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틱 코미디> 영화 포스터

▲ <로맨틱 코미디> 영화 포스터 ⓒ (주)안다미로


멜로 영화의 하위 장르로 남녀 관계에 코믹한 색채를 가미하여 재미있게 풀어내는 희극을 의미하는 '로맨틱 코미디' 장르는 1930~1940년대 할리우드에서 유행한 '스크루볼 코미디' 장르에 기원을 둔다. <어느 날 밤에 생긴 일>(1934), <필라델피아 스토리>(1940) 등으로 대표되는 스크루볼 코미디는 신분 차이가 큰 남녀가 빠른 대사를 무기 삼아 한바탕 다툼을 벌이다가 마침내 사랑으로 맺어지는 과정을 그렸다.

1960년대 TV에 자리를 빼앗기며 스크루볼 코미디는 위기를 겪었다. 이후 <필로우 토크>(1959)처럼 침실을 무대로 한 섹스 코미디로 TV와 경쟁하던 스크루볼 코미디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1989)를 기점으로 오늘날 우리에게 친숙한 '로맨틱 코미디' 장르로 진화했다. 이듬해 등장한 <귀여운 여인>(1990)으로 로맨틱 코미디 장르의 인기는 폭발했다.

다큐멘터리 영화 <로맨틱 코미디>(2019)를 연출한 엘리자베스 샌키 감독은 "로맨틱 코미디 영화가 자신의 인생의 전부"라고 외치는 광팬이다. 그런데 결혼 후 순수하고 단순하게 보였던 로맨틱 코미디 영화의 문제점을 발견하기 시작한다. 지나치게 이성애 중심이고 백인 위주이며 감상적이란 결점을 깨달은 것이다.

엘리자베스 샌키 감독이 로맨틱 코미디 장르에 관해 쓴 비판적인 논평이자 사랑을 듬뿍 담은 러브레터인 <로맨틱 코미디>는 어떻게 시작했을까? 그녀는 10대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를 조명한 영국 다큐멘터리 영화 <비욘드 클루리스>(2014)에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 제작에 참여하면서 영감을 얻었다고 밝힌다. <비욘드 클루리스>가 활용한 다큐 에세이 형식은 <로맨틱 코미디>로 이어졌다.
 
<로맨틱 코미디> 영화의 한 장면

▲ <로맨틱 코미디> 영화의 한 장면 ⓒ (주)안다미로


<로맨틱 코미디>는 남성, 백인이성애자, 중산층이 중심이 된 고정 관념을 주입하는 로맨틱 코미디의 관습을 강하게 비판한다. 화면은 1934년부터 2018년까지 약 160여 편에 달하는 로맨틱 코미디 영화의 장면들을 붙여 만들었다. 주장을 담은 중심 화자는 주로 엘리자베스 샌키 감독이고 그 외에 몇 명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들의 얼굴, 이름은 나오지 않는다. 오로지 목소리만 들려줄 뿐이다. 그런데 배우, 감독, 기자, 교수 등 전문 분야를 제대로 표시하지 않다 보니 설득력이 떨어져 버렸다. 반대편의 주장이 전혀 실리지 않았기에 일방적 주장에 머무른 아쉬움도 남는다.

<로맨틱 코미디>의 흥미로운 점은 주장을 로맨틱 코미디 영화와 비슷한 구조를 통해 보여준다는 사실이다. 1막은 엘리자베스 샌키 감독이 로맨틱 코미디 영화와 사랑에 빠진 '만남'이다. 그녀는 <연인이여 돌아오라>(1961)처럼 천생연분을 만나길 상상했고 <남 주기 아까운 그녀>(2008) 같은 결혼식을 꿈꿨다. 영원히 짝을 찾지 못할까 두려워하는 자신에게 로맨틱 코미디 영화는 반드시 꽃피는 로맨스가 찾아올 거라 속삭였다고 고백한다.
 
<로맨틱 코미디> 영화의 한 장면

▲ <로맨틱 코미디> 영화의 한 장면 ⓒ (주)안다미로


2막은 '이별'이다. 감독은 <당신이 잠든 사이에>(1994), <브리짓 존스의 일기>(2001), <러브 액츄얼리>(2003), <달콤한 백수와 사랑 만들기>(2006) 등 친숙한 로맨틱 코미디를 보여주며 다양한 질문을 던진다.

왜 전문직 여성은 허술한 바보로 등장할까? 과식, 섹스, 과도한 업무는 연애를 못 해서 생긴 공허함을 채우는 대안으로 그려질까? 남성들이 저지르는 비정상적인 사건들이 이상적인 연애로 제시될까? 여자는 왜 남성의 행동에 맞춰야만 하나? 공격적이고 억압적인 남자들이 흔히 등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주류 로맨틱 코미디 영화엔 왜 백인이성애자와 중산층만 나올까? 영화는 해답을 산업의 구조에서 찾는다.

3막은 '화해'다. 엘리자베스 샌키 감독은 로맨틱 코미디 장르가 진보적으로 나아가리라 전망한다. <브레이크 업-이별후애>(2007)는 흔한 해피엔딩을 거부하고 <루비 스팍스>(2012)는 장르의 흔한 여성상에 정면으로 맞선다. 
 
<로맨틱 코미디> 영화의 한 장면

▲ <로맨틱 코미디> 영화의 한 장면 ⓒ (주)안다미로


유색인종이 주인공인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2018)은 공전의 대히트를 기록했다. <이브의 아름다운 키스>(2002)는 레즈비언 소재를 멋지게 소화한 바 있으며 남자 고등학생이 자신의 성 정체성을 찾는 <러브, 사이먼>(2018)도 화제를 모았다. 지금 로맨틱 코미디 장르는 서서히 인종, 성, 섹슈얼리티가 아닌, 인간의 보편적인 소통과 사랑에 주목하고 있다.

<로맨틱 코미디>는 더 논쟁적으로 주제를 발전시키지 못한 아쉬움은 남는다. 깊이도 부족하다. 그러나 <로맨틱 코미디>가 문제를 제기한 시도 자체는 결코 폄하되어서는 곤란하다. 무엇보다 여성의 관점에서 장르를 보았다는 점이 중요하다. 엘리자베스 샌키 감독은 마지막으로 장르에 기대하는 바람을 피력한다.

"많은 감독이 로맨틱 코미디의 힘을 활용해 연출한 다양한 영화를 앞으로도 보고 싶다"
로맨틱 코미디 엘리자베스 샌키 다큐멘터리 제시카 바든 찰리 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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