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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편집자말]
 고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이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사위 전체회의 참관 중 후퇴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 대해 발언하려다 제지당하고 있다.
 고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이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사위 전체회의 참관 중 후퇴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 대해 발언하려다 제지당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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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3월 1일 국회 본회의, 테러방지법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 33번째 주자로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단상에 올랐다. 그는 "(당 지도부의 필리버스터 중단 결정에) 화난 국민들의 마음 속 노여움을 제가 다 안고 가겠다. 제게 분노의 화살을 쏘십시오"라며 눈물로 호소했다.

"대신 여러분이 분노하신 만큼 4.13 총선에서 야당에게 표를 주십시오. 야당이 이겨야 평화롭고 행복한 대한민국을 만들 수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에 힘을 주시고 야당을 키워 주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대한민국은 영원히, 내 아들 딸이 기를 못 펴는 나라가 됩니다. 기득권 권력에 복종하는 자의 나라가 됩니다. 그런 대한민국에 무슨 미래가 있습니까."

그로부터 5년 가까이 흘렀다. 그 사이 다수당의 얼굴이 달라지고, 촛불을 거쳐 정권교체가 이뤄졌다. 다수당이 되면 가장 먼저 폐지하겠다고 했던 테러방지법 이야기를 꺼내는 이는 몇 년째 찾기 힘들다. 오히려 코로나19처럼 위중한 감염병이 돌 때 검사를 거부하는 행위 등을 테러로 간주, 테러방지법 적용 대상을 넓히는 개정안(이병훈 의원 발의)이 민주당에서 나왔다.

장담한다. 지금이라도 '테러방지법은 어떻게 할 겁니까?'라고 물어보면 민주당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리라.

"다음에."

'조연'으로 남길 원했던 그들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왼쪽)와 김태년 원내대표가 11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논의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왼쪽)와 김태년 원내대표가 11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논의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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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은 줄곧 '우리가 집권을 하면' '우리가 다수당이 되면'이라고 말해왔다. 이 모든 것이 실현된 2021년 1월, 민주당은 압도적 지지를 받고 절대적 실망을 안겨준 여당이 됐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처리 과정이 그 면모를 낱낱이 보여줬다. 부동산 관련법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민주당 지도부가 여러 번 강조했던 "책임 정치"는 중대재해법 앞에서 멈췄다.

당 대표가 지난해 9월 7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콕' 집어 얘기한 법안이었다. 하지만 민주당은 줄곧 침묵했고, 오히려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이 더 현실적'이라는 주장이 솔솔 피어나왔다. 그 무렵 이낙연 대표도 갑자기 언론 인터뷰에서 "중대재해법을 뒀을 때 기존의 산안법과 중복 처벌 우려가 있다(10월 27일자 <한겨레>)"고 했다.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과 주호영 원내대표가 중대재해법에 관심을 보인 다음날에야 박주민 민주당 의원이 따로 법안을 냈다. 기자들은 수시로 "당론으로 추진할 겁니까?"라고 물었지만, 지도부는 말을 아끼고 아끼다 '당론이 아닌 당의 주요 입법과제'로 정리했다. 그럼에도 법안 처리 의사를 확인하는 취재진의 질문이 이어지자 이낙연 대표는 12월 기자간담회에서 "이미 10번이나 한다고 했다, 오늘이면 11번째"라며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과 주호영 원내대표가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과 주호영 원내대표가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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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수 여당은 '조연'을 자처했다. 지난해 크리스마스 이브날 농성장을 찾은 김태년 원내대표는 법 제정을 촉구하며 14일째 단식 농성 중이던 '김용균 어머니'와 '이한빛 아버지'에게 "야당이 법안 심의를 거부하는 상태라 여러 악조건이 있다"고 했다.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은 "여태까지 여당이 많은 법을 다 통과시켰는데, 왜 이 법은 꼭 야당이 있어야 하냐"고 되물었다. 민주당은 별다른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지난 8일 오전 법사위 전체회의에서는 최강욱 열린민주당 의원이 5인 미만 사업장을 배제한 여야 합의안을 그대로 처리하려는 윤호중 법사위원장에게 이의를 제기했다. 윤 위원장은 "양 간사들이 노력을 많이 했는데 동의가 안 됐다"며 국민의힘 간사 김도읍 의원에게 "수용 가능하냐"고 물었다. 김 의원은 기가 차다는 듯 "민주당이 밀어붙여서 날치기하든가, 지금까지 했던 대로 하세요"라고 답했다.

결정권이 소수인 보수야당에 있는 듯한 장면이 연출됐다. 발의된 법안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던 '기업'이란 두 글자는 쏙 빠지고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 법안명이 됐다. 항의하던 김미숙 이사장 등은 회의장 밖으로 쫓겨났다.  

두 번째 걸음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안이 통과된 후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앞 중대재해기업처벌법제정운동본부 해단식에 들러 고(故) 이한빛 PD의 아버지 이용관씨와 고(故)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 강은미 정의당 원내대표와 대화하고 있다.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안이 통과된 후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앞 중대재해기업처벌법제정운동본부 해단식에 들러 고(故) 이한빛 PD의 아버지 이용관씨와 고(故)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 강은미 정의당 원내대표와 대화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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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안 심사를 주도한 백혜련 민주당 의원은 본회의에서 "한 술에 배부를 순 없다"면서도 "이 법이 우리 사회를 안전사회로 한 단계 나아가게 하리라는 믿음이 있다"고 말했다. 송기헌 의원도 법안 통과 후 입장문을 내고 "비록 미흡할지라도 이 법으로 우리 사회는 보다 안전한 사회로 분명히 한 발 나아갈 것"이라고 밝혔다.

맞다. 때로는 한 발짝을 내딛는 일조차 어렵다. 첫 걸음에 담긴 선의와 노고를 의심하진 않는다. 문제는 두 번째 걸음을 향한 의지다. 법 시행 자체가 1년 뒤이고, 50인 미만 사업장 유예기간은 3년이다. 이즈음이면 21대 국회 임기가 끝나는데, 중대재해법의 "다음에"는 그 안에 올까? 많은 사람들은 테러방지법의 선례를 보며 기대조차 하지 않는다.

그 사이에 또 노동자가 일하다 죽는다. 10일 오후 8시 4분께 전남 여수시의 한 공장에서 석탄운송장비 입구의 잔탄을 제거하던 30대 노동자가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세상을 떠났다. 그에게 "다음에"는 없다.

이미 너무 많은 사람들의 "다음에"는 사라졌고, 사라질 것이다. 그런데도 민주당의 "다음에"는 도대체 언제 오는가. 오긴 하는가.

[관련 기사]
김용균 어머니가 올린 '중대재해기업처벌법' 국회 청원, 10만 돌파 http://omn.kr/1ozxk
정의당+국민의힘 압박 모양새... 이낙연 "네, 환영합니다" http://omn.kr/1qegh
'오락가락'하던 이낙연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원칙 지키겠다" http://omn.kr/1qjes
256명 죽어간 176일 동안, 중대재해처벌법 국회 심사 단 15분 http://omn.kr/1qtp0
용균엄마의 눈물 "중대재해법으로 알았다, 국회가 썩었다" http://omn.kr/1ralb
강은미도 울고, 유가족도 울고... '불청객' 된 중대재해법 http://omn.kr/1rbb3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안(대안)이 가결되고 있다.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안(대안)이 가결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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