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서울시가 한국방송연기자노동조합과 함께 연기자들의 출연 계약 및 보수 지급 관행을 조사한 결과, 방송출연계약서 작성률이 50%를 밑도는 등 대중문화예술계의 불공정 계약 관행이 여전한 것으로 드러났다. 응답자 10명 중 8명(79.4%)은 1000만원 미만의 연소득으로 생활고를 호소했다. <오마이뉴스>가 현직 연기자 및 유관단체와의 연쇄 인터뷰를 통해 그 실태를 짚어본다.[편집자말]
SBS 인기 개그프로그램이었던 <웃음을 찾는 사람들>(웃찾사).
 SBS 인기 개그프로그램이었던 <웃음을 찾는 사람들>(웃찾사).
ⓒ SBS 홈페이지

관련사진보기


2020년 6월 KBS <개그콘서트>(아래 개콘)의 폐지는 개그맨들에게 일대 사건이었다. 1969년 8월 MBC <웃으면 복이 와요>부터 시작된 지상파 코미디 프로그램의 시대가 막을 내렸기 때문이다. 코미디 연기를 모르는 유명인들의 '관찰 예능'이 그 자리를 빠르게 채웠고, 개그맨들은 하나둘 설 자리를 잃어갔다.

"밥상 차릴 때 김치 싫다고 안 올리는 법 없잖아요? 저희 같은 사람에겐 출연료 올려달라는 요구 자체가 사치스러워요. 서고 싶은 무대 자체가 없으니..."

기자가 6일 비대면 인터뷰한 개그맨 A씨는 2017년 5월 SBS <웃음을 찾는 사람들>(아래 웃찾사)가 폐지된 순간을 잊지 못했다. 갑자기 직장을 잃은 게 서러웠지만, 직장을 나오는 과정도 아름답지 않았기 때문이다.

"2016년에 뽑은 개그맨 16기 13명은 'SBS 공채'라는 타이틀과 함께 2년의 계약 기간을 보장한다며 뽑은 친구들이예요. 그런데 1년 만에 프로그램을 폐지합니다. 나중에 이 친구들 계약서를 보니 계약 상대가 방송국이 아니라 프로그램 <웃찾사>이고, '부득이한 사정으로 프로그램이 없어지면 계약은 종료된다'는 규정이 있더라구요. 이런 법이 어디 있냐고 기자회견 하겠다고 하니 SBS는 '시즌2로 돌아오겠다'고 언론플레이를 했어요. 그러고는 4년 지났는데 아무도 책임을 안 지고 있어요."

화가 난 A씨가 <웃찾사> 시절부터 쌓인 울분을 토해냈다.

"2011년 9월 tvN <코미디빅리그>(아래 코빅)가 생긴 후에 일부 개그맨들이 그 프로그램으로 옮겼어요. 그런데 우리 PD가 '코빅 간 사람들은 다 배신자다. SBS에서는 다시 안 쓴다'고 하는 거예요. 안 쓰긴 뭘 안 써요? 막상 스타가 되니까 모시기 급급하더이다. 괜히 PD랑 의리 지킨 개그맨들만 바보 됐어요. 그런 식으로 상처 줄 거면 다른 프로는 쳐다보지 말고 웃찾사에만 매진하라는 얘기는 왜 했냐구요?"

"2015년 3월 KBS <개콘>과 정면 승부하려고 일요일 오후 8시 45분으로 시간대를 옮겼어요. 1년 가까이 되니까 서서히 자리잡아가고 해볼만하다는 분위기가 만들어졌어요. 그런데 2016년 2월부터 김수현 작가가 쓰는 새 주말드라마 <그래, 그런거야>가 그 시간대에 들어가야 한다면서 웃찾사를 금요일 심야시간대로 옮겨버린 거예요. 드라마는 드라마대로 시청률에서 큰 재미를 못 보고, 우리는 우리대로 1년 동안 일궈놓은 젊은 시청자들 다 잃고 원점에서 시작해야 하고..."


A씨는 "개그 프로그램은 가요, 드라마, 뉴스 등 방송을 구성하는 프로그램 중에 꼭 존재해야 할 기본 요소"라며 "KBS <가요무대>나 <뮤직뱅크> 같은 음악 프로그램들이 시청률이 잘 나온다고 유지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지상파 무대가 사라진 후에도 새로운 길을 개척한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SBS 출신의 무명개그맨에서 구독자 212만 명의 파워 유튜버가 된 <흔한남매>(한으뜸, 정다운)를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유튜브로 대박 난 친구들 있죠. 하지만 그거 아세요? <흔한남매> 그 친구들도 원래는 <웃찾사>의 작은 코너로 시작해서 이름을 알린 겁니다. 그렇다고 해도 그런 케이스가 얼마나 되겠어요? 웃찾사가 배출한 개그맨 100여 명은 갈 길을 못 찾고 아직도 방황하고 있는데..."

A씨에게 <웃찾사> 시절의 대우를 묻자 "출연계약서라는 걸 써본 게 2003년이 마지막이었고, 출연료는 2015년 30만 원에서 40만 원으로 올려준 게 끝이었다. 연예인이 한 달 내내 방송국에 틀어박혀 아이디어 회의로 짜낸 대가가 월 160만 원이라면 믿어지냐"고 반문했다.

A씨는 "연예계 생활 수십 년 해본 선배들도 방송가의 생리를 너무 잘 알아서 아무 소리도 못 한다. 그 분들이 설령 목소리를 낸다고 해도 프로그램이 없는데 무슨 도움이 되겠냐"고 말했다.

짧은 인터뷰를 마친 A씨의 말이 기자의 귀에 마지막으로 꽂혔다.

"저도 방송 프로그램 생기면 들어가야 할 사람이니 절대로 제 이름 나가면 안 됩니다. PD들에게 미운털 박혀서 좋을 게 하나 없어요. 방송국 사람들에게 '괘씸죄'로 찍히면 어떻게 되는지 아시죠?"

태그:#연기자실태, #개그맨, #웃찾사, #코미디
댓글6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