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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부모 학대로 사망한 생후 16개월 정인이가 잠들어 있는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자연묘지에 5일 오전 추모객들이 적은 추모글과 함께 간식, 장난감이 쌓여 있다.
 양부모 학대로 사망한 생후 16개월 정인이가 잠들어 있는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자연묘지에 5일 오전 추모객들이 적은 추모글과 함께 간식, 장난감이 쌓여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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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시 오래 학대를 당한 한 아이가 세상을 떠났다. 16개월 정인이. 지난 2020년 1월경부터 지속돼온 폭행 끝에 아이는 쇄골·늑골이 골절되고, 췌장이 파열되는 등 심각한 중상해를 입었다. 그동안 총 세 차례 학대의심신고가 접수됐음에도 아이는 어떤 보호조치도 받지 못하고 끝내 숨졌다.

정인이 사건은 2020년 발생한 아동학대 사건들과 궤를 같이한다. 여행용 가방 안에서 사망한 9살 남자아이, 끼니를 위해 라면을 끓이다 화마에 휩싸인 인천의 형제 등 일련의 사건 모두 현장체계가 제대로 작동했더라면 막을 수 있었던 방치된 죽음이었다.

이와 관련해 이수연 한국여성변호사협회 공보이사는 5일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현장의 미비함을 재차 지적했다. 이 변호사는 "아동전담 인력 자체도 제대로 배분이 안 됐을 뿐더러 이들의 전문성도 상당히 부족한 실정"이라며 "현장에서 느낀 바로는 지금이 다른 때보다 더 열악한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형량을 높이는 입법보다, 지금 있는 법이 제대로 시행 될 수 있도록 현장을 개선하는 게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이 변호사는 이번 사건의 가해자인 정인이의 양부모에게 살인죄를 적용해야 함도 강조했다. 이들이 약 1년간 정인이에게 가한 폭행 정도를 고려하면 살인에 대한 미필적 고의가 충분히 인정된다는 것이다. 이 변호사는 "다른 아동학대 사건 또한 살인죄가 적용될 여지가 있었음에도 아동학대치사 혐의에만 그친 적이 많았다"면서 보다 적극적인 법 적용의 필요성을 당부했다. 아래는 그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정은이 양부모, 살해죄 적용해야 하는 이유

- 한국여성변호사협회는 지난 4일 성명서에서 정인이 사건에 살인죄를 적용해야 함을 강조했다.

"살인죄를 적용하기 위해선 살해에 대한 가해자의 미필적 고의가 인정되는지 여부가 중요하다. 지금은 가해자들의 폭행 목적을 정인이가 피해 입은 정도를 근거로 추측해야 하는 상황인데, 현재까지 알려진 상해 수준은 단순 신체학대, 혹은 단순 폭행으로 판단할 수 없는 정도다. 가해자들이 정인이에게 가한 행위와 정인이가 사망에 이르게 된 경위를 종합적으로 놓고 봤을 때, 살해 고의는 충분하게 인정된다고 본다."

- 하지만 검찰은 양모 장아무개씨를 아동학대치사 혐의로 구속기소하고, 양부 안아무개씨는 방임죄로 불구속기소했다. 살인죄는 적용되지 않았다.

"이 사건만 아니라, 다른 아동학대 사건 또한 살인죄가 적용될 여지가 있었음에도 아동학대치사 혐의에만 그친 적이 많았다. 만일 가해자가 친부모일 경우, 아동학대를 막기 위한 전반적인 대응들은 훨씬 소극적이다. 조심스레 추측컨대, 이번 기소도 그간의 관행에 따른 것이 아닌가 싶다. 아동학대 사건은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나 힘의 균형 등을 고려해도 성인을 대상으로 한 범죄보다 중하게 처벌돼야 한다."

- 만일 이번 정인이 사건에 살인죄 혐의가 적용된다면 어떤 변화가 생기나?

"형량상 차이는 크지 않다. 아동학대를 범한 사람이 사망까지 이르게 한 '아동학대치사죄'의 경우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형을 선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살인죄와 비교한다면 아동학대치사죄에 사형만 없을 뿐, 법정형의 차이는 크지 않다. 특히 이렇게 사회적 공분을 산 사건의 경우 아동학대치사죄가 적용된다 해도 처벌 수위는 중하게 나올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중요한 건 각 법마다 달리 적용되는 양형기준이다. 아동학대치사보다 살인죄의 기본형량이 더 높게 권고되는데, 실질적인 법정형의 차이도 여기서 생긴다. 또한, 어떤 죄명을 적용하는지에 따라 범죄의 심각성도 다르게 받아들여진다고 본다. 아동학대에 그치는 게 아니라, 가해자가 아이를 살해했다고 판단하고서 이 사건을 접근하는 것은 무게가 다르다."

(대법원 양형기준에 따르면, 아동학대치사죄의 기본형은 4년에서 7년형이다. 살인죄는 10년에서 16년 정도가 기본 범죄 형량이다.)

