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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 의사결정, 결심, 나아가 의지나 신념과 같은 단어들이 사람들의 생각 속에서 사라질 날이 올까? 자신의 선택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 더 나은 해답을 찾아 고민하는 모습도 더는 찾아볼 수 없게 될까? 인공지능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데이터의 분석을 통해서 내놓은 선택을 따르게 될 때 우리의 삶은 어떻게 될까?

미래의 기술에 관한 책이나 영화를 보면 대부분 황폐해진 지구의 모습을 보여주거나 인공지능을 탑재한 기계와 싸우는 모습을 그리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장면을 보여주고 이야기를 들려줘도 점점 의사결정을 컴퓨터에 의존하게 되는 이유를 생각해본다.

사람은 사람을 신뢰하지 않는다. 사람이 사람을 신뢰하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가 많다. 반대로 사람이 사람을 신뢰해서 생기는 문제도 많다. 21세기 초반인 지금까진 전문가의 의견은 믿고 따르는 편이다.

하지만, 점점 금전적인 목표가 설정된 전문가 그룹의 의견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적절한 솔루션을 제공해주는 것인가? 돈을 벌려고 그러는 것인가?' 그렇기 때문에 자신에게 발생하는 문제를 컴퓨터 알고리즘으로 해결하려는 시도가 늘어가고 있다. 다시 말하면 인공지능에게 판단을 맡기는 셈이다. 그것은 쉽게 갈등을 피하는 방법처럼 보인다.
 
<사냥꾼, 목동, 비평가>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이트 지음. 이미지출처 : 열린책들 www.openbooks.co.kr
 <사냥꾼, 목동, 비평가>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이트 지음. 이미지출처 : 열린책들 www.openbook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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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를 맹신하는 사람도 있다. 요즘엔 거의 모든 정보가 유튜브에 있다며 구독자가 많은 콘텐츠를 신뢰하는 것이다. 그곳에서 보고 들은 이야기를 진실이라고 믿고 다른 사람에게도 같은 내용을 설파한다. 유튜브의 콘텐츠엔 좋은 정보가 많은 만큼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가끔 사무실에서 음악을 듣기 위해 광고 없는 플레이 리스트를 검색해서 재생하면 어김없이 광고가 나오는 경우가 더 많다. 제목부터 거짓을 말하는 셈이다. 

구독자 수가 신뢰도와 비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우린 광고를 피하기 위해서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거기에 유튜브 콘텐츠를 제작하여 배포하는 사람들의 의도까지 생각해야 하는 시대이다. 저 사람은 왜 영상을 만들까? 돈을 벌기 위함인가? 아니면 단순히 관심을 받기 위한 행동인가. 아니면, 자신의 기록을 남기기 위함일까.
 
인간 삶의 걱정거리와 꼭 필요한 것들은 문제와 해결의 도식에 따르지 않는다. 우리 삶에서 가치 있고 중요한 것들은 거의 모두 그 자체로 문제도, 해결도 아니다. 우리의 모순과 특성, 가공되지 않은 경험, 다채로운 기억, 열정, 성공과 패배는 누군가 그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한다고 해서 없어지지 않는다. 좋거나 고통스러운 과거, 떨쳐 버렸거나 지금껏 끌고 온 과거의 세례를 받지 않고 찾아오는 미래는 없다. 인간은 현재의 자기 모습을 사랑한다.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인간은 자신의 경험을 높이 평가한다. 그것은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자신의 경험이기 때문이다. 나이 들어 구부정해졌을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의 역사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 <사냥꾼, 목동, 비평가>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

의사 결정을 회피하고 인내력이 줄어들면서 조급함은 늘어나고 있다. 디지털화는 우리에게 편리함이란 이익을 가져다준 대신 시간이 빠르게 흐르는 것처럼 느끼게 하고 있다. 최근 많은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 대신 미디어에서 나온 것을 보고 듣고 전하는 현상이 두드러지는 것 같다. 이야기를 듣고 난 후 질문을 해보면 자신의 생각을 말하지 못하는 경우를 자주 만나게 된다. 이러다 디지털 앵무새가 되어버릴까 두렵기도 하다.
 
기술자들은 이제껏 인간을 제대로 이해한 적이 한 번도 없었고, 금융 투기꾼들은 인간의 본질이 어떤 것이건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왜 그런 사람들에게 우리의 미래를 맡겨야 할까? - <사냥꾼, 목동, 비평가>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이트

스마트 기기는 인간의 기억력을 앗아가고, 검색 엔진이나 소셜미디어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인간의 판단력을 앗아간다. 전화번호를 외우던 시대가 있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리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주산이나 암산 등의 훈련을 통해서 기억력을 향상하는 노력을 했다. 전자계산기가 주판을 대신한 이후 연산능력과 기억력도 점점 낮아지고 있다.

예로부터 신언서판(身言書判)이라고 해서 외모, 말, 글, 판단력 네 가지를 보고 사람을 평가한다고 했다. 판단력을 알아보는 것이 외모, 말, 글보다 훨씬 어렵지만 가장 중요한 항목이기도 하다. 그런 판단력을 키우는 연습 대신 인터넷에 판단을 위임해버린다. 판단을 위임하는 것이 책임을 위임하는 것이 아닌데도 말이다. 
 
그럼에도 사회에는 가치가 필요하고, 그 점에 대해서는 당연히 사회적 합의가 존재한다. 관용은 훌륭한 가치이지만 완벽하지는 않다. 다원주의는 바람직하지만 항상 모든 영역에서 그런 것은 아니다. 자유는 좋은 것이지만 사회적 안전망과 짝을 이룰 때만 그렇다. 낯설고 이질적인 것은 우리에게 자극을 주고 우리의 문화를 풍성하게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를 불안에 빠뜨릴 때가 많다. 가치의 상실에 대한 불안은 크고 중요한 주제이다. - <사냥꾼, 목동, 비평가>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이트

정치적 혹은 사회적 이슈에 가려져 정작 중요한 것을 간과하고 있는 건 아닌가. 급변한다는 말이 부족할 정도로 세상과 사람의 가치관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 디지털이 가져다준 편리함에 우리가 잊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생각할 기회를 갖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 https://brunch.co.kr/@yoodluffy/134


사냥꾼, 목동, 비평가 - 디지털 거대 기업에 맞서 인간적 삶을 지키는 법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 (지은이), 박종대 (옮긴이), 열린책들(2020)


태그:#사냥꾼,목동,비평가, #미래사회, #프레히트, #독일철학자, #박종대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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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에 회사에 다니고 주말에 글을 쓰는 주말작가입니다. 다양한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도록 좋은 기사를 쓰고 싶습니다. https://brunch.co.kr/@yoodluff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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