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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보지 마. 또 잠도 잘 못 자고 그럴 걸?"

얼마 전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정인이 편을 보기 위해 노트북을 열자, 남편이 다가와 나를 말렸다. 보고 나면 분명 마음이 너무 안 좋을 거라고, 힘들어하지 말고 그냥 덮어 두라고 설득했다.

사실 겁이 나기도 했다. 약자에 대한 폭력을 맞닥뜨리는 일은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 중 하나고, 이후 밀려오는 감정들을 감당하는 일은 늘 힘겨웠다. 하지만, 이번엔 남편의 말을 듣지 않았다.
 
 양부모 학대로 사망한 생후 16개월 정인이가 잠들어 있는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자연묘지에 5일 오전 추모객들이 적은 추모글과 함께 간식, 장난감이 쌓여 있다. 추모함에 쌓인 눈을 걷어내자 정인이의 생전모습이 담긴 사진이 보인다.
 양부모 학대로 사망한 생후 16개월 정인이가 잠들어 있는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자연묘지에 5일 오전 추모객들이 적은 추모글과 함께 간식, 장난감이 쌓여 있다. 추모함에 쌓인 눈을 걷어내자 정인이의 생전모습이 담긴 사진이 보인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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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개월 아기가 부모에게 맞아 사망한 사건. 뉴스를 통해 단편적인 소식만 듣고 있자니, '안 좋은' 장면이 자꾸 머리에 그려졌다. 답답해 하고 걱정하며 상상하느니 부딪혀 보고 불편함을 직시하는 게 낫겠다 싶었다.

그렇게 나는 <그것이 알고 싶다> '정인이는 왜 죽었나?-271일간의 가해자 그리고 방관자' 편을 시청했다. 각오하고 봤음에도 불편한 느낌은 피해갈 수 없었다. 하지만 방송을 모두 시청한 후 내 마음엔 불편한 감정보다 한 단어가 더 생생히 새겨졌다. '편견'. 이 프로그램의 사회자 김상중은 반복해서 "편견이 가장 무섭다"며 "학대 의심자와 아이가 잘 지내는 듯해서, 학대 의심자가 좋은 일을 많이 하는 인물이어서. 그 편견이 아이들의 목숨을 잃게 한다"라고 강조했다.

나는 곰곰이 생각했다. '도대체 좋은 부모에 대한 편견이란 무엇일까? 좋은 부모라는 건 어떤 걸까?' 많은 질문들이 마음에 쌓여갔다. 그러던 중 지인의 추천으로 이희영 작가의 장편소설 <페인트>(창비, 2019)를 만났다. 아이들이 부모를 면접해 선택한다는 기발한 발상에서 시작한 이 소설은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을 주었다.

'페인트하다'는 말
 
 이희영 장편소설 '페인트'
 이희영 장편소설 "페인트"
ⓒ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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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 아이들이 살고 있는 곳은 NC센터다. 출산율이 낮아지고 아이를 키우는 것을 원치 않는 부모가 많아진 시대. 국가에서는 부모가 키우지 않기로 결심한 아이들을 대신 양육하는 NC센터를 설립했고, 아이들은 이 곳에서 18살이 될 때까지 지낸다.

아이들은 헌신적인 가디(아이들을 돌보는 선생님)들과 함께 적절한 규칙 안에서 안정감 있게 성장한다. 그리고 13살이 되면 아이들은 입양을 원하는 '부모'를 면접하고 선택할 기회를 얻게 된다. NC센터에서 아이들이 아무리 잘 자란다고 해도, 바깥 세상은 NC출신 아이들에 대한 편견과 차별로 가득 차 있다. 때문에 아이들은 부모를 선택하는데 매우 열심이다.

좋은 부모를 선택해 NC센터를 나가게 되면 'NC출신'이라는 꼬리표는 완전히 지워지고, 바깥 세상의 아이들과 똑같이 살 수 있게 된다. 센터의 가디들은 아이들에게 '좋은 부모'를 연결해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최종 선택권은 아이들에게 있다. 아이들은 좋은 부모를 선택하기 위해 부모 면접을 하는 일을 '페인트한다'고 부른다. 부모를 통해 자신의 삶에 새로운 색을 칠한다는 의미인 게다.

부모를 선택할 수 있는 아이들. 이미 부모가 되어버린 나지만 '내가 부모를 선택했으면 어땠을까'를 생각하니 금세 소설 속 아이들에게 감정이 이입됐다. 태어나면서 자동적으로 주어진 부모라는 조건이 지난 40여 년 나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를 잘 알기에, 이 아이들이 되어 보는 상상만으로도 전율이 일었다.

아이들이 생각하는 '좋은 부모'

가디들은 매우 까다롭게 아이들과 면접할 예비 부모들을 선별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적당한 수준의 경제력, 교육 정도, 품위 있는 행동,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 이런 것들이 가디들이 중시하는 부모가 될 자격들이다.

아이들은 대체로 이런 부모들을 선택해 NC를 떠난다. 하지만, 이 소설의 주인공 제누301은 다르다. 17세. 이제 곧 NC를 떠나야만 하는 그는 딱 봐도 좋아 보이는 예비 부모들에게 매번 퇴짜를 놓는다.

그런 제누301은 어느 날 하나-해오름 부부와 '페인트' 할 기회를 갖는다. 그런데 하나-해오름 부부는 다른 예비부모들과는 많이 다르다. 자신들이 얼마나 제누301을 원하는지를 표현하는 대신, 솔직하게 자신들의 과거와 소망을 말한다.

