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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김고종호 교사가 자신의 페이스북 페이지에 쓴 글로 필자의 동의를 얻어 게재합니다. [편집자말]
지난 2일 SBS <그것이 알고 싶다>가 "정인이는 왜 죽었나? - 271일간의 가해자 그리고 방관자"를 방송하면서 '서울 양천구 아동학대 사망 사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 2일 SBS <그것이 알고 싶다>가 "정인이는 왜 죽었나? - 271일간의 가해자 그리고 방관자"를 방송하면서 "서울 양천구 아동학대 사망 사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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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울 양천구 아동학대 사망 사건에 대해 일단 법리부터 따져보면 아동학대치사죄로 기소한 것은 잘못되었다. 어린이집 교사와 이웃들의 진술, 병원 후송 과정에서의 소극적 모습과 그 전후 행동을 살펴볼 때 살인의 (미필적) 고의성이 있었음이 넉넉히 인정된다. 따라서 약 7개월 전에 벌어진 충남 천안 아동학대 사망 사건(소위 '여행 가방 사건')과 마찬가지로 살인죄로 기소했어야 한다. 적절한 공소장 변경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물론 아동학대치사도 예비적 공소사실로 함께 가져가야 한다).

2.
죽은 사람의 이름을 기억하는 행위는 매우 중요하다. 아마 방송 프로그램에서도 그러한 의도로 '정인이'라는 이름을 불렀을 것이다. 그러나 이후 모든 언론이 '정인이 사건'이라고 보도하고, 분노에 찬 사람들도 모두 '정인이 사건'으로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피해자의 이름으로 사건을 명명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

예를 들어 '윤 일병 사건'이라는 명칭은 사건의 본질을 제대로 드러내어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에 '경기도 연천 의무병 살인사건'으로 정확히 써야 한다. '우 조교 사건'이 아니라 '신 교수 성희롱 사건'으로 말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특히 아동 청소년이 피해자인 경우 풀네임을 쓰지 않고 이름만 쓰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은 피해자를 같은 인격으로 바라보지 못 하게 한다. '나영이 사건', '효순이 미선이 사건'이라는 표현은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조두순 사건', '미군 장갑차 압사 사건'이라는 명칭이 있다).

3.
방송 이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은 역시 신상 털기였다. 물론 형사법적 응징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현실에서 공익성을 일부 띠고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가해자에 대한 악마화와 낙인찍기가 해당 범죄에 대한 올바른 접근과 재발 방지로 이어질까? 그렇지 않다. 아무렇지도 않게 퍼다 나른 신상과 평들을 나도 어쩌다 보게 되었다. "역시 개독은 안돼." 아동학대는 종교와 상관없이 벌어진다.

4.
이 사건과 관련해 문재인 대통령이 입양 절차 관리 강화를 지시한 것에 대해 야당이 "아동학대가 문제인데 왜 입양을 거론하나" 하고 비판하는 것은 30%쯤은 틀리지만 70%쯤은 올바른 지적이다. 이번 사건에서만큼은, 입양 아동 사후관리가 잘 되었더라면 사망에 이르는 비극을 막았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므로 당근과 채찍으로 입양기관이 입양 아동 사후관리를 철저히 하도록 체계를 정비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런 아동학대 사망 사건이 입양가정에서만 벌어지는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5.
아동학대가 강하게 의심되는 경우 보호자로부터 피해 아동을 즉시 분리할 수 있는 아동복지법 일부개정법률안이 이미 지난 12월 국회를 통과했다. 원가정 보호 원칙이 폐기된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수정이 가해진 것이다. 이번 사건은 개정법률이 공포되기 전에 일어난 일이지만, 사건의 과정에서 여러 기관이 보인 소극적인 모습들을 볼 때, 결국 공권력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찾아내고 개입해서 법을 집행하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개인의 사생활에 국가의 간섭을 최소화해야 하겠지만, 폭력이 사생활로 인정될 수는 없다. 국가는 국민이 기본권을 향유할 수 있도록 보장할 의무가 있다. 특히 아동 청소년의 경우 부모에게 상시적, 절대적 결정권을 부여하는 법체계는 대폭 수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비대칭적 권력관계 속에서 폭력은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양부모 학대로 사망한 생후 16개월 정인이가 잠들어 있는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자연묘지에 5일 오전 추모객들이 적은 추모글과 함께 간식, 장난감이 쌓여 있다.
 양부모 학대로 사망한 생후 16개월 정인이가 잠들어 있는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자연묘지에 5일 오전 추모객들이 적은 추모글과 함께 간식, 장난감이 쌓여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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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넬슨 만델라는 "한 사회가 아이들을 다루는 방식보다 더 그 사회의 영혼을 정확하게 드러내 보여주는 것은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아동학대는 어느 특정한 악마가 자행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사회적 관계의 특성이 반영되는 것이라고 본다. 만일 우리 사회가 아동 청소년을 매우 존귀한 대상으로 생각하고 대접한다면, 가정에서의 아동학대는 거의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는 "장애인 출입 금지"나 "흑인 입장 금지"라는 문구가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는 동의하지만, '노 키즈 존'에 대해서는 아동보다는 사업주의 감정에 쉽게 이입한다. 아동 청소년은 아직 '미성숙한 존재'이기 때문에 성숙해지기 위해 인권 침해 상황을 참고 견뎌야 한다고 강요하며, 청소년 인권을 이야기하는 것은 곧 교권 침해, 부모권 침해로 받아들여진다. 52시간 근무제에 대해서 그렇게 격론을 벌이지만, 밤늦게도 주말에도 학원에 가야 하는 처지에 대해서는 문제 제기하지 않는다. 이건 학대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7.
일각에서는 이번 사건의 가해 부모가 입양을 한 이유 중 하나가 경제적 혜택을 받기 위해서라고 의혹을 제기한다. 불편하다. 내가 세 명을 낳아 다자녀 가정인데 이게 경제적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아니니까. 그러나 한편으로는 일리가 있다. 우리 사회가 출산율을 높인다면서 내세우는 정책들이 그렇다. 출산지원금 얼마를 줄게요, 육아수당 얼마를 줄게요, 아파트 특공 자격을 줄게요 등등. 그 얼마 되지도 않는 이야기들이 아동을 교환가치로 바라보게 하는 건 아닐까. 너는 얼마짜리야(그런 정책들 내세워봐야 출생률도 안 올라가는데).

8.
정말로 출생률이 올라가려면, 정말로 아동 청소년이 사랑받고 행복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온 마을이, 온 사회가, 우리 국가가 너를 사랑으로 키우고 존중해주겠다는 다짐이 필요한 게 아닐까?

그래서 너를 따뜻하게 품을 수 있도록 엄마 아빠도 저임금 고용불안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가정에서 너를 잘 돌볼 수 있도록 지원과 관심을 주고 때로는 제재도 가하고, 가정 바깥의 곳곳에서 네가 원하는 따뜻한 돌봄과 교육을 제공받을 수 있고, 네가 언제든지 친구를 만나서 뛰어놀 수 있는 다양한 공간과 기회를 만들어 준다고, 약속하고 노력해주면 안 될까?

태그:#서울 양천구 아동학대 사망 사건, #그것이알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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