아지를 무서워한다는 것은 조금 특이하다는 듯이 여겨질 때 묘한 소외감을 느끼곤 했다. 나는 그냥 벌레는 무섭지 않지만 고양이는 무섭게 느껴지는 것뿐인데 말이다. 어떤 누군가가 고양이는 무서워하지 않으면서 벌레는 무서워하는 것처럼.

나의 경우 고양이를 무서워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고양이를 싫어하는 것은 또 아니다. 간혹 무서워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둘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나는 고양이를 무서워하지만 동시에 고양이가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바라기도 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저 평생 무서워하기만 했을 수도 있을 고양이라는 존재에 대해 내가 처음으로 안쓰러운 마음을 가지게 되었던 건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추운 겨울의 어느 날 만난 한 길고양이 때문이었다.

내 친구는 나와 달리 고양이를 무척 좋아했다. 여느 날처럼 같이 놀다가 늦은 저녁이 다 되어서야 버스를 타러 버스 정류장 앞에 도착한 친구와 나는 거기서 앙상하게 마른 길고양이 한 마리가 추위에 떨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 길고양이를 마주쳤을 때 나에게 처음 든 생각은 '불쌍하다'가 아니라 '무섭다'였다.

추운 날씨에 떨고 있는 고양이가 불쌍하긴 했지만 나에게는 그렇게 앙상하게 마른 고양이조차도 무섭게 느껴졌다. 이런 나와 달리 친구는 오래 굶주려 앙상하게 마른 고양이를 걱정하며 근처의 편의점에 들러 고양이가 먹을 참치 캔 하나를 사왔다. 그렇게 친구는 고양이를 쓰다듬으며 먹이를 건넸고 나는 그런 친구 뒤에 서서 가만히 친구와 고양이를 지켜보았다.

그날이 있고 며칠이 지난 저녁, 나는 혼자 그때 그 버스정류장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서 그 고양이를 다시 만났다. 고양이는 며칠 전 보았을 때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앙상하게 말라있었고, 나는 여전히 그런 연약한 고양이가 무서웠다. 그 날 그 시간에 버스정류장에는 나와 고양이 단 둘 뿐이었다.

추위와 배고픔에 지쳐 아무런 힘도 없어 보이는 고양이가 찬 길바닥에 앙상한 배를 내놓고 아무렇게나 누워있었지만 나는 애써 외면하려 했다. 하지만 그날따라 버스는 꽤 오랫동안 오지 않았고, 그렇게 시간이 지날수록 무서움보다는 이유 모를 죄책감이 강하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편의점에 들러 며칠 전 친구가 샀던 그 참치 캔을 사가지고 다시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벌벌 떨면서, 혹여나 그 고양이가 나에게 가까이 오지는 않을까, 내 손을 핥지는 않을까 겁내면서 마치 누가 보면 호랑이에게 먹이를 건네듯 나는 잔뜩 언 채로 온갖 경계를 보이며 낯선 사람을 경계할 힘마저 없는 그 고양이에게 참치 캔을 내밀었다.

고양이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겐 지극히 당연한 행동일 수도 있겠지만 나에겐 엄청난 용기를 낸 행동이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안쓰러움'이라는 감정이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이겼던 순간이었다.

앙상하게 말라 아무렇게나 누워있는 그 작은 생명체에 대한 안쓰러움이 그 생명체에 대해 내가 오랫동안 가지고 있던 '무서움'이라는 감정과는 별개로 존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안쓰러움'이 왠지 모르게 '무서움'이라는 감정보다 더 강하게 느껴졌기에 나는 그 고양이를 외면할 수가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결국 '권리'의 문제였던 것 같다. 나는 고양이에게 큰 애정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그건 고양이에 대한 나의 지극히 개인적인 선호일 뿐이다. 고양이에 대한 '선호'의 문제와 별개로 나는 고양이의 '권리'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음이 안타까웠고 마음 아팠다. 선호와 무관하게 고양이가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는 어느 순간에도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그냥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마땅히 존중받아야한다고 여겨지는 것처럼 고양이 역시 그냥 고양이라는 이유만으로 마땅히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존재가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를 이야기 할 때 그 존재에 대한 개인적인 감정은 중요하지도 않을 뿐더러 아예 별개의 문제이다. 누군가 나를 싫어한다고, 혹은 무서워한다고 해서 내가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마저 부정하고 든다면 나는 얼마나 억울할까. 그리고 그것은 얼마나 불합리한 일인가.

나와 친구가 아니라고 해서 그 사람의 불행이나 아픔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니고, 별 일이 아닌 것 마냥 쉽게 외면이 되지는 않는 것처럼 아마 나는 앞으로도 고양이와 친한 친구가 될 수는 없을 거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고양이에게 생기는 일련의 불행하고 불합리한 사건들이 아무렇지 않거나 별 일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지도 않을 것 같다.

나는 그들이 그들을 아껴주고 사랑해주는 그들의 좋은 친구들과 함께 아프지 않고 행복하길 바란다. 나는 비록 그들을 사랑해주는 좋은 친구가 되어주지는 못하겠지만 그들이 그들을 사랑해주는 친구들에게 사랑만을 받았으면 좋겠다.

어떤 존재를 싫어할 수도 무서워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을 싫어한다는 이유로 그 사람의 인권까지 무시하는 행동이 용인되지는 않는 것처럼, 고양이를 싫어한다고 해서 고양이의 권리를 무시하고 짓밟는 건 제대로 선을 넘는 행동이다.

그래서 나는 애정하지는 않지만 왜인지 참 걱정은 되는 그 녀석들의 권리가 어느 순간에도 반드시 지켜지기를 바라게 된다. 더 나은 환경에서 살아가기를 바라게 된다.

우리가 친하지는 않지만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인권 못지않게 동물권도 중요하다는 것이 모두에게 상식으로 여겨지는 세상에서 그 녀석들이 춥지 않기를 바라본다.

고양이, 나와는 친하지 않은 그 친구들이 꼭 행복하기를.

태그:#길고양이, #고양이, #동물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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