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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의 사람이 취급하는 흙은 그저 흙일뿐입니다. 하지만 도공을 만난 흙은 그냥 흙에 머물지 않습니다. 생명을 갖게 되고, 가치를 갖게 됩니다. 도공이 빗어내는 자기는 생활도구로서의 가치에 머물지 않고 창작과 예술, 역사와 문화라는 가치까지 갖게 됩니다.

쌀도 마찬가지입니다. 기껏 밥이나 지을 줄 아는 사람이 갖게 되는 쌀은 밥을 지을 수 있는 쌀에 불과하지만 쌀을 재료로 활용할 줄 아는 사람을 만나는 쌀은 여러 가지 죽, 각양각색의 떡, 다양한 술, 조청은 물론 엿 등으로 만들어지며 가치를 더해갑니다.

불경 구절도 그런가 봅니다. 대개의 사람들이 접하는 불경 구절은 거창한 경전을 통해 접할 수 있는 부처님 가르침, 좋은 글귀로 인용할 수 있는 고전 정도에 그치기 십상입니다.

연꽃 핀 바다처럼 향기로운 <향수해>
  
<향수해>(지은이 도정 / 펴낸곳 담앤북스 / 2020년 12월 28일 / 값 14,000원)
 <향수해>(지은이 도정 / 펴낸곳 담앤북스 / 2020년 12월 28일 / 값 14,000원)
ⓒ 담앤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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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해>(지은이 도정, 펴낸곳 담앤북스)의 지은이이자, <불교신문>에 '80화엄 변상도로 보는 부처님 세상'을 연재 중인 도정 스님은 불경 속 120여 구절을 사는 이야기로 되새김질 해 들려주고, 한 수의 시처럼 읊어 감동을 더해 주고 있습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 어느 누구나 살아가면서 경험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편하게 듣거나 읽었을 뿐인데 어느새 공감하고, 느끼고, 깨닫게 되는 것은 불경으로 전하고자 했던 부처님 가르침에 버금입니다.

'불경'이라고 칭하지도 않고, 굳이 '부처님 가르침'이라고도 방점 찍지 않고 있지만 한 꼭지 한 꼭지의 글들을 산문처럼 읽고, 시를 읊듯 읊조리다 보면 시나브로 부처님 가르침임을 감지하게 됩니다.
 
"한쪽은 가짜 눈이고 다른 한쪽은 시력이 0.001입니다. 글이 코앞에 있어야 볼 수 있죠." 한 번은 서점에서 책 제목을 보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다가와서 왜 책의 냄새만 맡고 다니냐고 묻더라는 것이다.(중략)

그는 조심스레 고백한다. 제 직업이 안마사이지만 일을 할 땐 사람의 몸만 치료하는 게 아니라 독서를 통해 그의 고단한 영혼까지 주무르고 싶다고. -89쪽
 
한쪽 눈은 시력을 완전히 잃었고, 한쪽 눈은 시력이 0.001로 안마가 직업인 사람 이 야기입니다. 이 사람은 책읽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시력이 워낙 나쁘다보니 책을 읽으려면 코에 책이 닿을 만큼 바짝 들여다 대고 읽어야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그가 시력을 거의 잃은 사람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그가 책을 읽는 모습을 보며 '저 사람은 왜 책을 냄새만 맡지?'하고 궁금해 할 수도 있습니다. 또, 그가 시력을 거의 잃은 안마사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안마만 잘하면 되지 눈도 나쁜데 무슨 이유로 저런 모습을 하면서까지 책을 보려고 하는지'를 궁금해 할 수도 있을 겁니다. 

시력을 거의 잃은 안마사가 쉬 이해할 수 없을 모습으로 책을 읽는 까닭, '고단한 영혼까지 주무르고 싶다'는 설명(대답)은 내로라하는 스님이 하는 그럴싸한 법문도 아니고 거창한 경전에서나 읽을 수 있을 법한 오매한 불경 구절이 아닙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듣는 이를 고개 끄덕이게 하는 감동입니다.

불경 구절을 다섯 장르, 기쁨, 위로, 사랑, 외로움, 신심으로 나누어 정리하고, 한 구절 불경에 덧댄 한 꼭지 이야기는 위에서 인용한 안마사의 이야기처럼 사람들 사는 모습이고,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연출해 낼 수 있는 인생팔고 오욕칠정입니다.

불경을 읽는다는 마음 없이, 그냥 사람 사는 이야기를 듣는 듯한 느낌으로 이 책을 읽다 보면 어느새 부처님 가르침을 새기게 됩니다. 이 책은 부처님 가르침이 우리들과는 마냥 동떨어진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들 삶 속에 부처님 모습이 있고 더불어 사는 모습 속에 부처님 가르침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줍니다. 

덧붙이는 글 | <향수해>(지은이 도정 / 펴낸곳 담앤북스 / 2020년 12월 28일 / 값 14,000원)


향수해 - 연꽃 핀 바다처럼 향기로웠다

도정 (지은이), 담앤북스(2020)


태그:#향수해, #도정, #담앤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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