"사실 나는 엄마에게서 상처를 많이 받았거든. (…) 내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한 아이의 성격과 가치관, 나아가서는 인생까지 좌지우지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덜컥 겁이 났거든."
"인격이 형성된 후 부모를 만나면, 그러니까 전혀 다른 환경에서 자라 아이가 어느 날 가족이 되면 과연 어떤 생활을 하게 될지. 그 이야기를 써보고 싶었어."
 

가디들은 하나의 입에서 이 말이 나오자마자 면담을 중단한다. 하지만 제누301은 "너를 단순히 글쓰기 소재로 생각하는 사람들이야"라며 안 된다고 잘라 말하는 가디를 이렇게 설득한다.
 
"세상의 모든 부모는 불안정하고 불안한 존재들 아니겠어요? 그들도 부모 노릇이 처음이잖아요. 누군가에게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는 건 그만큼 상대를 신뢰한다는 뜻 같아요. 많은 부모가 아이들에게 자기 약점을 감추고 치부를 드러내지 않죠. 그런 관계는 시간이 지날수록 무너져요."(125쪽)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며 정신이 번뜩 났다. 제누301이 부모를 고르는 기준이 너무나 현명했기 때문이다. 그는 알고 있었다. 좋은 부모에게 필요한 것은 '정신화' 능력임을 말이다.

부모에게 반드시 필요한 '정신화' 능력

정신분석학 교수 피터 포나기(Peter Fonagy)가 명명한 심리학 용어인 '정신화(mentalization)'는 자신의 마음 상태를 성찰하고 이를 바탕으로 타인의 마음에도 나름의 이유가 있음을, 사람들은 저마다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음을 이해하는 능력이다. 이는 지금 나의 감정과 생각들이 어디서 연유했고, 이것이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인식하는 데서 시작된다.

제누301이 마음을 열었던 하나는 자신이 부모에게 받은 상처를 알고 있었고, 이것이 자신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잘 이해하고 있었다. 이런 성찰은 자신의 부모가 그랬던 것처럼 나 역시 타인에게 무의식적으로 상처를 줄 수 있다는 통찰로 이어진다. 이는 자신의 관점을 강요하지 않고 타인의 관점을 이해하는데 밑바탕이 되는 태도다. 또한, 타인을 통제하려 드는 폭력을 제어하는 기반이 된다.

하나는 제누301과 처음 만난 날, "엄마를 면접 보면 어떤 기분일까?"라며 제누301의 마음을 궁금해 한다. 이런 태도가 바로 타인의 감정을 자신의 방식으로 판단하지 않고 이해하려 하는 '정신화'된 태도 중 하나다. 

소설 속 인물들의 모습에서 '정신화'라는 단어를 떠올리자 그간의 아동학대 사건들의 본질이 보이는 듯했다. 자녀에게 물리적 폭력을 가할 만큼 요동치는 감정을 통제하지 못한다는 건, 자신의 감정을 성찰하는 능력이 없다는 의미다.

신체적 폭력뿐만이 아니다. 부모인 내가 원하는 만큼 공부하지 않는다고, 성과를 내지 못한다고 아이를 다그치며 정신적 폭력을 가하는 수많은 부모들 역시 자신의 마음을 성찰하지 못한 채, 아이가 자신과 다른 마음을 가질 수 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마찬가지다. 

즉 '정신화' 능력의 손상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부모-자녀 사이 폭력의 근본 원인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 널리 퍼진 '좋은 부모'의 조건엔 성찰하고 정신화하는 능력은 포함되지 않는다.

경제적 능력이나 사회적 지위 등 외적인 조건들을 갖추고 육아에 대한 열정과 지식,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을 지닌 자를 '좋은 부모'라고 칭한다. 하지만 소설 속 제누301이 간파했듯, '정신화'가 배제된 사랑은 자칫 "이게 다 너를 위해서야, 하면서 사랑을 가장한 억압과 통제"로 작동할 수 있다.

'좋은 부모라는 편견'은 결국 사회적으로 유능하고 좋은 사람으로 보이는 부모가 행한 폭력에 대한 우리의 판단을 흐린다.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도 강조했듯 이 같은 편견은 정인이 사건의 핵심과도 맞닿아 있다. 정인의 부모가 '좋은 부모로 보인다'는 편견은 전문가의 세 차례에 걸친 신고와 조언도 무시할 만큼 강력하게 작동했고 결국 한 생명을 앗아갔다.

'좋은 부모'의 기준, 이제는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위에서 열거한 외적으로 '좋은 부모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정신화' 할 수 있는 능력을 좋은 부모의 기준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부모뿐만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성찰하고, 타인의 '다른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 기본이 되는 교육적,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럴 때 이 끈질긴 폭력과 학대의 고리를 명확히 끊어낼 수 있을 것이다.
 
"하나와 해오름은 명령이 아닌 질문과 반성을 할 수 있는 부모였다. 마음과 마음 사이에 일어나는 마찰로 어려움을 겪게 할 사람들이 아니었다. 하나와 해오름은 자신들의 부모에게서 받은 상처와 문제들을 반복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것으로 되었다. 두 사람은 부모 준비가 끝난 사람들이었다." (212쪽)

소설 속 이 문장이 유독 마음에 와 닿는 요즘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필자의 개인블로그(https://blog.naver.com/serene_joo)와 브런치(https://brunch.co.kr/@serenity153)에도 실립니다.


페인트 (반양장) - 제12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이희영 (지은이), 창비(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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