쏟아지는 입법은 대안이 아니다
 
양부모 학대로 사망한 생후 16개월 정인이가 잠들어 있는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자연묘지에서 5일 오전 추모객들이 방문해 정인이의 안타까운 죽음을 추모하고 있다. 추모함에 쌓인 눈을 걷어내자 정인이의 생전모습이 담긴 사진이 보인다.
 양부모 학대로 사망한 생후 16개월 정인이가 잠들어 있는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자연묘지에서 5일 오전 추모객들이 방문해 정인이의 안타까운 죽음을 추모하고 있다. 추모함에 쌓인 눈을 걷어내자 정인이의 생전모습이 담긴 사진이 보인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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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사건을 계기로 국회에서 아동학대와 관련한 법안이 잇따라 발의되고 있다. 이 가운데 아동학대 처벌법의 형량을 높이겠다는 내용도 있다. 어떻게 보나?

"국회의 의도는 알겠지만, 당장 필요한 해결책이라 보기 어렵다. 지금 있는 법(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으로도 국민 법 감정에 맞는 처벌은 가능하기 때문이다. 아동학대치사죄에도 살인죄에서 사형만 뺀 수준의 법정형이 마련돼 있다. 잇따른 입법보다 중요한 건 현장의 변화라고 본다."

- 2020년 11월, 경찰청과 보건복지부가 정인이 사건을 계기로 대안을 내놓은 바 있다.

"내용에 일부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두 차례 이상 학대의심 신고가 접수되면 아동을 가해자로부터 즉시 분리하는 등의 조치를 강화한다는 내용이 담겼는데, 이렇게 피해아동을 무조건 분리한다는 것은 일부 무리가 있다는 입장이다. 분리조치에 대한 판단은 현장의 아동 전문인력들과 함께 세밀한 과정을 거쳐 내려져야 한다. 그런데 지금의 현장은 정작 현장 인력들도, 이들의 전문성도 충분하게 보완되지 않은 상태다. 이런 상황에 강제적인 분리조치만 먼저 규정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

- 현장은 어떤 상황인가?

"이전에는 민간 아동보호전문기관(아래 아보전)에서 아동학대 관련 사건들을 담당했는데, 지난 2020년 10월 법이 바뀐 후로 주체가 바뀌었다. 이제는 아보전이 아닌,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이를 담당한다. 정부가 이를 전담하며 민간기관의 한계였던 강제성 등을 보완하고, 이전보다 아동학대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겠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변화는 뚜렷하지 않았다. 솔직히 현장에서 느낀 바로는, 지금이 대처하기 더 어려워졌다고 본다."

"과도기의 현장, 전문성도 인력도 부족하다"
 

- 법이 바뀌었는데도 상황이 더 안 좋아졌다고 판단한 이유는 무엇인가?

"본래 취지대로라면 국가와 지자체는 아동학대 현장에 대한 대응 능력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해당 분야에 관심 있는 전문가들을 적극 육성해야 했다. 아무리 지금이 과도기라 하더라도, 이 부분이 여전히 공백이다. 지금은 아보전이 담당했을 때보다 전문성이 상당히 떨어진 상태에 가깝다. 전문성과 상관없이 기존 공무원 인력 안에서만 업무 분담을 해결하고 있기 때문이다."

(2020년 11월 기준, 아동학대전담공무원은 전국 229개 시·군·구 가운데 100곳에만 배치된 상태다. 인력도 목표치인 290명의 65% 수준에 불과하다고 알려졌다. 67개의 지방자치단체는 아동학대전담공무원이 1명에 불과한 실정이다. 이마저도 사회복지직 직원이 아닌 행정 직원이 순환배치를 통해 해당 업무를 담당하는 상황이라 전문성 확보조차 어렵다.)

- 이밖에 추가적으로 보완돼야 할 부분이 있다면?

"아이들의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선 현장에서의 적극적인 판단이 절실하다. 이를 위해 지방자치단체의 아동학대전담공무원 인력을 확충하고, 이들의 전문성을 높여야 한다. 현장에 나간 수사기관이나 공무원들은 아동 보호 조치를 보다 적극적으로 내려야 한다. 아동학대로 사망한 피해아동들 모두, 현장에서의 발 빠른 조치가 있었다면 분명 살 수 있었다. 지금도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피해 아동들이 있다. 아동학대 사망 사건은 피해자 유족이 되레 가해자들인 만큼, 이를 막기 위한 외부에서의 적극적인 관심과 판단이 절실하다."
 
양부모 학대로 사망한 생후 16개월 정인이가 잠들어 있는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자연묘지에 5일 오전 추모객들이 적은 추모글과 함께 간식, 장난감이 쌓여 있다. 추모함에 쌓인 눈을 걷어내자 정인이의 생전모습이 담긴 사진이 보인다.
▲ 소복한 눈 걷어내자 드러난 정인이 모습, "미안해" 뒤돌아 눈물 닦는 어른들 양부모 학대로 사망한 생후 16개월 정인이가 잠들어 있는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자연묘지에 5일 오전 추모객들이 적은 추모글과 함께 간식, 장난감이 쌓여 있다. 추모함에 쌓인 눈을 걷어내자 정인이의 생전모습이 담긴 사진이 보인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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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정인이, #아동학대, #여성변호사회, #살인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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