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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웅 광복회장이 지난해 8월 24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친일비호 세력과 결별하지 않는 미래통합당은 토착왜구와 한 몸이라는 국민들의 인식이 심화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 마이크 잡은 김원웅 광복회장 김원웅 광복회장이 지난해 8월 24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친일비호 세력과 결별하지 않는 미래통합당은 토착왜구와 한 몸이라는 국민들의 인식이 심화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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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웅 광복회 회장은 애국가 교체를 강력하게 주장해왔다. 김 회장은 지난 2020년 8.15 경축사에서 "새로운 국가 제정의 필요성"을 강조한 후, 광복회를 중심으로 다양한 홍보 활동을 펼쳤으나, 코로나19 사태와 검찰개혁이라는 굵직한 이슈에 묻혀버렸다.

그는 2021년 신년사에서 또 한번 다시 "애국가 교체를 위한 국민적 공감대 형성"을 천명했다. 이유는 작사자 안익태의 친일 행적이다. 사실상 애국가 교체는 국민의 동의가 가능한 사안이다. 작사자의 친일, 표절 의혹, 시대성 부족 등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국화(國花)도 함께 교체해야 한다는 점이다. 무궁화가 국화가 된 데는 특별한 근거나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애국가에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라는 후렴구가 생긴 이후부터, 무궁화가 국화로 인정받기 시작했을 뿐이다.

애국가, 고집할 필요 있나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에는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안익태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친일인명사전 등재된 내용에 따르면 "안익태는 나치 정부의 제국음악원 회원으로 활동하며 1942년 만주국 건국 10주년을 경축하는 만주국 축전곡을 의뢰받아 완성했다"고 한다.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에는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안익태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친일인명사전 등재된 내용에 따르면 "안익태는 나치 정부의 제국음악원 회원으로 활동하며 1942년 만주국 건국 10주년을 경축하는 만주국 축전곡을 의뢰받아 완성했다"고 한다.
ⓒ 김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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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가의 작사자는 미정이다. 친일파 윤치호와 독립운동가 안창호가 거론되고 있기는 하다. 두 사람에 대한 기록이 풍부한 상황에서, 누구인지 알 수 없다면 둘 다가 아닐 가능성이 크다. 누가 지었는지도 모르는데 애국가로 고집할 이유가 있을까?

작곡자는 안익태이다. 1930년대 이전에는 민족주의자, 이후부터 반민족주의자, 해방 뒤 다시 민족주의자로 전향한 인물로 알려져있다. 대표적으로 그는 1938년 일왕 찬양가 '에텐라쿠(月天樂)'를 작곡하고 지휘했으며, 1942년 베를린에서 개최된 '만주국 건국 10주년 경축 음악회'에서 '만주국환상곡'을 지휘했다.

'안익태의 회귀'를 인정한다고 할지라도, 문제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는 불가리아 민요 '오 도브루자의 땅이여(О, Добруджански край!)'의 16소절 중 8소절을 표절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인도산 무궁화는 어떻게 국화가 되었을까? "윤치호 등의 발의로 양악대(洋樂隊)를 비롯해 애국가를 창작할 때 애국가의 뒤풀이에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라는 구절이 들어가면서 무궁화는 조선의 국화가 되었다"(동아일보 1933년 10월 21일). 윤치호는 1930년대부터 일본에 협력하기 시작해, 1940년대에 친일파로 전향한 인물이다.

게다가 무궁화는 일본이 신성시하는 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에서 무궁화 관련 문화재 약 45건, 무궁화 관련 신앙 약 12만 8000개, 1911년 초등학교 1학년 음악 교과서부터 2018년 단카(短歌) 월간지까지 무궁화 관련 노래 약 8000곡, 시문학 장르인 하이쿠(癸句)에서 무궁화 관련 작품 약 693개이다(강효백, <헤럴드경제> 2019년 4월 27일). 반면 대한민국에서 무궁화 관련 문화재, 노래, 문학작품은 손에 꼽을 정도다.

국가 차원의 애국가 교체시도는 여러 번 있었다. 1948년 9월 제헌의회에서 '국가(國歌)와 국기(國旗) 제정에 관한 건'이 상정 후 철회되었다. 남한 단독변경은 영구분단을 의미하므로, 통일될 때까지 논의하지 말자는 이유였다. 1960년 9월 민주당 소장파 의원들이 '새로운 애국가 제정'을 주장했고, 문교부 장관이 호의적으로 접근했으나 무산되었다. 5. 16군사정변 때문이었다.

1982년 10월 '국가제정추진위원회'가 발족하였지만, 소리소문없이 사라졌다. 여기엔 당시 '하느님이 보우하사'라는 가사에 자부심을 가진 기독교계의 반대가 극심했다고 알려져 있다. 국가 차원의 국화 교체 시도는 없었다. 무궁화가 전국적 자생식물이 아니며, 윤치호 등 일부 취향을 반영했고, 일본에서 널리 사용된다는 이유로 교체해야 한다는 산발적 주장이 있었을 뿐이다.

국가(國歌)와 국화(國花)를 교체하는 작업은 간단하다. 법률 제·개정 절차가 필요 없기 때문이다. 국가와 관련해서는 「대한민국국기법 시행령」 제19조에 "국기의 게양식 및 강하식을 애국가의 연주에 맞추어 행한다"라는 내용이 있으며, 대통령 훈령인 「국민의례 규정」에 '애국가 제창'이라는 항목이 있을 뿐이다.

국화와 관련해서는 정부의 시행령이나 대통령 훈령조차 없다. 관습 및 관행적으로 무궁화가 국화의 지위를 인정받고 있으며, 정부 역시 무궁화를 국화에 준해서 대우하면서 사용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국민의 여론을 수렴해서 국가와 국화를 교체할 수 있다.

백번 양보해 '안익태의 회귀'를 인정하고 그의 '표절'을 부정한다고 할지라도, 100년 전에 만들어진 애국가가 시대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관련기사] 
애국가는 교체 불가? 바꾸는 게 친일 청산이다  http://omn.kr/1r8ka 
안익태가 친일파니 애국가 바꾸자? 다르게 생각합니다 http://omn.kr/1r87v 

태그:#애국가, #애국가교체, #무궁화교체, #안익태, #무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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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대학교 대학원 졸업(정치학박사) 전,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현, [비영리민간단체] 나시민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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